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별104

다시 동거 일기

다시 동거 일기.jpg

 

 

 

1일차. IMHA 면역 매개성 용혈성 빈혈

 

출근길이면 윗집까지 150미터쯤 달리기를 해서 윗집 개와 함께 간식을 받아먹고 다시 달려서 돌아오던 콩이. 어제는 뛰지 못하고 걷는 품이 어딘지 불편해 보였다. 퇴근하고 왔는데도 평소처럼 펄쩍펄쩍 뛰지 못하고 엎드려 앉아있었다. 뭔가가 이상했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결정적으로 웃지 않았다. 나를 쳐다보는 콩이 얼굴의 무표정이 어쩐지 낯설었다.

 

오늘 다시 출근길에 간식을 주러 윗집까지 가는데도 콩이 걸음이 어그적거렸다. 퇴근길을 재촉해 집으로 왔다. 평소 같으면 주인집 앞에 앉아있다가 내 차가 진입하는 걸 보면 계단을 구르듯 내려와 마당을 빙빙 돌던 아이가 가만히 엎드려있었다. 심상치 않았다. 집주인에게 말씀드리고 빈 상자를 조수석에 싣고 콩이를 앉혔다. 그리고 동물병원으로 갔다.

 

지난달 구충제 사러 동물병원에 갔을 때 원장님에게 콩이 소변에 피가 섞인 걸 두 번 보았다고 말씀드렸다. 방광이나 요도 결석을 의심했었다. 엑스레이 X-ray 촬영에 다행히 결석은 보이지 않았다. 초음파로 방광과 신장을 보아도 결석은 없었다. 그런데 방광에 허연 게 보였다. 원장님이 더 정확한 검사로 소변 검사가 있다고 하셨다. 소변을 뽑아 검사 결과를 보니 적혈구 수치가 낮았다. 그리고 뾰족뾰족한 크리스털이 보였다. 기분 나쁜 모형이었다. 무엇보다 소변 색이 진했다. 다시 초음파로 간과 담낭을 보았다. 깨끗했다. 더 정밀한 검사로 피검사가 있다고 하셨다. 원장님은 콩이가 주인집 개란 걸 아신다. 2년 전 다리 다쳤을 때 내가 대전 동물병원에서 수술시켜 퇴원 후 통원 치료는 이 병원에서 했으니까. 당시 수술비 보험 적용 때문에 법적 주인은 나지만 원주인은 집주인이다. 주인이 따로 있는 개는 비용 문제가 복잡하다. 검사비용 견적 먼저 내주셨다. 20만 원이 넘어갔다. 몇 가지 할인해 주시겠다고 했다. 콩이 앞다리에서 주사기로 채혈했다. 잠시 후 원장님이 불렀다. 유리판 위에 선혈이 얹혀있었다.

 

"고춧가루 같은 게 있죠? 덩어리로 뭉친 것처럼. 용혈이에요. 예후가 나빠요."

(용혈 : 적혈구가 파괴되고 분해되어 헤모글로빈이 혈구 밖으로 유출하는 현상)

 

의자에 주저앉았는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대기실에 나와서 원장님이 찾아보라고 써 준 IMHA를 검색하며 콩이에게 간식을 주는데 울음이 멈추질 않았다. 혈액 검사 결과가 나왔다.

 

IMHA 면역 매개성 용혈성 빈혈 : 적혈구 표면 항원에 대한 자가 항체가 부착되어 적혈구가 파괴되는 질환, 자기가 자기 적혈구를 파괴하는 현상

 

주요 증상 : 구토, 무기력, 침울, 졸림, 생기 없음, 불안, 설사, 식욕부진, 황달 등

 

해줄 수 있는 건 약물치료와 수혈. 하루 두 번 약을 먹이고 추이를 보기로 했다. 사료는 별 상관은 없지만, 방광에 좋은 로열캐닌 유리너리 URINARY로 바꾸기로 했다. 염분이 있어서 물을 많이 마시게 하는 작용을 한다.

 

콩이는 2년 전 다리 수술을 할 때까지도 심장사상충이 없었다. 이후로 내가 매달 22,000원짜리 구충제를 사 먹였기 때문에 심장사상충 때문일 확률은 매우 낮다. 그렇다면 원인은 사료의 곰팡이균일 가능성이 높다. 집주인이 사 오시는 싸구려 사료는 15kg 대용량으로 통에서 몇 달, 더러운 창고 안 열린 종이봉투에서 몇 달씩 있었다.

 

청구서에는 원장님이 할인을 많이 해주셨는데도 269,000원이 나왔다. 닷새치 약을 받아 집으로 왔다. 주인집에 상황을 전했다.

 

"저도 처음 듣는 병명이에요. 적혈구를 파괴한대요. 빈혈이 온대요."

"꼴값을 하네."

 

여주인 맞은편에 앉아있던 윗집 여자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나는 그 집 개에게 1년 넘게 매일 콩이와 똑같은 간식을 주고 있었다. 개를 데려와 1미터 남짓한 쇠줄에 묶어놓고 한 번도 산책시키지 않으며 최근에는 야생동물 퇴치기를 개 바로 옆에 심어놓은, 울타리에는 고운 꽃이 철마다 가득한 그 집에서 그 개가 미치지 않고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사람이 다가가면 겁에 질려 언제나 마룻바닥에 들어가 나오지 않던 개를 간식 먹여서 하루 한 번 내가 갈 때면 짖으며 앞발 들고 기뻐하게 만든 게 일 년이었다. 그런데 고맙다는 말은커녕 이제 남의 집 개가 치사율 높은 병에 걸렸다는데 꼴값이라니. 과연 이게 시골 정서인가. 이런 곳에서 앞으로 콩이가 어떻게 될까? 암담했다.

 

인터넷에서 찾은 병명 해설과 검사 결과지와 영수증을 문자로 집주인에게 보냈다. 상황을 아셔야 하니까. 그리고 밖으로 나와서 세영이 콩이 다리 다쳤을 때 보내준 통조림 마지막 캔에 가루약을 섞어 주었다. 평소에 통조림이라면 허겁지겁 먹던 콩이가 약 냄새를 맡더니 먹지 않았다. 으깨고 섞어서 손으로 떠주었더니 먹다가 동전만큼 한 덩어리 남겼다.

