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문득 한 사람이 그리워졌다.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사람. 오직 그 이름만으로 보고 싶은 사람. 가만히 얼굴을 보고 두 눈동자를 응시하며 밤새워 이야기를 나누고픈 사람.
그러나 오래전에 떠나버린 모든 곳에서 부재중인 사람.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목을 길게 뽑고
두 눈을 깊게 뜨고
저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는 저음으로
첼로를 켜며
비장한 밤의 첼로를 켜며
두 팔 가득 넘치는 외로움 너머로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중략)
오오 그러나 너는
그 어느 곳에서도 부재중이었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바람으로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고정희,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중
고 정 희.
시들이 한없이 어려워져 미궁 속을 헤매기도 하는 이 시대에 누구에게는 낯설기만 한 이름이지만 나에겐 한 편의 시가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뜨겁게도, 비장하게도, 슬프게도, 우울하게도 할 수 있음을 알게 해 준 시인이다.
1948년에 전남 해남에서 태어났다. 중고등학교를 독학으로 마치고, 1975년 한국신학대학에 입학하였고 같은 해 <새>로 유명한 박남수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하였다.
대학에 입학한 1975년은 박정희 독재 정권의 폭압이 극을 향해 치닫던 시기였다. 4월에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유신에 반대하던 사람들을 구속하여 고문과 조작으로 인민혁명당 재건위라는 적색 오징어포를 만들었고 이 중 8명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이게 무슨 재판이냐는 가족들의 울부짖음이 가시기도 전에 재판이 끝났고 사형 선고 후 20시간 만에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5월에는 긴급조치 9호를 선포하고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사람은 영장 없이 구속, 체포가 가능하도록 했고 최대 사형까지 구형할 수 있도록 하였다.
너인가 하면 지나는 바람이어라
너인가 하면 열사흘 달빛이어라
너인가 하면 흐르는 강물 소리여라
너인가 하면 흩어지는 구름이어라
너인가 하면 적막강산 안개비여라
너인가 하면 끝모를 울음이어라
너인가 하면 내 살 찢는 아픔이어라
고정희, <연가>
너는 누구였을까? 28살 시인이 품은 청춘의 푸르름을 갉아먹던 존재는 누구였을까?
이제 막 역사 의식에 눈을 뜬 갓 스무 살의 청년이던 나에게 너는 누구였을까.
학살당한 제주 산천의 넋이었고, 저수지에서 불쑥 떠오른 대학생이었고, 16시간의 노동에 삭아가는 어머니였다.
일기장에 꾹꾹 눌러쓴 너는 끝 모를 울음이었고 아픔이었다.
대입 학력고사를 준비하며 책과 씨름하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밤마다 일기장에 그날그날의 분노와 슬픔을 적어 낼 뿐이었다.
….흐르지 않는 강물에
그대의 주검이 부표처럼 불쑥 솟아 오르던 그날도
우린 파란 하늘에 마음껏 수를 놓고만 있었지….
(중략)
우린 동강 난 시체나 부여잡고
더 이상 울 수만 없었어
울어야 할 것은 늘어놓은 주검이 아니라
언제부터인가 시름시름 앓아온
저 파란 하늘이었거든…
89년 5월 27일 일기 중
고정희 시인에게도 너는 유신의 광풍 속에 시름시름 앓는 그 무엇이었을까. 분노를 넘어 슬픔밖에 남지 않는 끝 모를 울음이었을까.
한국신학대학에 늦은 나이로 입학한 시인은 실존적 고독 속에 신을 찾는 사제가 되기엔 고통받는 타자에 대한 연민과 감수성이 너무 깊었다. 다소 진보적이던 한국신학대학의 학풍과 함께 자연스럽게 예수를 숭배받는 신의 아들이 아닌, 고통당하는 자와 함께 하는 사람의 아들을 보게 되고 민중과 함께한 고난을 읽게 된다.
