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다정하게, 세상을 안전하게 함께... - ‘뜻밖의 상담소’의 오현정 님

posted Jul 0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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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장명숙
발행호수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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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다정하게, 세상을 안전하게 함께...

- ‘뜻밖의 상담소’의 오현정 님

 

_프로필사진_오현정.JPG

 

 

‘뜻밖의 상담소’에서 오현정 님을 만났다.

상담소 이름에서부터 호기심이 일었다. 약수역 4번 출구를 나오자 은행나무 가로수 길에 이어 왼쪽으로 난 계단 앞에 서게 된다. 그 계단을 지그재그로 오르면 대로변과는 사뭇 다른 마을 마당인 공원이 있어 “어?!” 하게 되는데 바로 “어”라는 간판과 함께 상담소 입구가 열려 있다.

<길목 인>에서 정기적으로 쓰는 ‘심심엔’ 칼럼에는 상담가로서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고민하는 생각들을 종종 읽을 수 있다. 개인의 문제는 부당한 사회구조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사회 정의 상담’을 지향하고 있다고 한다. 사회 잇슈화 된 현장에 가서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마음건강을 돌보고 사회적 고통에 공감하며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행보들을 이어 왔다. 지친 내담자들에게 상담자가 환대해주고 공감해 주는 것만큼 큰 위로가 없을 게다. 특유의 그녀만의 환대는 마음을 열게 하고 동행이 되어주려는 부단한 노력으로 이해된다. 그녀의 말대로 삶에는 늘 뜻밖의 일들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

 

Q. <심심엔> 칼럼을 연재하여 ‘길목 인’에서 낯을 익혀 왔습니다.

 

저는 ‘와락 치유단’ 상담자로서 사회활동가와 노동자를 위한 심리치유 네트워크 통통톡(이하 통통톡)에서 2016년 창립부터 활동하고 있습니다. ‘심심’은 노경선 선생님과 함께 하는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인연을 맺었습니다. 칼럼은 심심 세미나를 같이 하는 분들이 돌아가면서 쓰는데 제게도 순서가 돌아와서 3년 전부터 쓰고 있어요. 길목 조합원으로 가입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고 심심에서 상담자로 활동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Q. 상담은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하였는지요.

 

상담을 공부하기 전에는 사회 변화를 꿈꾸면서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다 둘째를 낳고는 매주 비영리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마음을 나누는 활동을 했어요. 아이들의 속마음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겠다 싶어 상담 기관을 찾았는데 마땅치 않더라고요. 그때가 IMF 여파로 실업으로 인한 사회적인 고통이 컸는데 사회적인 안전망도 전무한 상태에서 심리적인 안전망은 거의 없는 현실을 느꼈습니다. 전문가가 돼서 소외된 이웃, 소수자들이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게 힘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대학원에 진학을 했어요. 사회 변화가 더딘 현실에서는 상담이 또 다른 해방의 길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상담을 선택한 거지요.

 

상담을 직업으로 시작한 것은 상담심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석사를 졸업한 2007년부터입니다. 정신과와 연계된 상담센터에서 10년을 일하면서 기업 상담실에서는 콜센터 노동자도 만났어요. 상담으로 사회활동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특정 기관에서 풀타임으로 일하지는 않았어요. 덕분에 상담자로서는 많은 분들을 만나면서 굉장히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전 ‘와락’(쌍용자동차 해고자와 가족을 지원하자는 취지로 2011년도에 만들어진 심리치유센터) 초기 멤버는 아니지만 와락치유단에서 2014년부터 활동을 했습니다. 위기 사업장 노동자들과 사회활동가분들을 많이 만나면서 전통적인 심리 상담의 한계를 느끼고 사회정의 상담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와락센터는 평택에 있어서 서울에서 만나는 사회활동가와 노동자는 ‘영등포 산업선교회’에서 상담이나 집단치유활동을 진행했어요. 또 아픔과 투쟁이 있는 현장을 다니다 보니 아지트가 있으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상담을 하러 오신 분들도, 저도, 휴 하고 마음 풀어놓고 쉴 수 있는 공간이요. 그래서 2020년 코로나 시국에 와락치유단 동료와 함께 ‘뜻밖의 상담소’를 창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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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뜻밖의 상담소’가 궁금해집니다. 왜 ‘뜻밖의’라고 명명하게 되었는지요. ‘어’라는 간판은 무슨 뜻인가요?

