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덕 목사의 술기로운 생활과 성서 이야기 - 고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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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덕 목사의 술기로운 생활과 성서 이야기 - 고상균

 

찾아가는 길

서대문역 근처 골목으로 접어들어 어렵지 않게 안병무홀을 찾을 수 있었다. 그 건물에 기독교반성폭력센터가 있고 그곳에서 고상균 목사를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곳은 고상균 목사 부인(김애희 센터장)의 직장이다. 그가 내온 달달한 커피를 마시니 마음이 따뜻해져 두 시간 걸려 찾아온 보람이 있다 싶었다.

논문이야기

그는 박사논문을 쓰는 중이었고 요즘 하는 일과 논문이 상관있느냐고 묻자 재작년 7월 향린교회를 사임 한 이후 논문 쓰는 것 외는 하는 일이 아무 것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하는 일과는 상관이 없으며 관심사하고는 상관이 많다고 했다.

A : 레위기 18장의 내용은 누구와는 성행위하면 안 된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고모랑 성행위 하지 말라, 어머니랑 하지 말라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서 중간 중간에 남자와 성행위 하지 말라 그런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이것은 소위 동성애,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혐오의 근거로 사용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그렇게 사용하면 안 된다 그 본문은 그런 본문이 아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된다, 그래서 그것에 대한 사회학적 해석 그런 것을 활용하는 것이 제 논문의 주제입니다.

특이한 내용이라고 했더니 특이하다기보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그런 것이라고 한다.

A :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이고 기초적인 교리 중에 세상 모든 것을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그런 하느님이 어떤 존재는 만들어 놓고서 혐오한다, 이건 좀 말이 안 되잖아요. 모든 걸 다 만들어 놓고 어떤 것은 '귀엽다'고 하고 어떤 존재는 '거지같아' 하는 것은 좀 이상하잖아요.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까 사실은 기독교인들이 성소수자를 혐오한다고 이야기 할 때 성서를 가지고 하느님의 뜻을 운운하지만 그것은 하느님의 창조섭리를 기본적으로 왜곡하는 발상이죠. 사실 그렇게 보면 그것이 그이들의 잘못이냐, 그렇게만 생각되진 않고요 한국 개신교가 지난 백 년을 걸어온 시간이 이웃 종교를 혐오하고 이웃 문화에 대해 배타적이고 한국의 전통 문화에 대해서도 배타적이었고,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 여성들, 약자들, 장애인들.......
뭔가 이렇게 배타하는 논리로 교단을 만들어온 게 백 년의 역사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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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대상에 대해서도 평등한 존재가 아니라 시혜의 존재로.......
A : 예 맞습니다. 그렇게 할 때는, 본인들은 굉장히 높은 존재로 세워놓고 수직적 사회를 만드는 거잖아요. 그러면서 위를 꿈꾸고. 그러니까 그것은 지난 100년의 역사와 닿아있는 이야기라 생각해요. 이런 주제로 뭔가를 해보는 건 그렇게 해서 100년 동안 만들어진 잘못된 구조를 조금이라도 바꾸어보는 시도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겁니다.

Q : 이런 논문이 이전에도 있었나요?
A : 한국에서는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Q : 그러면 이게 어떤 논란거리가 될 수도 있겠는데요?
A : 될 수도 있겠지요. 아니면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거나. 하하하하

Q : 제일 중요한 게 논문 통과일 텐데요. 언제쯤.......
A : 올해 중 통과 목표입니다. 제 목표일 뿐 심사하시는 분들께 달려있겠죠.

Q : 그러면 경제는 전적으로.......
A : 그렇습니다. 경제는 전적으로 기독교반성폭력센터 센터장으로 있는 제 아내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가 경제문제를 아내가 책임지고 있는 점을 꼭 정확히 적어달라고 힘주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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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이야기

Q : 길목인에 연재 된 <수도원 맥주 유럽 역사를 빚다>와 요즘 하고 계신 유튜브 <술기로운 생활>과는 어떤 관계가 있나요?
A : 관계가 있다기보다는 유투브 방송 십여 분 동안 책에 나오는 밀도 있는 내용을 다루기는 어렵고요. 그래서 유투브 내용은 제가 구월부터 연재하려고 하는 <맥덕목사(맥주덕후 목사)의 편맥(편의점 맥주)탐지>에 실으려고 하는데요. 유투브 내용과 상당히 연동이 될 것이고 수도원 맥주는 간혹 인용될 것 같습니다.

