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건전한 변화를 위해 매일 전진하고 있는 조합원
정유현 조합원

Q. 안녕하세요. 섬돌향린교회에 다니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다니게 되신 건가요?
2014년에 전도사로 시작을 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놀랐습니다!) 원래는 전도사로 교회를 다니다가 평신도로 계속 다니게 된, 흔치 않은 경우죠. 그러니까 2014년이 섬돌향린교회가 향린교회에서 분가한 지 1년째였는데 그때는 임보라 목사님만 목회자로 계셨어요. 그러다가 청년 청소년 어린이부를 맡을 전도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전도사 공채가 나서, 거기에 제가 지원을 했고 그렇게 섬돌향린교회에서 전도사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신학대학을 나왔고 원래는 전도사나 목사 이런 일을 하기보다는 신학이 너무 재미있어서 좀 더 아카데믹한 길을 가볼까 고민을 했었습니다. 학문적인 매력을 많이 느꼈던 거죠. 그래서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석사를 한 후에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제 은사님이시자 한국기독교연구소 소장님이신 김준우 교수님이 섬돌향린교회라는 곳에서 전도사를 찾는다고 하시면서 거기에서 한번 성장하는 기회를 가져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주셨어요. 제 꿈은 애당초 목회자의 길은 아니었어서 고민을 하다가 한번 경험하고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지원을 했던 거였습니다. 섬돌향린교회 홈페이지도 들어가 보고 임보라 목사님을 인터넷 검색으로 찾다 보니 내가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전도사를 하면서 여러 고민을 하다가 목회의 길은 제 길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지금은 다른 공부를 하고 있어요.

Q. 신학을 공부해서 교수가 되는 것을 삶에서 목표로 했었는데 다른 공부는 어떤 걸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렇게 방향을 바꾸게 된 계기가 있었겠지요?
섬돌향린교회에서 저는 주말에는 사역을 했고 주중에는 시민사회단체와 인권단체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거기에서 결혼 이주 여성을 지원하는 활동가로 활동을 하다가 정당 활동까지 이어졌습니다. 사회가 변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 운동도 필요하지만 정치 제도나 정치 권력이 바뀌지 않으면 사회 변화라는 게 상당히 느려질 수밖에 없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던 거에요. 그래서 녹색당에 가입을 했고 당직자로 들어갔습니다. 꽤 오랫동안 일을 하다가 지금은 공공정책대학원에서 정치경영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고 '민주시민교육포럼'과 '임보라목사기념사업회', 이렇게 2개의 단체에서 사무국장으로도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카데믹한 일을 지향하다가 정치경제나 정치경영을 공부하게 된 계기랄까 하는 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던 내용이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이게 그냥 믿음의 문제나 배움의 문제라기보다는 예수의 가르침을 사회 안에서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 것인가, 내 이웃들과 어떻게 사회를 바꿔 나가야 할 것인가 같은 고민을 하게 되었고 그렇다면 단순히 학교나 교회 안에 머물기보다는 좀 더 확장된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점점 사회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던 차에 섬돌향린교회에서 여러 경험을 하면서 사회 운동뿐 아니라 정치 운동을 해야겠구나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Q. 녹색당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정당 활동을 하셨다니 어떤 역할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녹색당에서는 조직팀장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조직을 관리하고 전국뿐 아니라 각 지역 17개 시도당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다가 사무총장이 되었어요. 그러다가 재작년에 정의당과 선거연합을 해서 후보로도 나갔습니다. 당시에 정의당과 녹색당이 선거연합을 해서 녹색정의당으로 함께 선거를 치렀고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를 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저는 이렇게 계속 정치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지금은 경험이나 인맥을 넓히고 배움을 쌓기 위한 숨고르기 시간을 가지고 있고요. 지난 10여 년간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큰 변화도 생긴 것 같습니다.
