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이면 마음 설레는 성가대 지휘자 - 조계연

posted Apr 2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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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저녁이면 마음 설레는 성가대 지휘자 - 조계연

 


4월 어느 토요일, 제게는 좀 특별한 인연이 있는 조계연 회원을 만났습니다. 조 회원은 향린교회 성가대와 향기로운 이웃 합창단 지휘를 맡고 계시지요. 저와 특별한 인연이란? 제가 다니는 새민족교회가 30주년을 맞았을 때 교우들이 직접 쓴 가사를 바탕으로 새민족의 노래를 만들었는데, 그 곡을 바로 조 회원이 작곡해주셨습니다. 그 노래를 부를 때마다 뿌듯하게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낍니다. 멋진 곡조와 더불어 우리가 쓴 그 가사 때문에 감동이 두 배입니다. 노래 한 곡에도 이렇게 감동이 일어나는데, 노래를 만든 분의 마음은 어떨지 기대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Q: 회원님 요즈음 하시는 일을 소개해주세요.

A: 향린교회 성가대와, 향기로운 이웃 합창단, 몇몇 초등학교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고 있어요. 지휘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공유하는 가치를 음악으로 만드는 것, 같이 무언가 만들어가는 것이라 행복해요. 요즈음은 귀에 이명이 생겨 좀 고생하고 있지만, 앞으로 여건이 되면 작곡이나 편곡 활동도 더 많이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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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짝을 간드러지게 불러 인기를 누렸던 소년 조계연

Q: 어떻게 음악을 전공하시게 되셨나요? 음악적으로 풍부한 환경에서 성장하셨나요? 

A: 저는 전북 순창의 일곱 가구 정도가 사는 작은 동네에 살았어요. 집안이나 동네에 음악시설이라고는 이장을 하시는 작은 아버지 댁에 있는 전축뿐이었어요. 그 이장님이 동네 방송용 스피커로 흘러간 가요를 자주 틀어주었어요. 그리고 동네잔치가 열릴 때면 동네사람들이 멍석을 깔고 장구, 꽹과리를 치며 진도아리랑 같은 민요를 부르며 놀았어요. 그런 것들이 나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밴 것 같아요. 그밖에는 음악적인 환경이 열악했지요. 학교에서 리코더 조금 부는 정도였으니까요. 
제가 노래를 잘하는 줄은 저 자신도 몰랐는데, 중학생이 되었을 때 변성기 전의 보이소프라노 목소리로 눈물 젖은 두만강, 짝사랑, 비 내리는 고모령 같은 뽕짝 노래를 간드러지게 불러 인기가 좋았어요. 오락시간이면 다른 반으로 초대 받아가서 노래 부르고, 소풍가면 마이크를 차지하고 노래를 부르곤 했어요. 어느 날은 수학시간에 칠판에 나가서 문제를 푸는데 머뭇거리고 있으니까 선생님께서
  “아따~! 계연이는 노래나 한 자락 부르고 들어가라~”
라고 하셔서 노래로 대신한 적도 있었어요. ‘반공 예능경연대회’에서 ‘이승복 어린이’ 노래를 불러 2등상을 받고 좋아했던, 지금 생각하면 좀 부끄러운 기억도 있어요.
.
Q: 중2 때 서울로 유학을 오셨다고 하시던데, 시골소년에게는 서울생활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요?

A: 저는 칠 남매 중 막내였어요. 부모님은 교육을 받지 못하셨지만, 아버지께서 살길을 마련하려고 만주나 서울로 다니시면서 견문을 넓히셔서 자녀들을 서울로 보내시려고 했어요. 형님들이 기술을 배워 서울에서 자리 잡은 것을 보시고 그 아래 자녀들을 서울로 보내셨어요.

시골에서 존재감 넘치는 생활을 하다가 서울로 전학을 오니, 한 반에 70명에 18반까지 있는 환경이라 관심 받지도 못하고 사투리 때문에 많이 위축되었어요. 그때 제 생각에 서울말은 마치 예리한 면도날 같아 가슴을 삭~삭~ 에는 듯했어요. 저를 맡아주신 큰형님도 형편이 넉넉한 편은 아니다보니 바뀐 환경 탓에 지금 말로 하면 멘붕 같은 것을 느껴, 가슴을 펴고 다니기 힘든 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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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터널과도 같던 서울살이에 햇볕 같았던 교회 덕분에 음악 인생을 살아

Q: 교회는 언제부터 다니셨나요?

A: 우리 마을은 작은 동네라서 교회가 없고 면소재지에 교회가 있어서 누군가를 따라 한번 슬쩍 가 본 기억만 있어요. 앞집 또래 여자아이가 교회를 다녔는데 그 아이가 자주 복음성가를 불렀어요. 막연히 ‘저런 노래를 부르는 곳이 교회인가 보다’ 생각했어요.

