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별의 다큐이야기] 유성기업 이야기 8 - 8년이면 됐다. 이제는 끝내자

posted Oct 3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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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별의 다큐이야기] 유성기업 이야기 8 - 8년이면 됐다. 이제는 끝내자
 


2018년 10월 4일 목요일 아침에는 시간 여유가 있어도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평소 약속시간에 주로 늦는 편이지만 그날은 선고시각인 오전 10시가 되기 30분 전에 대법원에 갔다. 해고자 11명이 모두 와 있었다. 대체로 기대에 찬 표정이었지만 판결이 날 때까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원고 이정훈 외 10명, 피고 유성기업 주식회사의 사건 2016다242884[전]해고무효확인 등의 대법원 판결문은 “……그러므로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자가 부담하도록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로 끝났다.
법정을 나오자마자 수고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등의 인사말들이 오고 갔다. 그 와중에 아산지회장은 법정에 온 김주표 상무이사를 따라가 사과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잠시 후 기자회견이 있었다. 그런데 기자회견 후 축하파티라도 벌일 줄 알았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아산과 영동으로 간다고 했다. 머쓱해진 나는 조각 케이크를 사서 집에 가 촛불을 켜고 330ml 맥주 반병을 마시며 혼자 승소를 축하했다. 그리곤 급체해서 남은 하루 내내 앓았다. 만7년만이었다. 아직 남은 8명의 해고자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재 해고부터 따져도 5년만의 승리인데 기쁨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그들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며칠 후에야 그들의 태도를 이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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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자 11명 대법원 승소 후 기자회견

 


샌드위치 휴일이 지난 10월 10일 수요일, 해고자들은 출근해서 관리이사와 면담을 하고 오후에 건강검진, 11일 안전교육 받고 오후에 파업, 10월 15일 월요일 마침내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유시영 회장의 징역 1년 2개월 복역 후 만기 출소,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의 심종두·김주목 역시 징역 1년 2개월 벌금 1천만 원 선고로 구속, 1차 해고자 11명 대법원 승소로 유성기업 사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유성기업의 노조파괴는 현재진행형이다. 감시와 징계와 임금삭감은 계속되고 있고 갈등 해결의 핵심인 교섭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작년 9월, 양재동 천막에서 1차 해고자 중 한 명이 '우리의 목적은 단지 복직이 아니라 단체협약 원상회복과 임금인상, 주간연속2교대, 노조파괴주범처벌과 어용노조해체 등'이라고 했었다. 그러니 해고자들이 복직돼도 싸움이 끝난 게 아니었다. 이제는 이 싸움을 마무리할 때가 된 것이었다. 그러니 해고자 11명의 대법원 승소 날은 아직 그들이 축배를 들기에는 너무 이른 시기였던 것이다.

마침내 아산과 영동의 노조원들은 유시영회장과 직접 교섭을 요구하며 서울 삼성동 사무소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회사 측은 노조원들의 갑작스런 방문에 당황했고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경찰 측은 자기네 회사에 들어간 것이고 사무실 업무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므로 불법점거로 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전면파업 1일차
밤 9시가 돼서야 유성기업 서울 사무소를 찾았다. 낮에 조합원 대부분이 올라와서 기자회견을 하고는 밤에 사수조로 아산 15명, 영동 15명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노조원들의 기습방문에 사무실에 있던 유시영 회장은 서둘러 회사를 떴다고 했다. 남루한 5층 사무실 바닥에는 은색 돗자리가 깔렸고 그 위에 아산·영동지회장과 금속노조 이승렬 부위원장, 김정태 대전충북지부장, 정용재 충남수석부지부장 등이 있었다. 1987년에 입사했는데 서울 사무소에 처음 와 본다는 이정훈 영동지회장의 말을 들으니 끝장투쟁임이 역력했다. 가장 궁금했던 건 이 싸움이 언제까지 갈 지였다. 전면파업은 임금을 걸고 하는 싸움이다. 빨리 끝날수록 좋다. 유성이 누군가, 어느 지회보다 결집력이 좋은 사람들 아닌가. 다음 날도 전면파업 연장으로 조합원 210명 이상이 상경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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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 1일차 유성기업 서울 사무소 5층

 


