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있는 나의 아이

posted May 2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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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지아
발행호수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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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 기고 3월 이재경 선생님의 글을 읽고 나는 꽤 긴 시간 동안 마음이 울렁거렸다. 빈 밥통의 말라비틀어진 밥알을 반짝반짝 귀한 것인 줄 알고 꼭 안고 있는 그 아이를 생각하면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눈물이 핑 돌고 마음이 아프다. 말라비틀어진 밥알이 든 밥통을 안고 있는 아이의 모습도 안타깝고, 선생님이 삶에서 여러 가지 것들을 만났을 때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보내버렸다는 말이 속상했다. 매월 심심 기고에 글이 올라오는데 유독 그 글이 마음에 남고 지금까지 여운이 남는 것은 아마도 내 안에도 밥통을 안고 있는 그 아이 같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내 아이의 모습은 이렇다. 감나무 밭이 있다. 탐스럽게 익은 감이 나무마다 주렁주렁 달려 있다. 감이 제법 탐스럽게 잘 익은 것도 있고 아직 덜 익은 것도 있다. 주인이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노력을 많이 들여 가꾼 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서서 감을  따기도 하고, 까치발을 하기도 하고, 장대나 사다리를 사용하기도 하면서 열심히 감을 딴다. 저기 여자 아이가 하나 보인다. 그런데, 그 여자 아이의 모습이  이상하다. 감나무 밭에서 감은 따지 않고 바닥에 드러누워있다. 남들은 감을 따느라 바쁜데 왜 누워있을까? 궁금해진다. 옆에 다가가 그 여자 아이 옆에 같이 누워보니 여자 아이 얼굴 위로 잘 익은 감이 하나 보인다. 그렇다. 그 여자 아이는 감나무 밭에 누워서 감이 자기 입으로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아이의 표정이 썩 좋지 않다. 감나무 밑에 누워서 다른 사람들이 감나무 밭의 감을 따가는 모습을 보며 씩씩거리고 바싹바싹 약이 오른 모양이다.

 

그럼 일어나서 감을 따면 될 텐데, 왜 계속 누워있을까? 이런 질문이 생겼고 나는 그 아이에게 그 질문을 하고 답을 기다렸다. 한참 뒤에 그 아이가 약간 잰듯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일어나서 감을 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잖아.” 그 말을 듣고 나는 순간 멍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 일어나서 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잖아? 그건 당연한 거 아니야? 잠시 생각해보니,  아, 그럼 이 아이는 아무도 못하는 걸 자기가 해보이겠다고 하는 거구나. 그런데, 아무도 못하는 걸 아무것도 안 하면서 해내고 싶다는 말이구나.  참 기가 찰 노릇이다. 결국 손 안 대고 코 풀겠다. 이 말 아닌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손을 대지 않고는 코를 풀 수는 없고 노력이 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 결국 나는 안 되는 일에 내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는 셈이었다. 그 대답으로 나는 예전부터 나 자신에게 몹시 궁금했던 점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일이든 배우거나 시작하면 에너지와 공을 들여서 꽤 열심히 하는 편이다. 감나무 밭 주인처럼 말이다. 더 많은 정보를 위해 다른 책들을 찾아보기도 하고, 그 일을 먼저 시작한 사람에게 그 과정을 묻기도 하고 시간을 들여서 연습도 열심히 한다. 그것은 나의 좋은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시점에 오면 그 모든 것을 멈춘다는 것이다. 아무 노력도 어떤 에너지도 더 이상 주지 않는 순간이 온다. 그런 습관 때문에 나는 현실에서 어떤 일에 내가 들인 노력만큼 결과를 맺지 못하는 일들이 많았다. 아마 내가 모든 것을 멈추는 때는 이제 막 열매를 맺기 시작할 쯤인 것 같다.  조금 더 익기를 기다리고 내 두 손으로 열매를 따기만 하면 되는데 , 별안간 나는 바닥에 드러눕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열매를 따가는 사람들에게 비틀린 마음을 느끼며 씩씩댄다. 

 

나는 오랫동안 내 이런 습관으로 자신을 많이 비난했다. 노력은 노력대로 했는데 결국은 빈손인 느낌이 항상 있었다. 억울한 느낌도 들었지만,  결국 내가 하지 않았으므로 결국 내 몫은 자기 비난이었다. 남들이 나에게 “너 열심히 하잖아.”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그 말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내 안에서는 “거봐. 안되잖아. “, “ 또, 제자리야.” 이런 말들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정말로 애를 쓰고 또 애를 써서 어렵게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앞으로 가지만 결국은 내 뒤에 고무줄이 달린 것처럼, 용수철이 늘어났다가 순식간에 제자리에 돌아오는 것처럼 다시 원점인 느낌이 들곤 했다. ‘다시 여기구나. 또, 제자리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의 무력감, 좌절감, 결국 여기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을 것 같은 숨막힘, 공포가 있었다. 그럴 때면 세상 모든 것에서 에너지를 거두어 깊고 깜깜한 동굴 속으로 들어가 눈을 감고 몸을 작게 웅크리고 싶었다. 감나무 밭에 드러누워있는 여자 아이, 내 안에 있는 어린아이를 마주하며 내 오랜 습관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고, 궁금증이 풀리면서 비난이나 자책 대신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가 이루지 못했던 것들, 이룰 뻔했던 일들에 대한 깊은 아쉬움과 슬픔을 느끼는 시간들을 보냈다.

 

요즈음은 현실에서 내가 멈추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거나 또 제자리야. 이런 생각이 떠오르면 나를 살펴본다. 혹시 내 마음의 아이가 나무 밑에 드러누워있는 것은 아닌지? 이번엔 어떤 열매 밑에 누워있는지. 그리고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달래고, 어르고, 이제 그만 일어나서 열매를 따 보자고 이야기를 해본다. 고집스러운 아이가 한동안 꿈쩍도 안 하더니, 어느 날 감을 따가는 사람들을 보며 씩씩대다가  “그래, 그럼 나도 한번 해보자.”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는 나는 마치 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아, 그러니까 뭔가를 이루려면 노력이라는 걸 해야 하는구나.”라는 말을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했다. 그 말을 할 때의 느낌이 참 이상했는데 나는 전혀 몰랐던 것을 처음 깨달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머리로는 알고 있고 당연한 말이지만, 진짜로 마음에서 이 말을 받아들이는 느낌이랄까? 그 느낌이 하도 신기해서 같은 말을 여러 번 중얼거렸다. ‘아. 뭔가를 이루려면 노력을 해야 하는구나.’ 

 

아마 누워있는 여자 아이가 이제 일어나야 감을 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기도 하다. 나도 이제 현실에서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거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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