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희107

유교 경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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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는 공자(기원전 551~479)가 창시한 종교가 아니다. 그전에 이미 요순시대부터 한자가 있기 이전 갑골문에서부터 존재해 왔다. 공자는 이 모든 경전을 집대성한 분이시다. 공자 시대에는 육경이 있었다. 『서경(書經)』, 『시경(詩經)』, 『역경(易經)』, 『춘추(春秋)』, 『예경(禮經)』, 음악에 관한 경전인 『악경(樂經)』이다. 공자는 이 '육경'을 정리했다. 하지만 진시황(기원전 259~210)의 분서갱유(기원전 213~212) 이후에 『악경』은 전해지지 않아서 한나라(기원전 202년 건국) 때는 '오경'이라 부르게 되었다.

 

오늘날의 '사서삼경'이란 용어는 주자(1130~1200)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공자의 어록인 『논어』, 『맹자』, 『대학』과 『중용』이 '사서'이고, 『춘추』, 『서경』, 『시경』이 '삼경'이다. 이 체제는 주자가 만들었지만 주자 당시에는 쓰이지 않았다. 주자 사후 원대(1271~1368)에 들어서 과거 시험용으로 쓰이게 되었다. 명대에 왕양명(1472~1529)의 등장으로 주자학에서 양명학으로 전환된다. 이 두 사상의 차이점은 주자는 성현을 배우려고 하는 경전 중심의 사상이라면, 왕양명은 누구나 양지(良知,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가 있기에 스스로의 마음이 경전보다 중요하다는 사상이다. 이후 중국의 주류는 양명학이 되었다.

 

한반도는 4세기경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에 설립된 태학(太學)에서 오경 교육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고구려 태학의 설립으로 공식적인 교과목 역할을 했다. 주자가 정립해 놓은 사서삼경이 조선(1392년 건국) 초에 들어와 과거 시험 과목으로 쓰인 것을 보면 원나라와 1세기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고 있다. 조선은 양명학을 반대했기에 주자학의 나라가 되었다. 분명 그 당시에 중국, 조선, 일본, 베트남 등의 동아시아 국가들이 유교를 주류 종교로 삼았지만 조선 외에 다른 나라들은 양명학적 흐름이 더 강했다. 조선이야말로 주자가 창시한 그대로의 사상을 마지막까지 고수한 주자학의 나라인 것이다.

 

조선에서 '사서삼경' 이외에 『소학』과 『주자가례』가 향교와 서원에서 중요한 과목으로 쓰였다. 15세기 말 '초기 사림'인 김굉필(金宏弼, 1454~1504)에 의해 『소학』의 가치가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김굉필은 스스로를 '소학동자'라 불렀으며 갑자사화에서 극형에 처해졌다. 그 이후 김굉필의 제자 조광조(趙光祖, 1482~1519)의 정치적 성향에 『소학』은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소학』은 조선 전기 유학자들에게 도덕적 기준으로 삼는 '행동 강령'과도 같은 책이었다.

 

기묘사화(1519)로 '도학'을 외치던 무리들이 사형당하거나 유배를 떠나면서 『소학』은 금서로 지정되고 만다. 퇴계 이황(1501~1570)은 조광조가 신원되기 4년 전에 「조광조 행장」(1564)을 지어 시호를 받을 수 있는 준비를 하기도 했다. 기묘사화 이후 50여 년 뒤인 1568년(선조 1년) 조광조가 신원될 때까지 『소학』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하였다. 퇴계는 『성학십도』에서 「소학도」를 제3도로 지정한다. 그리고 「대학도」와 짝을 이룬다고 설명하는데 이 당시 『대학』은 『중용』과 짝을 이룬다고 여겨지고 있었다. 퇴계가 「소학도」를 세 번째로 중시한 이유는 바로 역사적 현장과 맞닿아 있었다.

 

조선에서 『소학언해』는 1518년(중종 13)에 처음 발행되었다. 그리고 1519년 금서로 지정되었다가 두 번째는 1587년(선조 20)에 간행한다. 이후 1588년(선조 21)에는 『사서삼경』의 언해가 완성됨으로써, 16세기 중반 이래 개별적, 개인적으로 진행되어 온 '경서 해석'을 국가적 차원에서 확정하였다. 중종대 판본이 『소학』의 의미와 강령을 편찬자의 의도에 맞게 전파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고 한다면, 선조대 판본은 『소학』을 원저자 즉 주자의 의도에 맞게 직역하는 것을 염두에 두었는데, 이 역시 『소학』을 강령으로만 이해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소학』을 경전의 범주로 간주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 뒤로 우암 송시열(1607~1689)은 『소학』과 함께 『주자가례』에 대한 독서를 우선시하였다. 조선에서 '사서삼경'과 『소학』, 『주자가례』는 기독교의 성경 역할을 하였다. 특히 『소학』의 실천성은 조선 유교 경전의 중심축이 되었다. 조선 유학의 특별함은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실천성을 가장 높은 수양으로 보았다. 조선에서 리(理, 진리)란 높은 도덕성과 함께 논해졌다. 그 결과 연예인도, 정치인도, 일반 사람들에게까지 모두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사회를 만들게 되었다. 이는 오늘날 한류라는 거대한 문화를 형성하게 된 결과일 것이다. 유교의 경전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오래된 미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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