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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가키 류타 저 -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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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이타가키 류타(2024)

도서출판 푸른역사

 

 

이 책은 두 인물로 인해 독자에게 놀라움을 선사한다. 하나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이다. 책 제목 그대로 김수경은 언어학자로서 북한 김일성대학의 교수를 지냈다. 다른 하나는 저자 이타가키 류타다. 저자는 일본인이지만 한글의 기원, 특징, 변천에 대해 신기할 정도로 해박하다. 그는 문화인류학자이자 역사학자이지만 한국어학자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한글의 특징과 역사에 대해 정밀하게 서술했다.

 

김수경 얘기부터 하는 게 좋겠다. 김수경은 1918년에 강원도 통천군(휴전선 이북)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0년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도쿄제국대학 문학부 언어학 강좌(대학원)에 들어갔으며, 1944년에는 경성제대 조선어학 연구실의 촉탁이 되었다. 그는 경성제대와 도쿄제대의 교수들로부터 언어학과 조선어사를 배우며 독자적인 조선어학을 구축해갔다. 그는 1945년 8월 서울에서 해방을 맞고, 1946년 8월에 북으로 넘어가 김일성종합대학의 창립 멤버가 되었다. 그는 소련의 언어학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면서, 북한 건국 초기의 언어학과 언어정책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남한에서는 국어에 두음법칙을 적용하지만 북한에서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勞動'을 남한에서는 '노동'으로, 북한에서는 '로동'으로 읽고 쓴다. 북한에서 이런 표기법을 정할 때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것은 김수경이 당 기관지 <로동신문>에 발표한 논문(1947년)이었다. 그것은 구조주의와 역사언어학을 이론적 기반으로 삼은 것이었다. 김수경은 1940~1960년대 중반 무렵까지 북한 언어학의 모든 분야에서 활약한 언어학자이자 언어정책 설계자였다.

 

1950년 6·25 전쟁 당시, 김수경은 단기 선무공작대의 일원으로 남파되어 활동하다가 1951년 3월에 구사일생으로 평양으로 귀환했다. 그러나 평양에 있던 가족은 전쟁 당시 남한으로 피난하여, 결국 김수경과 헤어져 살게 된다. 남한에 있던 가족은 1970년대에 캐나다로 이민을 가고, 김수경은 평양에서 재혼하여 새로 가족을 형성한다. 훗날 우여곡절 끝에 김수경은 헤어졌던 가족과 연락이 되어 하나둘 만나게 되지만, 같이 살지는 못한다.

 

저자 이타가키 류타는 한국어를 '우리말'이라 부른다. 그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조금 생뚱맞은 느낌이 들지만, 그 나름대로 이유를 붙이고 설득한다. 그는 자신의 연구 입장을 '비판적 코리아 연구(Critical Korean Studies)'라 부른다. 비판적 코리아 연구는 1945년경에 미국을 중심으로 생겨난 '지역연구(Area Studies)'에 대한 반작용이라 할 수 있다. 지역연구는 2차 세계대전 후 세계 각 지역을 여러 학문 분야의 연구자들이 모여 연구하는 경향이 확산되면서 전개되었다. 지역연구자들은 과거 세계사의 주변부에 있던 '제3세계'를 주목했고, 지역연구는 제3세계의 개발 정책 및 그와 연동된 근대화론과 맞물려 전개되었다. 결국 지역연구는 냉전 시대의 산물인 것이다.

 

이타가키 류타는 그런 지역연구에 대해 비판적인 의식을 가지고, 비판적 지역연구로서의 '비판적 코리아 연구'라 명명했다. 그것은 식민주의와 냉전이 남긴 틀의 재생산에 봉사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깨뜨리는 앎의 형태를 만들어 내려는 것이다. 식민주의적 사고, 냉전적 사고를 대체하는 비판적 지역연구를 시도하며 이 책을 쓴 것이다.

 

이 책은 독특한 구조로 편집되었다. 김수경의 생애를 중심으로 한 역사 서술과 북한의 조선어학에 대한 서술을 분리한 다음, 서로 교차되게 편집했다. 역사 계열의 장(제1장~제5장)과 언어학 계열의 장(Ⅰ~Ⅳ장) 들을 교차로 배열했다. 저자는 이런 방식을 '대위법적 평전'이라 불렀다.

 

이 책에는 기본적으로 일제 식민지에 이어 6·25전쟁을 겪은 이산가족 세대의 비극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조선어학자 김수경의 탁월함이 돋보이다가 김일성 독재체제의 강고함에 짓눌리는 답답함도 곳곳에서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북한에서 조선어가 정착되어가는 과정이 세밀하게 설명된다.

 

저자는 번역자들(고영진, 임경화), 김수경의 유족들, 그리고 각종 자료와 정보와 조언을 제공한 수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런 만큼 연구 대상을 매우 섬세하게 파고들어서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찾아내고, 그것들을 꼼꼼하게 정리해서 이 책에 담아냈다. 엄청난 열정과 집중과 헌신이 없이는 불가능한 작품이다. 작은 샘을 깊이 파서 온 동네 사람이 먹어도 부족하지 않는 큰 우물을 이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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