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사회주의
기독교 사회주의는 성직자가 귀족 통치자의 분노를 거룩하게 해 주려고 뿌리는 성수聖水에 지나지 않는다.
_『공산당 선언』3장
마르크스는『공산당 선언』에서 사회주의를 세 가지로 나눈다. 반동적 사회주의, 보수적 사회주의, 비판적·유토피아적 사회주의가 그것이다. 기독교 사회주의는 반동적 사회주의에 속한다.
왜 반동적인가? 자본주의에 반기를 든 건 착취당하는 공장 노동자들만이 아니었다. 봉건시대의 전원생활을 그리워하는 양반 귀족들도 불만이 많았다. 모든 게 돈과 계약으로 환산되는 세상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다. 낭만주의 문학은 바로 이런 정서를 그려 냈다. 가톨릭 성직자들은 귀족들과 코드가 잘 맞았다. 절대 왕권에 재산을 빼앗기고, 시민혁명으로 발언권마저 줄어든 처지였으니 말이다.
성직자들은 돈이 아니라 영적 권위가 지배하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교회와 수도원이 중심인 옛 질서를 회복하려고 했다. 귀족들이 달라진 사회에 분노하니까 덩달아 성직자들도 편승하려 한 것이다.『공산당 선언』에 나온다.
우리나라 예를 들어 보자. 조선이 망한 후, 의병 일부가 조선 왕조의 회복을 꿈꾸었다. 이른바 복벽운동이다. ‘돌아갈 복復’, ‘임금 벽辟’! 기독교 사회주의도 이와 비스름하다.
-------------------------

프로메테우스 마르크스(1843) 러시아국립사회정치사문서보관소 소장. 카를 마르크스를 프로메테우스로 묘사한 정치 풍자화인데, 마르크스가 인쇄기에 묶인 채 프로이센 검열의 독수리가 그의 간을 뜯어 먹으려 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그는 논문 서문에서 프로메테우스를 가장 고귀한 성자요 순교자라고 고백했다. 하여 자신의 철학적 정체성을 밝힌 것이다. 마르크스 철학은 관조가 아닌 실천에 초점을 둔다. 그것은 관념론을 전복하고, 추상성에 대립하는 구체성을 획득하며, 신에 맞선 인간을 내세우는 반역의 철학이다.
프로메테우스
하늘로부터 불을 훔쳐 집을 짓고 땅 위에 정착하기 시작하는 프로메테우스처럼, 철학은 세계를 향해 자신을 확장하면서 눈앞에 나타나는 세계에 맞선다. 지금 헤겔 철학이 그러하다.
_ 「에피쿠로스 철학에 관한 제5노트」
프로메테우스는 하늘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 대가는 혹독했다. 제우스에게 붙잡혀 바위에 묶인 채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영원한 형벌을 받았다. 마르크스에게 이 신화가 스며든다.
학위 논문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언급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철학의 달력에서 가장 고귀한 성자이자 순교자이다.” 바야흐로 20대 청년의 입지立志 선언이다. 사실 이보다 앞서 1839년에 쓴 에피쿠로스 철학 제5노트에서 이미 프로메테우스 이야기가 등장한다. 자신의 입장을 프로메테우스에 투영한 것이다.
왜 프로메테우스인가? 천상의 질서를 거역하고 땅 위에 인간 문명을 열었다! 마르크스는 철학도 그래야 한다고 봤다. 그는 세상에 뛰어들어 현존하는 질서와 대결하겠노라고 천명한다. 어찌 보면 헤겔 철학에서 출발하되 거기에 머무르지만은 않겠다는 과감한 출사표였던 것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신에게 반기를 들면서 주어진 세계 질서에 도전하는 자주적 인간의 의지를 학위 논문에 고스란히 담았다. 자주인! 그 주체성의 대가로 그는 일평생 어렵고 피곤한 삶을 살았다. 어째서 이 청년은 그 험난한 프로메테우스의 길을 걷겠다고 나선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