 

어두운 밤, 밖으로 나갔다. 동네 아기 길고양이들이 모여 있었다. 두어 달 전부터 내가 고양이 사료를 사다 따로 주기 때문이었다. 사료를 주자 기다렸다는 듯이 먹는다. 콩이가 빈 그릇을 핥는다. 유리너리를 뜯어서 그릇에 가득 부어주었더니 잘 먹는다. 다행이다.

 

나는 콩이를 보고 이 집으로 왔다. 너무 더럽고 말랐는데 처음 보는 나를 보고 앞발을 들고 서서 반기던 콩이. 주인은 주말에만 온다는데 그럼 빈집에서 먹이는 누가 주나 걱정스러워서 내가 와서 돌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4개월 후 이사 와서 3년 넘게 매일 산책시키며 돌보았다. 함께 산책하다가 동네 개들과 유기견에게 물려 다리가 분쇄 골절되었을 때도 수술과 일주일 입원과 두 달의 간병을 책임졌다. 한 번도 묶인 줄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산책도 못 하는 윗집 개에게도 1년 넘게 매일 간식을 가져다준다.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는 동네 길고양이들에게도 사료를 준다. 이 정도 했으면 나를 봐서라도 우리 콩이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 일어났더라도 고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고통스럽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연말부터 눈이 마를 날이 없다. 너무 부어올라서 이젠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다. 그만 울고 싶다. 사람들은 떠나도 콩이만은 내 곁에 있었는데 사는 게 정말 왜 이런가.

 

 

2일차. 그래도 산책

 

울다가 지쳐 잠들고는 눈을 뜨니 7시 37분. 스트레칭할 새도 없이 일어났다.

8시 40분, 딸기잼을 플라스틱 숟가락에 덜어서 밖으로 나갔다. 콩이 밥그릇에 사료 유리너리가 남아있었다. 주인이 벌써 주셨나 보다.

 

앞집에 일하러 온 트럭 아저씨가 다가왔다.

"콩이 아프다면서요?"

정말 소문 빠른 동네다.

"네, 적혈구가 파괴되어 빈혈이 온대요."

"어느 병원 다녀요?"

"신00 병원이요. 의사 선생님이 양심적이고 아주 좋으세요."

"검사비도 많이 나왔겠네."

"그래도 주인집 개라니까 많이 할인해 주셨어요."

 

딸기잼에 약을 부어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콩이가 핥아보고는 먹으려 하지 않았다. 구충제도 간식처럼 좋아하는데. 어제 병원에서 사 온 칠면조 간식에 한 알씩 묻혀서 주니 잘 먹었다.

 

평소에 1.5km씩 산책한다고 했더니 전날 의사가 이제 그러면 안 된다고 했었다. 일단 윗집 개 쪽으로 갔다. 콩이는 간식을 받아먹더니 계속 직진했다. 목줄을 잡고 따라가며 생각해 보았다. 만약 내가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누워서 울고만 있을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전히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걷다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가 만나기. 그러고 싶다.

 

"콩이는 집에 묶여있던 개였어요. 제가 이사 와서 3년 동안 매일 산책시켰어요."

"얼마나 행복했겠어요. 아마 그래서 지금까지 버텼는지도 모르죠."

 

어제 동물병원에서 의사와 나눈 대화였다. 그렇다. 콩이는 걸을 수 있을 때 나와 산책하는 게 가장 행복할 것이다. 나는 콩이가 걷고 싶을 때까지 함께 산책할 것이다. 자꾸만 눈물 콧물이 나온다. 감사해서. 이게 언제까지 가능할지 몰라서. 이곳에 와서 온갖 일을 겪던 그 외롭고 힘들던 시간 동안 그럼에도 밖으로 나와 산책하며 걸을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콩이 덕분이었다.

 

40분 걸려 산책을 하고 집에 오니 주인이 퉁퉁 부은 내 눈을 보고 왜 그러냐고 물으셨다. 콩이 때문이라고 하니,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셨다. 병원비를 주신다고. 2년 전 콩이 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병원에서 항생제만 먹여서 그냥 데려오라셔서 별 기대하지 않았는데 감사하다. 콩이 빗질을 해줬다. 가위로 엉덩이 부분 뭉친 털도 잘라주었다. 그리고 겨울옷을 손빨래해서 빨랫줄에 널었다. 작년에 새로 사준 기모 옷이었다. 패딩을 사 입히지 못하고 영하 10도 한겨울을 나게 한 게 미안했다.

 

집에 들어가 간단히 식사하고는 커피를 타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땅바닥에 앉아서 책을 읽는다. 그러다 옆에 엎드린 콩이를 쓰다듬는다. 작년 9월에 미용한 개를. 언제나 2층에서 느릿느릿 할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오후에, 그것도 종종 늦게 해질녘이 다 되어서야 나왔었다. 종일 나만 기다렸을 콩이를 그렇게 둔 지난 시간이 미안했다.

 

앞집 아주머니가 물으신다.

"콩이 아프다며요?"

"네."

"나이 들면 사람이나 개나 다 아파."

 

오후 1시 25분, 선물이 왔다. 세영이가 보낸 Phil aid(P/a) 필 에이드-반려견용 전문 투약보조제. 그 비싼 걸 두 상자나 보냈다. 어제 동물병원에서 오자마자 세영에게 문자를 보내고 잠시 후 통화를 했다. 그이는 콩이가 다쳐서 수술받았을 때 물품을 보내주며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 콩이 일이라면 누구보다 같은 마음일 사람이었다.

 

이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맞닥뜨렸을 때 누구를 찾아야 하는지 정도는 알게 되었다. 판단이나 정죄하는 사람, 외면하며 길고양이보다 못한 취급을 하는 사람, 연락 끊는 사람을 찾으면 더 큰 상처를 입는다는 것을 배웠다. 그럴 때는 일단 따뜻하게 품어주는 사람 그리고 함께 해결 방안을 모색해 주는 사람과 연락해야 한다. 하지만 더는 사람에게서 도움을 찾지 않으려고 마음먹은 나였다. 그런데 그이는 그 조건에 앞서 누구보다 콩이를 다시 보고 싶어 할 사람이었다. 그래서 연락했었다. 그런데 요청하지도 않은, 생각지 못한 도움을 보내주었다. 현재 콩이에게 가장 필요한 투약보조제를. 따뜻한 마음과 정확한 상황 파악과 민첩한 행동. 그이는 2년 전에도 이번에도 콩이와 나를 도와주었다.

