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달라질 세상을 준비하는 김광열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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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달라질 세상을 준비하는 김광열 조합원

 

길가에 연산홍 꽃이 곱게 피어서 봄이 무르익으며 날이 따뜻해졌습니다. 코로나 19의 기세도 꺾이고 조심스레 사회적 거리 두기를 완화하는 듯하기에 코로나 19 때문에 인터뷰를 미루었던 김광열 조합원을 만났습니다. 김광열조합원은 향린교회 장로이시고, 길목에서는 감사를 맡고 있습니다. 그동안 교회 현장 예배를 드리지 못한 상황이라 오랫동안 김 조합원을 만나지 못했던 윤영수 조합원도 ‘보고 싶다’ 하시면서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Q : 길목에서 감사를 맡으셨지요?
A : 네 회계는 제 분야가 아닌데 길목에서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맡게 되었습니다.

Q : 코로나 19 상황에서 어떻게 지내셨나요?
A : 우리 회사 직원들은 재택근무를 했지만 저는 주로 회사에 출근했어요. 재택근무라는 것이 새로운 경험 중의 하나예요. 재택근무는 우리나라에는 안 어울리는 제도라고 생각했는데, 업종마다 다르긴 하지만 생각이 달라진 계기가 될 것 같아요. 집에서도 시스템에 접속만 하면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지고, 화상회의시스템 같은 것은 코로나가 끝나고 나도 잘 쓸 수 있겠다고 평가를 받아요.

Q : 어떤 일을 하시는지요?
A : 회사나 공공기관을 상대로 큰 전산시스템의 데이터베이스 보안 일을 하는 ‘신시웨이’라는 회사에서 일합니다. ‘신시’는 단군신화에 나오는 환웅이 처음 만든 도시 이름인데, 우리 회사의 이념이 ‘홍익인간’이라서 상징인 ‘신시’가 회사 이름이 되었습니다.

Q : 이번 코로나 19 때문에 사업에 지장을 받지는 않나요?
A : 코로나 상황과는 직접적인 상관은 없지만, 사람들은 만날 수 없으니 영업을 할 수 없어 힘들지요. 하지만 코로나 상황에서 우리 회사 같은 곳은 갈림길에 있어요. 지금 세상이 클라우드 환경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데 아직 제품이 그런 세상에 맞게 되어 있지 않아요. 거기에 맞도록 제품을 바꾸어내는 그것은 체계부터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서 적응 여부에 많은 회사가 운명이 갈리는 갈림길에 서 있어요.

 


대학 시절 시작된 향린교회 활동

Q : 향린교회 장로님이신데, 향린교회와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A : 대학을 다니면서 회현역 앞에 있는 ‘성도교회’에 다니고 있었는데, 보수적인 교회라 목사님이 설교에서 민주화에 대해 안 좋게 이야기하기도 해서 예배가 힘들었어요. 마침 사회과학 공부를 같이하던 그 교회 친구를 통해 ‘미국에서 좋은 목사님(홍근수 목사님)이 향린교회로 오신다’라는 소식을 듣고 같이 옮기기로 했는데, 친구는 부모님이 그 교회를 오래 다니신 장로님이라 붙들리고 저만 향린교회로 왔어요. 그때가 대학 3학년인 1987년이었어요.
그전에는 공간이 교회밖에 없어서 교회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제가 향린에 왔을 때는 교회에서 활동하던 대학생들이 학내 활동으로 들어가던 시절이었어요. 대학부가 잘 모이지 못해 청년신도회로 들어와서 저보다 나이가 서너 살 많은 사람과 활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서너 살은 얼마 안 되는 차이라고 느끼지만, 그때는 서너 살 차이는 엄청난 차이라고 느꼈지요.

Q : 청년신도회가 배동교회를 만들었는데 그 일에 김광열조합원께서 관여했다고 들었습니다.
A : 배동교회는 청년신도회가 주축이 되어 안산지역에 개척한 교회인데요, 안산이 공단이었잖아요? ‘민중들이 있는 지역에 민중들과 함께 하는 교회를 만들자’라고 청년신도회 안에서 결의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웠어요. 그런 결의를 한 것은 선배들이었고, 그때 저는 나이가 어려서 지원 활동을 했어요.

