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과 사랑
그대는 사랑을 오직 사랑을 대가로만 교환해서 살 수 있고, 신뢰를 오직 신뢰를 대가로 해서만 교환해서 살 수 있다. (…) 그대가 대가적 사랑을 초래함 없이 사랑한다면, 즉 그대의 사랑이 사랑으로서 대가적 사랑을 낳지 않는다면, 그대가 그대의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생의 표현을 통해 그대 자신을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그대의 사랑은 무력하고 불행한 것이다.
_『경제학·철학 수고』제3수고 5장
마르크스가 스물여섯 살에 쓴 글이다. 경제학 분야에 첫발을 내디딘 책인데, 돈 이야기를 하다가 느닷없이 사랑 타령으로 빠진다. 뜬금없는 것 같지만 나름 이유가 있다.
돈이란 참 신기하다. 사과와 운동화처럼 전혀 다른 물건을 교환하게 만든다. 마르크스는 이 전능한 돈의 힘 앞에서 낭만적으로 도발한다. “사랑만은 아니라고? 정말? 사랑은 뭐가 다른가?”
사랑은 돈으로 못 산다. 사랑은 오직 사랑으로만 살 수 있다. 신뢰도 마찬가지다. 이만하면 아름다운 이야기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아무리 진심으로 사랑해도 상대방이 사랑으로 화답하지 않으면? 그 사랑은 무력하고 불행하다고 말한다.
경제적 시각은 냉정하다. 하지만 사랑에 대해선 솔직하다. ‘대가 없는 순수한 사랑’이 이상이라지만, 정말 아무 반응이 없으면 괴롭지 않겠는가. 이걸 부정하면 오히려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경제학 책에서 이런 인간적인 고민을 만나다니. 마르크스의 출발점은 의외로 우리 일상에 가깝다.
독자들의 평판
과학적 비판에서 나온 어떠한 판단도 나는 환영한다. 이른바 여론의 편견들에는 내가 결코 양보한 적이 없는데, 이에 대해서는 내가 볼 때 전에 그랬듯이 앞으로도 위대한 피렌체 사람의 표어가 유효하다:
“너의 길을 가라. 그리고 남들이 좋을 대로 말하게 내버려두라.”
_『자본』1권 초판 머리말
『자본』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이야기다. 마르크스는 머리말 끝에 이 문장을 넣었다. 앞부분은 평범하다. ‘학문적 비판은 환영한다’는 정도. 그런데 뒷부분이 강렬하다. 단테의『신곡』연옥편에서 한 줄 가져왔다. “네 길을 가라. 남들이 뭐라 하든 내버려둬라.”
쉽게 말해 이런 거다. “욕하려면 욕해라. 난 신경 안 쓴다.” 책 머리말에 이런 문장을 넣는 게 보통 배짱인가? 출판사 눈치도 있고, 독자 반응도 신경 써야 할 터인데···. 맹자도 비슷한 말을 했다. “스스로 돌아봐서 떳떳하면 천만 명이 막아도 나는 가리라.” 그 용기, 저돌성, 자존감만큼은 돈키호테 뺨친다!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마르크스가 엥겔스에게 편지로 쓴 내용이다. 마르크스가 쉰 살 생일을 맞았을 때,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의 한숨이 떠올랐다. “이 애가 ‘자본’에 대해 쓰는 대신 자본을 모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명장면이다.
그에게『자본』은 확실히 세인들의 평가나 인정을 구걸하는 상품은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