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혜정109

당신은 더 잘 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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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더 잘 쓰게 된다

이기원 지음, 오늘산책, 2026

 

https://aladin.kr/p/KCb4H

 

스토리텔링에 대한 관심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인간은 누구나 매일 머릿속으로 수십 차례 스토리를 만들어낸다"는 조너선 갓셜의 <스토리텔링 애니멀>의 문구처럼, 모든 사람은 스토리텔러일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을 효과적으로 드라마틱하게 끄집어내고 만들어내는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 그래서 작년에 한 독서모임에 불쑥 들어가 스토리텔링 관련 책을 매달 멤버들과 같이 읽어나가는 기회를 가졌다. 국내외의 여러 전설적인 책들을 읽으면서 스토리텔링이 그저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체계성과 의도성을 가지고 계획하에 접근해야 한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작가가 어느 골방에 처박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일필휘지로 쭈욱 써 내려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안개 속을 헤매는 느낌이랄까.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답답함이 남아 있었다. 그러다 올해 나온 책 한 권을 접하고 불현듯 그 모든 것이 보다 선명해지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바로, 이기원 작가의 스토리텔링 책, <당신은 더 잘 쓰게 된다>였다.

 

이 책은 스토리에 대한 정의에서 시작한다. "스토리란 '욕망'을 가진 '주인공'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p21)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인간 욕구 피라미드'를 예로 들어 각 단계별로 나올 수 있는 스토리를 각각 짚어보고 그 위에 복수의 욕망을 하나 얹는다. 그러니까 스토리는 욕망에서부터 시작해야 이야기가 분명해지고 도달하는 목표가 확실해진다고 강조한다. 스토리를 떠올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욕망은 무엇인가?"

 

이렇게 시작한 스토리텔링이 끝까지 길을 잃지 않고 서사라는 망망대해를 항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로그라인'과 '주제'와 '하이 콘셉트'이다. '로그라인'으로 방향을 고정하고, '주제'로 항해의 의미를 찾고, '하이 콘셉트'로 이 항해가 선택받을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고 그 세계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 것이 로그라인이라고 한다면 그 수많은 아이디어를 한 줄에 녹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스토리텔링에서 '로그라인은 이야기의 뼈대이고 작가는 여기에 살을 붙이고 피를 넣어 작품을 완성한다.' (p36) 예로, 스티븐 스필버그는 한 인터뷰에서 "긴 설명 대신 '스물다섯 자 이내로 핵심 설명이 가능한' 콘셉트야말로 영화화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고 이 말은 영화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로그라인이 나왔으면 이제 생각해야 할 것은 '주제'다. 주제는 작품의 영혼이며 작가가 작품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기원 작가는 (공학도답게) 주제를 공식으로 정의한다. '주제 = A > B' (p51). '주제란 A가 B보다 낫다'라는 뜻이고 로그라인에서 추출한 내용을 이 공식에 넣어 대입하면 바로 주제가 도출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를 한 줄로 정의하면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훌륭한 변호사로 성장한다'라는 로그라인을 뽑을 수 있고 공식에 대입해 '장애의 편견을 극복하는 삶(A)이 그렇지 않은 삶(B)보다 낫다'라는 주제를 뽑아낼 수 있다. 얼마나 명료한 설명인가.

 

