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N?

posted Sep 02, 2023
Extra Form
글쓴이 강은성
발행호수 7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핵폐수.jpg

 

 

막연하게나마 50대에 은퇴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터라 교회에서 맡은 직책의 임기가 끝나고 (거의) 모든 일에서 손을 떼면서 한동안 쉬었는데, "너 아니면 안 된다"는 '감언이설'에 조금씩, 다시 '일의 늪'으로 빠지고 있다. 그래도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굳게 하고 있지는 않고 다시 빠져나올 궁리를 이리저리 하고 있어서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먹고 사니즘'에 충실하게 '생계형 멀티잡'을 뛰고 있는 '생활 전선'은 더 심하다. '하나'를 알면 '열'을 말하며 살고, 한 달에도 여러 편의 가볍지 않은 글을 써 대면서 은퇴는커녕 삶의 무게에 헉헉대고 있다. 캘린더에 할 일을 쭉 써 놓고도 읽는 걸 잊어버리거나, 전에 저장해 놓은 자료를 못 찾아서 인터넷에서 똑같은 자료를 찾느라 시간을 보냈는데, 그걸 PC에 저장하다가 예전 자료를 발견한다든지 하여 일 처리의 효율성은 엄청 떨어졌다. 그나마 떨어진 '효율성'에 반비례해 객관적 현실에 대한 나 자신의 '수용성'이 늘어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사는 내가 최근 보다가 눈물이 많이 나서 화장실에 가야 했던 영상이 있다.

 

- '서이초 선생님' 사촌오빠의 '증언'(2023.8.5) [유튜브 동영상 보기 ▶]

 

신규 임용 2년차, 겨우 25살의 초등학교 선생님이 교실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시고, 수만 명의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7월~8월의 폭염과 폭우를 뚫고 매주 주말마다 검은 옷을 입은 채 도심에 모이는 뉴스를 우연히 접한 뒤 어떤 상황인지 찾아보다가 발견한 영상이다.

 

고등학교 때 '교련'이란 교과목의 이름으로 '군사훈련'을 받고, 무지막지하고도 어이없는 폭력을 휘둘렀던 선생(차마 지금도 '님'자를 붙일 수 없는)을 보며 '야만의 시대'를 살았던 데다, 공교육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고, 검정고시로 중등교육을 마친 우리 집의 '자유로운 영혼'들과 한 10년을 동고동락했던 터라 공교육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큰 관심이 없었는데, 시대가 바뀌어도 정말 한참 바뀌었나보다.

 

더욱이 지난 8월 24일 후쿠시마 원전 폭발 핵 오염수를 태평양에 버리기 시작함으로써, 20세기 전쟁범죄국 일본이 21세기 환경범죄국의 길로 '과감하게' 들어서는 것을 보면서, 체력도, 정신력도, 삶의 무게도 따라주지 않아, DJ의 '명언'에 기대 벽에 대고 욕을 좀 하거나, 가끔 블로그에 글을 쓰는 정도로 지나던 사회적 일상을 바꿔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교회 텔방에 올라온 공지를 보고, 그냥 한 구석 차지하고 앉아 있으면 될 것 같아 나간 시청 앞에서 인원이 적어 생각지도 않게 '핵 폐수 방류 규탄' 현수막의 한 쪽 끝을 들고 걸었는데, 교회의 낯선 현수막에 많은 참가자가 현수막 사진을 찍기도 하고, 교회에서 왔냐, 요즘 교회 같지 않다, 는 등 여러 얘길 들었다. 이분들 우리 교회에 한 번씩은 오시길 '세게' 기도해 본다. (이게 교회 '부흥' 전략인가?)

 

예전에 가끔 'N빵'하자는 얘길 했다. 밥 먹고, (대충) 전체 금액을 먹은 사람 수로 나눠 밥값을 내자는 의미다. 최근 2030세대부터 5060세대에 이르기까지 일상에서 교류하고 살면서 이제는 '당위'와 '헌신'의 시대는 가고, '자발'과 '1/N'의 시대가 왔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몸도 머리도 생활도 따라주지 않는 상황에서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좀 찾아보고, 적당하게 오래갈 수 있는 1/N을 맡아야 '각자도생'의 바다를 건널 수 있는 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길목 또한 N이 좀 적당하게 큰 우리네 인생의 '배'가 되길 기대해 본다.

강은성-프로필이미지.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