… 눈 귀 비어있는 저희들을 위하여
빈 바람 웅웅대는 민둥산을 위하여
언 강 하나 끌고가는 순례자 위하여
아픈 심지 돋우며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 사람아,…
고정희,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 중
…어두운 그늘과 추운 거리를 배회하며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충만한 배부름을 나누던 그 흰 손은/ 어디로 갔느냐…
고정희, <부활 그 이후> 중
나에게도 예수는 더 이상 신의 아들만은 아니었다.
나는 예수란 청년을 모른다
….(중략)
…민중과 함께 빵을 떼어먹은 예수
세리와 함께 포도주를 마신 예수
과부의 장례식에 눈물을 흘리던 예수
결단코 나는 이런 사람을 알지 못한다
….
30대의 젊은 청년 예수는
역사책에도 기록되지 않은 예수는
목수의 아들이었던, 마리아의 아들이었던 예수는
무엇 때문에 십자가를 져야 했는지
냄새나는 기도실 무릎 꿇은 심장에선
난 도저히 알 수가 없다
89년 11월 24일 일기 중
고정희 시인은 고난받는 민중과 함께한 예수의 만남을 통해 자연스럽게 사회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고 학내 시위에 적극 동참하게 된다.
이 경험을 시로 녹여 낸 작품이 초혼제에 실린 <화육제 별사>이다. 첫 구절은 "친구여 언제나 그랬지…"로 시작된다.
시인이 보고 싶었다. 눈을 감고 이 첫 구절을 읽었다. 한 번, 두 번…. 저 멀리서 시인이 보인다. 나는 반가움에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찾아간 주점. 노란 삿갓등 아래로 빈 탁자들이 놓여있고 손님은 우리뿐인 듯했다.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구석으로 갔다. 자리에 앉아 빙긋 웃으며 차림표를 보고 막걸리와 파전을 주문했다. 오늘은 그대와 밤을 새워 술을 마실 준비가 되어있다.
시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 사월, 고난 주간 성금요일 오후에
수유리의 신학 캠퍼스는
가장 부끄러운 이 땅의 구호와 맞서 있었지
이 날의 성전을 위하여
수유리의 하늘 아래
마태수난곡 혹은 가브리엘 포레의 레퀴엠이 성난 우리의 맥을 가만가만 짚어 내리고
…
고정희, <화육제 별사 1. 성금요일 오후> 중
이 시를 그대로 가져다가 그에게 대답해 줬다. 당신과 친해지고 싶어 우린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90년 5월, 수요일 오후에 새벽벌(효원, 부산대) 캠퍼스는 가장 부끄러운 이 땅의 야합과 맞서 있었지. 이 날의 성전을 위하여 새벽벌의 하늘 아래 민자당 해체의 깃발과 투쟁가가 성난 우리의 맥을 가만가만 짚어 내리고..
시인은 흥미롭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때 나에게 신이란 말이야 하며 시 한 구절을 읊조렸다.
친구여 야훼는 언제나 침묵하셨지
언제까지나 기다림이신 야훼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장벽이신 야훼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열등한 우리의 신념이신 야훼
우리의 위선의 동기가 되신 야훼
비천한 분노에 심장을 맡기는
우리의 대리석 기둥이신 야훼
고정희, <화육제 별사 1. 성금요일 오후> 중
나도 과 총회로 동맹 휴학을 결의하고 나선 첫 가두시위에서 조금은 흥분되어 있었고 조금은 겁이 났었다고, 그래서 기도문을 읊조리며 야훼가 우리의 편이시기를 간구했다고 말했다.
야훼여
언제나 우리의 힘이 되시었고
우리의 방패가 되신 분
우리 나약하였사오니 말씀을 주옵시고
우리 패배하였사오니 깃발을 주옵시고
우리 무릎꿇었으니 일으켜 주옵시고
우리 칼을 버렸사오니 칼을 주옵소서
시인은 그날 아주 긴 기도를 드렸다고 했다. 용서와 징벌 속에 갈팡질팡하며 이 땅에 심판이 임하길 간구했다고 했다.