Q : 배동교회는 향린의 분가교회인가요?
A : 배동교회는 청년신도회가 결의해서 만든 교회라서 다른 분가교회와 달리 향린교회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은 없었는데 그런 지원을 받는 줄 오해를 받기도 했어요. 배동교회는 시작할 때 돈 없이 열정만 가지고 시작했기 때문에 건물이 있다거나 안정적인 터를 미련할 자금을 확보하지 못했어요. 가장 어려웠던 점은 공단이 커지면서 전세금이 오르면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어서 자립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이병훈 목사님이 전도사 시절 막노동을 해가며 돈을 마련해서 교회를 지었어요. 지금 배동교회는 30주년이 지났는데, 교인 수는 20명 남짓이지만 교인 중에 안산지역에서 열심히 일하는 활동가들이 많아요. 그래서 안산 시흥지역에서는 배동교회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Q : 지금도 배동교회와 활동이 연결되어 있나요?
A : 설립 초기에는 청년들이 내려가 광고도 하고, ‘터’라는 풍물패와 같이 가서 활동도 하고 했는데 워낙 거리가 있다 보니 지금은 후원만 하는 형태로 남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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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린 청년신도회에서 배우자를 만났고, 두 자녀와 대화를 통한 존중과 성장

Q : 부인 박경혜 님은 향린교회 청년신도회에서 만나셨나요? 두 분의 달콤한 사랑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요?
A : 아내는 향린교회 청년신도회에서 만났어요. 제가 배동교회 후원회 감사역할을 할 때 아내가 많이 도와주었는데 제가 그 인연을 좀 활용했죠.

Q : 당시 청년신도회 안에 유난히 커플이 많았다고 하던데요? .
A : 활동을 열심히 했다고 봐야겠죠. (현명하신 분석에 일동 웃음 )

Q : 박경혜 님은 어떻게 향린교회를 다니시게 되셨나요?
A : 아버님(박종화 목사님, 경동교회 원로)은 당시는 한신대 교수였기 때문에 교회 선택에 제약이 있는 건 아니었어요. 아내는 대학 시절 좋은 교회를 찾다가 향린교회로 오게 되었어요. 제가 직장에 다닐 때 대학생이던 아내를 만난 건데요, 한번은 아내가 ‘대학 때 미팅도 못 해 봐서 후회스럽다’라고 말하더군요.
아내는 두 살 때 아버님을 따라 독일로 가서 중학생 때쯤 한국에 돌아왔어요. 한국말을 채 익히지 못하고 돌아왔지요. 한국에서 언어부터 익히면서 시작해야 해서 굉장히 힘들었다고 해요. 독일에서 자랐기 때문에 외모는 한국 사람이지만 세계관이나 사고방식이 달랐고, 당시는 독일이랑 한국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나던 때라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온 상황이니 적응하는 데 매우 어려웠다고 해요.

Q : 박경혜 님은 독일어를 잘하시겠네요?
A : 아내는 독일어가 모국어죠. 제가 고등학교에서 독일어를 배울 때 독일어가 멋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아내가 독일어 하는 것을 보고 ‘독일어가 참 멋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Q : 그럼 박경혜 님의 독일어가 매력적이라 사귀게 되신 건가요?
A : 여러 가지 매력이 있었지요~ (현명하신 대답에 일동 웃음 )