서울로 유학 와서 사귄 절친의 권유로 고등학교 1학년 때 교회에 나가게 되었어요. 어두운 터널과도 같던 서울살이 시절 교회는 제게 햇볕 같은 시간이었어요. 얼마나 열심히 다녔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제게 봉사부장이라는 임원을 시키더군요. 그 친구 권유로 성가대에 들어갔는데 처음에는 테너가 뭔지, 악보에서 테너 자리가 어디인지 구분도 못했어요.

노래를 잘하던 제게 변성기가 찾아왔어요. 음악에 문외한인 환경이라 변성기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득음한다고 목소리를 쥐어짜며 좋아하던 가수 조용필의 어려운 노래들을 불렀어요. 그렇지만 이전의 그 목소리는 돌아오지 않고 오히려 더 나빠졌지요. 변해버린 내 목소리에 ‘노래 잘하는 시절은 이제 끝났구나’ 하고 좌절했어요.

Q: 변한 목소리에 좌절했지만 결국 음악을 전공하게 되었네요?

A: 성가대를 하며 ‘화음의 느낌’을 알게 되어 놀랐어요. 음악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갈증이 몰려와 이것저것을 배웠어요. 피아노 치는 교회 누나들이 부러워, 막내 누나에게 부탁해서 레슨비를 받아 고2 올라갈 무렵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학교 중창단 활동도 했어요. 고3이 되어서 진로를 정할 때 성악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작곡과로 준비하게 되었어요.

음대에 들어와 보니, 학원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레슨을 받고 음대 선배에게 도움을 받아 입학한 저와는 달리, 동기들은 예고 출신들도 많고 어릴 때부터 준비한 친구들, 선생님을 두 명씩 두고 배운 친구들도 많았어요. ‘나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들어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을 늦게 시작한 저는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고 갈 길은 멀고 쫓아가기 벅차기도 했지만,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음악세계가 열리고 하나하나 알아가고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것들을 느끼면서 배우고 싶은 것들이 많았어요. 늦게 음악을 시작한 것이 오히려 저 자신을 역동적으로 만들었어요.

Q: 교회가 조계연 회원의 인생을 음악으로 이끌었네요? 

A: 교회에 다니게 된 것은 제 인생에 중요한 결정이었어요. 처음에는 절친의 권유로 별 생각 없이 간 것이지만, 만약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저는 음악과는 무관한 다른 삶을 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신앙 속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준 향린, ‘잘 왔구나!’

 Q: 향린교회에는 어떻게 오게 되셨나요?

 A: 처음 다니던 교회에서 대학생 때부터 군제대 후까지 어린이 성가대부터 청소년, 성인 성가대까지 맡아 지휘자로 활동했어요. 그 뒤 다른 교회 성가대 지휘를 맡고 있다가, 류형선씨가 향린교회를 소개해서 성가대 지휘자로 오게 되었어요.

그동안 다닌 교회는 평범한 교회였어요. 통성기도나 논리적이지 않은 설교를 들으며 생기는 의문들에 맹목적인 몰입이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기독교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며 책을 읽고, 선배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다보니 나름대로 신앙관이 생기게 되었어요. 특히 헤르만 헤세의 소설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넓게 해주었어요. 내가 왜 음악을 해야 하는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어요. 대학생 때는 학교 노천극장에 누워 햇살을 쬐고 있다가 전도하러 온 사람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다’, ‘기독교인만 포용하는 하나님은 안 믿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폭넓게 품는 바다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해’ 이런 생각을 했어요.

향린교회에 와서 처음 예배를 드리는데 홍근수 목사님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인데 기독교도 그중 하나이다.”라고 설교를 하셨어요. 그런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선포되는 것을 들으니 마음이 벅차오르며 ‘잘 왔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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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을 통해 교회가 따뜻해지고 그 힘으로 사회 정의를 세우기를

Q: 향린의 신앙이 담긴 찬양곡 선곡에 어려움은 없는지요? 성가곡을 선곡하실 때 어디에 중점을 두시는지요?

A: 처음 향린교회를 소개한 류형선씨가 ‘영생’, ‘천국’ 이런 노랫말이 들어가는 곡은 빼라고 조언 해주었어요. 향린에 와보니 투쟁적인 노래를 좋아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향린교회 정서에 어울릴 것 같은 곳들을 선곡했는데 그런 곡이 많지 않아 힘들었어요. 그리고 1,2부 통합된 성가대 지휘를 맡으면서부터는 5년 동안은 같은 곡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엄격하게 지켜오느라 힘들었는데, 이제는 자주 불러도 좋은 곡들은 예외를 두고 있어요.
 