 

내가 깔고 앉다가 밖이 추워서 내어준 콩이 방석을 하나 또 하나 손빨래해서 널고는 오후 세 시에 들어왔다가 여섯 시에 다시 나갔다. 이번에는 콩이가 내 발소리를 듣고 계단 아래 내려와 있었다. 며칠만이었다. 유리너리를 한 알 한 알씩 손가락으로 집어서 먹이고 필 에이드 통조림에 약을 섞어서 주었다. 웬만하면 뭐든 맛있게 먹던 콩이가 그 맛있는 필 에이드도 약 냄새를 맡고는 먹질 않는다. 하는 수없이 손으로 무스케이크처럼 떼어내 먹게 했다.

 

초저녁에 두 번째 산책을 했다. 콩이에게 생기가 많이 돈다. 이젠 꼬리를 흔들고 웃는다. 불과 며칠 전에 그랬던 것처럼. 한밤중에도 궁금해서 나가보았다. 집 앞 골목에서 아주 짧은 산책을 했다. 평소와 같은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3일차. 벚꽃 치유

 

이른 아침, 집주인이 약값을 보내주셨다. 얼른 문자를 보냈다.

'고맙습니다. 지금까지처럼 최선을 다해 콩이를 돌보겠습니다'

 

아침 8시 30분이면 콩이에게 약을 먹인다. 의사 선생님이 공격적으로 약을 쓰시겠다고 하더니 정말 쓴지 콩이는 약 먹기를 싫어한다. 필 에이드에 섞고도 간식까지 동원해 억지로 약을 먹이고 나서 사료를 먹이려니 남긴다. 약을 먹고 나서 그런 걸까? 콩이 눈에 눈물이 고인다. 어제 낮에도 보았다. 오늘은 눈물방울이 더 크다. 윗집까지 가서 두 강아지에게 간식을 주고 왔다.

 

3년 전 부활 제2주일인 오늘에도 미사 본문이 도마였다. 눈물이 계속 흘렀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히 달라졌다. 그리고 지금의 내 곁에는 콩이라는 개가 있다. 나는 살려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섣부르게 무언가 조건을 걸고 거래하지도 않는다. 그저 슬플 뿐이다.

 

미사 후 기차역으로 갔다. 11시 25분에 세영이 온다고 했다. 주말이라 매진인 기차표를 어떻게 구했는지 일요일에 이 먼 곳까지 오는 세영. 고가의 투약보조제를 보내주고도 콩이 간식을 사준 세영과 콩이와 나, 우리 셋은 향적산 치유의 숲으로 향했다.

 

"콩아, 꽃 좀 봐. 벚꽃비가 내리네."

 

벚꽃 흩날리는 찬란한 그 길을 스르르 차로 올라가며 다시 이 벚꽃을 볼 수 있을까 생각했다. 3년 만에 처음 본 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길을 콩이와 함께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치유의 숲 정자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세영이 서울에서 사 온 빵을 먹으며 집에서 내려온 원두커피를 마셨다. 그리곤 왼쪽 옆에 앉은 콩이를 쓰다듬었다.

 

"너무 예쁘다. 콩이."

 

진심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세영이 말했다. 그랬다. 콩이는 정말 예쁜 개다. 얼굴도 성격도. 그리고 그런 콩이를 예뻐하는 세영도 예쁜 사람이다. 잠시 후 우리는 산길을 산책하고 내려와 자동차를 타고 다시 벚꽃 가득한 길을 지나 집으로 왔다. 오후 두 시 반에서 네 시 반, 그 두 시간. 3년 동안 그곳에는 해마다 벚꽃이 피었을 텐데 내게는 최초인 시간이었다. 콩이에게도 세영에게도 그 시간은 최초였다. 어쩌면 우리 셋에게 다시 없을 시간이었다.

 

저녁 7시 20분, 둘이 합작으로 콩이에게 사료와 약을 먹였으나 쉽지 않았다.

밤 9시 18분. 세영이 탄 기차가 떠났다. 사흘 내내 짓물러 있던 내 눈에 어느새 눈물이 말라 있었다. 방송 제작을 한 30년을 통틀어 세영과 함께했던 6개월이 가장 행복했었다. 잠깐 스쳐 지나간 직장 선배를 찾아 전북 정읍에도 그 먼 땅끝 전남 해남에도 왔던 세영의 이번 방문은 콩이와 내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4일차. 벚꽃비 내린 날 오, 발렌타인

 

오전 9시 10분, 콩이에게 사료와 약을 먹였다. 사료는 한 알 한 알씩 손으로 집어서, 약은 삶은 달걀노른자와 필 에이드 으깬 것에 칠면조 간식과 함께. 약에 혀끝을 대보니 진짜 쓰다. 콩이가 도리질할 만하다. 약을 먹이고 나면 온 손에 약칠 범벅이다.

 

10시면 동물병원 영업 시작. 콩이를 차 안 종이 상자에 앉히고 병원으로 향했다. 사흘 만에 다시 피검사를 했다. 천만다행으로 RBC 적혈구 수치가 2.17에서 2.95로 올라왔다. Hematocrit 혈액 속 적혈구 수치도 15.6에서 22.7로 올라왔다. Hemoglobin 헤모글로빈 수치도 5.8에서 8로 올라왔다. Reticulocytes 망상 적혈구 수치도 334.3에서 415.3으로 치닫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그건 군인이 없을 때 고등학생(학도병)이 대신 싸우러 나가는 것과 같다고 했다. 정상 적혈구 수가 적으니 어린 적혈구가 생성되는 현상이라는. 면역학 C-Reactive Protein 혈중 염증 수치도 8.9에서 3.6으로 낮아졌다. 콩이 몸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고 있었다.

 

"아이고 콩아, 고맙다."

콩이 등을 쓰다듬었다.

 

"선생님이 지어주신 약이 효과를 보네요."

"약 먹이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여러 번 내 수고를 치하했다.

 

"근데 약이 너무 쓴가 봐요. 양도 많고요."

선생님은 약 성분표를 보여주셨다.

"치료제도 있지만, 영양제도 있어요. 간에 좋은 거예요. 우루사, 000, 000……. 비싼 약들이예요."

 

그런데 상담 중에 콩이가 오줌을 쌌다. 그것도 스탠드 같은 게 서 있는 상자 안에다가.

