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성

놀란: 탐구자에서 예언자로 - <오디세이>의 아포칼립스

놀란: 탐구자에서 예언자로

- <오디세이>의 아포칼립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시간의 탐구자' 혹은 '시간의 구조주의자'다. 그의 모든 영화는 시간이라는 키워드를 단단하고 정교하며 현란하게 이어나간다. 일찍이 20세기 초 마르셀 프루스트, 버지니아 울프, 윌리엄 포크너,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등에 의해 깊이 있게 탐구되고 정교하게 직조되었던 시간의 문제를, 놀란은 영화 매체의 특수성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한 단계 도약시킨 작가다.

 

우선 그는 시간을 단순히 내러티브(서사) 내부의 요소로만 끌어들이지 않고, 편집·음향·프레임 레이트·특수효과 등 영화 매체의 기술적 특징을 극단까지 활용한다. 이는 <배트맨> 3부작을 포함한 그의 필모그래피 전체를 관통하는 공통점이다. 그러나 놀란은 기술에만 머물지 않는다. 시간은 그의 작품 대부분에서 핵심 소재이자 주제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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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의 강박적인 시간 집착은 저예산 장편 데뷔작 <미행>(1998)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미행>은 세 가지 시간대를 구별 없이 오가며 컷과 컷을 정교하게 교차 배치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어느 것이 과거이고 무엇이 현재인가"를 지속적으로 추리하게 만든다. 하지만 세계를 놀라게 한 놀란의 실질적 출발점은 단연 <메멘토>(2000)다. 이 작품은 주인공의 단기 기억상실증을 관객이 동일하게 체감하도록 서사의 순차적 흐름을 해체함으로써 인간 기억의 조작 가능성과 주관성을 폭로했다. 다만 이때까지의 놀란은 시간을 정밀하게 쪼개고 조립하는 '정교한 시계공' 혹은 '편집증적 형식주의자'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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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영화 <인썸니아>(2002)에서 놀란은 처음으로 배우의 심리적 연기에 깊이 의존한다. 낮과 밤의 경계가 허물어진 알래스카의 백야는 주인공(알 파치노)의 생물학적 시간을 무너뜨리고, 불면증 속에서 시간 감각을 잃어버린 인물은 죄책감과 도덕적 혼란에 갇힌다. 영화는 이 심리적 시간을 밀도 있게 그려냈으며, 시간의 감옥에 갇혀 방황하는 알 파치노의 연기는 강렬한 잔상을 남긴다.

 

블록버스터인 <배트맨> 3부작을 지나, <배트맨 비긴즈> 직후 제작된 <프레스티지>(2006)는 일기장이라는 매개체를 통한 다층적 플래시백 구조로 시간의 비선형성을 파고든다. 주인공들이 서로의 일기를 읽으며 과거와 현재, 또 다른 과거가 꼬리를 물고 교차하고, 여기에 평생 정체를 숨겨야 했던 두 마술사의 '시간 축적과 희생'이 결합하여 반전을 완성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시간은 집착과 비극적 희생이라는 주제를 뒷받침하는 조연에 가까웠다.

 

배트맨 비긴스.jpg 다크나이트.jpg 다크나이트라이즈.jpg

 

 

여기까지의 놀란은 시간을 영화 구조의 뼈대로 삼았던 거장들—알랭 레네(<작년에 마리앙바드에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리처드 링클레이터, 왕가위—과 완전히 차별화되지는 않았다. 결정적 전환은 그 이후였다. 놀란은 <인셉션>(2010), <인터스텔라>(2014), <덩케르크>(2017), <테넷>(2020)으로 이어지는 '시간 탐색 4부작'을 통해 위대한 시간 탐구자로서의 족적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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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은 무의식의 깊이(꿈의 계층)에 따라 시간의 속도가 다르게 흐르는 구조를 제시하여 시간의 체감적 유연성을 극대화했다. <인터스텔라>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기반하여 중력에 따른 시간 지연을 서사 중심에 놓음으로써 인물들에게 비극적 시차와 감정적 밀도를 부여했다. <덩케르크>는 육상(1주일), 해상(1일), 공중(1시간)이라는 서로 다른 시간 축을 병렬 배치하고, 그 흐름이 하나의 지점으로 모이도록 구성하여 시공간의 교차를 마술적 도구로 올려놓았다. 한편 <테넷>은 엔트로피를 반전시켜 시간을 역행하는 '인버전' 개념을 바탕으로 순환적 인과 구조를 완성했는데, 이는 탐색을 넘어선 다소 과감한 매체적 실험에 가까웠다.