Q: 지금도 ‘영생’, ‘천국’이런 노랫말이 들어가는 곡은 선곡하지 않는다는 관점을 지키시나요?

A: 어느 시점부터는 제 생각이 바뀌었어요. 사실 향린교회는 신입교우들에게 관심을 잘 안 보이는 듯한 분위기가 있어요. 저는 역할을 맡아 향린에 왔기 때문에 잘 적응했지만 다른 교우들은 굉장히 힘들 거예요. 물론 쓸데없이 과장되게 관심을 보이다가 무관심해지는 것보다는 낫지만, 좀 이성적이고 차갑다는 느낌을 받아요.

저는 교회는 따뜻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교회 성가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생각했어요. 교회의 차가움을 따뜻하게 하는 역할을 위해 그동안 기피하던 ‘영생’ 이나 ‘천국’이 들어가는 찬양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하는 고민을 오랫동안 했어요. 기독교 신앙이 이 세상의 정의를 위해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을 꿈꾸는 것과 동시에 내세에 대한 소망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을까? 그래야 교회가 더 생명력 있는 교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향린은 시민단체이지 교회라고 할 수 있나?’라는 질문을 하기도 해요. 그럴수록 성가대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성가대가 잘해서 하나님의 임재하심, 성령의 놀라운 능력이 있는 교회를 느끼고 그 능력으로 밖에 나가 활동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는 영광이고, 교우들에게는 힘이 되는 그런 찬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Q: 그동안 향린에 와서 활동했던 것들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A: <음악위원회>를 만들고, 교회 여기저기서 노래가 흘러나오면 교회가 따뜻하게 되겠다는 생각에 ‘전교인 찬양한마당’ 행사를 열었어요. 그 행사가 교회가 꽉 차는 축제가 되고 그것이 향린 공동체 찬양한마당으로 발전했어요. 그리고 어린이 성가대가 없었는데, 교회음악의 체계적 발전을 위해서는 음악교육이 중요하잖아요. 그것을 위해 어린이 성가대를 만들고 전문가들로 지휘자와 반주자를 세웠어요. 지금은 어린이부 인원이 줄어들어 성가대 운영이 안 되고 있어서 많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성가대와 국악선교단 예향이 조화를 이루어 향린다운 국악찬송을
 
Q 향린에는 국악 찬송가와 국악 선교단 예향이 있어서 몹시 부럽습니다.

A: 그렇지요.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에 국악이 단절되고, 해방 후에는 우리 음악이 맥이 끊어진 상태에서 서양음악이 들어와 왜곡된 상태였어요. 향린교회는 국악을 회복하고자 그 정신을 정관에도 넣고 선언문을 만들고 국악 선교단 예향도 만들었어요. 초기에는 예향이 많이 어려웠지만 저는 예향과 성가대가 조화롭게 가는데 신경을 많이 썼어요. 예향과 성가대가 함께 발전을 이루도록 서로 기다려주고 양보하고 함께 성장해가려는 노력을 계속 하고 있어요.

국악 찬송가를 만드는 일은 참 어려운 과정이었어요. 40~50곡 정도는 작곡가들을 위촉하여 새로운 창작곡을 수록했어요. 그동안은 검증하는 과정이었다면 지금은 오랜 세월 국악을 해오면서 향린교회 교인들에게는 국악이 몸에 배어 있어요. 향린교회다운 국악의 색깔이 존재하고, 교회국악에 대한 관점이 생긴 듯해요. 향린의 국악찬송가가 한국교회 국악찬송가의 틀을 만든 것 같고,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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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향기로운 이웃’ 합창단은 현장 활동도 많이 하시는데, 교회에서 활동하는 것과는 다른 감동이 있을 것 같은데요? 

A: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합창음악을 누리기 힘들어요. 교회에 안 다니거나 음악회를 찾아 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합창음악을 누리게 해주고 싶어서 사회 현장뿐 아니라 노숙자분들이나 우리 연주가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곳을 찾아서 공연을 합니다. 그런데 거리는 합창을 하기에는 환경이 좋지 않고 전달이 잘 안 되기도 해요. 보람은 있지만 음악적인 만족도는 낮은 편이지요. 우리가 조건을 마련해서 거리 공연의 음악적 성과를 높이는 방법을 고민 중입니다.
 

우리 신앙을 담은 노래를 많이 만들고 싶어요 

Q: 교회 찬양대 활동을 하다보면, 진보적인 신앙을 담은 찬양곡이 많지 않아서 힘들어요. 멜로디는 아름다운데 가사들이 신앙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 불편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거슬리는 부분을 작사가 몰래 살짝 개사하기도 하는데요(저작권을 어겨 잡혀가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그런 문제에 대한 고민을 어떻게 해결하시는지요?