"어머, 어떡해요? 얘가 오줌을 싸요."

"괜찮습니다. 이참에 소변도 한 번 보죠. 에고~ 참 닦기 좋은 데 싼다."

 

빈정거림이나 짜증 한 톨 없이 너그러운 말투였다. 불편한 현상에 대해 그런 반응이 나오는 건 어떻게 살아와야 가능한 걸까? 매사에 비판이 앞서는 나로서는 무척 부러운 반응이다. 같은 사안도 부정적으로 꼬아보지 않고 그저 편안히 넘길 줄 아는. 진료실에서 나온 다음 간유리 너머로 간호사를 시키지 않고 걸레를 가져다 허리 숙여 콩이 오줌을 제 손으로 닦아내는 원장님 실루엣이 보였다.

 

정오가 넘어 콩이를 차에 태워 조심조심 벚꽃길로 갔다. 비가 내렸다. 벚꽃 비가. 눈이 내렸다. 벚꽃 눈이. 반짝반짝 햇빛에 부서지는 꽃잎 조각조각들이. 집 대신 향적산 치유의 숲에서 한 시간쯤 일광욕하고는 집으로 갔다.

 

오후 다섯 시쯤에 외출하러 나왔다. 세영이 보내준 콩이 매트가 도착했다. 방석이 낡고 얇아 푹신한 매트를 보내준 것이다. 콩이 약을 먹이는데 수월치 않은 시간이 걸렸다. 서둘러 운전을 했다.

 

한 시간 30분 후 소소아트시네마 앞. 숨이차가 서 있었다. 두문불출하던 지난겨울, 두 해째 그이가 집으로 보내온 설맞이 꽃떡국떡. 그리고 분도몰 양배추 죽, 발아현미 누룽지와 시리얼. 아프지 않으려고 방학 내내 출근용 양배추 죽을 다 먹으며 숨이차가 나를 살리는구나 했었다. 그리고는 지난 목요일에 '오, 발렌타인이라는 영화를 아시나요?' 문자가 왔다. GV가 있다고. 숨이차의 제안이니 응했다. 그런데 다음 날 콩이 병세를 알게 되었다. 정신없이 보낸 며칠. 그래도 약속을 취소할 순 없었다. 밥이라도 내가 사려고 했지만, 그이는 주차요금까지 허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낮고 느린 걸음으로>에 내 서명을 받았다. 늘 그랬다. 그이는 내 책이 나오면 누구보다 먼저 사 와서 서명을 받았다. 사진전을 했을 때는 그 부끄러운 사진집을 세 권이나 사서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렇게 숨이차는 활동가 비슷한 예술가들을 문화 소비로 후원했다. 자본이 그렇게만 쓰일 수 있다면 얼마나 선한가.

 

영화 <파업전야> 정도를 예상하고 식곤증에 졸다 나오지 않을까 싶었던 영화 <오, 발렌타인>은 '죽어도 자본주의와 화해할 수 없는 위태로움에 관하여' 깜짝 놀랄 정도로 감각적이고 예술적이었다.

 

십 년 동안 쉬지 않고 한눈팔지 않고 이 길을 걸어왔다. 그럼에도 누구와도 끈끈히 가까워질 수 없었고 사랑과 명예는커녕 동지도 간 데 없는 지금, 나는 콩이를 돌보며 조용히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려 했다. 그런 나에게 이 순간 이 영화는 무슨 의미일까? 저들에게 불편감을 주고 싶다는 홍진훤 감독처럼 나에게 기어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절대 만감이 봄 파도처럼 출렁이는 밤이었다.

 

자정이 다 되어 돌아온 집, 콩이는 1층 현관 앞에 엎드려있다. 한참 만에 내가 차 문을 열고 나오자 어느새 계단 아래까지 내려온 콩이가 서서 웃는다. 나를 반기는 생명, 그 미소에 저절로 손이 이마로 간다.

 

"기다렸어~?"

 

그래, 누군가 기다린다면 언젠가는 돌아가리라. 오! 발렌타인이 아니라 오, 발렌타인처럼.

 

6일차. 뒤바뀐 운명

 

새벽 여섯 시 반쯤 일어났는데 다시 잠들었다. 눈을 뜨니 9시 40분. 깜짝 놀라 박차듯 일어나 약을 챙겨 나갔다. 사료 그릇과 물그릇이 비어있고 땅바닥에 돼지등뼈 갉아먹은 게 놓여있다. 서둘러 물그릇에 새 물을 채워주자 콩이가 벌컥벌컥 마신다. 유리너리 세 스푼을 한 알씩 먹이고 필 에이드에 약을 섞어 연어 간식 열다섯 알 정도에 한 알씩 뭉쳐 먹였다.

 

산책 시작. 시계 반대 방향으로. 끝까지 갈 수 있을까 조마조마하다. 농로 끝에서 왼쪽으로 이끌며 "친구한테 가야지." 삼분의 이쯤 오니 헉헉거린다. 집에는 집주인이 화단을 정리하고 계셨다. 돼지등뼈 주셨냐고 여쭈니, 부군이 음식 쓰레기 버리다가 하나 던져준 듯하다고 하셨다. 간 치료제와 영양제를 투여하고 있는 개에게.

 

나는 콩이를 빗질하고 주인은 내 옆 계단에 앉으셨다. 그래도 아침에 콩이가 사료 못 먹고 있어서 사료에 약 섞어 주는 줄 알고, 배고플까 봐 달걀을 들기름에 부쳐주셨단다. 집주인도 콩이를 아끼고 사랑하신다. 발병 원인이 뭘까 물어보셨다. 심장사상충 약은 꼬박꼬박 먹였고 산패된 사료 곰팡이균이 아닐까 추측한다고 했다.

 

"지난번 소변에 피가 섞여 나왔을 때 바로 말씀드리지 못했어요. 부담스러우실까 봐. 방광 결석인 줄 알고, 그게 수술비 200만 원 나오거든요. 수술비가 무서워서 두 번째 보고도 좀 지나서 말씀드린 거였어요."

