내어줄 지만 알았지 자신을 돌볼 틈이 없던 활동가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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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한두 달 파업해서는 파업해봤다고 말도 못 꺼낸다.
이젠 몇 십 억 손배가압류를 맞고서는 투쟁해봤다고 명함도 못 내민다.
이젠 몇 십 미터 고공농성은 놀랍지도 않다.   
이젠 한두 명 분신은 뉴스에도 안 나온다.

 

적어도 일 년 이상은 파업을 하고, 30미터는 가뿐히 넘는 크레인에 올라가, 백억이 넘는 손배가압류를 맞고, 스무 명은 훌쩍 넘는 노동자들이 자살을 해야 신문지면에 실린다. 그러나 그마저도 귀족노동자, 종북 빨갱이, 알박기 등의 꼬리표를 붙임으로써 ‘일반인’들에게 정확한 사건인식과 판단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해 버린다. 그리고 그로인해 자본가의 바람대로 ‘노동자’와 ‘일반인’, ‘노동운동’과 ‘일상의 삶’에서의 교집합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점점 따로국밥이 되어간다.

 

그 결과... 우리는 허하다.

아무리 기를 쓰고 평등․평화․정의를 위해 ‘(노동)운동’을 해도 잘 짜여 진 식단에 트레이너를 붙이고 ‘(자본)운동’하는 자본가보다 세련된 몸매를 갖기 어려우며, 이젠 사람들도 투박한 노동운동가들보단 세련된 자본가를 더 존경하기까지 한다.

 

그 결과... 우리는 아프다.

지난 노동당 부대표의 자살 등을 한 사람의 우울증으로 덮고 넘어가기엔 나도 모르게 코끝이 시큼하고 명치끝이 싸하게 아파오는 것. 미안함과 부채감으로 소주한잔 걸치고 잠을 뒤척이는 것. 바로 우리의 노동운동의 현실이 ‘현재 아프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아프다는 것을 모른다.

그냥 해왔던 대로 ‘열심히! ... 또 열심히!’ 이러고 있다. 아니 사실 아프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악랄한 자본가에 맞서 죽을 둥 살 둥 버티고 있는 동지들을 매일 대하면서 ‘나도 아프다’는 말을 어떻게 꺼낼 수 있겠는가... 그리고 투쟁의 현장에서 나를 믿고 의지하는 동지들을 대하면서 누구에게 ‘아픈 나’를 꺼내 놓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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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민을 할 때였다.

내 주위의 노동운동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분들이 많이도 아팠다. 잠을 이루지 못해 매일 벌건 눈으로 하루를 맞이하고, 꾸역꾸역 집어넣기만 하고 배출은 하지 못해 부글부글한 뱃속마냥 몸도 마음도 편치 않아 살짝만 건드려도 왈칵 눈물 쏟는 동지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세월호 사건은 이런 우리들의 마음을 더욱 울렁이게 만들었다.

 

이렇게 ‘공감능력’, ‘연민의 마음’, ‘더불어 함께’를 실천하는 활동가들이 내어줄지만 알았지, 스스로를 돌볼 여력은 고갈되어, 힘들고 아파하는 것을 보면서 큰일이다 싶었지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과 시스템은 부재했다.

 

그러던 중 선배님을 통해 2014년 길목협동조합에서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 현장에서 일해 온 활동가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보살피는 일에 뜻을 모아 시작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선배의 소개로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지금의 상담프로그램 ‘심심(心心) 개인상담’과 ‘심심프리(心心-free) 집단상담‘이 그것이다.

 

나는 내가 배운 연극치료를 활용해서 함께하고 있다.

한때 연극치료를 공부하면서 그동안 보지 않았던 그래서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 속에서 평상시 알아차리지 못했던 분노와 불안, 자괴감 등의 감정들을 느끼게 되었고, 그로인해 위축되고 자신감을 잃고 방황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 공부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있나? 내가 행복하지 못한데 누구를 도울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잠시 공부와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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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많은 이들이 슬픔에 빠졌고, 나 또한 이 슬픔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아마 그때 슬픔과 분노만 느끼고 행동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절망과 좌절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 것 같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의 어깨가 되어주고, 다리가 되어주며 곁에서 함께 해주는 많은 이들을 보면서, 그리고 나 또한 조금이나마 그분들과 함께하려고 하면서 그분들을 위한다고 생각한 일이 결국은 나를 살리고 나를 치유하는 일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더불어 함께 행복해야 나의 안전과 평화가 지켜진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다. 그리고 더불어 행복하기 위해 공감의 경험을 할 수 있는 치유활동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치유활동가. 얼마 전에 명함을 받았다.

‘치유활동가’라고 찍혀있는 명함을 받아들며,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분들을 만난 것에 감사하고, 또 이 치유프로그램이 자리 잡고 유지될 수 있도록 물심양면 관심 갖고 도와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크다.

 

이제 ‘심심의 치유활동가’로써 나 자신은 물론 우리가 뜻을 같이해서 만든 길목협동조합의 심심,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함께 성장해 나가는 기대를 품으며 한걸음씩 전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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