키리에, 키리에, 키리에
이 땅에 당신의 자비가 임하옵시며
이 땅에 당신의 자유가 임하옵시며
이 땅에 당신의 해방이 임하옵시며
이 땅에 당신의 용서가 임하옵시며(오, 주님 아니올시다)
이 땅에 당신의 징벌이 임하옵시며
이 땅에 당신의 심판이 임하옵시며/…
고정희, <화육제 별사 1. 성금요일 오후> 중
그러다 문득 정말로 야훼의 저주가 이 땅에 임하면 어떡하지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뒤이어 징벌이 아닌 화해를, 긍휼을 간구했다고. 정말 무서웠다고.
이 땅에 당신의 화해를 내려 주시고
이 땅에 당신의 긍휼을 내려 주시고
이 땅에 당신의 선포를 내리소서
고정희, <화육제 별사 1. 성금요일 오후> 중
탁자 위를 밝히는 삿갓등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앞에서 30대의 모습으로 돌아온 시인의 얼굴이 주황색 빛을 내고 있었다.
이렇게나 여린 당신이, 이렇게나 겁이 많은 당신이.
성만찬 의식이 있었다고 했다. 정말로 예수라는 사내가 포도주와 떡을 떼어주며 나를 기억하라고 한 마지막 밤처럼. 그리고 배 속으로 밀려들어 간 빵과 포도주는 그 이후 화인처럼 새겨져 지워지지 않았다고 했다. 무교회주의자로 더 이상 교회에서 신을 찾지 않게 되었을 때도 여전히 통증으로 남아 있었다고 했다.
아아 친구여 언제나 그랬지
성만찬의 술과 빵을 씹으며
우리가 무섭게 전율하는 이유는
예수의 화육이거나 영생 때문이 아니라
잡초보다 무성한 '안락'에 대한 갈망
'행복'을 그리는 습관 때문이었지
무사함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지
그리고 우리는 숨죽여 울었다
…
고정희, <화육제 별사 5. 잔을 비우고> 중
시인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날 환청을 들었어.
…친구여
우리가 길이 되기로 작정한 그날
…나는 들을 수 있었다
나와 육친들
나와 친구들
나와 노년의 부모님을 갈라 세우는
무서운 붕괴의 소리를 들었지
무섭고 음습하고 아득한 비명을 들었지
(오 야훼님, 꼭 이 잔을 마셔야 하나요?)
고정희, <화육제 별사 5. 잔을 비우고> 중
성만찬을 할 때면 당신의 시 구절이 생각났어. 성만찬에서 내가 전율했던 이유는 예수의 고난이 아니라 '안락'과 '행복'에서 떨어져 붕괴할 것만 같은 공포였어.
포도주가, 예수의 피가 정말 이렇게 작은 잔에 담기니 다행이었지. 예수의 육신인 빵이 이렇게 작고 얇은 전병으로 대체되니 얼마나 안심이 되든지. 혹시 사발 같은 잔 가득히 포도주가 채워지고 한 움큼의 빵 덩어리가 뜯겨져 내 손에 얹어졌다면 감당하지 못했을 거야.
나도 그랬어. 시인은 술기운에 달아오른 두 뺨에 손을 대고 웃으며 말했다. 나도 외로웠다고 나도 힘들었다고.
일주일간의 단식을 끝낸 아침
공복으로 바라보는 수유리의 부신 햇빛이나
학장 공관 유리벽 속에서 타오르는
그 무시무시한 태양 앞에서도
현상과 인식은 화해하지 못했다
… 나는 보았고 알았고 깨달았지만
결코 내 길과 결혼하지 못했다
…
고정희, <화육제 별사 7. 연좌 기도회> 중
그리고 모든 것을 놓고 떠나려 할 때 비로소 깨달았다고
그러나 친구여
내가 수유리를 떠나려 했을 때
수유리의 바람이 슬몃 물었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그냥 숲정이나 떠도는 공기?
너는 원귀들의 춤을 아느냐?
무덤이면 다 무덤이라고 생각하느냐?
네 정신의 무덤은 어디?
고정희, <화육제 별사 8. 수유리의 바람> 중
그땐 답을 찾지 못하고 떠나왔다고 했다.