Q : 유튜브 보니까 블라인드 테스트도 하고 첫 회라고 여겨지지 않을 만큼 재미있던데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가실 예정인가요?
A : 음, 아직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흘러갈지. 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건 한국의 음주 문화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좋은 점도 많지만 안타까운 점도 많지요. 일단 남성 중심적이고, 끝을 보려고 하고 술 못 마시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고 억지로 권하고 술을 먹으면서 술 이야기를 안 하고 돈 이야기 정치 이야기....... 음주문화가 재미있으려면 술 마시면서 술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아시겠지만 술의 원 자재가 곡물이나 과실이지요.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경작이라는 게 발생하고 거기에 노동자의 자리가 있습니다. 판매 유통에도 노동이 있고요. 주류유통에는 또 FTA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고요. 사는 사람 먹는 사람 가격 책정에 경쟁에 시장 원리의 작동 수많은 시스템 속에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우리가 잘 해나갈 수 있다면 어떤 술도 귀하지 않은 게 없고 어떤 술도 이야기가 없는 게 없지요. 이런 이야기를 해 보고 싶은 겁니다. 술 한 잔 속에서.

Q : 그런데 하필이면 목사님께서.......
A : 하하하, 일단 제가 술을 좋아하고요. 저희 집안이 뼈대 있는 집안이에요. 할아버지께서 술도가를 하셨어요. 어른들 말씀에 의하면 막걸리, 소주, 청주 등 다양한 술이 있었대요. 제 몸 어딘가 그런 DNA가 있는 거죠.

Q : 그러면 목사의 DNA도 있으신가요?
A : 아, 그건 없습니다. 할머니께서 권사님으로 소천하셨을 뿐, 아버님도 고등학교 때까지 교회를 다니시다가 본인의 의도로 무신론자가 되셨고.......

Q : 혹시라도 맥덕목사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눈이 있지 않을까요?
A : 예, 우선 개신교에서 술을 기피하는 것은 서양선교사의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왜곡된 문화라고 말씀드리고 싶고요. 그들이 조선에 들어올 때 모든 조선의 문화를 불신했고 저급하다고 생각해서 민중들의 음주 문화를 무시했지요. 우리가 노동을 하다가 막걸리를 마시는 건 칼로리를 보충하는 개념이거든요. 서양은 다르지요. 칵테일 문화, 즐기거나 한 잔 딱 놓고 이야기 하면서 우아하게 노는 게 저들의 문화이니까 동이 째 술을 마시거나 이런 건 저급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면서 교회에 오는 사람들에게 주초금지를 선언한 거잖아요. 그게 후에 장로교 등 대부분 교단에 교단법이 된 거죠.
두 번째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교회에서 무조건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는 것보다 술은 이렇게 마셔야 돼, 그렇게 음주문화를 선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종교인은 술을 잘 마셔야 됩니다.


Q : 어떻게 하는 게 잘 마시는 걸까요?
A : 술을 알고 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마시는 거죠. 밥 먹을 때 밥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말이죠. ‘내 밑으로 다 모여!’ 하면서 정치를 마시고 권력을 마시고 그러면 이미 그 자리는 망치는 거죠.

Q : 술에 대한 책들은 이미 많이 나와 있을 텐데요.......
A : 그렇지만 종교인이 술을 어떻게 마셔야 한다, 이런 걸 다룬 건 별로 없어요. 그래서 부족하지만 그런 영역은 제가 좀 해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Q : 이런 연구는 언제부터?
A : 하하하 연구라는 게 좀........ 제가 군인 대위 시절 평생 군대에 있을 생각은 없었고 반드시 전역을 해서 제가 존경하는 문익환 목사님, 안병무 선생님이 가르치셨던 한신대학원에 꼭 가리라 마음먹었는데 막상 전역할 때가 되니까 서른이 넘었고 무서워졌어요. 이십 대 대부분을 군에서 보냈고 아무런 경험이 없는데 만약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소믈리에 생각을 했어요. 군부대 마트에서 와인을 사서 조금씩 마시면서 일지를 썼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도 차이를 비교해 보라니까 잘 못 느끼겠다는 거예요. 아, 내가 이 방면에 좀 남다른 감각이 있구나 생각하게 되었죠. 그 후 접하기 쉬운 맥주를 사서 해본 거죠. 맥주의 맛 이름 병 제목 모든 게 궁금해서 찾아보니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큰 역사에 닿아 있더라고요. 아, 이게 이야기가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그 후 신학대학원에 가게 되어 이 일을 병행하기가 어려웠죠. 그냥저냥 맥주를 마시다가 삼십 대 후반이 되어 궁금함이 더 커진 거예요. 그래서 작업을 해 보자 하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거지요.

