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나를 통해 내담자로 흘러갈 수 있기를 - 전정례 조합원

posted Mar 1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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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진희
발행호수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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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나를 통해 내담자로 흘러갈 수 있기를

- 전정례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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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례 조합원은 작년에 길목에 가입한 청년 조합원입니다. 길목에 젊은 조합원이 들어와서 길목 회원의 구성이 다양해지니 참 반갑고 좋습니다. 심리 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전정례 조합원은 상담이 '신의 사랑이 나를 통해서 내담자로 흘러갈 수 있는' 일이 되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합니다.

 

Q : 길목 회원들께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2023년에 길목에 가입한 신입 회원 전정례입니다. 심리 상담사로 일하고 있어요.

 

Q : 길목에 가입하신 동기가 궁금합니다.

사회정의 상담에 관심이 있어서 대학원 동기들과 스터디모임을 하게 되었어요. 스터디에서 심심을 소개받고 심심의 활동과 제가 하려는 상담의 방향이 잘 맞을 것 같아 길목에 가입했어요.

 

Q :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셨다지요?

청소년기에는 '나는 왜 태어났으며 이 사회의 부조리는 왜 존재하며 창조주가 있다면 창조주는 완전무결한 존재여야 하는데 왜 이런 불완전한 세상을 만들었어?'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하잖아요.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철학과에 입학했는데, 갈수록 철학적인 사유보다 실질적인 현장의 문제에 관심이 많아져서 좀 더 현실적인 사회구조에 관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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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대학 졸업 후에는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졸업 후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서울로 나와 살면서 주거권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주거권은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주거지에 살 수 있는 권리예요. 이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구조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고자 주거권 활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Q : 특별히 주거권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갓 졸업하고 독립해서 집을 구하려 할 때 부모의 경제적 지원 없이는 쉽지 않다는 현실을 마주했어요. 그렇지만 부모에게 손 벌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특히 서울은 워낙 집값이 비싸니까 자산이 없는 청년들은 고시원이나 반지하 같은 열악한 주거환경에 살거나 비싼 월세를 충당하기 위한 삶을 살아야 하지요. 어떠한 공적 지원이 있나 하고 정책을 찾아봤어요. 당시에는 지금보다 청년지원정책이 적었어요. 주거지원을 받으려면 경제적으로 취약하다는 증명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부모님 소득과 자산을 함께 보니 지원받기가 어려웠어요. 폭력 피해로 부모에게서 도망쳐 나온 사람들이나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못 받는 청년들은 대상에서 제외되는 거지요. 그마저도 부부나 혈연 가족 같은 소위 '정상 가족'만 대상으로 이루어지더라고요. 당장 결혼해서 살 생각도 없고 혈연도 아니고 혼인 관계도 아닌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다면, 그런 삶의 형태로는 공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러한 구조가 문제라고 느꼈어요. 처음에는 개인 활동을 하다가 나중에는 연이 닿아서 복지기관에 취직해 주거복지사로 업무를 하게 되었어요.

 

Q : 주거복지사로는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주거 위기 상황에 부닥친 분들에게 주거비 지원, 주거정책 안내, 사례 관리 같은 복지 업무를 했어요. 예를 들면 반지하 같은 열악한 환경에 거주하는 가구에는 더 나은 환경의 주거지를 구할 수 있게 지원해 주고 체납이나 폭력 피해 등으로 주거지를 상실하신 분에게는 임시 주거지를 지원해서 그다음 주거 스텝을 갈 수 있게 도와드렸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다양한 형태로 함께 사는 삶을 시도하는 사람들과 모여 공동체 주거 활동도 계속 이어 나갔어요. 혼인이나 혈연 외 관계로 공동생활 단위를 이룬 사람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형태로 함께 살 수 있는 제도적 조건을 마련하는 게 제 활동의 주된 관심사였어요.

 

Q : 상담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네요?

복지 지원은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물리적 지원인데, 거기서 한계를 느끼게 되었어요. 왜냐하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분 중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취약하신 경우들이 있어요. 그런데 물리적 지원만 하고 심리적인 치유가 뒤따르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더라고요. 이게 단지 그 사람 탓이라고만 할 수가 없는 구조적인 문제이고, 심리적인 부분이 중요한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제가 활동을 하면서 '내 마음은 어떤 상태인가? 왜 나는 번아웃이 오지?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이 왜 저렇게 고통스럽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사람의 심리가 궁금했어요. 그러니까 두 축이었던 거죠. 복지대상자들의 마음도 건강해야 하고, 활동가들도 건강해야 지속 가능하게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 그분들에 대한 심리 지원을 해줄 수 있는 단체가 없었나요?