녹색당을 하면서 현실 정치를 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어쨌든 현재 집권 정당은 보수 양당들이니까요. 하지만 그들이 하지 못하는 녹색 정치를 구현하거나, 대변하지 않는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은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에 남아있기는 합니다만 자리매김하는 게 어려운 일인 건 맞습니다. 녹색당 자체적으로 의원이 당선된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요. 녹색당이 내세우는 기치에는 정말 동감하고 그래서 이런 정당이 우리나라에서 집권 정당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도 많이 합니다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한 게 안타깝기도 합니다. 한국처럼 급속도로 성장하고 자본주의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사회에서 녹색당이 뿌리내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대중들에게 얼마나 이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정당 같게 느껴질지는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저는 여전히 녹색당과 같은 정당이 한국에서 제1당이 되는 그런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제가 살아 있는 동안에 될까 싶지만요.

Q. 현재 참여하고 계시는 2개 단체에서 하시는 일은 어떤 일인지요?
요즘 하고 있는 일 중에서 '민주시민교육포럼'은 민주시민교육에 뜻을 품고 현장에서 민주시민교육을 일구어온 분들이 준비해오다가 2025년 초에 발기된 단체입니다. 한국에도 민주시민교육이 필수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민주시민교육을 법제화하기 위한 운동을 계속하고 계세요. 주로 교육 관련 백그라운드를 가진 활동가, 교육계에 계신 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민참여기본법이라는 이름으로 법이 발의는 되었고 법제화가 되면 본격적으로 전국적인 민주시민 교육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민주시민교육의 구체적 방향, 내용등을 하나로 정리하는 것이나 누구를 대상으로 할 것인지 등에 대해선 아직 논의 중이에요. 학교 교육에 포함되어 학생 때부터 민주시민 양성교육을 받는 것이 가장 좋을 테지만 학교 자체가 보수적인 면이 있고 교사들이 정치나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에 매우 민감한 부분이 있어서 제한점이 많습니다. 민주시민교육이라는 것이 학교 밖 시민에서 시작하여 학교 안으로까지 들어간다면 거시적으로 큰 변화이면서 의미가 있는 일이기 때문에 점진적인 확대를 위한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 포럼은 활동 회원이 50명 정도 됩니다. 저는 사실 참여하게 된 지 얼마 안 되어 지금부터 배워나가는 단계입니다. 인권 운동과 정당 운동을 하던 사람이라 교육 운동을 하고 배우는 부분에서 아직은 거리감도 약간 있는 건 사실입니다만,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폭을 넓혀 나가며 여러 운동들이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자는 생각에 배우는 마음으로 이 포럼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임보라목사기념사업회'는 임보라 목사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목사님의 생전의 뜻과 활동을 좀 더 확장하고 연결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하고 함께 연결해서 이어가자는 사람들이 모여서 추모사업회를 하자는 것으로 시작되었어요. 단순히 추모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목사님이 하신 활동을 연결된 우리 모두가 이어갈 수 있는 확장된 의미로 '사업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취지로까지 발전하여 '기념사업회'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2025년 4월 총회를 창립총회로 해서 시작했고 제가 지금 1인 사무국장을 맡고 있습니다.

Q. 길목에서 '청년플랫폼'을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설명을 부탁드려요.
우선 길목과의 인연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어요. 10년 전쯤 제가 한 인권 단체에서 일을 하던 때에 내부적으로 어려운 점들이 상당히 많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를 포함한 내부 활동가들이 공동으로 그 단체에서 퇴사를 하게 되었어요. 그런 일이 있다 보니 다들 너무 힘들었었고 그래서 단체로 상담을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알아보다가 길목에서 하는 '심심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 그때가 2017년이었어요. 프로그램을 통해서 10회인가 11회인가 상담을 받았는데 무료로 받을 수 있기도 했지만 저로서는 그 과정이 삶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중요한 계기이자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길목이란 곳이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조합원이 되고 제가 누군가를 지원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이긴 했습니다. 그러다가 고상균 목사님이 작년 총선을 앞두고 제게 길목 행사에서 진보 정당이 앞으로 어떻게 가야 될 것인가에 대한 발제를 부탁하셨어요. 제가 녹색당을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노동당 사무총장님과 발표를 했었는데 그걸 계기로 기독교 정체성, 정치 정체성, 그리고 청년 정체성 이렇게 세 개의 정체성을 가지고 활동을 하는 곳이 있나 살펴보니 없는 거에요. 그래서 한번 이런 모임을 해보자는 제안이 이루어졌습니다.
