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팔레스타인이란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나 생각이 먼저 떠오르나요? 제가 다른 분들에게 물어보면 대체로 전쟁, 분쟁, 슬픔, 불안 등의 말이 떠오른다고 하십니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비슷할 거로 생각합니다. 팔레스타인이라는 말을 듣고 기쁨, 희망, 행복, 설렘 같은 감정을 느끼는 분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도 여러분처럼 팔레스타인이란 말을 들으면 어둡고 아픈 느낌을 많이 갖습니다. 반면 밝고 따뜻한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건 아마도 제가 팔레스타인인과 직접 만나고 대화하고, 시간을 함께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사람과 사람
2025년 12월 31일, 팔레스타인 헤브론에 살고 있는 아마니와 메신저로 새해 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아마니는 예전에 한국에 온 적이 있습니다. 제가 팔레스타인에 있는 아마니 집을 찾아, 가족들과 함께 만난 적도 있구요. 아마니가 딸 살람이랑 찍은 사진과 한국인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소중한 한국인 여러분께. 팔레스타인 헤브론에서 사랑을 담아 새해 인사를 전합니다.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여러분이 보내주신 연대에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다가오는 한 해, 여러분의 앞날에 멋진 일들만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저와 제 딸 살람의 새해 인사를 전합니다."

헤브론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 아마니와 딸 살람
팔레스타인에서 한국으로 유학을 와 있는 알리(가명)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2026년 2월 28일 서울 마포구 일대에서 정월대보름 굿을 벌인다고 해서 알리를 데리고 갔습니다. 한국에 이런 문화가 있다는 걸 보여주려구요. 굿판을 구경하고,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때가 라마단 기간이어서 무슬림인 알리는 해가 떠 있을 때 금식하고, 저녁이 되어야 식사를 했습니다. 제가 날짜까지 기억하는 이유는, 바로 그날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폭격하기 시작했고, 알리와 걱정 어린 대화를 나눴기 때문입니다.
2026년 2월 17일 설날에 한국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 살레와 인천 영종도로 놀러갔습니다. 팔레스타인은 한국보다 가족이나 친척 관계를 좀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살레는 2022년에 한국으로 혼자 왔고, 가족이나 친척들이 가자지구나 이집트에 있습니다. 명절에 혼자 있을 살레를 생각해서, 살레가 살고 있는 인천으로 갔습니다.
제가 가자지구에 가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살레와 해지는 인천 바닷가를 걸으며 가자의 저녁노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풍선 터트리기도 하고, 해물칼국수도 먹었습니다. 이날은 전쟁이나 죽음과 같은 심각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가급적 가볍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웃었습니다.
4월 2일에는 살레와 함께 영화 <힌드의 목소리>를 봤습니다. 힌드의 목소리는 이스라엘에 의해 살해될 때 6살이었던, <행복한 아이들> 유치원 '나비'반 힌드 라잡에 관한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와 영화관 복도에서 살레를 안고 많이 울었습니다. 살레가 '약해지면 안 돼요', '강해져야 해요'라며 저를 달랬습니다.
이렇게 제게 팔레스타인 또는 팔레스타인 사람은 뉴스나 자료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살아있는 존재와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아픔이나 상처와 함께 따뜻함도 반가움도 느끼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
2026년 5월 28일 목요일에는 춘천에서 <팔레스타인, 나를 닮은 인간의 땅>이란 제목의 강연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2023년 10월 7일 이후 팔레스타인에 대해 알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팔레스타인 관련한 책을 읽었어요. 팔레스타인에 대해 알고 나니 계속해서 관련된 책이나 뉴스를 찾아보게 되었고, 주위 사람들이 이제 그만하라고 하는데도 멈출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셨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셨습니다.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았고, 제 마음도 너무 아팠습니다.

설날에 팔레스타인 사람 살레랑 인천 영종도 바닷가에서
5월 29일 금요일에는 의정부 발곡고등학교에서 학생들과 팔레스타인에 관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수업하기 전에 대부분의 학생은 제가 쓴 팔레스타인에 관한 책 <지상 최대의 감옥>을 읽고, 독후감을 쓴 상태였습니다. 쉬는 시간에 한 학생이 다가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생 : 선생님이 쓴 책을 읽고 많이 울었어요.
미니 : 울었다구요? 왜요?
학생 : 너무 슬퍼서요.
미니 : 그랬군요...
팔레스타인과 한국은 거리도 멀고 서로 별 관계도 없는데, 우리가 팔레스타인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묻는 분이 계십니다. 그럴 때 제가 드리는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서 시작하자는 것입니다. '평화운동'이니 '국제연대'니 하는 것은 많은 분에게 조금 낯설고 거리가 느껴지는 말입니다. 운동이니 연대니 하는 것보다는 우리의 감정과 정서에서 출발하자 싶습니다.
어떤 분은 팔레스타인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파서 차라리 외면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저는 그 분께 '괜찮아요, 괜찮아요. 저도 그래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죽고, 다치고, 울부짖는 모습을 계속 바라보는 것 자체가 힘겨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아픈 마음으로 바라보기도 했다가, 때로는 미안한 마음을 안고 외면하기도 했다가 하는 것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사람은 아니잖아요.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서로를 안으며
춘천에서 강연할 때는 제가 어떤 마음으로 이 일을 하고 있고, 이 일을 하면서 어떤 마음의 상처를 갖게 되었는지도 말씀드렸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의자에 앉아 참가자들이 내민 책에 사인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떤 분이 다가오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가 좀 안아드려도 될까요?"
"네?"
누군가가 저를 안아준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뭉클해 '좋다', '싫다' 말도 못하고 책상에 엎드려 울었습니다.
"괜찮으시면 잠깐이라도 안아드리고 싶어요."
제가 자리에서 일어나니, 그분이 저를 꼬옥 안고 등을 토닥이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햇살과 꽃과 함께 웃고 계신 팔레스타인 사람 아마니의 아버지
평화를 찾아가는 길에 수많은 감정을 느낍니다. 너무 슬퍼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때도 있고, 폭발하는 분노 때문에 모든 게 망해버렸으면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감동하여 '그래, 이게 사람 사는 거지' 싶을 때도 있고, 서로를 격려하고 안아주는 모습에 희망을 얻기도 합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해, 사람의 마음과 함께 나아가는 것이 평화의 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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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인>에서 2025년 2월부터 귀한 자리를 내어주어, 여러분과 함께 팔레스타인에 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026년 6월호를 끝으로 마지막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해 함께 마음 모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앞날에 기쁨과 평안이 가득하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