Q : 자녀들의 교회 생활이나 사회진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요?
A : 저는 딸이 둘인데요, 큰애는 고등학교 다닐 때 학교를 그만두고 대안학교 ‘하자스쿨’의 ‘로드스콜라’ 라고 길에서 배운다는 여행학교에 다녔어요. 기존의 교육이 미래를 위해 길을 제시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로드스콜라가 꼭 길을 제시해주지는 않겠지만 ‘고민’을 먼저 시작하고 기회를 많이 얻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학과 공부를 하는 것도 좋지만 여행을 다니면서 자연과 만나고 학교에서 만날 수 없는 사람들과 사귀고 하는 것에서 배울 것 많다고 생각했어요.
둘째는 미용에 관심도 많고 소질도 있는 것 같아요. 중3 때 방학 동안 금발로 염색을 했는데 담임선생님이 졸업식에는 검은 머리로 다시 염색하고 오라고 했데요. 그래서 담임선생님과 통화를 했죠. 우리 애가 남한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자유스럽게 인정해주면 좋겠다고. 그래서 금발 머리로 졸업식을 치렀죠.
저희 가정은 가능하면 아이들의 의사를 존중하며 성장하도록 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내는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하고 의견을 존중하지만, 책임도 함께 요구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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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자녀들의 종교 생활은 어떤가요?
A :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교회에 다녔어요. 집안 분위기는 기독교 환경에서 자랐지만, 자신의 종교를 미리 규정하려고 하지는 않고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려고 합니다.

Q : 앞으로 개인적인 희망은 무엇인가요?
A : 저도 이제 몇 년 뒤 은퇴를 하게 되는데 아직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는 못했지만, 제가 배우고 싶었던 것들 한문, 서예 이런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일중(一中) 김충현 서예가께서 세운 백악미술관 관장을 지내셨던 윤영수 조합원이 “진짜요?”라고 되물으시며 격하게 반가워하셨습니다. )



코로나 19를 겪으며 변화하는 세상과 교회


Q : 코로나 19로 세상이 달라질 텐데요
A : 코로나가 사회 변화를 10년은 앞당기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우선 코로나 이후 세상은 비접촉 사회 비즈니스가 보편화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예를 들면 우리 교회 목운위가 화상회의를 경험했어요. 나이 든 세대는 접근할 생각을 못 하다가 그런 경험을 한번 하고 나니 생각보다 ‘할 만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Q : 종교는 상당한 위기가 아닐까요?
A : 예배도 그렇잖아요, 향린교회도 온라인 예배로 하는데 처음에는 불편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면 나름대로 정립이 되어가고 있어요. 도전이자 기회인데, 저는 이것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온라인 예배의 가장 큰 장점은 기존의 예배는 아무리 좋은 설교, 음악이 있다고 하더라도 예배에 온 사람 이백 명 정도가 함께 하는 수준인데 훨씬 더 많은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예배(교회)가 될 수 있어요. 앞으로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가상 기술이 많이 나올 될 텐데요 예를 들면 마이크로 소프트의 가상안경(홀로렌즈) 같은 것을 쓰고 예배를 드리면 훨씬 실감나는 예배가 가능하거든요. 이런 기술은 각 나라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눈앞에 물건이 있는 것처럼, 하나의 장소에 있는 것 같은 회의를 가능하게 하는 거죠, 사람들의 위치가 커뮤니케이션에 방해가 안 되는 그런 세상으로 바뀌어 나가고 있는 거죠. 또 동시통역도 몇 년 이내에 값싸게 이용 할 수 있는 그런 기능이 될 텐데 예배도 콘텐츠만 잘 꾸밀 수 있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온라인으로 같이 예배를 볼 수가 있게 되지요. 온라인이 지금보다 더 발달 되면 선교도 우리가 선교 할 수 있는 미디어가 달라지기 때문에 해외라던가 그것을 활용한 다른 방향, 다른 콘셉으로 진행 할 수 있지요.