 

이 4부작을 통해 놀란은 시간이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물리적 제약임과 동시에, 인간이 세상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게 만드는 주관적 지평임을 증명했다. 늘리고, 쪼개고, 거꾸로 뒤집는 실험을 통해 시간과 인간 존재의 관계를 집요하게 탐구한 것이다.

 

시간을 외부의 객관적 운동이 아닌 정신 안에서의 현존(기억·직관·기대)으로 파악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기계적 시간과 체감적 시간을 구분한 베르그송, 시간성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해명하려 한 하이데거, 그리고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미래가 열린다고 본 레비나스에 이르기까지—인간의 실존을 결정짓는 철학적 사유는 놀란의 4부작에 깊게 녹아 있다. 동시에 시간을 속도·중력·엔트로피에 따라 변화하는 물리적 현상으로 파악한 과학적 성취는 놀란의 상상력을 지탱하는 버팀목이었다.

 

그러나 시간 탐색을 일단락한 놀란은 <오펜하이머>(2023)에서 현대사를, <오디세이>에서 고대 신화를 다루기 시작한다. 두 작품은 직접적인 물리적 시간 조작에서 한 걸음 물러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간 놀란이 탐색해 온 시간이 '크로노스(양적·기계적 시간)'였다면, 이제 그 시선이 '카이로스(의미와 목적이 개입하는 응축된 순간)'로 전환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카이로스는 양적 축적이 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임계점'이자, 엔트로피가 증가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불가역적 사건의 시점'이며, 양자역학적으로는 파동함수가 하나의 현실로 붕괴하는 '측정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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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는 역사적 불가역성의 측면에서 시간을 다룬다. 트리니티 핵실험이라는 한 순간을 기점으로 인류의 시간이 핵무기 이전의 시대로 결코 돌아갈 수 없게 된 '운명적 시간'을 그린다. 주관적 기억(컬러)과 객관적 청문회(흑백)를 교차시키는 놀란 특유의 기법도 여전하지만, 본질은 인류를 파멸로 이끌 운명의 시간인 '카이로스'에 온전히 집중되어 있다. 이는 놀란이 '탐구자'에서 '예언자'로 변모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러한 예언자적 변신은 <오디세이>에서 더욱 명료해진다. 호메로스의 원작이 이방인 환대(Xenia)의 규범을 둘러싼 대립이라면, 놀란은 이를 '제우스의 법'이라는 명시적 계율로 포착하여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나아가 이를 인류 보편의 윤리인 '황금률(상호주의)'과 연결하여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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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제우스의 법을 파괴한 결과가 가져오는 참혹한 아포칼립스를 그려낸다. 트로이 함락의 기만에서부터 시작해 이타카에서 벌어지는 피의 복수에 이르기까지, 놀란은 인간이 최소한의 신의와 윤리적 약속을 저버렸을 때 문명이 어떻게 신성(神性)을 잃고 자멸하는가를 집요하게 입증한다.

 

원작 《오디세이아》의 결말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인 신의 개입을 통한 '신성한 질서의 회복'이었다면, 놀란은 완전한 아포칼립스도, 명확한 희망의 회복도 아닌 실존적 비극을 택한다. 복수를 끝냈으나 내면이 파괴된 인간, 폭력이 지나간 자리의 냉혹한 정적과 죄책감이 남은 마무리가 그것이다.

 

놀란의 다음 예언은 과연 이 비극적 모호함을 넘어 어디로 향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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