Q : 세계 맥주가 들어오면서 맥주를 다양하게 맛보게 되었잖아요, 목사님의 연구도 확장이 되었나요?
A : 그렇죠. 편의점 네 캔 만 원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렇게 되었지요.

Q : 이 다양한 맥주의 선택 기준이 있을까요?
A : 맥주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삼겹살 먹고 입가심으로, 맥주를 시킬 때 어떤 맥주를 달라는 게 아니라 그냥 ‘맥주 주세요.’이랬는데 이제 달라진 거죠. 국내 맥주 업계도 이제 그 전과 같이 해서는 승산이 없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다양하게 생산을 하게 되었고요.

Q : 맥주 가격은 적정하다고 생각하세요?
A : 그거야 말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주류세 정책이 아주 오래 된 것이고 유통 과정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손볼 부분이 많지요. 재작년부터 법률 개정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이해관계가 얽히다 보니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Q : 세계 최고의 맥주를 든다면 어떤 맥주를?.......
A : 아, 그건 너무 어려운 문제네요. 나라마다 제각각 특징들이 있어요. 그 특징에 맞춰 마셔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상면발효주 에일의 종주국은 영국이니까 영국이나 아일랜드 쪽이 좋구요, 많은 사람들이 독일 맥주를 생각하겠지만 독일은 묵직하고 깨끗한 맛은 있지만 맥주순수령으로 다양성이 없어졌지요. 오히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은 다양하고 독특한 맥주를 맛볼 수 있어요. 그런데 세계적으로 소비되는 맥주의 70%는 라거입니다. 하면발효주라고 하는, 이것을 처음 시작한 곳은 체코예요. 우리나라에서 먹는 필스너와 같은 건데요. 그곳에서 자생하는 맥아와 경수를 사용하는 체코의 맥주는 특히 더욱 강하고 묵직한 맛을 내지요.

Q : 무알콜 맥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 저는 뭐 이딴 걸 만들었나 했었는데 요즘 제가 몸이 좀 안 좋은데 병원에서 술과 밀가루를 끊으라고 하더군요. 점차 끊는 중이었는데 어느 날 시원한 맥주 한잔이 마시고 싶었어요. 그래서 무알콜 맥주를 마셔봤는데, 세상에 누가 이런 걸 만들어주셨는지, 참 이 거 만든 분 노벨평화상 드려야 됩니다. 저 같은 사람, 모유수유 하시는 산모님들을 위하여 이거 참.......

Q : 제 아들이 심장병이라서 친구들 만날 때 무알콜 맥주를 마시거든요.
A : 아, 그런 사람들이 그 자리에 빠지지 않게 해 주는 이 무알콜 맥주 만든 사람 꼭 노벨평화상 드려야 됩니다. 무알콜 맥주 중에서는 크롬바허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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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이야기