전면파업 3일차
10월 17일 수요일, 오전11시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유성범대위 및 민중공동행동 재벌체제 청산특위)부터 하루 종일 그들과 함께 있었다. 오후 1시 반 민주노총 국회 농성장 방문에 동참해 국회 앞 집중 선전전을 한 노조원들이 오후 3시 반, <노조파괴 주범, 정몽구 처벌 촉구> 현대기아차 본사 앞 집회로 왔다. 11시 기자회견부터 함께 한 김상은 변호사가 유시영 회장의 재 구속 가능성이 농후함을 알려주었다. 그러므로 이번 농성은 교섭으로 오히려 구속을 막을 수 있는 기회를 노조원들이 제공하는 것이라고 했다. 검찰이 유시영 재판 관련 추가 기소를 하면서 사건 3개를 모두 병합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해 왔기 때문에 유시영 회장에게 상당히 압박이 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노측 변호사들의 견해이다.


2018년 유성지회 단체교섭 노조의 요구안은 경영진의 진정성 있는 사과 및 노조파괴·부당노동행위 재발방지 약속 및 CCTV 철거, 노조파괴 책임자 처벌 (아산:이기봉, 김주표 / 영동: 최성옥, 유호권), 어용노조 해체 및 책임자 처벌, 회사에서 제기한 형사소송·손해배상청구 철회, 노측 피해자·부상자 보상, 징계무효 절차 즉각 시행 및 임금 보전, 2011년 단체협약 원상회복 (조합활동보장) 및 소급적용, 한광호 열사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재발방지약속·장례비 및 위로금 지급, 주간연속 2교대제, 월급제 교섭재개, 조합원에 대한 심리치유 시간·경비·휴가 제공, 미지급 임금지급 등이다.

오후 6시, 서울 사무소 앞 문화제로 농성 3일차 일정을 마무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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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본사 앞(농성 3일차)

 

 

전면파업 4일차
10월 18일 목요일 오후 2시, 민주노총 세종충남지부와 충북지부가 유성기업과 연대해서 집회를 했다. 그런데 잠시 후 헤어스타일부터 신발까지 무척 세련된 여성이 와서 경찰과 스태프들에게 고함을 쳤다.  집회 소음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다고,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니냐고. 유성기업 노조원들이 사과를 했다. 그 사람은 가다말고 다시 와서 내게 뭘 찍는 거냐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이는 알 턱이 없겠지만 나는 관심 없는 것을 찍을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고로 그 사람도 찍지 않았다. 다른 유성기업 노조원이 또 사과를 했다. 씩씩대며 돌아서 가는 그이를 보며 나를 유성기업 사람으로 봐줘서 고마워해야 하나와 왜 내가 폭언을 들어야 하나 하는 양가감정을 느꼈다. 한데 지난 6월 청와대 앞 민주노총 수도권 결의대회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BMW를 몰고 온 젊은 남성이 경찰에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다고 소리 지르며 항의했었다. 외모만 봐서는 두 상황 모두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의 대립이었다. 하지만 어느 집단의 쟁의행위 때문에 다른 누군가는 기본권을 침해당하고 있었다. 사회자는 항의한 시민을 탓하지 않고 유시영 회장에게 책임을 돌렸다. 그렇다. 회사가 제대로 교섭을 해주었다면 아산과 영동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왜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농성을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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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 4일차 발언하는 아산지회장과 창문에서 내다보는 영동지회장
 


전면파업 8일차
10월 22일 월요일 오전11시 국가인권위원회 앞 기자회견을 놓치고 오후 3시에 서울고용노동청 앞으로 갔다. 200여 명의 노조원들이 앉아있었다. 인권활동가 명숙이 발언을 했다. 그는 여전히 노조파괴와 노동자 괴롭힘이 있는 현장에서 인권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다음 순서로 민중가요가수 임정득이 노래를 했다. 임정득은 작년 2월, 내가 조영관문학창작기금을 수혜할 때 축가를 불러준 가수였다. 세월호참사의 슬픔을 글로 토해냈던 내가 유성기업 투쟁에 함께하고 있다는 게 나조차도 믿어지지 않았다.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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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활동가 명숙(좌)과 민중가요가수 임정득(농성 8일차 고용노동청 앞)
 