Q : 코로나 상황이 끝나 오프라인이 자유로워지면 그전 생활방식으로 다시 돌아가지는 않을까요?
A : 네 물론 돌아가기는 하겠지만 이미 한번 체험을 해봤으니까 ‘이렇게도 살 수 있네? 이것도 재미있네?’하는 생각을 하면 온라인에 남게 된다는 거죠. 이번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시작하기는 했지만 한번 그 허들을 넘어 보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한 발 더 전진하는 거죠

Q : 두 가지 질문을 하고 싶은데요 하나는 전통적인 신학을 한 사람들은 예배는 모여서 봐야 한다는 생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현장 예배를 고집하겠지만 ‘모여서 드리는 예배’와 ‘예배의 의미’에 대해 한번 논의가 될 것 같지요?
두 번째는 콘텐츠 창출 능력이라는 것이 자본과 관련이 되니까 역설적으로 대형교회들이 더 강점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A : 이미 그런 장점들은 대형교회가 잘 활용을 하고 있죠. 큰 교회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었잖아요? 이런 점이 젊은이들을 많이 끌기도 하고요. 그런데 우리 같은 교회는 이번 체험을 통해 새롭게 깨닫게 되고, 이런 방법으로 선교영역을 넓히는 것에 공감대가 형성된 거죠

Q : 가난한 교회 교인들이 타겟이 되겠죠. 그들은 어차피 교회에 안 나가니까요. 그런데 가난한 작은 교회들은 없어지고 좋은 콘텐츠를 가지고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대형교회들은 살아남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A : 맞습니다. 결국은 콘텐츠 경쟁이에요. 하지만 전에는 그런 시설을 갖추는 데 큰 비용이 들었지만, 지금은 굉장히 저렴해졌어요. 신학도 콘텐츠이기 때문에 기술보다는 정말 진실한 신앙을 잘 이야기 해줄 수 있다면 해볼 만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Q : 신자들이 교회 공간에서 느끼는 정서, 함께 드리는 예배를 통해 얻는 힘이나 교우들 간의 교제와 사귐이 주는 기쁨 등 현장 예배를 통한 신앙생활을 하는 매력은 대체 할 수 없이 큰 것이 아닐까요?
A : 그런 매력은 꾸준히 유지해야죠. 온라인 교회라고 해서 온라인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같이 묶여서 환경이 갖추어져야 하는 건데요, 예를 들면 귀에 꽂고 눈에 쓰고 하는 장비를 사용하게 되면 정말 사람들이 함께 예배 보는 것과 같은 실감을 주죠. 얼마 전에 BTS가 온라인에서 '언택트 공연'을 했는데 참가자들이 생생하게 즐길 수 있도록 응원봉을 연동하는 블루투스 시스템을 만들어서 안방에서 공연장에 있는 것처럼 실감이 나는 공연을 선보였어요. 공연이 가능하다면 예배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면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인원이 천명이라도 다 드러나는 거지요. 교회에 와 있는 것과 같은 은혜로운 예배는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Q :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과 같은 착각을 주는 건가요? (일동 웃음)
A : 다만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 목표이니 계속 오프라인으로 오겠지요. 중심은 오프라인 예배가 되겠지만 동시에 거기에 참석할 수 없거나 개인 성향이 강한 젊은이들에게는 온라인 예배가 더 맞겠죠.

Q : 일요일에만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지금의 교회 예배는 그 시간에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죄인 또는 불성실한 신자로 만드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요일별 교회가 있거나 요일별 예배를 열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A : 그런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거죠. 제가 미국에서 이년 반 정도 지내면서 향린의 국악 예배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어요. 미국 어느 교회도 그런 예배를 드릴 수 없잖아요? 그런데 온라인 예배를 드릴 수 있다면 미국이든 어디에서든 그게 가능한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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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이내에 달라질 삶의 방식

Q : 코로나 19가 다르게 사는 삶의 방식을 고민하게 하는군요.
A : 2040 디바디이드(2040년 둘로 나뉜 세상이 온다. 조병학 지음. 인사이트앤뷰 출판)라는 책을 보면 앞으로 20년 이내에 세상은 극단적으로 바뀌는데, 사람이 하던 일 중 대부분을 기계나 AI가 대신 하는 세상이 올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일부 관료나 고급기술자, 부를 창출하는 사람들만 일할 수 있다고 보는 거죠.
그런 세상이 온다는 것에 저도 동의합니다. 그런 세상이 오면 사람은 뭐하고 살아갈까요?
유엔보고서에 의하면 2030년이 되면 모든 사람이 기본소득으로 살아 갈 것이라고 합니다.
이번 코로나 19로 인해 우리 사회에도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이 들어왔지요. 기본소득제는 시작은 단기로 하지만 점차 확대되고 연장될 것이라고 보는 거죠. 앞으로 3~4년 동안은 실업률이 확대될 것이고 기본소득이라는 체계가 우리 생활로 들어 올 수밖에 없는 거죠.