 

참담하게 무기력하던 연말연시는 기억이 나지 않고, 찾아보니 두 번째로 콩이 소변에서 빨간 피가 나온 날은 3월 15일이었다. 3월 21일에 동물병원에서 진드기약을 사 와서 22일에 먹였다. 의사 선생님에게 콩이 상태를 말하며 방광 결석 같다고 하니 결석이 요도를 막으면 심각해진다고 한번 데려와서 X-ray를 찍어보자고 한 날로부터 4월 10일까지는 20일, 최소한 혈뇨로부터 근 한 달을 콩이는 아팠다. 내가 대전으로 서울로 군산으로 오가는 동안 콩이는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고통받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돈 걱정으로 내원을 차일피일 미뤘다. 남의 개니까, 바깥에 사는 개니까, 시골에 사는 개니까 도시 실내견처럼 걸핏하면 하는 병원 신세 지게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방광 결석은 수술해도 거의 재발하니까. 그런데 차라리 방광 결석이면 훨씬 나았을 면역 매개성 용혈성 빈혈이라니. 상태를 몰랐으면 몰라도 이상 증세를 알고도 병을 키운 건 나였다.

 

"의사 선생님이 콩이 실내에서 키우는 개래요."

 

그러자 여주인이 콩이 데려올 때 이야기를 해주셨다. 대전 앞집 농장 비닐하우스에 콩이랑 똑같이 생긴 형제가 있었단다. 내 이전의 전 세입자 아이가 개를 키우고 싶다고 해서 처음엔 콩이 형제를 데려왔는데 하도 짖고 성격이 지랄 맞아서 다시 데려다 놓고 콩이를 데려왔단다. 순했단다. 그렇게 해서 콩이 형제는 40평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데려가서 호텔 같은 데서 살고, 콩이는 이 집에 와서 밖에서 사는 신세가 되었단다. 사람도 만만한 사람은 계속 피해 입고, 이기적이거나 성격 나쁜 인간은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고 산다.

 

콩이는 작년 수술할 때 7~8세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 이 집에 데려올 때 이미 5~6세였다고 해서 나이가 점점 늘고 있다. 그렇게 열 살이 넘었다는 콩이는 노령견에 접어들며 나를 만났다. 모두 나를 만나 콩이가 행복해졌다는데 과연 그럴까? 콩이는 부잣집 실내에 들어가 살 수도 있는 개였는데 착한 나머지 이 집에 왔다. 나도, 나도 착해서…라기보다는 마음이 약해서 콩이를 돌보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의 대화는 돈 이야기로 끝났다.

"이번에 피검사 12만 원 나왔는데 제가 낼게요."

돈은 결국 책임이다. 올라와서 두 번째 121,400원짜리 영수증과 함께 문자를 보냈다.

'이번 검사비는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잠시 후 마당에서 기침 소리가 들리길래 배도라지청을 뜨거운 물에 타다 드리고는 다시 문자를 보냈다.

'태어나서 처음 살아보는 이곳에서 제가 믿고 의지할 존재는 콩이와 권사님뿐이에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곤 그분이 예쁘게 가꾸신 튤립 옆에 서 있는 콩이 사진을 보내드렸다.

 

오후 세 시쯤 볕이 쨍쨍 들 때 나갔다. 앉아있는 콩이 눈에 또 고인 눈물이 보인다. 사랑은 눈물을 닦아 주는 것. 그리고 주인집 현관 앞을 물청소했다. 콩이 물그릇에 흙이 들어가지 않게 하려고. 콩이가 배 깔고 엎드리는 곳이니까. 물기 마를 때까지 집 앞을 산책하려는데 콩이가 힘겨워했다. 물기 있는 현관에서 어쩔 줄 몰라 하더니 그냥 배를 깔고 엎드린다. 잠이 든다. 오늘은 서울에서 단체전 준비 사진 특강이 있는 날. 엊저녁 잠시 기차표를 알아보았지만, 콩이 투약 때문에 청강을 포기했다. 후회하지 않는다.

 

오후 5시 30분. 조금 이른 저녁밥을 먹인다. 유리너리를 세 스푼을 한 알씩 손으로 집어 먹이고 필 에이드에 약을 섞어 연어 간식에 묻혀 준다. 소화 시킬 겸 벚나무 사이 몇백 미터를 걸어갔다 온다.

 

밤 7시 30분. 저녁 식사 후 또 나가서 짧은 산책을 한다. 종일 잦은 소변만 보더니 드디어 대변을 보았다. 안심이다.

 

"콩아, 잘 자. 내일 봐."

 

어둠 속 콩이 모습을 눈에 콕 박아둔다. 내일 다시 보기 위해서

 

7일차. 팽목항에 못 간 12주기

 

6시 40분 기상. 출근 직전 노란색을 찾았다. 노란 리본을 자줏빛 니트에 달았다.

8시 40분. 주인집 차는 나갔고 물그릇은 말라있다. 새 물을 채워주고 콩이 사료 급여와 투약

필 에이드에 연어 간식을 콕콕 박아 놓으니 핥아먹느라 손으로 먹이는 것보다 용이했다. 5,000원짜리 간식을 2~3일에 먹는다. 빠르게 윗집까지 가서 간식을 주고 돌아왔다.

 

후코이단 막대 간식을 주고 9시에 출근. 2021년 7주기부터 작년까지 5년을 이날이면 팽목항에 있었다. 그런데 12주기인 오늘은 수업. 원래는 이번 주초나 다음 주초에 진도에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콩이가 아픈 걸 알고는 모든 일정 일단 중지.

 

보충수업까지 하고 오니 오후 4시, 내 차가 들어오는데도 콩이가 가만히 엎드려있다. 차 문을 열고 내렸는데도 일어나지 않는다. 불안했다. 나를 보자 일어났는데 움직이진 않는다. 햇볕이 비추니 그늘을 찾아 구석 끝에 있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나와 빗질을 해주었다. 헥헥 헥헥. 콩이 눈에 눈물이 어리고 콧물방울이 생겼다 터졌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콩이 옆에 망연히 앉아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힐끗힐끗 보며 지나갔다. 윗집 여자의 자동차도 창문을 내리지 않은 채 서서히 지나갔다. 서울 여자가 유난 떤다고 할 듯하다. 수십 년 전 내가 개 키우는 여자들을 질색했듯이.

 

잠시 후 퇴근하는 주인 차가 들어왔다.

"더운 건지 아픈 건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콩이가 자꾸 재채기했다.