Q : 향린교회는 소위 보수적인 교회들과 성서 해석이 좀 다른 것 같아요. 또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살자 하는 실천 다짐도 하지요. 보수적인 교회들은 주일날 설교를 통해 은혜 받고 세상에 나가 복 받는 것으로 위안을 얻는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오늘날 신앙인들에게 성서의 기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A : 개신교와 가톨릭의 다른 점이 많지요. 특히 성서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고 생각하는데요,  가톨릭에서는 성서의 권위와 교회의 권위가 거의 동등하지요. 성서에는 교황이라는 존재가 없어요. 장로도 있고 집사도 있지만요, 교회의 필요에 의해 결정한 거죠. ‘교황 제도가 있어서 지혜롭고 권위 있는 사람들이 성서를 해석해서 이것이다’하고 선포하는 것이죠. 이것은 순기능이고요, 만약 권위 있는 사람이 정의롭지 못하다면, 자정 작용을 못 한다면, 그냥 소수에 의해 장악돼 버리는 거죠. 이러면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이게 바로 중세 암흑기의 모습이지요. 그걸 반대해서 뛰쳐나온 사람들이 개신교이고 이들은 반성의 결과로 성서의 권위를 극상에 올리게 됩니다. 교회의 전통을 저버리고 오직 성서. 이렇게 하여 예배 한 중간에 설교를 넣게 됩니다. 설교는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공동체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겠습니다’하고 하느님께 바치는 예식인 거죠.
문제는 성서는 해석되어야 하는데 성서 자체가 절대화하는 것입니다. 한국 개신교는 그런 오류에 빠졌고 그것이 문자주의입니다. 우리 길목조합원들 대부분은 교회를 다니고 계실 겁니다. 그러면 성서는 무엇이냐, 하느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하느님의 말씀이라도 반드시 해석되어야 합니다. 성서는 가장 늦게 썼다 해도 천구백 년 전에 씌어졌고 우리나라에서 쓰인 것도 아닙니다. 문화도 언어도 다른 곳에서 아주 오래 전에 쓰인 성서가 단번에 믿어진다면 둘 중 하나입니다. 제대로 보지 않았거나 질문이 거세되었거나.
한국 교회는 그걸 신앙이라고 이야기해 왔죠. 질문이 없는 것. 질문이 있으면 믿음이 없는 것이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안 된다. 내가 인간인데 어찌 인간의 눈으로 안 볼 수가 있느냐고요. 이해되어야 하느님 말씀으로 와 닿는 것이고 믿는 것입니다. 아마도 신앙인인 길목 조합원들과 그 교회들은 이런 방향을 추구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서는 일점일획이라도 해석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해석의 전제는 바로 ‘나’입니다.


Q : 그런데 대부분 우리는 목사님의 해석을 받아들이잖아요. 전문적으로 신학공부를 하지도 않았고 성서에 대한 지식도 없는 평신도가 ‘나’의 눈으로 해석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A : 그게 백 년 동안 흘러온 교회(저를 포함해서 목사들)의 잘못입니다. 교역자는 교회를 지배하고 대표하고 그런 게 본인의 할 일이 아니고 성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틀을 설명하고 우리 교회가 어떻게 해석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하고 교우들이 함께 해석하고 신앙고백을 하는 해석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그런 기능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 교역자들은 그렇게 해오지 않았지요. 그러면 평신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걸 회복해야 하는데 일단은 목사에게 요구 해야죠. 이러이러한 것이 있는데 해석합시다. 공부합시다. 요즘 매체가 발달해 있으니 교우들이 관심을 가지면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지요.
또 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신학적 틀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자리입니다. 여성은 여성의 눈으로, 아픈 이는 아픈 이의 시선으로, 내 삶의 자리에서 나는 하느님을 이렇게 느낀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틀릴 수도 있지요. 그러면 공동체 안에서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겁니다. 혹은 교역자가 제안을 할 수도 있겠지요. 이런 기능이 전제 되고 하늘 뜻 펴기를 하면 이것이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공동체의 해석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거죠. 


Q : 교회가 진보 보수로 나뉘는 현상이 왜 일어나는 걸까요?
A : 연이어 어려운 질문을 하시네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대이든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였을까요? 압도적인 다수가 세상을 바꾸는 걸까요? 아니면 소수가 세상을 바꾸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뭐냐 하면 작은이들이, 작은 교회가 작은 공동체들이 그 가치를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작은 존재들이 계속해서 작은 존재로 남아 있을 수 있다면 그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겠다, 그러니 이렇게 작아서 되겠어? 하면서 쫄 필요가 없습니다. 작은 우리들이 우리의 길을 재미있게 갈 수 있다면 그 몫을 하는 거죠. 거대한 공룡은 명종했지만 그러한 순간에 설치류는 살아남았죠. 그게 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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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야기

Q : 요즘 정류장 음악 활동은 계속하세요?
A : 허학범 조합원이 결혼하는 데 정신이 팔려가지고 요즘 모임을 못 합니다. 사실 각자 삶의 자리에 있다 보니 모이기가 어려워서요, 하지만 우리 모두 멤버라고 생각하고 있고 언젠가 다시 모일 겁니다.

Q : 술 성서 음악 중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되실까요?
A : 25%는 되는 것 같아요. 재능은 없지만 제가 이십 대 때 꿈이 뮤지션이 되는 거였거든요. 교회 친구들과 같이 기독교메탈 음악을 해 보려고 밴드도 결성 했어요.

