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선109

애도와 삶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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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를 말할 때 우리는 상실 뒤에 찾아오는 슬픔을 먼저 떠올린다. 무너지는 마음, 멈춰 선 시간, 오래 이어지는 비탄. 그러나 슬퍼할 겨를조차 없이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삶도 있다.

 

케이트 비턴이 글을 쓰고, 시드니 스미스가 그린 그림책 『레베카』(김지은 옮김, 위즈덤하우스)에는 바로 그런 삶을 담고 있다. 레베카는 가족과 함께 섬에서 살았다. 집 안팎에는 늘 할 일이 있었고, 저녁이면 모닥불 앞에서 이야기가 오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다로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다.

 

남편의 의자는 비었지만, 레베카 앞에는 아이들과 집, 당장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장작을 패고 땅을 일구었다. 슬픔은 빈 의자에 앉아 있었고, 레베카의 손은 하루의 일을 계속했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은 자라 저마다의 가족을 이루었다. 레베카도 작고 야윈 할머니가 되었다. 남편이 앉던 자리에 다른 사람들이 모여 앉았지만, 그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삶의 끝에 이르러 레베카는 오래 곁에 있던 슬픔과 마주 앉는다. 오랜 길동무를 대하듯 말을 건네고, 슬픔은 답한다.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자신이 왔다고. 슬픔은 사랑의 다른 반쪽이라고."

 

슬픔과 마주 앉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래 함께한 슬픔을 알아보고, 곁에 머물고 함께했음을 알아차린다. 레베카가 아이를 돌보고 집을 지키던 날에도 슬픔은 곁에 있었다.

 

그렇다고 레베카의 삶을 모든 사람의 애도 방식으로 삼을 수는 없다. 누군가는 돌봐야 할 사람이 있어 슬퍼할 시간조차 얻지 못하기도 하고, 묵묵히 슬픔을 곁에 두고 살아가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내가 오래 바라보게 된 것은 레베카의 강인함만은 아니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슬픔이 어떻게 한 사람의 일상에 머무는가 하는 점이다.

 

이 이야기가 오래 남는 까닭은 또 있다. 작가 케이트 비턴은 가족 안에 전해지던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엮었다. 기록 없이 지나갔을 한 여성의 삶이 한 권의 책으로 남았다. '레베카'라는 이름도 작가의 할머니와 자매, 딸과 조카에게 이어졌다. 오래전 한 사람의 삶이 이름과 이야기가 되어 가족 안에 살아남아 있는 셈이다.

 

레베카가 오래도록 집을 돌보고 아이들을 키웠다는 사실만으로 그녀의 슬픔이 작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빈 의자는 그대로였고, 레베카의 손은 하루의 일을 계속했다. 애도와 삶 사이에, 그녀가 살아낸 하루들이 있었다.

 

살아있는 한, 슬픔도 함께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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