Q : 그러면 소수의 사람이 기계나 AI를 이용해서 돈을 벌고 나머지 사람들은 놀고먹는 좋은(?) 세상이 오는 건가요?
A : 지금은 개인이 공장을 운영하지만, 앞으로는 민간이 운영해서는 모든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없으므로 공공성이 강화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그동안은 필요량과 생산량의 차이가 심해서 문제였다면 그때는 시스템이 발달해서 필요량과 생산량의 간극을 줄여서 국민에게 필요한 기초용품을 공공영역에서 제공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 그럼 우리는 뭘 하고 놀지만 궁리하면 되는 세상인가요?
A : 누가 그런 표현을 쓰던데, 인간이 처음으로 ‘노동으로부터 해방’되는, 또는 ‘노동으로부터 진정하게 소외’되는 시기를 맞게 된다고 하던데요. 우리가 그동안 돈을 벌기 위해서 노동하는 세상을 살았는데 그러면 도대체 ‘인간의 가치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봉착하게 되는 거지요.

Q : 인간의 가치는 뭘까요?
A : 거기에 종교의 영역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에는 종교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현대사회가 될수록 종교가 필요 없다고 인식되었는데 먹고사는 문제가 그런 방식으로 해결이 된다면 사람들이 오히려 ‘왜 인간이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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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지을 향린교회는 미래를 이어받을 사람들을 생각하는 공간

Q : 향린교회가 이전을 준비하고 있잖아요? 변화될 세상에 관한 생각을 새로 지을 교회 공간에 어떻게 반영하실지 궁금합니다.
A : 하나는 교회 이전을 준비하면서 이번 기회에 콘텐츠를 잘 제작 할 수 있는 환경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가능하다면 온라인에서 예배를 언제든지 자유롭게 볼 수 있는 환경을 꾸미고, 성서 공부도 바로 온라인에 올릴 수 있는 체계를 꾸미면 훨씬 더 많은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교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합니다.
저희 교회가 이전을 준비 중인데, 세상이 지금의 선교 활동과는 달라질 테니 공간을 잘 준비해서 새로 향린을 이어받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더라도 선교 활동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할 일이라는 의무감을 느끼고 있어요. 20~30년 전에는 교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청년이 50명, 함께 활동하는 청년이 200명 정도 수준이었어요. 그래서 청년이 제안하고 활동하는 사업이 많았는데 지금은 교회 활동에 시간을 쏟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청년들도 많지 않아요.

Q : 그러면 그때 청년이었던 사람들이 일해야 하는가요?
A : 원래는 청년들이 해야 하는데 옛날 청년이었던 사람들이 하니까 청년들과 대화도 잘 안 되고 어려움이 많지요. 청년들이 어른 세대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해줘야 하는데 새로 올라오는 힘이 약하니까 했던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밀어내지도 못하는 거지요.

Q : 대부분 교회가 노화되어가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을까요?
A : 그래도 향린교회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마지막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향린교회는 점점 노화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그런데 교회를 새로 옮기면서 새 단장도 하고 청년들이 활동하기 좋은 교회로 바뀔 기회를 얻었다는 그것이 은혜이고, 향린에 마지막으로 주어진 기회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기회를 통해 향린이 젊은 층이 활동할 수 있는 교회로 바뀌어야 존속이 되지, 안 그러면 없어진다고 생각해요. 제가 미국에 갔을 때 교회에 가보니 예쁘게 잘 지어진 교회 안에 7~80대 할머니 할아버지 교인 십여 명만 있어요. 그러니 활동도 못하는 거죠. 그게 대부분의 많은 한국교회가 가는 길이라고 보거든요. 노령화되고 더는 활동 할 수 없으니 친목 모임이나 하다가 한분 두분 가시면 칠팔십대만 열 몇 명 남아서 명맥만 유지하다가 해산하는 형태로 가는 거지요. 그렇게 안 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향린교회에는 주어졌고, 이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하는데 그 한 축에 길목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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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린과 협동조합길목 그리고 청년

