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말하다

posted Mar 2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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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간사님께 소식지에 실릴 글을 써달라는 말을 들은 지 한 달이 넘어가는데, 저는 딱히 쓸 말이 없었습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더는 미룰 수 없을 때가 왔습니다. 대체 내가 왜 그러지? 글을 못 쓴다고 할까봐 두려워서? 네! 남이 시켜서? 네! 나를 드러내 보이는 거라서? 네! 다른 분들이 쓰신 글들을 보니 다들 좋은 얘기였습니다. 뭘 더하지? 남들의 평가에 민감한 제가 보였습니다. 뭔가 더 좋고, 의미 있는 걸 내어놓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누가 시키는 일은 일단 하기 싫어하는 어린아이가 보였습니다. ‘내가 알아서 할 거야.’^^ 남에게 곁을 잘 안주고 까칠한 사람이 보였습니다. 주어진 상담만 하면 되지, 나도 모르는 사람들이 보는 소식지에 나를 내보인다고? 저는 2014년 3월 심심이 첫 발을 내딛을 때 함께했지만, 아직도 심심의 모태인 길목조합원 가입을 하지 않았습니다. 만 원 내는 회비가 아까워서는 아닙니다.^^ 심심사업 취지에 동의하며 어떤 식으로든 후원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나는 심심회원이지 길목회원은 아니야, 경직된 자율성이라고 볼 수 있겠죠. 암튼 유연하지 못합니다. 

상담실에 찾아오는 내담자는 어떤 심정일까요? 내담자는 조직운동이나 시민활동을 하는 단체에서 활동가로서 일하는 분입니다. 또는 그분과 인연이 닿아 곁에서 함께 하는 분입니다. 어떻게든 끈이 닿아 있어 활동가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추구해야 할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큰 집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편의를 취하기 어렵습니다. 한 개인으로서는 사람인지라 모순과 위선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를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관계와 내면에서의 갈등을 묻어두고 삽니다. 드러나면 다루기 쉽다고 하지요. 저 역시 심심상담활동가입니다. 마음에 대해서 수년간 공부하고 훈련받았습니다. 제가 작은 글 하나 쓰는데도 이러한 과정을 거쳤는데, 그분들은 어떨까요? 얼마나 많은 생략과 누락이 있었을까요? 그냥 참고 견디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할 때, 하던 일을 못하게 되고 일상이 흔들릴 때, 감정조절이 어려워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주변을 힘들게 할 때, 이런 일들이 반복될 때, 즉 상태가 악화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상담실을 찾았을 것입니다.

내담자가 내어놓는 태도와 이야기는 가장 어렵고 힘들 때의 시각으로 채색되어 있습니다. 상담자가 보는 것은 말 그대로 빙산의 일각입니다. 거대한 무의식이 숨겨 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내담자 전체의 인격 중에 안 좋은 부분만을 먼저 보게 된다는 뜻입니다. 내담자 개인의 발달사적 조망이 필요하다는 말은 맞습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트라우마가 있다고 누구나 똑같은 모습을 보이는 건 아니니까요. 만남에서 자신의 인격과 생애는 드러나기 마련이고요. 하지만 상담자라면 지금 만나는 모습은 이 사람의 평균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합니다. 더 나은, 더 좋은 가능성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가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20~30회기라는 정해진 회기 내에서 상담자는 무얼 해야 할까요?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 걸까요? 상담에는 많은 기법들이 있습니다. 숙지해야할 중요한 매뉴얼입니다. 그러나 기법을 잘못 썼다고 상담을 망치지는 않습니다. 실수는 피할 수 없고, 인정하고 사과하면 그 마음은 전해집니다. 상담자가 무엇보다 할 일은 따뜻한 물 한 잔, 소박한 밥 한 그릇에 지친 나그네가 힘을 얻듯이, 건네는 그 마음에 다시 길을 나설 용기를 얻듯이, 잠시 쉬어갈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는 일입니다. 함께하는 마음을 내어주는 일입니다. 충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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