뼈대인 로그라인과 영혼인 주제가 있다면 여기에 입힐 옷이 '하이 콘셉트'이다. 일반적인 콘셉트를 세일즈에 최적화한 개념으로 만든 것으로 작품을 가장 임팩트 있게 소개하는 또 하나의 로그라인이다. '미국의 상업 영화가 시장에서 수익성을 보장받기 위해 고안해낸 개념적 장치'이고 '높은 시장성을 보장하면서도 강한 인상을 줄 수 있고, 그러면서도 쉽게 요약할 수 있는 내러티브'이다. 예를 들어, 제임스 카메론은 <타이타닉>의 하이 콘셉트를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서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내세웠다고 한다. 신선한 소재(타이타닉호)와 영원한 주제(진정한 사랑은 죽음을 초월한다)가 만나 느낌이 팍 오는 콘셉트를 만들었고(p59) 성공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서사를 밀어붙이는 힘, 즉 엔진으로 '주인공'과 '매력'과 '감정이입'과 '딜레마'를 설명하고 주요 캐릭터인 '적대자'와 '멘토와 조력자'에 대해 얘기한다. 주인공은 '욕망'을 지녀야 하고 '매버릭'(이단아)이어야 하고 '결함'이 있어야 하며 '선택'하고 '행동'하고 '변화'함으로써 작품을 끌어나가는 선장이자 엔진 본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주인공 캐릭터는 치명적 매력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매력은 주인공에 대한 동경심과 동질감을 느낄 때 생길 수 있다. 특히나 동질감은 시청자와 캐릭터 사이에 감정적 유대를 만들기 위한 장치이고 이 유대를 가장 강하게 만드는 것이 동정심 혹은 연민이다. 이러한 매력을 넘어 그 캐릭터를 응원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감정이입이다. 이야기에 감정이입이 되지 않으면 이야기에 집중하기도 어렵고 당연히 재미를 느낄 수도 없다. 주인공이 겪는 불행과 선택이 마치 자신의 일처럼 느껴지는 순간 완성되는 것이 감정이입이다. 이렇게 될 때 스토리는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이러한 스토리가 비로소 주인공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딜레마에서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스토리에서 기본적으로 세팅해야 할 캐릭터는 주인공, 적대자, 조력자, 멘토이다. 가장 중요한 건 주인공을 중심으로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것이고 이렇게 기본 캐릭터를 설정한 뒤 꼭 쓰고 싶은 캐릭터를 추가하고 작업을 진행하면서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캐릭터를 만들어나가면 된다. (p114) 주인공의 매력을 극대화시키는 캐릭터가 적대자일 것이다. 적대자는 그냥 그저 그런 악당으로 그쳐서는 안 되며 주인공과 목표가 같거나 혹은 주인공이 목표를 이루는 데 강력한 위협으로 작용해야 한다. (p116) 주인공을 직간접적으로 돕는 인물은 조력자, 주인공에게 통찰과 조언을 주어 결정적 순간에 깨달음을 주는 인물은 멘토다. 특히 멘토의 죽음과 퇴장은 스토리텔링의 변곡점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이야기의 중심에 주인공이 있고 다른 모든 인물이 그 주인공을 중심으로 공전하면서 주인공과 호불호의 관계를 맺는 배치가 잘 되기만 하면 이야기의 긴장도는 올라가고, 주제는 선명해지며, 이야기가 흥미로워진다. (p121)

 

이렇게 설명한 내용을 우리에게 비교적 친숙한 케이스로 확인해 주는 것이 이 책의 좋은 점이다. 미드 <하우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영드 <보디가드>, 영화 <테이큰>, <해리 포터>, <겨울왕국> 등등의 사례를 들면서 서사구조를 어떻게 탄탄히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해 설명한다. 여러 서사구조를 얘기하지만 대중의 눈을 장착하기에 매우 적합한 서사구조로 시나리오 작가 블레이크 스나이더가 쓴 에 등장하는 'BS2(The Blake Snyder Beat Sheet)'를 예로 들며 '이야기는 재미있어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p218)

 

마지막으로 강조하는 것은 바로 '핫 버튼'이다. 욕망의 특별한 공통분모. 나만의 개별적이고 특별한 욕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모두가 원하고 바라마지않던 공통의 욕망이라는 것. (p261) 존재를 알 수 없이 저 심연 속에 자리 잡고 있던 마음의 스위치가 어떤 이야기를 계기로 눌러졌을 때 대중은 그 이야기에 미친 듯이 반응한다. 설사 그 이야기가 갈수록 흔들려 산으로 간다고 해도 쉽게 그 스토리를 떠나지 못한다. 따라서 이야기를 구상할 때는 내 아이디어의 어떤 부분이 시청층(독자층)의 마음속 핫 버튼을 누를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시간을 들여 분석하고 또 분석해서 자신의 작품에 적용하고 주인공의 욕망에서 '핫 버튼'을 찾아낸다면, '당신은 더 잘 쓰게 된다'라고 작가는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작년 한 해 수많은 스토리텔링 관련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설득력 있게 설명한 책은 발견하기 어려웠다. 아마도 직접 작품을 만들어보았고 (이기원 작가는 드라마 '하얀거탑'과 '제중원'의 작가다) 수십 년간 좋은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시중에 나온 국내외 작법서를 섭렵한 작가가 충분히 이해한 후 쓴 책이라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누구나 자기 마음속에 하나쯤은 쓰고 싶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걸 밖으로 선보이고 싶을 때 좀 더 대중에게 친근한 방법으로 다가가길 원한다면, 이 책을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내가 직접 스토리를 쓰지 않으면 어떤가. 드라마든 영화든 웹툰이든 세상에 쏟아져 나오는 엄청나게 많은 스토리를 보며 그 내용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를 하고 싶다면, 또 지금 현재 대중이 소비하고 있는 욕망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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