Q : 향린이 60주년에 길목 협동조합을 만들고 사회선교의 한 축으로 생각했던 거죠. 어쩌면 교회는 한국 사회에서 이미 오래된 틀이고 조합은 시대에 맞는 틀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향린교회 이전이나 변화된 사회에서 ‘협동조합이’라는 틀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A : 길목 협동조합이 교회 차원에서 하지 못했던 선교방안들을 발굴해내고, 향린이 접촉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접촉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원래 교회가 기대했던 것처럼 사회선교센터의 한 축을 담당하는 그런 기구로 자리를 잡아주어야겠지요.

Q :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야 하는데 이사나 실행위원들이 ‘이미 청년이었던’ 분들이 많다는 것과 지자체나 공공기관들이 공간이나 프로그램을 워낙 잘하고 있는 상황이네요. 길목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할 텐데요. 교회나 길목이 젊은 층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보시나요?
A : 저는 그래서 젊은 층들에 적은 비용으로 살 수 있는 생활공간을 만들어주는 것과 같은 실질적인 혜택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가 잘 해내고 있는 바탕은 민주화의 산물

Q : 이번에 총선이 끝나고 나서 한국사회의 주류가 변화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우리가 향린교회를 삼사십 년 다니면서 항상 우리는 소수라고 생각했었는데 한국사회가 진짜 바뀌었나? 생각하게 돼요. 한국의 위상도 곰곰이 생각하게 되는데요 그런 점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A : 우리나라는 바이오와 IT가 강하지요. 코로나 19를 극복하는 힘은 민주화의 산물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국민이 주체로 서봤던 경험을 갖고 있어서 국민이 비판과 참여로 문제를 해결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요. 영화 기생충이나 BTS 같은 문화적 발달의 배경에도 민주화 과정에서 사회에 목소리를 활발하게 냈던 토대가 그런 힘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 그러니까 새로운 위기가 와도 잘해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마무리 이야기

이렇게 김광열 조합원이 살아오신 삶의 한 자락과 코로나 이후의 새로워질 세상에 대한 기대와 염려, 희망과 의무에 관해 이야기 나눈 끝에 다음과 같은 인사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습니다.

김진희 : 어려운 상황에서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광열 : 아니요, 제가 인터뷰할 만한 사람이 아닌데 이렇게 인터뷰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윤영수 : 인터뷰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고 조합원 모두가 인터뷰할 만한 사람이지요. 이게 조직 활동이니까요. ‘길목인’은 품질을 떠나서 지속 가능하게 꾸준히 나오고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광열 : 제가 교회 활동을 열심히 했던 주요인 중 하나는 선배들이 열심히 했기 때문에 제가 안 한다고 하기가 어려웠던 것이에요. 젊었을 때 그렇게 만났던 연대감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젊었을 때 민주화에 대한 열정으로, 교회나 나라를 위해 활동을 했지 개인의 목표를 위한 것이 아니었지요. 순수함으로 만났던 인연들이라 굉장히 길게 가는 것 같습니다. 평생 친구, 같이 나이 들어가면서 평생 보고 살 사람들을 만난 거죠.
윤영수 : 전에 다니던 교회는 제 삶에 별 의미가 없었는데 향린교회는 시간도 오래되었고 삶에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거죠.
김진희 : 제가 다니는 새민족 교회는 작아서 아쉬운 점이 많아요. 하지만 연대를 하면 서로 모자란 것을 채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 짓는 향린교회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김광열 : 우리가 살아남는 방법은 교회는 일없으면 가서 놀다 오는 곳이 되어야지만 활동성을 유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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