있어요. 정신건강복지센터도 있고 각 주체별로 심리 지원을 하는 자원들도 있어요. 근데 지원할 수 있는 범위가 한정적이니까 어려움이 있었어요. 지원받을 수 있는 자격에 제한이 있고, 상담 회기 수도 짧고요. 그것보다 더 어려운 건 자발성이에요. 심리 지원을 하고 싶어도 본인이 상담이나, 정신과 치료를 받겠다는 선택을 해야 지원할 수 있으니까요. 이런 경우 함께 사는 다른 사람들도 어려움을 겪지요. 서로 돌보는 건강한 관계를 맺으며 함께 살기 위해서는 심리적으로도 건강해야 한다는 걸 체감했어요. '내 활동 경험을 살려 공동체 주택의 심리 지원프로그램을 개발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심리학 공부를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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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전정례 조합원은 종교가 있나요?

어릴 때부터 불교 환경에서 자랐어요. 저는 불교의 가르침은 '모두에게 불성이 있다. 누구나 수행을 통해서 불성을 발현시키는 것이 깨달음이다'라고 이해했어요. 그 교리는 매우 와닿는데 현실 종교는 나와 잘 맞지 않는다고 느꼈어요. 그렇지만 종교가 영성이라는 큰 차원에 이르는 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영성의 관점에서 불교와 기독교가 다르지 않다고 느껴요. 불교에서는 부처의 자비를 이야기하고 기독교에서는 신의 사랑을 말씀하시잖아요. 최근에는 제 개인적 경험을 통해 신의 사랑에서 따뜻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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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기독교에 관심이 생긴 건가요?

삶으로 신의 사랑을 세상에 나누려는 소명을 지닌 주변인들을 덕분에 관심이 생겼어요. 신이 초월한 어딘가에 계신다기보다는 결국 사람을 통해서 오는 것 같아요. 물론 제 관점으로 기독교를 해석한 건지 모르지만요. 기독교에 관심은 생겼는데 성경은 아직 안 읽어봤어요. 한번 읽어봐야지 싶은데 어렵잖아요. 종교 경전들은 역사적인 맥락에 있으니까 해석의 영역이 있겠지요. 그래서 천천히 해보려고요.

 

Q : 신의 따스한 사랑이 사람에게서 온다면 상담에서도 그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요?

나에게도, 내담자에게도 사랑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는데 이게 상담의 핵심이랑 맞닿아 있어요. 상담은 내담자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내담자 본연의 모습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을 걷어낼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에 사랑이 있는 거죠. 내담자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펼칠 수 있도록 타인인 상담자가 그 과정을 사랑으로 봐주고 함께하는 것이 상담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상담자가 꾸준히 자신을 영적으로도 깨워야 한다고 봐요. 불교식으로 말하면 상담은 내담자가 본연의 불성을 발현하게 돕는 과정이고, 그 과정이 이루어지려면 상담자는 자신의 문제에 걸리지 않고 내담자를 있는 그대로 봐주어야 하지요. 수행을 통해서 자기 마음을 맑게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영역이에요. 이걸 제가 이해한 기독교식으로 얘기하면요, 상담은 내담자가 자기 자신과 잘 소통하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과정인데요. 그 과정은 상담자가 신의 사랑이 자신을 통해서 내담자에게 흘러갈 수 있게 할 때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신과 잘 소통하는 것은 자신과 잘 소통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요즘 저는 명상적 수행과 더불어 신과의 대화를 통해 기독교식의 사랑도 느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제가 체험으로 느낀 사랑이 길목과 심심에서 사람들과 만나 실현되길 바라고요.

 

Q : 지금 하시는 상담 활동을 소개해주세요.

저는 다문화 상담이나 사회정의 상담처럼 개인의 심리적인 어려움을 단지 개인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전반적으로 함께 보는 관점으로 상담하려 해요. 지금은 개인상담도 하고 영등포구 노동자 종합지원센터에서 객원 상담사로도 일하고 있어요. 길목에서도 청년과 활동가의 심리를 지원하는 사업에 함께하고 싶어서 심심에 들어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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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길목에서는 어떤 활동에 참여하고 있나요?

제가 신입 조합원이라 길목 활동은 아직 잘 모르는데요, 조합원의 날 행사에 참석해 보고 길목의 활동들을 알게 되었어요. 저는 지금 길목이랑 통통톡이 같이 하는 사회정의 상담 강좌를 듣고 있고, 토요일에 심심 상담사들이 함께 공부하는 심심 스터디에 참여하고 있어요. 그 시간에 많이 배우고 있어서 너무 감사해요.