 

한 5년 전쯤 트라우마 관련 웍샵에 참여하면서 점심 후 산책을 하다가 ‘뜻밖의 연습실’이란 간판을 보고 영감을 얻었습니다. 누구나 살면서 뜻밖의 일을 겪잖아요. 상담소는 삶이 힘들 때 찾아오는 곳이고 위기나 고통이 뜻밖의 치유와 성장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았고요. ‘어’라는 간판은 어쩌면 사무소의 첫 글자 ‘어’예요. 이곳은 저희가 상담소를 내기 전엔 사회활동가들 커뮤니티 공간이어서 활동가들의 좋은 에너지가 담겨 있지요. 뜻밖의 상담소는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어서 은밀한 공간이라는 컨셉으로 ‘어, 뜻밖의 상담소!’이렇게 예전 간판을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을 상담소로 선택한 것은 위치와 전망 때문이었어요. 상담은 상담실이라는 실내에서 이루어지는데, 상담하러 올 때 찬찬히 걸으면서 생각도 할 수 있고 무엇보다 상담을 마치고 문을 열고 나갈 때 탁 트인 전망이 조금이라도 시원한 느낌, 마음을 추스르는 위로가 되면 좋겠다 싶었어요. 야트막한 뒷산도 있어서 집단 프로그램을 할 때 산책이나 걷기 명상을 하기도 좋았고요. 코로나로 오프라인 집단이 많이 진행되지는 못했지만요.

 

Q. ‘뜻밖의 상담소는 어떤 분들이 주로 오시나요? 그간의 성과와 활동을 중간평가한다면...

 

우울이나 불안, 대인관계에 대한 고민, 직무스트레스나 번아웃 등 힘들어하시는 직장인들이 많이 오시지만 자기 이해나 성장에 관심 있으신 분들도 오시고요. 사회변화를 만들어가는 사회활동가, 성소수자 분들에게도 안전한 상담소로 조금씩 알려지고 있어서 찾아오십니다. 뜻밖의 상담소는 활동가에 대한 존중과 연대의 의미로 상담료를 지원하고 있어요. 지난 2년간 여러 단체, 커뮤니티와 협업을 하면서 지속적인 활동가 심리지원체계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7월 1일은 뜻밖의 상담소 창립일입니다. 이제 창립 2주년인데요. 차별이나 혐오 등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고통을 겪는 분들에게 공감하는 안전한 아지트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맞춤형 심리 교육이나 워크샵, 수퍼비젼을 통한 상담자 교육, 커플이나 집단상담도 진행하지만 코로나라는 특수성으로 상담소 공간에서는 개인상담 등이 주로 이루어진 것 같아요. 뜻밖의 상담소 캐치프레이즈가 “세상을 안전하게 일상을 다정하게 함께”입니다. 평화로운 삶을 위하여 마음 건강을 지키고 가꾸는 개인의 몫도 있지만 일상에서 마음 돌봄이 가능하려면 세상이 안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삶의 질에 영향을 주는 사회적인 안전망도, 무엇보다 불평등하고 억압적인 사회 체계가 우리를 아프게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지요. 진정한 평화는 상담실에서만 이루어질 수 없고 사회 변화를 위한 실천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3년 동안은 사회구조적인 부분이나 다문화적인 맥락이 내담자의 심리적 고통에 어떻게 닿아 있는지를 살피고 내담자를 옹호하는 활동을 강조하는 ‘사회 정의 상담’에 관심을 갖고 동료 상담자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Q. 상담자로서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는 점이 엿보입니다. 현장에서 노동자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실태는 어떠한가요.

 

