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수104

애나 렘키 저 - <중독을 파는 의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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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을 파는 의사들

 

애나 렘키 저, 2025, 오월의봄

 

 

 

의사는 병을 고치는 사람이다. 어쩌다 못 고치는 병을 만나면 더 악화되는 것을 막기라도 한다. 그래서 환자와 가족들로부터 감사와 존경을 받는다. 더러 생명의 은인이라는 칭송을 받기도 한다. 이들로 인해 의술은 인술이라 불렸다.

 

『중독을 파는 의사들』은 책이름부터 충격이다. 중독을 고쳐야 하는 의사가 중독을 팔아먹는다니. 이 책의 부제는 "의료시스템은 어떻게 우리를 약물 의존으로 내모는가"이다. 의사들의 양심이 잘못되어 중독을 파는 게 아니라, 의료시스템이 잘못되어서 의사의 처방이 결과적으로 중독을 지속시키거나 악화시킨다는 얘기다.

 

저자인 애나 렘키는 『도파미네이션』(2021)이란 책으로 국내에 알려진 인물이다. 『중독을 파는 의사들』(2016)은 그 책보다 먼저 출간되었지만, 한글 번역서는 2025년에 나왔다. 『중독을 파는 의사들』의 원제는 "Drug Dealer, MD", 즉 '마약상 의사'다. 미국에서 일부 의료인들은 수익을 위해 해악을 외면한 채 무분별하게 약물을 처방하고 있다. 의사들이 아무리 현실을 자각하고 자정 노력을 기울여도, 구조적으로 병든 시스템 안에서 변화를 일으키기 어렵다. 약물에 중독된 환자들이 단기간에 회복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는 "어떻게 의사들은 속았고, 환자들은 중독되었으며, 왜 멈추기 힘든가"로 되어 있다.

 

이 책은 미국 의사사회에 충격을 주었고 자정의 계기를 제공했다. 이 책은 부패한 시스템 속에서 환자의 통증을 덜어주려는 의사들의 마음과 중독에 대한 무지가 결합할 때,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가 나타나는지 생생하게 보고했다. 저자는 문제를 지적할 뿐만 아니라 해결책도 제시했다. 생생한 예화를 담아서, 의료 현장을 보고하는 책인데도 어렵지 않게 읽힌다.

 

저자와 번역자(장창현)는 미국에서 과잉 처방을 부추기는 요인들 상당수가 한국에서도 놀라울 만큼 비슷한 양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보고한다. 첫째, 한국의 정신과 외래 진료 시간은 상당히 짧은 편이다. 미국보다 더 짧고, 재진의 경우 10분을 넘기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시스템은 대화를 이어가기보다 신속하게 약을 처방하게 유도한다. 일상적인 진료 시스템이 약물로 치우치게 만들고 있다.

 

둘째, 한국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의존성이 있는 약물 처방에 관대한 경향을 보인다. 의존성과 남용 위험이 명확한 약물들의 처방에 대한 장벽이 낮다. 이 때문에 반복 처방과 다약제 처방이 흔하게 이루어지고, 이런 약물들이 유발할 수 있는 심각한 부작용은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다.

 

셋째, 한국은 '함께하는 의사결정'이 미약한 편이다. 환자와 가족이 약물의 위험, 이득, 대안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다. 질병과 예후를 공유하지 않는 문화가 있고,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환자들에 대한 보호적 관행이 있다. 이처럼 약물에 대한 접근이 쉽고, 부작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며, 제한된 협력구조가 작용하면, 약물 의존이 쉽게 형성되고 오래 지속되는 환경이 조성된다.

 

이 책을 번역한 사람들은 '중독성 처방약물에 신중을 촉구하는 의사들'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장창현을 비롯한 11명의 의사들이다. 중독성 처방약물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의사들이 함께 번역했다는 것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함께 의식한 문제에 대해 공동으로 대응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번역자들은 번역을 '충실하게' 했다. 책의 앞부분에서 '약물·약품 용어 정리'를 하고, 해당 약물이 기술된 곳의 페이지를 표기했다. 책 속의 여러 곳에서 독자들에게 생소한 의료 용어를 풀이하고, 미국 의료 문화에 낯선 독자를 위해 일부 표현들에 대해 상세한 해설을 덧붙였다.

 

이 책을 읽고, 한국의 의료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과 함께, 개별 환자들에 대한 의료 정보를 어떻게 보호 또는 공유해야 하는지에 대해, 신중한 의사결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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