 

오후 5시, 유리너리를 세 스푼 꺼내주었다. 두 스푼만 먹고 남겼다. 올라와 동물병원에 전화했다. 콩이가 재채기를 하는데 혹시 사람 감기 바이러스가 개에게 옮을 수 있느냐고. 일주일 넘게 독감에 걸린 집주인 네가 먹고 남은 감자탕 돼지 뼈를 콩이에게 주었다고. 안내 직원은 사람 감기 바이러스는 개에게 전염되지 않는다고 했다. 일단 안심이다.

 

6시 10분, 필 에이드에 약을 섞고 사슴고기 간식을 넣어주니 손으로 먹일 때보다 수월하게 먹는다. 벚나무가 양쪽으로 심어진 농로를 1킬로미터 걸어갔다 왔다. 해가 지고 바람이 불어 서늘해졌다. 집에 와 남은 유리너리를 한 알씩 다 먹였다. 그리고 발등 털을 가위로 동그랗게 잘라주었다.

 

저녁 7시 5분에 올라왔다가 한 시간 후에 다시 내려가 본다. 콩이는 계단을 내려오지 못하고 위에 서서 날 기다린다. 얼굴을 마주하고 손으로 동글동글 위아래로 쓰다듬고 인사했다.

 

"잘 자. 콩아. 내일 봐."

 

9일차.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내가 듣는다

 

주말이라 오전 7시 30분경 기상. 8시 50분에 물 한 잔 끓여 사료와 약을 들고 나갔다. 콩이가 계단 아래에서 기다린다. 사료 세 스푼. 절반 정도 먹고 거부. 필 에이드에 약 섞어서 사슴고기 간식 여섯 알 정도로 먹인다.

 

아침부터 이장님이 와서 주인집 문을 두드리고 초인종을 누른다. 아무리 두드리고 눌러도 인기척이 없으니 돌아가시면서 날 보고 한마디 하신다.

"(콩이가 사람) 잘 만났어."

 

시계 반대 방향으로 산책. 괜찮을까 싶지만 일단 가본다. 절반쯤 가니 속도가 느려진다. 헥헥 헥헥. 삼분의 이쯤 가니 꼬리가 처지고 걸음이 어그적거린다. 처음으로 콩이를 안았다. 콩이 오른쪽 눈 밑이 눈물에 살짝 젖어있다. 얼마나 아팠으면……. 6.2kg 정도 되는 콩이를 안고 300미터쯤 걸었을까. 덥다. 4월 중순인데 아직도 내복에 조끼에 겨울 점퍼를 입고 있는 나. 약해진 마음에 혹시라도 몸에 병까지 들어올까 봐 쉽게 옷을 벗지 못한다.

 

윗집 개한테 가까이 가서는 내려놓아 걷게 했다. 개집 아래 울타리에 가득 쌓였던 똥 더미가 청소되어 있었다. 내가 간식 줄 때면 그 똥을 밟고 겅중겅중 뛰었는데 다행이다. 옆 마당에는 여전히 야생동물 퇴치기에서 삐- 소리가 나고 있었다. 콩이는 간식을 먹고는 꼬리가 반짝 올라가 걸음이 가벼워졌다가 곧 다시 내려간다.

 

오전 10시가 넘어 들어와서 오후 6시 라디오 오프닝 멘트를 듣고는 약과 빗을 챙겨 나갔다. 콩이가 계단 아래 내려와 활짝 웃고 있었다. 반가웠다. 유리너리 세 스푼을 그릇에 덜어주니 싹 먹었다. 최초였다.

 

주인 부부가 퇴근하셨다. 필 에이드를 핥게 한 후 가루약을 섞어서 사슴고기 한 개씩 다섯 개 넣어서 약을 거의 먹게 했다. 분홍 벚꽃 다 진 농로 쪽으로 왕복 1킬로미터를 갔다 왔다. 그리고 주인집 앞에서 콩이 빗질을 시작했다. 그런데 좀 전에 왔던 윗집 여자가 또 와서 주인집에 들어가 쑥떡을 함께 빚는다. 잠시 후 남자 주인이 양손으로 커다란 찜기를 들고나오셨다. 그러자 실내 대화가 들리기 시작했다. 윗집 여자가 병원비를 물은 듯 주인이 말씀하셨다.

 

"두 번 나왔지. 사진 찍어서 보내주데. 지난번에 27만 원, 이번에 13만 원."

"세상에, 쟤 죽을 때 됐어."

 

두 번째 병원비를 내가 냈다는 말씀은 들리지 않았다. 이어 여주인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아저씨가 2층이랑 콩이랑 나가라고 그러데."

 

꼴값이라고 한 여자는 입을 쉬지 않았다.

"어떤 여자 남편이 마도로스인데 마도로스는 배 타고 오래 나가 있잖아요. 그 여자가 개를 키웠는데 나중에 남편이 돌아오니까 그 개가 남편 노릇을 하며 남편을 물어 죽였대요."

"아니 왜?"

"그러니까 여자랑 개랑 그걸 한 거지."

"아니 뭐?"

 

마당에 갔다 돌아온 남자 주인이 천천히 올라오시더니 들어가시며 유리문을 닫았다. 말소리는 더 들리지 않았다. 더 듣고 싶지도 않았고 들을 필요도 없었다. 나도 서서히 일어나 의자를 들고 2층으로 올라왔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소설이 떠올랐다. 혼자 사는 여자가 개를 지극히 사랑했는데 마을에서 개랑 여자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쑥덕대는 이야기였다. 3~40년이 지나도 사람들의 상상력은 변함이 없구나.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도 기억났다. 거기 아주 쇼킹한 장면이 있었지. 소설 같은 실제가 일어났다.

 

사람들이 나더러 시골에서 못 산다고 했던 게 기억났다. 익명성과 개인 생활이 보장된 곳에서 살아야 한다고. 이런 게 시골이구나. 아니 이건 지역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인간의 본심이란 또 인간의 말이란 그런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나야 환대하지 않는 곳에선 발의 먼지를 털고 나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럼 콩이는?

 

10일차. 결심

 

마음을 먹었다. 이제 더는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아침 7시 30분에 사료와 약을 먹이고 8시 미사 후 콩이와 산책을 했다. 오른쪽으로. 이제 윗집 개에게 간식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집을 지나치지도 않을 것이다.

 

저녁 6시 10분 콩이 사료와 약. 이제는 사료를 남기지 않고 세 스푼 먹는다. 오른쪽으로 나가서 또 오른쪽으로 산책한다. 콩이가 인도하는 대로. 밤이 되어 나가볼까 했지만 참는다.

