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경제학 비판』초판 속표지(1859)
학문의 길을 가게 된 동기
『라인신문』 경영자들이 신문의 논조를 더 약하게 만들면 신문에 내려진 사형 선고를 철회시킬 수 있다고 믿었는데, 나는 공적인 무대에서 공부방으로 물러가기 위해 그들의 그런 환상에 오히려 적극적으로 주목했다.
_『정치경제학 비판』서문
마르크스는『정치경제학 비판』서문에서 왜 자기가 경제학 공부를 시작했는지 털어놓는다. 이 인용문은 바로 그 대목이다.
그는『라인신문』편집장이었다. 그런데 신문이 당국의 눈밖에 났다. 경영진은 “논조만 좀 누그러뜨려도 살 수 있을 텐데···” 하며 초조한 빛이 역력했다. 그는 이때다 싶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거, 좋은 핑곗거리네. 이참에 그만두고 공부나 실컷 해야겠다.’
결과는? 경영진의 희망과 달리 신문은 폐간되었다. 마르크스는 반쯤은 자발적으로, 반쯤은 어쩔 수 없이 백수 신세로 전락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공부와 글쓰기에 빠져든 것이다. 보통 학자라고 하면 상아탑에 자리 잡고 학문을 하는데, 그는 영 딴판이었다. 평생 프리랜서 문필가로 살았다. 위의 책 서문 끝에 이렇게 나온다.
학문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지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그런 것처럼 이런 요구 사항이 붙어 있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너는 모든 우유부단함을 죽여야 하느니라.
여기서는 이제부터 소심함은 적절하지 않으니라.’
사랑
참된 사랑은 신중함, 겸손 그리고 실로 자신의 우상이 되는 이에 대한 수줍음에서 표출되는 것이지, 감정의 과도함과 너무 이른 친밀함에서 표출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_ 「폴 라파르그에게 보낸 편지」
이 편지에는 사연이 있다. 마르크스의 딸 라우라가 프랑스 청년 폴 라파르그와 한참 사귀는 중이었다. 마르크스는 훗날 사위가 될 이 남자에게 프랑스어로 직접 편지를 썼다. 이른바 ‘연애’에 대한 장인의 조언이었다.
편지를 보면 걱정 반 섭섭함 반으로 가득하다. “너무 서두르지 마라. 자네, 아직 대학생 아닌가. 경제적으로 결혼할 형편은 되나?” 그리고 마지막에 한마디 덧붙인다. “이 편지는 비밀로 해 두게.” 딸이 결혼하겠다고 할 때 아버지가 보이는 전형적인 반응이다.
그래도 마르크스는 꽤 친절했다. 라파르그가 프랑스에서 혁명 운동을 하는 운동권 대학생이긴 했지만, 사상적으로는 동지였으니까. 그래서 퉁명스럽게 거절하는 대신 이러저러 신경 써야 할 점들을 적어 보냈다. 안타깝게도 라파르그가 먼저 예비 장인에게 보냈을 편지는 남아 있지 않다. 뭐라고 썼을지 궁금한데 말이다.
마르크스는 참된 사랑이 조심스러움, 겸손함,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느끼는 수줍음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화려한 말, 넘치는 감정 표현, 갑자기 가까워지려는 조급함은 극도로 경계했다. 그는 사위에게 연인을 배려하는 사랑법을 조곤조곤 알려 주며 내심 잘해 보라고 타일렀던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