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란 그저 색 입힌 물이 아니라 액체인 빵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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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강 작가의 서점이 문을 닫게 되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수많은 중소상공업자가 문을 열고 또 폐업하는 서울에서 그게 뭐 그리 대단한 문제냐 싶기도 하겠다. 어차피 그 건물과 동네를 통째로 사들인 후, 싹 밀어버리곤 깔끔한 스타벅스라도 입점시키는 편이 돈벌이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대세를 점유하는 세상에서 인문학이 어쩌고 해봐야 소용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나도 돈벌이라는 측면에서 한번 생각해 보려 한다.

지난 6월에 다녀왔던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는 조앤 K. 롤링이 당시 아기였던 딸을 달래가며 해리 포터를 집필했던 카페 '엘리펀트 하우스'가 있다. 정작 가보면 그 세계적인 작품이 탄생했다는 것 이외에 외형상 뭐 그리 대단해 보이는 것도 없고, 심지어 얼마 전 화재로 현재의 모습은 복원한 것이라 엄밀히 말하자면 조앤 롤링이 집필하던 '그때의 바로 그곳'도 아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도시의 한쪽 골목에 평범하게 자리한 카페 엘리펀트 하우스를 도시가, 또 그곳의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유지하고 있기에 해리 포터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전 세계의 수많은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에든버러로 몰려가 그 작은 카페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카페 엘리펀트 하우스 하나가 창출하는 자본의 효과는 과연 얼마일까? 한국이라면 화재가 났을 때 '기회로구나!' 하며 싹 밀어버리지 않았을까?
옛날옛적에 유행했던 CF 중에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하겠습니다" 뭐 그런 카피가 있었다. 많은 이들이 화려함과 자본 축적을 희망할 때 그에 역행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맥주가 있는데, 자주 언급하는 트라피스트 맥주가 바로 그러하다. 오늘의 이야기는 그중 영국 유일의 트라피스트 맥주 양조장이 있는 '마운트 세인트 버나드 수도원'에 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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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트 세인트 버나드 수도원(이하 세인트 버나드)을 방문한 것은 올 6월 말이었다. 당시 유럽 남부와 중부를 휩쓸던 살인적 더위의 끝자락에 놓였던 런던을 떠나 북쪽으로 두 시간을 조금 더 달려 도착한 수도원은 무척 넓은 초원에 자리한 시골 마을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생산하는 맥주 이름 '틴트 메도우(Tynt Meadow)'에 초원(Meadow)이 들어가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엄격한 시토회의 수행규칙을 준수하는 트라피스트의 특성상 대부분의 수도원이 봉쇄거나 대단히 제한적인 공간만을 개방하는 것과 달리 세인트 버나드는 아시아에서 찾아온 다수의 이방인을 매우 따뜻이 맞아주었다. 차에서 내린 우리를 수도원장님께서 직접 맞이해 주시며 환영의 말씀을 주셨을 때부터 나는 이미 감동이었다.


더 큰 환대와 감동은 양조실이었다. 그곳에서 수석 양조사 피터는 우리에게 피정을 위해 수도원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게스트용 맥주를 나눠주었다. 이는 순례자, 지역의 경제적 약자 등에게는 무상으로 맥주를 제공한다는 수도원의 전통적 규칙을 세인트 버나드가 여전히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환대(더 직설적으로 적자면 공짜 술)에 이미 매료된 마음 때문이었을까? 그 수도원에 가서야만 맛볼 수 있는 맥주는 5.2도의 비교적 낮은 도수와는 달리 수도원 맥주 특유의 다양한 풍미를 오래도록 입안에서 느끼게 해주었다.
이후 양조시설과 아주 작은 상점, 그리고 방문하는 이들이 자유롭게 볼 수 있도록 개방한 도서관 등 경내의 시설을 둘러보며 그곳의 시간은 한 18세기 정도를 지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많은 돈벌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대량생산을 지양하고, 그마저도 수도원의 기도와 침묵 시간에는 생산을 중단하기에 그곳에서 생산하는 맥주 틴트 메도우는 한정된 수량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번 수익은 최소 비용을 제외하고는 노숙인 생활 지원, 저소득층 가정 식사 지원, 취약 계층 아동을 위한 아침 식사 지원 등 인근 지역의 사회적 소수자를 위해 사용한다. 최근에는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분쟁지역 난민을 위해서도 수익금을 내놓고 있다고도 했다. 엄청 싼 술집에서 한잔하다가 사장님에게 이런 말을 건네기도 하지 않던가? 그날 설명을 들으면서도 생각났더랬다.
"그렇게 하면 뭐가 좀 남아요?"


양조시설 투어 중 참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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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졌던 점심 식사는 수도원이 소개한 곳이었는데, 이곳까지 함께한 피터는 우리에게 틴트 메도우의 주력 라인업인 오리지널 에일 및 블론드 에일 등의 시음회를 진행해 주었다. 그 자리에서 피터는 자신들이 만드는 맥주의 정신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맥주란 그저 색 입힌 물이 아니라 액체인 빵이어야 한다고 본다!"
(Beer should be liquid bread, not colored water)
돈벌이를 위해서는 액체인 빵은커녕, 물에 색을 입혀 맥주라고 속이는 것도 서슴지 않는 세상에서 그가 전해준 트라피스트 수도승의 이 격언은 내게 삶 속에서 절대 잃지 않고 중심에 두어야 할 가치가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가르침이기도 했다.
24명의 대규모 인파—14명의 수도사 중 7명 정도가 운영을 위한 활동을 하는 수도원에서 우리는 정말 많은 숫자였음에 분명하다—를 맞이한 직후 오후 기도를 드리며 수사들이 부르던 찬송. 반주하는 악기도 없고, 화음이나 꾸밈도 없이 오직 소박한 목소리를 모아 하느님에게 전하던 그 소리만큼이나 그들의 맥주는, 또한 그 맥주의 선한 영향력은 깊고도 훌륭한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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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벌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영국으로 맥주 마시러 가는 것도, 이제 한국에서도 수입되기 시작한 틴트 메도우를 구매하기 위해서라도 돈은 필요하니까 말이다. 무조건 보존이 능사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변두리를 벗어나 단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긴 하나 지금껏 나서 자라고 살아가는 곳이 서울인 내게 도시와 그에 속한 인프라는 물이나 공기만큼 중요한 것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다만, 돈벌이가 늘 더 작고 약한 존재들의 것을 빼앗아 더 많이 가진 자들의 부를 늘리는 것에만 기능해야 하는지에 대해, 또 그 방법이 싹 밀어내고 확 올리는 토목건축이기만 한 것에 대해서는 진지한 생각을 해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다. 모두가 화려하게 색을 입힌 물에 환호할 때, 묵묵하게 액체인 빵을 만드는 이들의 손길이 가진 가치 역시 존중받는 세상이 되길 소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