지난 내란 이후에 광장에 나가 내란 종식을 위해 목소리를 내었었는데 그 목소리들이 그냥 사라지면서 사회 내에서 발현이 되지 않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는, 사회 문제에 관심이 있는 청년들을 한번 모아보자라는 의견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을 무작정 모을 것이 아니라 소수를 모아 시작했습니다. 다들 학교를 다니는 분들이시니 학교 안에서의 혐오나 차별, 교회나 일터 안에서 편하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사회 문제들, 이런 문제들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대화를 해보는 장을 만들어보자 하고 있습니다. 지금 6~7명 정도 모인 상태입니다.
두 달에 한 번 정도 모일 생각이고 지난번엔 우선 처음 모였으니 맛있는 것 같이 먹으면서 서로 관심 있는 게 무엇인지, 학교 생활은 어떤지, 활동은 어떤 걸 하는지 등에 대한 얘길 나누었고요. 다음에 모일 때는 협력보드게임을 통해서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고 협력하는 방법에 대해 얘기해 볼 예정입니다. 앞으로 비폭력 대화 워크숍도 받을 예정이고요.
향린교회도 청년층이 많지 않은 데다 다들 공부하고 알바하고 하느라 너무 바쁜 게 사실입니다. 다들 모임에 대한 갈망은 있지만 모이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어떤 내용으로 구성해야 하나 계속 고민 중입니다. 책 모임이나 세미나는 많이들 하는 데다 머리만 채워나가는 활동을 하는 것보다는 다른 게 있지 않을까 논의 중이에요. 청년들이 예전처럼 한 모임에만 헌신하기보다는 여러 모임을 이동해가며 참여하는 분들이 많아지다 보니 이제 시작하는 '청년플랫폼'은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하나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있습니다. 이야기하다 보니 다들 배경은 다르지만 사회나 정치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공통점이 발견되어서 조금은 안전한 공간에서 안전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장이 되어야겠다는 방향으로 모아지고 있어요. 직장이나 학교에서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면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 내용을 확장시킬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 보자, 그렇게 조금 느슨한 형태로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모임에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10년 전에 길목에서 상담을 받았고 10년 후 여기에 뭔가 기여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것이 제게는 큰 의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분들이 지금은 6~7명에 불과하지만 직장이나 학교에서 활동을 해나가면서 다시 길목으로 돌아와 기여할 수 있는 지점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그 시발점이 지금 이 활동이었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가지고 있고요.

Q. 쉽지 않겠지만 상당히 좋은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요?
1년 계획은 이미 세워 두었습니다. 다른 모임에서 하지 않는 활동을 한번 시도해보자는 차원에서, 아까 말씀드렸듯이 보드게임도 하고 비폭력 대화 워크숍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지역 방문도 하기로 했어요. 지역에 청년들이 꾸리고 있는 시민사회 단체가 있다면 방문을 해보자는 의견이 있어서 여름쯤에 그런 곳을 찾아 방문하여 그곳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은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사회 운동으로의 확장은 어떻게 할 생각인지 등에 대해 연결점을 찾아보자는 목적을 갖고 해보려 해요.
또, 모인 청년분들이 본인들이 만들고 싶은 세미나나 강연을 기획해서 개최해 보려고 해요. 늘 누군가 만들어 놓은 세미나나 강연을 가는 참여자였다면, 이번에는 본인들이 하고 싶은 주제, 대상 등을 상상해서 기획안을 만들어오고 가장 표를 많이 받은 사람의 기획안으로 아마 가을쯤에 시도해 볼 것 같습니다. 그런 기획을 통해 사람들이 좀 더 유입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고요.