 

15일차. 정리

 

이틀째 꿈자리가 뒤숭숭하다. 7시에 일어나 8시쯤 나갔다. 물그릇이 또 말라 있다. 콩이는 사료를 바꿔 물을 수시로 마신다. 그래서 소변도 자주 본다. 농로까지만 나가 소변을 두어 번 보게 하고 서둘러 돌아왔다.

 

8시 15분, 사료 세 스푼을 다 먹지 못한다. 필 에이드에 약을 섞어 사슴고기 후코이단 막대를 잘라서 하나씩 박아주니 잘 먹는다. 후코이단 막대 하나 더 주고 출근.

 

수업 후 오후 2시 30분쯤 집에 도착. 마침 아무도 없다. 물그릇에 물이 거의 없다. 그나마 있는 물도 먼지가 섞여 더럽다. 콩이를 차에 태워 동물병원으로 갔다. 의사 선생님께 상의했다. 엿새 전에 들은 이야기를 말씀드리자,

 

"모욕을 당하셨네요. 치료하지 마세요. 고마운 줄도 모르고. 얼마나 어이가 없으시겠어요. 그 정도까지 아니면 오늘 나온 약까지 제가 부담해서라도 치료하려고 했는데, 얘한텐 미안하지만, 그분은 치료의 의지도 없고 그런 분 도와줄 이유가 없어요. 손 떼세요. 급한 고비 넘겼구요. 이젠 얘 운이에요. 여기서 뭘 더 하시지 마세요."

 

"제가 남의 개한테 너무 과도한 애정을 쏟았나 봐요."

 

"그런 분들이 계세요. 지나치지 못하고. 대부분 보호자 분들이 나이가 많으시고. 그래도 (개에 대해서) 아는 분들은 아니까. 남의 집 강아지 데려오시는 분들이 종종 있긴 한데 그렇게 형편없이 대하시는 분들은 처음 봤어요."

 

원장님에게 구충제와 미용과 산책을 물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셨다. 내가 먼저라고, 내 일상에 지장이 있다고, 개보다 내가 더 중요하다고.

 

"치료 종료할게요. 제가 하는 겁니다. 이건 거부 사유가 됩니다. 죄책감 갖지 마세요."

 

"치료 종료 이유를 뭐라고 하실 건데요?"

 

"원주인이 치료 의지가 없다. 경과가 괜찮았으니 망정이지 IMHA가 위험한 병이고 경과가 안 좋았으면 개값 물어내라고 할 수 있어요. 다른 문제라면 무료라도 완결 짓고 싶죠. 저도. 그런데 이거는 굉장히……. 끊으세요. 할 만큼 하셨어요. 콩이는 어머니 아니었으면 벌써 땅 파고 있었을 거예요. 마음 단단히 드세요. 어머니 잘못 없어요. 잘못하신 게 하나도 없어요. 속상해 죽겠어요. 여린 거 아시고 그러는 거예요."

 

흑, 내 눈물은 울음이 되고 있었다.

 

"콩이가 무지개다리 건너면 어머니 보러 제일 먼저 올 거예요. 이거는 아니에요."

 

흑흑, 내 울음은 흐느낌이 되어 있었다.

 

"고맙습니다."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하고 병원을 나와서도 흐느낌은 그치지 않았다. 내 편이란 그런 것이다. 상황을 정리해주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자신이 책임져주는.

 

오후 3시 33분. 향적산 치유의 숲으로 갔다. 오르막길 양쪽으로 영산홍이 가득했다. '좋은 일만 생길 거야' 하얀 글자가 있었다. 글자 앞에서 차 안의 콩이가 날 보고 웃었다. 마지막 산책이 되겠지만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주인이 와 있을까 봐 초조했다. 다급히 집에 와서도 산책 없이 그냥 올라왔다.

 

저녁 6시 30분. 콩이에게 사료를 주니 먹다 만다. 약을 다 먹은 콩이는 내가 그냥 들어가자 의아한 듯 한참을 쳐다보았다. 미소 대신 지은 그 의아해하는 표정이 생생하다.

 

18일차. 향적산 구도(求道)

 

밤이 되고 어둠이 내리면 무서워서 바깥출입을 못 한다. 평소에는. 그런데 연말연시부터 수시로 밤 산책을 했다. 집 앞 농로까지 고작 몇백 미터지만 바깥에서 걸으면 숨을 깊게 쉴 수 있었다. 그때마다 멀리 향적산 중턱에 보이는 빛이 있었다. 향국암 불빛이 안도가 되고 고마웠다.

 

'저 멀리 깊은 산중에도 사람이 있구나. 누군가는 기도를 올리고 있구나.'

 

별빛 같은 그 빛이 나처럼 여겨졌다. 저 멀리 홀로 보이는 것만으로 '저기 있구나.' 생각하듯이, 내 글을 읽음으로 내 안부를 확인하는 소리 없는 사람들의 마음이 헤아려졌다. 그래서 떠나기 전에 꼭 한 번 가서 감사한 마음을 전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요사이 그 빛이 보이지 않았다.

 

'절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스님이 편찮으신가? 아니면 절이 문을 닫았나?'

 

주일에 성당에서 들은 부활 제4주일 말씀, 베드로전서 2장 20절 후반부부터 21절

'그러나 선을 행하는데도 겪게 되는 고난을 견디어 내면, 그것은 하느님에게서 받은 은총입니다. 바로 이렇게 하라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시면서,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여러분에게 본보기를 남겨 주셨습니다.'

 

미사 후 양초를 켜 봉헌했다. 콩이를 위해. 이날 오후에 콩이 병원 치료 종료를 집주인에게 전했다.

 

월요일 정오 즈음에 자동차를 타고 향적산으로 갔다. 벌써 오르막길 분홍 빨강 영산홍은 시들고 있었다. 가지만 앙상하던 은행나무에 연록색이 돋고 있었다. 지난 2월에는 거무튀튀하던 산에 분홍색 진달래와 철쭉이 피어있었다. 등반 한 시간만인 오후 1시 20분에 정상에 올랐다. 산 아래 저편은 꽃가루인지 황사인지 뿌옜다. 다시 능선을 타고 달려 큰 바위를 넘어 내리막으로 갔다. 왼쪽으로 300미터를 가파르게 내려갔다.