오후 4시에 도성대 아산지회장, 최상철 영동부지회장, 정주교 금속노조 부위원장, 최윤정 금속노조 조직국장이 노동부 장관과 면담을 하러 들어갔다. 30분이 되자 영동지회는 버스로 서울 사무소를 향해 떠났고 집행부가 나오자 아산지회도 뒤따라갔다. 이날은 십시일반음식연대에서 ‘밥묵차’가 와서 모처럼 따뜻한 밥과 반찬과 국을 먹을 수 있었다.
오후 6시 문화제에서 김정태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장이 지부에서 후원금 모금을 합의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정훈 영동지회장은 지난 주 수요일에 이어 ‘고맙습니다’를 연발했다. 월급을 마다하고 전면파업에 동참해준 조합원들과 연대해주는 동지들에게 하는 진심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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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원띠와 염원띠 위로 보이는 유성기업 서울 사무소(농성 8일차)

 

 

전면파업 9일차
10월 23일 화요일은 원래 유시영 회장의 재판 일이었다. 그런데 정재신 검사가 연기 신청을 해서 재판이 12월 4일로 미뤄졌다. 그럼에도 영동아산지회 조합원들은 오전 10시 30분 천안지청 앞 유시영 구속촉구 탄원서 제출 기자회견과 오후 1시 30분 아산공장 오체투지를 감행했다. 나는 서울에서 비바람이 몰아치는 걸 보며 아산의 오체투지를 걱정했다. 

전면파업 10일차
10월 24일 수요일 오후 2시, 유성기업 서울사무소 앞에서 금속노조 충남-대전충북지부 집회가 있었다. 대전충북 지부는 파업을 결의했다고 했다.
국회 앞으로 가는 금속노조 버스에 올랐다. 여의도로 가는 차장 밖으로 가을이 물들고 있었다. 
오후 4시부터 국회 앞에서 11월 총파업 승리 금속노조 확대간부 결의대회와 재벌적폐청산 문화제를 했다.
3천여 명의 금속노조원들 가운데 딱한 사정들이 많았지만 내 눈에는 푸른색 유성기업 조끼만 들어왔다. 해가 지자 어둠이 내리면서 기온이 뚝뚝 떨어졌다. 오후 6시쯤 모든 집회가 끝났다. 유성 노조원들은 저녁식사도 못한 채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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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 10일차 유성기업 서울 사무소 앞

 


전면파업 11일차
10월 25일 목요일 오후 1시, 평택역에서 택시를 타고 유성기업에 도착했다. 오후 한 시 반부터 유성기업 아산지회에서 오체투지를 한다고 했다. 시커먼 먼지 그득한 공장 바닥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여덟 명 뒤로 180여 명의 아산과 영동 노조원들이 침묵하며 걷고 있었다. 관리자들이 대거 나와서 대치하면서 채증을 했다. 노조원들은 동요하지 않고 한 시간 여 묵묵히 공장 건물 내외 구석구석을 돌았다. 오체투지와 간단한 집회가 다 끝난 후 공장 앞에서 바비큐 파티가 열렸다. 전면파업으로 아산과 영동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하는 건 몇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고기 굽는 연기가 나고 돗자리 위에는 어묵탕과 김치와 귤과 술이 차려졌다. 그런데 3시 40분, 영동지회 노조원들 82명이 버스에 오르자 판은 순식간에 깔끔하게 정리됐다. 한 시간 만에 청소까지 마무리된 몇 년 만의 회식자리를 보며 문득 공장 바닥에 스프레이가 스며들었다고 사측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던 과거 일이 떠올랐다. 모처럼의 낮술에도 아무도 흐트러질 수 없는 그들의 기억에는 대체 어떤 강박이 있는 걸까?  
평택역까지 태워준 노조원의 차안 차량용 햇빛가리개에 이름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아이가 있나 봐요?”
“네. 전 돌싱이에요. 유성사태 때문에 깨진 가정 많아요.”
평소 집회에서 늘 맨 앞에 서 있던 건장한 체구의 노조원이었다. 그의 갑작스런 고백에 내 속에 출렁이던 슬픔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상대의 슬픔은 내 안의 슬픔과 혼합되고 그것은 비슷한 깊이에 가라앉아있던 분노와 점차 화학작용을 한다. 나는 눈물 대신 욕을 쏟아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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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 11일차 유성기업 아산지회 내 오체투지

 


전면파업 15일차
10월 29일 월요일, 교섭 일이었다. 하루 종일 기다려도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아산과 영동에서 10월에 상경한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정상적인 교섭 전에는 집에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8년 투쟁의 끝장을 보려고 서울 사무소까지 찾아왔다.  
11월이다. 혼자인 1이 둘이나 나란히 모여 있는 11월은 일 년 중 가장 외로운 달. 나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외롭지 않게 그들 곁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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