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정102

가자의 절반뿐인 안녕을 채우는 일

제가 팔레스타인을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입니다. 사단법인 아디의 가자 지구 사업을 맡게 되며 시작된 인연은, 어느새 제 일상을 팔레스타인으로 가득 차게 만들었습니다. 아디는 아시아 분쟁 지역의 인권 보호와 존엄 회복을 위해 다양한 국가에서 활동을 수행하고 있는데, 현재 가자 지구에서는 현지 파트너 단체인 팔레스타인 여성 위원회 연합(UPWC, Union of Palestinian Women Committees)과 함께하는 식량 안보 및 심리 사회 회복 사업, 모금을 통한 구호 캠페인, 그리고 가자 지구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한 옹호 활동들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담당자로서 제 하루는 아디에서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가자 뉴스 브리프'를 위해 국내외 언론과 국제기구의 보고서를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하지만 매일 마주하는 뉴스는 현실과 언론의 격차를 뼈아프게 확인시켜 줍니다. 2025년 10월에 휴전안이 체결되었지만, '휴전'이라는 이름에 담긴 희망마저 빼앗으려는 듯 현장의 상황은 여전합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1,600회 이상 휴전을 위반하고 가자 지구에 대한 공격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아디가 뉴스 브리프를 통해 끊임없이 기록하고 알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국제사회가 '재건'과 '평화'라는 화려한 수사를 내뱉는 동안에도, 가자 지구의 주민들은 여전히 무너진 콘크리트 잔해 사이에서 오늘 하루의 생존을 협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가자의 식량 위기를 '만들어진 재난'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가자 지구로의 구호물자와 의약품 진입을 막는 이스라엘의 기술적인 통제와 의도적인 물류 고립은 가자의 주민들을 만성적인 영양실조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현재 가자 지구 인구의 64%가 빈곤 상태에 놓여 있을 정도로, 가자 지구의 빈곤율은 전쟁 이전과 비교해 최고 수준입니다. 이에 더해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의 물 공급을 의도적으로 차단하고, 농경지를 파괴하여 팔레스타인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최근 이집트로 통하는 라파 국경이 재개방되었지만, 실제로 국경을 넘어 치료받을 수 있는 환자는 극히 일부입니다. 휴전 협정에 따라 합의된 내용은 하루 50명의 환자를 이송하는 것이었지만, 실제 이송 인원은 그에 미치지 못합니다. 2월 2일부터 18일까지 3,400명의 양방향 통행을 목표로 합의를 진행하였으나 실제로 국경을 넘어간 팔레스타인 주민은 1,148명에 그친다고 합니다. 수천 명의 환자들이 전문적인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대기 중에 있으며, 4,000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18,500명 이상의 환자가 긴급한 의료 이송을 필요로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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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 긴급구호 4차 모금 캠페인을 통해 가자 지구 주민들에게 식량을 배분하고 있는 현지 활동가들

 

 

지난 12월부터 가자 지구에서 식량과 심리 사회 지원 활동을 전개하는 UPWC의 활동가들과 진행 상황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격주로 온라인을 통해 만나고 있습니다. 사업을 시작한 지도 석 달쯤에 접어드니 활동가들과 서로의 안부를 묻곤 합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라는 저의 물음에 한 활동가가 답했습니다. "반반이에요,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해요."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이 나쁜지 구체적으로 묻지는 못했지만, 그 한 문장에 담긴 가자 지구의 상황을 한참이나 헤아려야 했습니다.

 

그날 가자 지구의 활동가들은 데이르-알-발라에 위치한 사무실의 전기가 끊겨 태양광 발전기로 겨우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 반, 서둘러 회의를 마쳐야 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제 한국 이름을 재차 묻더니 한참 동안 아랍어로 이야기를 나누고는 저에게 팔레스타인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찰나의 유머와 온기를 나누는 그들을 보며 저는 화면 속 활동가들의 일상과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가자 지구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날은, 가자 시티에 있는 활동가가 사무실 밖의 풍경을 보여주었습니다. 한때 도시였다는 흔적만 남은 공간에 폭격으로 무너지거나 불에 그을린 듯한 건물이 늘어서 있었고, 건물의 잔해로 가득한 길을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그 잔해로 가득한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폭격으로 무너졌다는 사무실 벽은 어느새 고쳐져 있었고, 그 안에는 여전히 공동체의 회복과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폐허 속에서도 어떻게든 일상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가자 지구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매일 어둡고 차갑습니다. 하지만 제가 화면 너머로 목격한 것은 단순히 파괴된 풍경만이 아니었습니다. 무너진 벽을 다시 세우고, 태양광 발전기에 의지해 동료의 이름을 지어주며 웃음을 나누는 사람들. 그들은 비극의 희생자로 남기를 거부하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서기 위해 매 순간 고군분투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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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사회 회복 프로그램 준비를 위해 교육을 받는 현지 활동가들

 

 

지금 가자 지구는 라마단 기간입니다. 집단 학살이 시작되고 어느덧 세 번째 맞이하는 라마단이라고 합니다. 본래 라마단은 낮 동안의 금식을 통해 고통받는 이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해가 지면 가족과 이웃이 모여 음식을 나누는 환대와 축복의 시간입니다. 하지만 지금 가자 주민들에게 주어진 것은 선택한 금식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차단된 보급로와 파괴된 농경지가 강요한 굶주림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지금의 라마단은 단순히 종교적 의례를 지키는 시간을 넘어,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시도에 맞서 '우리의 공동체는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라는 것을 증명하는 저항의 시간입니다.

 

UPWC의 한 활동가는 올해 사업이 "여성과 아이들, 취약계층의 회복력을 강화하고 팔레스타인의 대의가 지워지지 않도록 지키는 곳으로 향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단호한 목소리를 들으며 저는 제가 담당하는 식량 안보 및 심리 사회 회복 사업의, 가자 지구 모금의, 그리고 여러 인도주의 프로젝트의 본질을 다시금 되새깁니다. 우리가 보내는 지원은 단순히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일을 넘어, 현지 활동가들이 쥐고 있는 존엄의 나침반이 흔들리지 않도록 곁을 지키는 연대의 표현이어야 함을 말입니다.

 

제가 마주하는 리포트들은 가자 지구의 주민들이 향하는 길이 얼마나 고단한지를 숫자로 증명하지만, 제가 화면 너머로 만난 활동가들의 웃음과 유머는 그 숫자가 결코 인간의 의지까지 가둘 수 없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리포트 속의 무력한 숫자들을 바꾸는 힘은 그들이 건네준 '절반의 안녕'에 응답하며 끝까지 지켜보고 함께하겠다는 우리의 약속에서 시작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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