 

오후 두 시쯤 마침내 목적지인 향국암이 나왔다. 맑은 풍경소리가 들렸고, 가까이 내려가니 음악 소리가 들렸다. 두리번대다 사무실 입구로 가니 문이 열렸다. 재작년 말에 따끈한 호박떡을 주셨던 그 비구니 스님. 무척 반가웠다. 인사를 하고 들어갔다. 입구 오른쪽에 해수관세음보살 와불상의 자태가 아름다웠다.

 

스님과 마주 앉았다. 전구엔 이상이 없었다. 다만 물오른 나뭇가지에 잎새들이 울창해졌을 뿐이었다. 스님은 여길 떠나느냐고 물어보셨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연말연시에 멀어진 인연들에 대한 한 줄 요약과 주인집 개에 얽힌 이야기를 했다. 스님은 전생 이야기를 하셨다.

 

"내가 아무 잘못이 없는데 나쁜 일을 당하면 전생에 이런 업을 지어서 그걸 이생에서 받는구나 생각하고, 여기서 그걸 받아들이고 감사하면 그 업이 끊어집니다. 그렇지 않고 그것에 대해 계속 안 좋게 대응하면 그 업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돌팔매질과 몰매를 맞으셨던 부처님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두 시간의 독대 후 해가 기울어 일어서야 했다.

 

"스님, 전생까지 아니더라도 제가 철없던 시절에 말로 지은 잘못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한테 일일이 사과할 수 없으니 지금 받는 걸로 그 사과를 대신한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섯 시쯤 무사히 하산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주인집에 동물등록 소유자 변경 신고 방법 두 가지를 알렸다.

정부24와 관할 관청 방문. 그리고 콩이 상태와 경과를 최종 보고했다.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근데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2년 동안 내 소유가 아닌 개의 법적 소유주로 살았다. 그때는 내가 데리고 나간 산책에서 사고가 났기에 끝까지 책임지는 게 마땅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콩이 밥그릇엔 사료 유리너리 대신 번데기가 들어있었다. 스푼이 없어 손으로 사료를 퍼주자 여태 깔짝대던 사료를 허겁지겁 세 주먹이나 와작와작 먹었다.

 

다음 날 아침에도 물그릇은 말라 있고 밥그릇엔 사료 대신 말라붙은 밥풀이 있었다. 가슴이 아파도 만남에는 반드시 헤어짐이 있고 모든 인연은 언젠가는 끊어진다.

 

21일차. 동물등록 소유자 변경

 

아침 출근길에 물과 사료가 그릇에 있었다. 고양이 사료를 텃밭 옆과 집 입구 나무 아래 몽땅 쏟아부었다. 이다가 오래전 사 보내준 로열캐닌 포메라니안용 사료 남은 건 아끼고 쟁여두다 결국 곰팡이균 생겼을까 봐 음식쓰레기통에 부었다. 그래도 이다가 사준 헝겊 집은 플라스틱 개집 안에 있다.

 

퇴근길에 집보다 성당에 먼저 들러 기도 후 여주인과 함께 동물등록 소유자 변경을 했다. 동물병원을 알려주고 구충제도 먹이신다 하여 사다 드렸다. 원장님께도 만약에 콩이가 다시 병원에 오게 되면 잘 부탁한다고 인사드렸다.

 

오는 길에 새로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내가 이 집에 이사 올 때는 주인이 주말에만 온다고 했었다. 그래서 빈집에 개가 묶여있는 걸 보고는 와서 돌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수년간 주 몇 회 오는 주인 대신 내가 개를 돌봤다. 그런데 요사이 주인이 집에 너무 오시는 게 이상했다. 알고 봤더니 주 거주지를 세 주고 1층으로 아예 들어오신 거였다. 그럼 이제 내가 콩이 물과 사료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였다. 그동안 그것 때문에 어딜 가도 늘 불안했었다. 걸핏하면 개를 내게 주라는 장로님과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권사님 사이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개가 아프자 온정신을 그애에게 쏟아부었다. 상황이 달라진 걸 모른 채.

 

집에 와서 아침에 챙겨두었던 콩이 물품을 전부 내주었다. 가장 안타까운 건 약을 더 먹이지 못한 채 남은 투약보조제 여덟 캔이었다. 여주인은 내게서 받은 두 비닐봉지를 엉망진창인 마당 창고에 넣었다. 그리곤 먹던 초콜릿을 개에게 조금 주셨다고 했다. 초콜릿은 개에겐 독약인데 가뜩이나 아픈 개에게. 하지만 이제 나는 관여할 수 없다.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

 

다시 성당에 기도와 미사로 두 번을 더 다녀왔다. 일상이 시작되는 것처럼 보였다. 잘 지나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밤이 되자 울음이 터져 나왔다. 수위가 지나치게 높아지고 있었다. 그때 전화기가 울렸다. 상대방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만 6년 만에 새로 바꾼 전화기. 전화번호 바꾼 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기기변경 후 지우지 못하던 사진과 연락처 전송을 하지 않았기에 지금 내가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은 양손에 꼽는다. 그런 내게 전화가 왔다. 단단하고 단정하면서 확신에 찬 목소리. 덕분에 무사히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전달된 음악 '봄 내음보다 너를'. 콩이를 도와줬던 이들이 나를 돕는다. 나를 살린다. 콩이도 나도 이젠 어쩔 수 없이 각자 살아야 한다.

 

이렇게 해마다 몸살을 앓던 사월이 올해는 다른 힘겨움으로 지나간다.

부모님 기일마다 다른 일로 곡하며.

 

* 이 글은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 브런치스토리에 게재한 <다시 동거 일기> 일부입니다.

 

일곱째별-프로필이미지_202302.jpg

사회적협동조합 길목
삶의 작은 공간으로부터 희망을 함께 나누는 큰 길로 통하는 '길목'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
03175 서울 종로구 경희궁2길 11(내수동 110-5) 4층
손전화 010-3330-0510 | 이메일 gilmok@gilmok.org
계좌번호 | 출자금 - 하나은행 101-910034-05904(사회적협동조합 길목)
프로그램 참가비 - 하나은행 101-910034-06504(사회적협동조합 길목)
COPYRIGHT ⓒ 2022 사회적협동조합 길목 ALL RIGHT RESERVED.

Articles

1 2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