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이해한다는 것

posted Dec 0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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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최수인
발행호수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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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이해한다는 것

 

 

올해 초부터 상담실에 찾아오는 4명의 여자아이들이 있었다. 한 반의 여자아이들로 반에서 친하게 지내는 그룹이었는데, 한꺼번에 다 오는 것이 아니라 2~3주 간격으로 한 명씩 돌아가면서 왔다. 처음에는 A라는 아이가 울면서 자신이 학교폭력으로 신고를 당했는데, 나중에 학적에 남아서 대학 갈 때까지 불이익을 받는 것이 걱정이었고, 부모님이 알게 될까봐 또 걱정이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연루된 아이들과 서로 주고받으면서 있었던 일이고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학교폭력으로 행동이 빠른 아이들이 먼저 신고를 한 것뿐이었다. 

 

여차저차 상담 이후 잘 지내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D라는 다른 아이가 울면서 찾아왔다. 다른 몇 명의 아이들이 자신을 따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쉬는 시간에 자신만 빼고 이야기하거나 화장실도 자기들만 가고, 점심 먹으러 갈 때도 자기들끼리만 간다는 것이다. 또래 그룹에서 빠지게 된 것에 대해서 무척이나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여차저차해서 다시 화해를 했다. 

 

한동안 아이들은 상담실에 오지 않았고, 이제 잘 지내나 싶었다. 그런데 2학기가 되면서 이 문제로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오는 일이 더 잦아지게 되었다. 자신들 그룹 내에서 서로 따돌리고, 따돌림을 당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고, 그럴 때마다 눈물 바람으로 상담실에 왔다. 안되겠다 싶어 한번은 모두 불러 모았다. 지금 이 일이 올 일 년 동안 계속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묻자, 자신들도 지긋지긋하다며 더 이상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런 그룹에는 약간의 힘이 더 있는 아이가 있게 마련인데, 바로 A가 그랬다. A는 이번에 B와 친해졌고 다음부터는 B와 친할 것이고, 이제 C와는 멀어지고 싶다고 했다. C는 며칠 동안 눈물바람으로 와서 A와 다시 친해지고 싶은데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고 있지 않다고 했다. 나는 B에게 지금 마음이 어떤지 물었고, B는 가운데 껴서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다. 그러자 A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넌 어차피 내 편이었는데 무슨 소리야?”했고, B는 “내가 언제? 나는 다 잘 지내고 싶어.”했다. A는 카톡 내용을 보여주면서 앞으로 나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했던 것은 뭐냐고 하자, B는 C와 멀어지고 너하고만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것은 아니었다고 이야기했다. A는 왜 마음이 변했냐며 오히려 B의 마음을 전혀 공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이 게임에서 B와 C가 친해지면 A는 다시 C와 친해지리라는 것을 말이다. 이 그룹 내에서 B는 누구하고나 다 잘 지내고 싶은 아이였고, A는 그룹 내에서 힘을 갖고 싶은 아이였다. 마침내 나는 매우 A에게 친절하게 말했다. “A야, B가 C와 친하게 지내면 너의 마음은 어때?”, “선생님. B는 그럴 리 없어요. 얘는 제 편이거든요.” 그러자 B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내가 로봇이니?, 네 맘대로 왔다 갔다 하게?”하며 기분 나빠했다. 게임은 끝났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지난 일 년 간 선생님은 너희들이 서로 돌아가면서 따돌리고, 따돌림 당하는 아이는 항상 울면서 선생님에게 왔어. 오늘 처음 우리 솔직하게 말하려고 만났어. 알겠어. 그럼 선생님이 제안을 하나 할게. 앞으로 A와 B가 친하게 지내도 C는 서운해 하지 말자, 그리고 B와 C가 친하게 지내도 A는 서운해 하지 말자. 어차피 너희들 서로 돌아가면서 그러는 거 아냐?” 이 말을 듣던 A의 표정이 일순간 변했고, 그건 싫다고 했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그래야 하냐고 한다. 이때 B가 A에게 말했다. 너는 C가 그렇게 미안하다고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가 안 되고 너무 이기적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C는 계속 울면서 실수한 부분에 대해서 A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사실 C가 실수한 부분은 A도 이미 똑같이 했던 부분이었다. 다만 B의 마음이 자기에게 있다고 확신한 A가 C에게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이것이 깨지자 A는 흥분했고, 나는 퇴근 시간이 되었으니 너희들끼리 좀 더 이야기해 보라며 보냈다. 사실 걱정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다음 날 A와 C는 다시 전처럼 친해졌고 모임에 오지 않았던 D가 B와 친하게 되었다. 이제 이 그룹에 어느 정도 균형이 맞추어진 것이다. 당분간 아이들이 오지 않을 것이다.

 

가끔씩 아이들의 이런 행동들에 어른의 잣대로 분노하고 꾸짖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아이들의 가정환경이 어떤지 잘 알고 있고 기질적인 측면도 이해한다. 학기 초에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자아이들의 이러한 관계적 폭력성이 말이다. 다행인 것은 나는 이런 면을 혼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얼마나 혼내고 싶었는지 모른다. 평가적인 단어와 비판하는 말이 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참길 잘했다. 

 

성경에 노하기를 더디 하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학교 상담실에게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내가 지금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저 아이의 눈에 보이지 않고 귀로 듣지 못한 무언가를 나는 보고 들어야한다. 아니아니......., 지금 하는 말을 아주 잘 들어야한다. 정신 바짝 차리고, 아...... 제발......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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