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고 맵고 단 이웃 이야기
『찌니주의보』를 읽고

찌니주의보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6
"단칼보다는 쓰리 쿠션"
나도 단도직입을 따르다 짜고 매운맛을 봐서일까? 이제는 쓰리 쿠션이 좋다는 작가의 말이 유독 와닿는다.
정지아 작가를 처음 접한 것은, 『아버지의 해방일지』였다. 빨치산 아버지의 장례식이라는 금기(?) 소재를 유쾌하게, 정감 넘친 전라도 사투리로 풀어낸 매력에 푹 빠져 그녀의 책들은 단편 장편 가릴 거 없이 쫓아다녔다. 그런데 그녀의 작품이 아버지의 해방일지처럼 다 해학적인 것만은 아니어서 때로는 그 진지함에 섬뜩 베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걱정 마시길. 『찌니 주의보』는 '통통통' 재미있어 아마도 하루, 이틀 안에 다 읽게 될 것이니.....
제목의 "주의보"라는 단어부터 눈길이 갔다. 그리고 "찌니"는 뭔 말이지? 궁금했다.
"찌니들이 말이여. 레지랴 레지."
시골 마을(수평마을)에 귀촌한 두 여성이 '동성 커플(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평균 연령 76세 어르신들의 수군거림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레지? 내가 모리는 다방 레지가 있간디?" 하는 할아버지부터, "워메, 여자들끼리 워쩌케 그 짓을 한 대?" 궁금증에 휩싸인 할머니까지 '우당탕탕' 소동 그 자체이다.
그 소동들을 읽다 보면, '큭큭큭' 웃음을 주체할 수 없다. 그러나 주제의 묵직함 때문일까.
소설 곳곳에서 여전히 낯선 존재에 대한 외면, 혐오의 갈등과 사건이 진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날카로운 갈등 사건에서 이상한 장면이 자꾸 반복된다. 험담을 하고 돌아서서는 김치를 담아 갖다주고, 흉을 보다가도 밥때가 되면 상을 차려 부르기도 한다. 욕하고 모른 척하다가도 검은 비닐봉지에 반찬을 담아 문고리에 걸어두는 이상한 일들이 발생한다.
이 이상한 일들을 하는 평균 76세의 어르신들 -- 이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밥"이다.
"밥"에 대해 생각해 본다.
밥에는 무엇이 담겨있을까. 『찌니 주의보』에서는,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할 때, 그 미움은 정말 그 사람 자체를 향한 것인가, 아니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인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 -- 라는 어려운 물음에 대한 답이 마치 밥 안에 담겨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책은 계몽하지 않는다. 책의 목차처럼 누구나 비밀은 있다, 누구나 조금씩은 나쁘다, 누구나 자기 기준으로 산다, 그리고 누구나 모르고 산다는 것을 얘기할 뿐이다.
책 속의 인물들은 무엇을 해나가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함께 앉아 밥 한 끼를 먹자고 손을 내밀 뿐이다.
책을 다 읽고 나는,
이 책은 빨치산이었던 아버지가 가진 삶의 물음에, 마치 드디어 답을 알게 된 딸이 쓰리 쿠션의 미학으로 화답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늘 다른 이들 일에 매달려 당하면서도 "사람이니께"라는 말씀으로 수용하신 아버지..... 그의 삶이 주는 무거운 질문에,
중년으로 무르익은 딸 정지아가 "모락모락 고실고실한 진한 밥 냄새"로 화답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