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켄 로치(Ken Loach) 감독의 영화는 기회가 되는 대로 꼬박꼬박 보아왔는데, 그의 초기 걸작 <케스>(Kes, 1969)는 아껴 두었다가 이제야 보게 되었다. "영국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는 이 작품은 인물이 처한 비참한 환경을 신파적으로 소비하지 않으면서도, 시스템의 폭력성을 냉철하게 응시하는 고유의 '카메라의 윤리'를 완벽하게 증명해 보인다.
켄 로치 감독은 다른 작가 감독들과 달리 직접 시나리오를 쓰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는 ‘작가영화’라는 개념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며, 늘 협업을 강조한다. 배우 역시 대부분 현지에서 비전문 배우를 캐스팅하는 경우가 많다.
그의 작품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개인의 삶, 특히 노동자 계급의 아이들을 어떻게 억압하고 소외시키는지를 담담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포착해 낸다. 감정을 결코 쥐어짜지 않고, 상황을 과도하게 비틀지 않으며, 격렬하게 호소하지도 않으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서서히 주인공과 그들이 처한 상황에 공감하게 만드는 것이 켄 로치 감독 영화의 특성이다.

배경은 요크셔의 탄광 마을이다. 주인공인 15세 소년 빌리는 가정과 학교 그 어디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에서 ‘가족’은 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늘 중심 요소로 등장하는데, 이는 소셜 리얼리즘 영화가 쉽게 빠지는 지나친 정형화의 한계를 극복하게 만들어준다.
제목 ‘케스’는 빌리가 기르는 매의 이름이다. 극복하기 힘든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 환경 속에서 빌리는 스스로 책을 읽으며 독학으로 매를 기르는 방법을 배워 새를 훈련시킨다. 이 과정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빌리가 생애 처음으로 주체성을 획득하고 타 존재와 교감하는 정신적 성장의 과정이다. 케스는 억압적인 탄광 마을의 현실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자유'와 '자연'을 상징한다.

빌리가 다니는 학교는 아이들의 가능성을 길러주는 곳이 아니라, 체벌과 강압을 통해 이들을 순종적인 노동 인력으로 규격화하는 공장에 가깝다. 교장과 체육 교사는 권위주의의 화신으로 묘사된다. 학교에서 유일하게 빌리의 내면을 바라보는 인물은 영어 교사인 파딩 선생이다. 그는 수업 시간에 빌리가 매를 훈련시키는 법을 설명하도록 유도한다. 평소 늘 주눅 들어 있던 빌리가 매사냥에 대해 이야기할 때 보여주는 생기와 전문성은 제도 교육이 규정한 '낙오자'라는 낙인이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폭로한다. 파딩 선생이 직접 들판으로 찾아와 빌리와 케스가 교감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따뜻하고 해방감 넘치는 순간이다.


영화는 빌리의 이복형 주드가 돈을 가로챈 빌리에 대한 보복으로 케스를 죽여 쓰레기통에 버리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죽은 케스를 묻어주는 빌리의 마지막 모습은 관객에게 깊은 상실감을 남긴다. 하지만 이 비극은 단순히 한 소년의 슬픈 성장담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케스의 죽음은 노동자 계급의 아이들이 품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술적·정서적 가능성마저 짓밟아버리는 자본주의 구조와 계급 장벽에 대한 고발이다. 시스템은 빌리가 매를 기르는 주체적인 인간이 되도록 허용하지 않으며, 오직 탄광의 부품이 될 것만을 요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