 

Q : 전정례 조합원에게 '상담'은 무엇인가요?

나와 타인과 사회가 잘 사랑하는 과정이라고 할까요?

 

Q : 상담하면서 어렵다고 느낀 순간이나 후회되는 순간이 있나요?

저는 아직 초보자예요. 깊이 있는 고민이라기보다는 초심자의 어려움이 있었죠. 숙련되어 가는 과정에서 시간을 두고 나 자신을 믿으면서 기다려야 되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좀 더 잘하고 싶은데 아직 못하는 것 같고 내가 내담자에게 좋은 도움을 주고 있는 건지 마음이 불편하고 이런 초심자의 시기를 이제 막 거쳐온 것 같아요. 또 하나는 상담사는 평생 끊임없이 깊이 있게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고, 끊임없이 자기 수행을 해야 하는 직업이라는 생각입니다. 이건 마주한 어려움이라기보다 제 결심입니다.

 

Q : 상담사분께 꼭 묻는 말인데요, 힘듦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어디서 힘을 얻는지요?

저도 처음 상담 공부를 시작할 때 가장 우려스러웠던 지점이 그 부분이었어요.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내담자를 만나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있는 측은지심이 발동되면서 마음이 아프잖아요. 그게 심하면 내 몸이 아플 정도로 힘들고 사회에도 분노하게 되고. 상담하면서 내담자의 깊은 고민과 아픔을 듣게 될 텐데 그걸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염려했어요. 대학원에서 상담에서의 영성이란 주제로 공부하면서 상담자로서 숙련되고 성숙해 가는 발달 단계 끝에 영성이 있으며, 내담자도 치유되는 과정에 영성적으로 깨어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상담자로서 내담자를 만날 때에 그 내담자의 고통을 단지 괴로움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생겼어요.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고통은 내담자가 신의 뜻을 발견하고 신과 만나게 하는 매개이죠. 불교적으로 보자면 그 사람이 자기 내면에 등불을 밝히는 과정에 들어서게 하는 동력이고요. 그러한 영성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타인의 고통에 압도되지 않고 고통을 겪어나가는 그 사람을 봐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Q : 압도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이 고통을 겪으며 성숙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같은 건가요?

그렇지요. 그런 믿음과 내담자가 성숙하는 과정에 내가 함께 할 수 있다는 마음이지요. 고통에 빠져 있는 내담자는 자신의 가능성을 아직 모르지만, 상담자가 먼저 내담자 안에 있는 본연의 힘을 믿어주는 것이지요.

 

Q : 상담 말고 다른 취미생활은 어떻게 하시나요?

취미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강아지를 키우고 있어요. 많은 시간을 강아지 돌봄으로 보내게 돼요. 처음에 이 친구를 유기견보호소에서 데려와서 임시 보호하다가 너무 정들어서 데리고 살게 되었어요. 덕분에 생명을 기르는 경험을 처음 하게 되었어요. 강아지에게도 고유한 개성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 특성에 맞게 돌보도 훈육해야 해요. 이렇게 제가 강아지를 돌보지만 사실 그 친구도 저를 돌봐주고 있어요. 저도 힘들 때는 강아지를 쓰다듬고 매일 같이 산책하면서 교감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상담도 양육과 비슷한 것 같아요. 그 존재가 가장 잘 꽃 피울 수 있게 돕는 거잖아요? 그러려면 그 존재의 고유성 그것을 봐주는 사랑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상담자도 내담자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지요.

 

사회적 협동조합 길목이 10주년을 지나고 11주년으로 발을 내딛는 길목에 앞으로 길게 길목에 남아 길목을 이어갈 귀한 조합원과 마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눈 시간이 참 귀하고 든든했습니다.

 

 

<삶에 대한 단문 선 답>

 

1. 나에게 믿음(신앙)이란?

-나, 타인, 세상, 우주와의 연결감

 

2. 나에게 행복이란?

-마주 보며 함께 웃는 것

 

3. 나에게 사랑이란?

-마주 잡은 손에서 피어나는 것

 

4. 나에게 나이 듦이란?

-무릎이 아파 천천히 걷게 되는 것. 느리게 걸어 더 넓게 멀리 내다보는 것.

 

5. 나에게 잘 산다는 것은?

-행복한 지금 이 순간이 쌓여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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