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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9 - 뭔가 좋아한다면 이 정도는 되어야!

에피소드9

뭔가 좋아한다면 이 정도는 되어야!

영국의 시민단체 캄라(CAMRA) 이야기)

 

 

1

 

새해가 시작되었다. 2026년은 사회적협동조합 길목의 맥주 인문학 유럽투어 '맥투더퓨처' 시즌2를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는 해다.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1월 초반 기준, 올해....... 아 맞다! 지난해! 12월 첫 주에 시작했던 얼리버드를 통해 단 한 석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자리가 찼으니, 이변이 없는 한, 정말 감사하게도 시즌2는 예정대로 진행될 예정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방문했던 시즌1에 이어 이번 일정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를 찾아가려 한다. 그곳에서 꽤 오랜 기간 유럽 맥주의 종주국임을 자임했던 잉글랜드의 맥주 양조장,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증류소, 그리고 잉글랜드의 지배에 맞선 아일랜드인들의 자부심이었던 기네스 관련 장소들을 찾아가 한잔 나누려 한다. 여기에 켈트와 로마제국의 흔적, 영국의 식민정책, 그리고 잉글랜드의 침략에 맞선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투쟁사 등을 알코올 로드에서 재조명해 보려고 한다.

 

이 중 특히 힘줘서 가다듬고 있는 내용 중 하나는 영국 리얼 에일 펍 순례다. 시원함, 탄산감 등으로 대표되는 라거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도대체 이게 무슨 맥주람!'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실온에 가깝고, 탄산기가 거의 없는 영국 전통 에일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펍들, 이전에 가 봤던 곳들에다가 꼭 가보고 싶었던 곳들을 찾아 열심히 편성하고 있는 중이다. 이를 위해 가장 근본에 두고 보는 정보는 시민단체 캄라(CAMRA, Campaign for Real Ale)가 선정한 펍 정보다. 맥주에 관련된 시민사회단체라니, 세상에 이렇게 신박한 운동그룹이 또 있을까?

 

고상균-캄라가 인증하는 대표적 펍 중 하나인 런던의 블랙 프라이어. 이번 투어 첫 날 저녁 방문할 예정이다..jpg

 

고상균-캄라가 인증하는 대표적 펍 중 하나인 런던의 블랙 프라이어. 이번 투어 첫 날 저녁 방문할 예정이다..png

캄라가 인증하는 대표적 펍 중 하나인 런던의 블랙 프라이어. 이번 투어 첫 날 저녁 방문할 예정이다

 

 

2

 

2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의 펍에도 엄청난 변화의 물결이 밀려왔다. 그건 미국식 페일 라거의 범람이었다. 사실 영국의 전통적인 에일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지만, 자본의 입장에선 생산 단가, 유통과 관리비 등에서 까다로운 면이 많았다. 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실온에서 관리되는 특성상 펍에서 장기 보관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에 비해 아무렇게나 야적해도 되는 케그에 담긴 데다가 순식간에 시원하게 뽑아서 바로 낼 수 있는 미국식 라거는 자본에게 있어 모든 면에서 매력 만점이었으리라. 이런 배경으로 점차 대다수 펍에서 전통적인 에일이 사라지고 알루미늄 라거 케그통이 높다랗게 쌓여가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아쉬워하거나 '뭐 맥주가 다 그게 그거지' 정도로 반응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평소 무척이나 좋아하던 맥주가 사라지고 있는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던 네 명의 친구들이 있었으니, 기자나 신문사 직원과 같은 언론 관련 직업을 가지고 있었던 맥주 덕후 마이클 하드먼, 그레이엄 리스, 빌 멜러, 제임스 팔리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급속도로 사라져 가는 에일에 대해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하고 있던 1971년, 모처럼 맞춘 휴가일에 아일랜드 남서부 케리주의 딩글 반도에 위치한 크루거스 바(Kruger's Bar)에서 거나하게 한잔 걸치고 있었다.

 

아니, 우리가 에일 맛을 보려고 아일랜드 서쪽 땅끝까지 와야 한단 말이야? (투덜투덜)

그러게,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맞아. 소비자들이 모두 라거에 길들여지지 않았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당연하지! 우리가 맥주회사의 돈벌이를 위해 입맛을 바꿔야 한단 말이야? (투쟁!)

 

여기에서 네 친구들은 '영국 전통 리얼 에일의 보존'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에일 부흥 캠페인'이라는 단체의 출범을 함께 외쳤으니, 이 4명의 치기 어린 의기투합이 훗날 '캄라'라고 명칭을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는 위대한 시민단체의 시작이었다.

 

고상균-캄라 인증 마크.png

캄라 인증 마크

 

 

 

3

 

이들은 우선 영국식 에일의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정했다.

 

  1. 저온 살균이나 강제 여과를 거치지 않아 효모가 살아있으며, 통(Cask) 안에서 2차 발효가 진행될 수 있어야 한다.
  2. 기계식 이산화탄소 주입 방식이 아닌, 자연 발생 탄산만을 인정한다.
  3. 영국의 전통적인 '핸드 펌프'를 이용해 따라야 한다.

 

아울러 캄라는 라거의 홍수 속에서 경영난을 겪거나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쫓겨날 위기의 로컬 펍을 지키기 위한 캠페인과 함께 영국 내 거대 맥주회사를 상대로 에일 생산 유지에 대한 시민운동을 전개했다. 뿐만 아니라 정부를 상대로 맥주 세금 인하, 중소 양조장 지원, 펍 관련 법 개정 등을 요구하는 등의 강력한 시민운동을 벌여나갔다. 그 결과 궤멸적 타격을 입고 사실상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까지 몰렸던 영국 에일은 서서히 기사회생하기 시작했고, 2025년 현재 영국 맥주 시장 전체의 15% 선을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영국의 젊은 층인 젠지(Gen Z) 세대의 1/4이 자국의 전통 에일을 매우 선호한다고 답하는 등, 에일을 향한 사랑으로 뭉친 청년 4명의 도전은 굵직한 성과에 이르고 있다.

 

4

 

15만에 가까운 회원 수를 자랑하는 현재의 캄라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매년 8월 런던에서 '대영 맥주 축제(Great British Beer Festival)'와 같은 에일 알리기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또한 캄라에서 매년 발간하는 'Good Beer Guide'는 영국 에일을 사랑하는 전 세계 애호가들에게 하나의 경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고상균-굿 비어 가이드.png

 

 

언젠가부터 한국을 포함한 세계 이곳저곳에선 무엇에 빠져있다거나, 엄청 대단한 존재에 대해 '미쳤다'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곤 한다. 영국의 시민운동 단체 캄라는 맥주에 대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같은 '미침'이 다만 술 마시는 것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국정에 대한 시민의 직접 참여와 감시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되어 가시적 성과에 이르게 됨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뭔가 좋아한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다가오는 6월에 여러 참가자들과 함께 이들의 여정을 밟아 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레는 마음 한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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