살아 남는다는 것은
보다 단순해지는 것이라고 너는 말했다
그러나 친구여
우리가 수유리를 떠나오고
누추한 출판사 혹은
잡지사 기자로 전전하는 동안
다치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고
외롭지 않으려고 패를 짜는 동안
고정희, <화육제 별사 9. 다시 수유리에서> 중
시인은 나의 비어있는 막걸리 잔에 술을 따르고 텅 빈 주전자를 내려놓으며 새로 막걸리를 주문했다. 잠깐의 침묵이 찾아왔다.
화해하지 못한 정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야. 그래서 친구는 단순해지자고 했어.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지 말고 너무 많은 것을 껴안지 말자고 했지. 어느 정도 선에서는 타협해야 하고 어느 선에서는 멈출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이야.
대학을 졸업하고 기독교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할 때였어. 박정희가 죽고 서울의 봄이 찾아왔을 땐 정말 희망에 부풀어 있었지. 그러나 전두환 군부에 의해 계엄령이 선포되고 신문사는 다시 군인들의 검열에 질식당했어. 내가 쓴 기사는 모두 붉은 줄이 그어지고 쓰레기통에 버려졌어. 신문사에 눌러앉은 군화발에 짓눌려 숨도 쉬지 못했지. 바람이 부는 날 오후였어. 사무실 창밖으로 세찬 바람이 불고 플라타너스 가로수 잎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쏴아 쏴아 소리를 내었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몸짓과 소리였어. 수유리 캠퍼스에서 들었던 바람 소리. 그 순간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해일처럼 밀려왔어.
달콤한 숙면에 길들이고 있을 때
녹슨 우리의 망치를 들어
뒷등을 탕 치는 손은 누구?
고정희, <화육제 별사 9. 다시 수유리에서> 중
갑작스럽게 휴가를 내고 다시 수유리를 찾아갔어. 그리고 깨달았지. 수유리의 바람은 오늘도 불고 있었다는 사실을.
수유리의 바람은 그들의 기침 소리
수유리의 바람은 그들의 인기척
수유리의 바람은 그들의 절규
수유리의 바람은 그들의 함성
그랬다. 친구여.
수유리의 바람은 한반도의 한숨소리이거나
아니면 그것은 원귀들의 춤이거나
아니면 그것은 삼각산의 가래 끓는 소리거니,
아니면 그것은 죽창 깎는 소리이거니
수유리의 바람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누구도 더 이상의 숙면을 보류한 채/ 석탄불 옆에서 예레미야서를" 읽어야 했어.
결국 그랬지, 친구여
나는 수유리로 다시 돌아와
무교회주의자가 되고
수유리에 떠도는 칼바람 소리와 만나
칼바람과 살기로 약속하였다
오 수유리에
유엔 평화 깃발을 꽂기로 했다
우렁우렁 사랑가 풀어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저 징그러운 바람 소리 잠재우기로 했다.
고정희, <화육제 별사 9. 다시 수유리에서> 중
더 이상 진실을 써 내려갈 수 없는 신문사를 그만두고 크리스챤 아카데미 출판 간사로 사회 운동에 뛰어들게 되었지.
한동안 탁자 위에는 침묵이 맴돌았다. 말없이 잔을 가져다 내 입 안으로 넣었다.
친구여, 언제부터 바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니?
시인은 나의 눈을 지그시 응시하며 물었다.
대답할 수 없었다. 아직도 바람 소리가 들린다고 해야 할까? 이제는 바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아무 말도 못하고 빈 술잔에 막걸리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의 손이 홀로 따르던 내 손을 붙잡고 같이 따라 주었다. 수유리로 돌아가, 그러면 알 수 있을 거야. 아직 늦지 않았어.
눈을 감고 잔에 담긴 막걸리를 단숨에 마셨다. 눈을 뜨지 않았다. 감긴 눈 속 어둠 너머로 봉숭아 꽃잎이 스며들어왔다. 가만히 눈을 떴다.
노오란 삿갓등 아래에는 빈 의자만 놓여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