Q. 사실 최근에 어느 교회나 청년층이 줄어들고 있는 게 고민이라고 들었습니다. 향린교회에서의 청년 모임이 잘 되려면 고려해야 할 점이 많을 것 같습니다.
교회라는 곳이 사회의 속도에 민감하지 못하고, 받아들이려고 하지도 않고, 변화하는 것에 너무 게으른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수록 시대를 따라가고 발맞출 수 있는 청년분들의 목소리를 듣고 주체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고, 같이 뭔가를 만들어내야 하지 않나 싶은 거죠. 섬돌향린교회는 젊은 층 비율이 높거든요. 사실 꼭 신념까지 가지지 않더라도 소속감만 있다면 충분히 올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향린교회나 길목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니 이런 시도가 가능하지 않나 싶습니다.
솔직히 저는 큰 기대를 가지는 건 조심하고 있어요. 예전 세대들이 청년이 나서야지, 청년이라면 이런 걸 해야지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부터 내려놓아야 청년들이 모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 청년층은 상당히 거부감을 가지고 있거든요. 왜 우리가 나서야 하지, 왜 우리가 뭉쳐야 하지, 왜 우리가 꼭 신념을 가지고 공동체 생활을 해야 하지라는 의문이 저도 들거든요. 그래서 저는 지금 추진하고 있는 이 모임이 제가 그랬던 것처럼 청년층에게 삶의 전환기에 만날 수 있는 계단의 역할을 해주면 좋겠어요. 숫자적으로 6~7명이 20명, 30명이 되는 걸 원하는 게 아니라 소수일지라도 교회 안에서 단단하게 기독교 정체성을 가지면서도 원활하게 소통하고 연결될 수 있는 계기로 삼았으면 합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이분들이 다른 사람을 한두 명씩 더 데리고 온다면 그게 가장 큰 성과가 되지 않을까 하고요. 그리고 이렇게 모였던 분들이 나가서 또 비슷한 모임을 만들어나가는 식의 확장이 되면 더할 나위 없겠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앞으로 한 3년에서 5년 정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섬돌향린교회에서 전도사로 계시다가 평신도로 돌아오셨는데 교회 생활은 어떠세요? 아무래도 변화가 있겠지요?
확실히 향린교회 각 교회마다 특성이 다른 것 같아요. 섬돌향린교회는 그중에서 가장 자유롭기도 하고 가장 섬세한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나이대도 다양하고 성소수자, 비성소수자, 장애인이나 비장애인, 비인간 동물도 함께 어우러져서 그 다양성이 한 공간에 있다 보니 정말 많은 손길이 필요하거든요. 사실 목회자를 내려놓을 때 계속 다녀야 하나 고민을 했었는데 1년 정도 쉬다가 다시 다니니 목회자를 할 때와 비슷한 공동체를 함께 돌보아야 할 책임감이랄까 그런 게 있더라고요. 좀 더 편하게 교회를 다니고 있기는 하지만 (하하) 서로 살피는 일은 계속되어야 의미가 있는 생활인 거죠.
숫자가 적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고 그래서 어려운 일도 많지만 어디나 갈등 없는 공동체는 없는 것이고, 그래서 갈등을 잘 해결하는 공동체가 건강한 공동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쨌든 그 안에서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는 멤버들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런 분들이 지치지 않고 계속 역할을 해준다면 전체가 무너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런 갈등을 하나씩 함께 해결해가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도 쌓여가고 단단해지는 듯하고요. 임보라 목사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정말 힘들었지만 3년 정도 되니 서로 조금씩 마음을 추스르면서 주위 사람들도 돌아보는 상태가 된 것 같습니다.

Q. 마지막으로 향린교회에 대해 바라는 바가 있으실까요? 청년플랫폼 '이음-정' 사업과 관련한 이야기도 좋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계속 말씀드렸던 바와 연결이 될 것 같아요. 지금의 기성세대는 어느 정도 안정적인 기반도 갖고 있고 사회 안에서 운동도 하셨던 분들이지만 20대, 30대 분들은 기반도 약하고 지원도 없고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면이 있다 보니 보수화되고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저는 교회가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관심사를 편하게 나와서 나눌 수 있는 장소를, 그러니까 물리적인 장소라기보다는 어떤 장(공간)을 만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저 모일 수 있게 지원해 주시면 좋겠다 싶습니다. 물론 경제적인 지원도 필요할 거고 기타의 지원들도 필요하겠지만 우선은 기회를 제공해서 고립되지 않게, 연결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최우선으로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