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부모에게 주는 것

posted Aug 0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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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정현
발행호수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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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심심 글을 빼먹고 2년 만에 기고하는 지금, 나는 22개월짜리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원래 아이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아이를 가질까 말까 고민할 때도 심심 세미나에서 공부한 것들이 머리에서 맴돌아, 과연 내가 그 막중한 일? 한 인간의 첫 3년을 최소한의 상처를 주며 키우는 것? 을 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 결국 아이를 가지는 노력을 해보기로 결심하고, 정말 엄청나게 낮은 확률을 뚫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나는 내가 낳은 아이가 두려웠다. 아이를 낳고 처음 내 품에 아이를 안은 날, 나는 펑펑 울었다. 기뻐서 가 아니라 (드라마에서는 다들 아이를 안고 울길래 기뻐서 우는 줄 알았다), 도대체가 이 생명체를 내가 어떻게 책임지고 키운 단 말인가, 라는 두려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울었다. 안는 것도, 먹이는 것도, 놀아주는 것도, 모든 것이 다 무서웠다. 내가 무엇이든 망치게 될까 봐, 나는 너무 두려웠다. "한 인간의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감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논문을 쓰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아기가 예쁜 줄도 몰랐고, 나를 엄마로 알아보는 것 같지도 않았다. 모성이라는 것이 과연 생기기는 할까, 의심스러운 나날이었다.

 

아기가 22개월이 된 지금은 그럼 모성이 펑펑 쏟아져 나오고 있느냐? 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타고난 모성은 없는 것 같다. 아기도 사람이고 엄마도 사람인지라, 둘이 22개월간 서로 말도 주고받고 (주로 옹알이), 안아주고, 같이 자고, 울면 달래면서 정이 들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나는 아이에게 정이 들고 있다. 아이는 나를 보면 반가워하고, 화도 내고, 울기도 하고, 무표정하기도 하고, 찡그리기도 하고, 살포시 기대기도 하고, 아프다고 하면 약을 발라 주기도 한다. "엄마 힘내세요"라는 어린이집에서 배운 노래도 해준다. 나는 아이하고 열심히 놀아 주기도 하고, 그러다 지쳐서 누워 있기도 하고, 아기가 가지고 도망가는 위험한 물건을 뺏고는 우는 아이를 망연자실 바라보기도 하고, 바쁘게 전화기를 들여다보느라 아이가 실망하는 걸 보기도 한다. 보통 인간관계처럼 우리 둘은 다양한 경험과 감정들을 나누며 정을 쌓아가고 있다. 그렇게 쌓인 정이 "모정"이라면, 나는 22개월 전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모정을 느낀다.

 

힘들지만 예쁘고 사랑스럽다. 보통 아이를 키우며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이 느껴진다 던데, 나는 어떻게 된 일인지 '이렇게 귀여운 아이를 상대로 어떻게 소리 지르거나 때릴 수 있을까', 하며 감사함 보다는 원망이 더 는다. 그리고 사랑받고 인정받으려 내 인생의 전부를 걸었던 어린 시절이 자꾸 기억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부당한 이유로 부모님께 많은 상처를 받았는데, 그 당시에는 한 번도 부모님을, 특히 엄마를 미워하거나 원망한 기억이 없다. 그저 어떻게든 사랑받고 인정받으려고 죽을힘을 다해 애쓴 기억뿐이다. 내 아이도 나의 무수한 실수를 용서하며 나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을 것이다. 아이에게는 내가 우주고 하나님 일거다. 내가 무심코 무표정하게 있거나 아이의 부름에 반응하지 않아도, 아이는 아마 우주가 돌아서는 기분을 느낄 테지. 그래도 원망 한번 못하고 내가 다시 주의를 기울여 주면 반갑게, 언제 서운했냐는 듯 나를 그 티 없이 까만 눈으로 바라봐 준다. 이런 사랑은 아마 같은 어른에게서는 절대 받을 수 없는 사랑이겠지 생각한다. 그 절대적이고 압도적인 믿음과 사랑에 엄청난 부담감을 느낀다. 하지만 동시에 내 마음의 구멍이 채워지는 듯한 느낌도 어렴풋이 받는다. 이런 것이 신의 사랑과 비슷한 것일까: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것이 아닌, 아이가 부모에게 주는 절대적인 믿음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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