A: 교회음악에 우리나라 작곡가들이 많이 뛰어들어 곡이 많아지기는 했지만, 가사는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요. 기존의 기독교 음악은 답답하고 좁아요. 우리의 신앙의 자유함, 폭넓은 세계관과 가치를 담은 곡이 필요한데 그런 작업들을 정기적으로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저도 부족한 능력이지만 영성과 성령의 힘을 받아 세상의 공의를 이야기하는 노래를 만들고 싶어요. 그런 곡을 위해서는 좋은 가사도 필요하지요. 또한 좋은 작곡가들도 많이 발굴하고 싶어요. 전에는 향린교회가 창작기금을 마련해 곡을 의뢰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향린교회는 국악찬송가를 편곡해서 만들어 놓은 것도 좀 있고, 다른 곡들을 편곡해서 만들어 놓은 것도 있기는 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해요. 정말 다른 일을 정리하고 그런 노래 만드는 일에 전념하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해요. 

Q: 절기 연합 합창을 할 때도 경험한 적이 있지만, 조계연 회원이 우리교회 찬양대에 오셔서 노래지도를 해주셨잖아요? 그때 엄청 재미있으셔서 저는 회원님이 개그맨이신 줄 알았어요.

A: 하하하. 제 유머는 가르치는 기술에 포함되어 있어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가 분명하기 때문에 어떻게 가르쳐야 보다 잘 받아들일까 고민하다 터득한 방법입니다. 제가 처음 어린이 성가대 지도할 때 아이들에게 끌려 다녔어요. 아이들에게 진정성을 보여주면 되리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 쓰리고 아픈, 눈물로 터득한(?) 경험이 약이 되고 큰 도움을 준 것 같아요. 그리고 유머는 단번에 길러진 것 같지는 않고, 대학 들어가서 사람들과 세상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음악을 지도할 때 유머를 통해 사람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것이었지요. 노래를 잘하려면 하나님이 주신 환상의 악기인 몸 관리를 잘 해야 하지만 마음도 중요해요. 서로가 마음이 통해야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부드러운 분위기를 위해 유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Q: 자녀들이 모두 음악을 잘하고, 부인이신 조경임 집사님도 ‘성가대’나 ‘향기로운 이웃’ 활동을 하시지요? 음악에 재능을 타고난 집안이시네요?

A: 네, 아들은 음대 작곡과 2학년이고요, 중3인 딸도 노래를 곧잘 해요.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어요. 그리고 제가 향린 성가대를 오랫동안 해올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도움이 커요. 제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위로해주지만, 때로는 쓴 소리, 바른 소리를 해주어서 제 부족한 부분을 잘 채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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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은 서로에게 마음을 내어 놓는 일

Q: 향린교회 성가대 지휘를 하면서 가장 보람된 순간은 언제인가요?

A: 사람들 때문에 힘든 시기들이 있기는 했지만, 모든 순간이 행복하고 좋아서 어느 한 순간을 꼽기는 어렵네요. 저는 토요일 저녁부터 설레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음악으로 만나고, 하나님과 교우들께 찬양을 들려드릴 생각을 하면 소풍가는 것처럼 설레요.

합창을 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마음을 내어 놓는 것입니다. 사람들과 관계가 불편하면 음악도 잘 안돼요. 서로가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하고 미움이 없어야 해요. 그러다보니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따스하게 해주는 말 한마다 한마디를 고민하게 되고 기도를 하게 됩니다.

제 삶을 돌이켜보면 제 힘으로 안 되는 부분이 많았는데 많은 부분 하나님이 도와주셨어요. 지금도 많이 부족하고, 제가 하고 있는 음악도 부족한 것 같고 더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입니다. 계속 제 자신을 돌아보고 기도하는 과정을 통해 지금의 제가 있어요.


조계연 회원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훌쩍 세 시간 반이나 흘러 있었습니다. 그는 내일 교우들과 하나님께 찬양을 들려드릴 꿈으로 설레는 시간 속으로 가시고, 나는 집으로 오는 버스를 기다리며 생각에 잠깁니다.

음악은 순식간에 우리를 다른 세계로 데려가는 놀라운 힘이 있지 않습니까? 조계연 회원 같은 음악인들이 많이 생겨나서 우리 신앙을 마음껏 표현하는 노래들이 많아지도록 우리가 힘을 모아 무슨 교회음악연대(?)나 음악 펀드 같은 것을 만들면 어떨까? 라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길목 이사장니~~임!, 회원님들~~~! 뭐 좋은 방법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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