콜센터 상담사, 요양보호사 등 감정노동자들을 오랫동안 만나왔습니다. 가슴 아프게 느낀 부분은 돌봄 노동, 감정노동에 대해 우리 사회가 별로 존중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물론 감정노동만의 문제라기보다는 노동을 존중하는 인식이 전반적으로 미약합니다. 상대적으로 고용불안정 등 노동권이 취약한 감정노동은 더 그런 면이 있고요. 콜센터 상담사만 해도 무작위로 고객에게 전회를 걸어 앵무새처럼 ‘고객님 사랑합니다’라며 홍보나 마케팅을 하는 이미지가 강한데요. 실제 인바운드 상담을 하시는 경우는 고객의 질문이나 애로사항에 대한 상담을 진행하려면 익혀야 하는 지식과 정보의 양이 굉장히 많고, 빠르게 업데이트돼서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감정노동자 법이 2018년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도 감정노동이 갖는 전문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노동을 존중하는 모습은 부족하다고 느껴요. 고객의 갑질만이 아니라 편견, 차별도 사회적인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배달노동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예노동이라고 할 정도로 열악한 노동 조건과 부당한 처우로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저는 상담자지만 상담실 밖, 거리에서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한 캠페인도 해오고 있습니다. 상담자는 마음건강을 위하여 거시적으로 사회 구조와 영적인 안전감을 높이는 실천, 활동 역할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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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분들이요? 상담소 입구에 무지개와 트랜스젠더 깃발을 밖에서도 보이게 두고 있습니다. 퀴어 프렌들리한 상담소라고 알고 오시는 분들도 있지만 혹 지나가다가도 아 이런 공간이 있구나 잠시 연대의 마음을 느끼면 좋겠다 싶어서요. 주변에 성소수자 친구가 있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은 만난 적이 없다고 해요. 그런데 사실 몰랐을 뿐이지, 우리 주변에 늘 함께 살고 있습니다. 보통은 초등학교 때 자신의 성정체감, 성적 지향을 인식하는데요. 성의 다양성에 대한 교육이 유치원 등 교육기관에서 필수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소수자들도 안전하게 살아갈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있고 ‘이상하다’가 아니라 ‘다르다’는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포용은 온전하게 자신을 받아들이는 발달 과정을 자연스럽게 도울 수 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야만성을 드러내는 지표라 생각합니다. 성소수자 관련해서는 작년에 개봉한 ‘너에게로 가는 길’꼭 보시면 좋겠어요.

 

Q. 문득 선생님께서 마을에서 하는 활동에도 관심이 갑니다. 지역에서도 어떤 역할을 해 왔더군요.

 

저는 마을 공동체에 관심이 많습니다. 큰 애를 키울 때만 해도 인천에서 서울로 사회활동을 하러 나왔어요. 그런데 둘째를 낳고는 동네 친구를 사귀고 싶더라고요. 좀 더 삶의 뿌리를 마을에 단단히 내리고 싶은 마음도 들고요. 아파트 부녀회 사무실을 빌려서 3일짜리 독서교실을 열었습니다 큰 애가 초등학교에 막 들어가서 여름방학 때였어요. 아파트 동마다 엘리베이터에 홍보물을 붙이고 “초등 1, 2학년을 보내면 3일 동안 이러 이런 책을 읽고 노래도 하면서 놀 겁니다” 그렇게 시작한 동네모임이 2003년부터 계속되어 왔어요. 독서모임을 기본으로 생태하천학교에서 함께 생태환경교육도 받아 동네 하천모니터링도 하고요. 마을학교라는 녹색교육문화공동체를 꿈꾸기도 했어요. 아나바다 장터, 식품안전교실, 역사교실, 생태교실, 진로교실, 청소년 인문학 모임 등 다양한 모임을 엄마들, 아이들과 함께 진행했습니다. 매년 모내기와 추수하기를 체험한 농부학교는 엄마들에게도 인기가 높았지요. 나눔, 돌봄, 배움의 마을 공동체를 지역화폐, 품앗이로 만드는 다양한 실험을 여한 없이(?) 한 것 같습니다. 모임을 시작할 때 2살이던 둘째가 이제 20대가 됐어요. 요즘은 이웃들과 함께 나이 듦을 준비하면서 서로를 호혜적으로 돌보는 시스템을 마을에서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Q. 상담가로서 힘들거나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풀어 나가나요.

 

뜻밖의 상담소에서 일어나는 일이면 상담소 동료와 함께 의논하고 서로 기대지요. 개인적으로는 동양상담연구회에서 2007년부터 함께 공부하면서 상담자로 성장해왔어요. 수퍼바이저분들도 계시고 동료 도반들도 있고요. 친정처럼 늘 마음을 기댈 수 있는 든든한 관계 자원입니다. 자문도 요청드리고 힘들면 언제 시간 돼요, 얼굴 좀 봐요 만남을 요청하기도 하고요. 자조집단이라 할까요, 이런 그룹이 상담자에게는 중요합니다. 심심 세미나에 참여하시는 분들께는 공부모임이 그런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요?

