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능력과 성과로 개인을 평가하는 사회에서 무너짐은 쉽게 개인의 문제가 됩니다. 충분히 노력하지 않아서, 자기관리를 못 해서, 혹은 마음이 약해서라는 식입니다. 이러한 외부의 시선이 내면의 목소리로 자리 잡으면 혼자 있어도 긴장을 풀 수 없게 됩니다. 무너지기 전까지 밀어붙이고 버티지 못한 순간을 자책하는 목소리가 24시간 내내 자가 발전기처럼 돌아가니까요. 이런 상태에서는 쉼도 회복도 일어날 틈이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회복력(resilience)을 개인의 능력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회복은 개인 내부에서 일어나는 독립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지치거나 흔들릴 때 그 상태를 설명할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지고, 그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어떨까요? 잠시 멈추어도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는 환경이 주어진다면요? 그 사람은 덜 헤매며 보다 안정적으로 자기를 되찾아 갈 수 있습니다. 이렇듯 회복력은 사회적 조건에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불안정한 조건 속에서는 자기 상태를 솔직하게 드러내기 어렵습니다. 불안정한 노동환경에서는 자신의 질병을 개방하지 않고 통증을 견디며 일합니다. 해고보다는 그 편이 나으니까요. 편견과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수치심 속에 살지 않으려는 분투이지요. 그러다 아픔이 익숙함이 되면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기 쉽습니다. 무력감이 고립으로 이어지는 안타까운 상황이 됩니다.
서로의 취약함을 성과로 환산하지 않고, 판단보다 경청을 우선하는 분위기. 설명되지 않은 감정,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도 머물 수 있는 자리.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계. 그 안에서 사람은 비로소 방어하지 않고 자신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회복은 개인이 얼마나 강한가가 아니라 얼마나 안전하게 약해질 수 있는가에 달려있습니다.
회복력은 결국 나를 든든하고 다정한 관계망 속으로 가져다 두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상담실을 찾는 내담자들은 상담 관계 속에 자신을 둘 수 있는 회복력을 지닌 분들입니다. 그 소중한 용기를 북돋아 주는 온기 어린 손길들, 사회적 회복력이 더해져야 하겠지요. 앞으로 더 많은 분이 심심 상담을 통해 안전하게 약해지는 경험을 하실 수 있길 바랍니다. 우리 사회가 누구든지 삶의 어느 순간에는 무너져도 괜찮은 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