Q : 헤비메탈이오?
A : 예, 왜 하느님을 찬양하는데 발라드만 해야 하느냐, 내가 메탈을 좋아한다면 하느님께 메탈 장르로 찬양하는 게 왜 문제냐, 그게 제 이십 대 초반 때 생각이었거든요. 그래서 예배 시간에 찬송가를 편곡해서 연주를 해 봤지요.
 “거룩 거룩 거룩 존귀하신 주님........성삼위 일체
 1절을 장중하게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되신 주로롸아.........!!!!!
담임목사님 나가시고 장로님들 성질내시고 반면에 청년들은 좋아하고.......
저는 그런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멤버들이 직장을 가고, 저는 사관학교를 가고, 철도 들고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해서 자연스럽게 해산이 되었습니다. 음악이란 제게 해보고 싶었지만 이루지 못한 꿈, 늘 이런 겁니다. 그래서 정류장(정거장 아님)을 해 보자고 한 게, 제 마음 속에 이런 동기가 있었던 거예요.
사십이 넘어서 옛 멤버들에게 연락을 했어요. 만나보자. 그래서 일 년에 한두 번 만나 술 마시며 노닥거리다가 오십 대가 되기 전에 이십 대 때 음악을 다시 해 보자, 양질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했던 걸 해 보고 싶다고 해서 세 명이 모였어요. 스튜디오를 빌려서 음악을 해 보았답니다. 음악은 엉망진창이었어요. 서로 너 때문이라고 비난하고. 그랬는데 정말 행복했어요.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술 이야기에서도 했지만 대한민국은 가치 창출하는 것 외의 삶은 의미가 없다고 하는 분위기이지요. 학생은 공부 직장인은 승진, 결혼, 출산.......
이런 걸 안 하면 무의하다고 하는데 저는 기꺼이 무의미한 것들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돈 안 되는 짓. 아내한테 너무 미안하지만, 사회가 ‘너 뭐하고 있냐?’그런 소리를 해도 하고 싶은 걸 해 보는 것.


부부이야기

Q : 목사님 만나서 이야기 해보니 에너지가 넘치네요.  내외분이 평등한 부부로 소문이 났던데요, 어떻게 생활을 하시는지요?
A : 아, 이건 제 아내가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저희가 한국 나이로 세 살 차이가 나는데요, 사귈 때부터 서로 존댓말을 하든지 반말을 하든지 하자고 했어요. 존댓말은 어떤 상황에서는 참 어색하기도 해서 반말을 하게 됐어요. 한국 사회에서나 교회에서나 나이로 모든 걸 누르려고 하는 구조가 있잖아요. 그런데 둘이 관계를 만들어 가고 사귀는 사이라면 나이의 영향력이 작동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했어요.
가사노동은 지금 같은 경우 상대적으로 제가 더 시간이 많으니까 당연히 제가 더 많이 하구요. 가사가 여성의 일이 아닌 가족구성원의 일이기 때문에 가사를 돕는다는 개념은 틀렸다고 생각해요. 남성들이 많이 배워야 할 점이지요. 또 뭐가 있을까요, 저희 생활을 일거수일투족 말씀드리기는 어려우나 생물학적으로 남녀가 되었든 혹은 여여 남남이 되었든 가족 구성원으로 만나서 그 자리를 함께 만들어가는 거지, 어떤 성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고 그런 건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요.


Q :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학습된 성 역할에 대한 고정 관념 때문에 생활에서 목사님의 가치관에 위배되는‘아차’싶은 순간이 있나요?
A : 있었지요. 신혼 때 연휴에 이 댁 저 댁 방문을 하는데 당연히 우리집 먼저 가야지, 이런 생각을 제가 하고 있더군요. 굉장히 많이 반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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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몸에 밴 익숙한 동작으로 컵을 설거지 하고 자리를 정리하는 맥덕 목사를 보면서 평소 그가 어떻게 사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수요성서공부에 가야하는 그는 그 길로 갔고 나는 왔던 길을 되짚어 전철을 세 번 갈아타고 버스를 또 타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

곧 있을 퀴어 퍼레이드와 레위기 18장의 사회학적 해석, 맥주계의 소믈리에 맥덕목사의 술기로운 생활과 편맥(편의점 맥주) 탐지, 정류장과 그의 음악(언젠가 헤비메탈로 부르는 찬양을 꼭 듣고 싶어졌다.), 공동체의 성서 해석, 서로 존중하는 평등 부부의 모습. 교회의 부목사일 때는 도저히 나눌 수 없던 이야기들, 에너지 넘치는 그를 만나 많은 것을 즐겁게 배우고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아, <수도원 맥주 유럽 역사를 빚다>는 6월에 책으로 출간 될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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