 

상담자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탐사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내담자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특권을 갖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자기 인식이 중요해요. 상담자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내담자를 만날 때는 외려 물어봐야 할 것을 물어보지 않아 공감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고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 커서 실제 도움이 안 될 때도 있고요. 상담이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는 사례 슈퍼비젼으로 도움을 받기도 하고 제 삶의 어려움이 있으면 저도 상담을 받습니다. 일상에서는 스승님을 떠 올려요. 직접 찾아뵙지는 못해도 고민이 있거나 상담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고 생각해 봐요 스승님께서는 “이런 상황에서 예수라면 어땠을까, 부처라면 어떻게 이해했을까” 이런 화두를 가지고 다르게 새롭게 생각해 보신다고 합니다. 제게는 스승님이 그 역할을 해주고 계시지요. 선생님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든든해져서 여유가 생겨 조망이 더 넓어지는 느낌입니다. 제 삶에서 큰 자원이지요.

 

Q. 2018년도에는 ‘상담심리사 상’을 받으셨습니다.

 

한국상담심리학회에서 학회 자격증을 갖고 활동하는 상담자 중에서 학회원들의 추천을 받아 선정됩니다. 2018년 제정되고 제가 처음으로 수상했는데 감사한 일입니다. 상담사들도 전문성을 가지고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그런 상담자들을 기리기 위해 제정했다고 해요. 사실 이 상은 와락치유단 활동에 대한 인정이라 생각합니다. 해고 노동자나 해고 위기에 처해있는 노동자, 그리고 그 가족을 위해 노력했다는 공인데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현장에 찾아가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는 요즘은 부끄럽고 무겁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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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노동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갖고 현장과 연대하려는 뜻은 늘 품고 있어요. 한진중공업 김진숙 님의 복직을 촉구하는 ‘희망뚜벅이’도 참여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평등길’도 함께 걷고 동조단식도 함께 하고요. 이런 실천은 상담자로서만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시민으로서 마음을 포개는 연대이기도 하지요. 혼자 가기도 하지만 동네친구나 동료 상담자들과 함께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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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사회는 환대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요. 부족하거나 취약하면 경쟁에서 도태되고 먹히는 정글처럼 심리적 위험이 높은 우리 사회에서 환대는 치유의 시작이고 끝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성경 말씀 중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말씀이 있지요. 뜻밖의 상담소가 그런 곳이면 좋겠어요. 상담소로 들어와서 이야기하는 순간만큼은 그 수고로운 짐을 내려놓고 안전하게 긴 숨을 내쉬면서 내면의 힘과 지혜와 연결되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환대와 공감이 필요하지요. 상담이 삶의 조건이나 환경을 당장 직접적으로 바꿀 수는 없지만 마음의 짐 보따리를 풀어놓고 내게 속하지 않은 것은 비우고, 내가 짊어질 것만 수용하는 힘을 회복하는 것을 진심으로 돕고 싶은 마음입니다. 제게 환대는 그래요.

 

Q. 앞으로의 계획과 더 심화 발전시키고 싶은 사업이 있다면?

 

‘사회정의상담’을 공부하고 실천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상담자로서 사회적 역할을 함께 고민하고, 관련한 상담자 교육이나 훈련 과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집단상담 작업을 좀 더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집단상담은 어떻게 구조화하느냐에 따라 구조화, 반구조화, 비구조화 등 목적과 방식에 따라 다양한데요. 비구조화 상담은 프로그램이 짜여 있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다른 분들은 경청과 공감으로 어떤 마음인지 함께 살피면서 더 잘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집단 상담은 내 이야기를 하지 않을 때도 다른 집단원에게서 나를 거울처럼 보면서 위로가 되고 통찰을 얻거나 답을 구하기도 하지요. 집단의 역동은 그만큼 강력하거든요.

 

시민과 활동가, 상담자들이 함께 책을 읽으면서 세상과 마음풍경을 이야기하는 책 모임도 정기적으로 시작하여 연결감, 유대감을 가질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또한 일상에서의 마음 돌봄 문화를 만들어가려 합니다. ‘세상을 안전하게 일상을 다정하게 함께’ 뜻밖의 상담소(https://amazingcenter.kr)의 다양한 활동을 기대해주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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