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을 수 있었다·살릴 수 있었다·밝힐 수 있었다
2025년 12월 29일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
반짝반짝
2025년 12월 21일 주일 오후 3시
2025년 11월 2일 모든 죽은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부터 매 주일 오후 3시에 거행한 무안공항 추모미사 여덟 번째, 해남의 나무 노래에 이어 유가족이 노래했다. 누나와 매형을 참사로 잃고 지난달 아버지도 병환으로 돌아가신 김세형이었다. 그의 노래가 한국작가회의에서 엮은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추모 시집 <보고 싶다는 말> 40편의 시 중에 있었다.
반짝반짝 아는 척 좀 해주세요
이원규
그대 갑자기 떠나도 떠난 것 같지 않아요
어금니 꽉 깨물고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아요
한겨울 아침 날벼락에
꽃송이 통째로 떨어진 동백꽃이여
일백칠십아홉 송이 송이 송이
마침내 일백칠십아홉 개의 별이 되었으니
밤하늘 바라보며 두 손을 흔듭니다
별빛 두 눈 반짝반짝 아는 척 좀 해주세요
밤마다 입술 깨물며 겨우겨우 잠이 듭니다
꿈속에서라도 못다 핀 동백꽃을 피워주세요
그대 갑자기 떠나도 떠난 것 같지 않아요
언제나 살아생전 그대로 그 모든 곳에 있어요
*
시인의 말
원래 추모곡 가사로 쓴 것이다. 희생자인 고故 김애린 님의 남동생 세형이는 싱어송라이터인데, 그가 한국화가인 아버지 몽피를 통해 가사를 부탁해왔다. 딸과 사위를 동시에 잃은 부모와 남동생의 슬픔 앞에 무력하기만 했다. 졸필로 겨우 써주니 곡에 맞춰 수정한 뒤 <반짝반짝> 노래를 완성했다. "밤마다 입술을 깨물며, 잠에 들 수가 없어" 후렴구를 듣다가 입을 틀어막았다.
미사 후 유족과 함께 참사 현장인 로컬라이저 앞으로 갔다. 좀 전에 노래했던 김세형이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진상규명을 원하는 세 가지를 설명했다.
첫째, 조류 충돌과 기체 결함. 조류 충돌해도 기체는 견딜 수 있어야 한다. 기체가 노후되어 조류 충돌을 견디지 못한 게 아닌지. 그러니 기체 파악이 우선이다. 둘째, 랜딩기어를 못 내린 채 한 동체착륙. 기체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기에 곡예에 가까운 비행을 했을까? 그도 지난달 필자가 추천했던 KBS <시사기획 창>을 언급했다. 셋째, 충돌한 로컬라이저 콘크리트 둔덕. (원래 로컬라이저는 부서지기 쉬운 경량으로 설치해야 한다.)
이어 평화바람 딸기가 설명을 이어갔다. 왜 조류 서식지에 공항을 지었는가. 그리고 새만금신공항 부지는 무안공항에 비해 조류 충돌 가능성이 650배 더 높은 진짜 위험한 곳이다. 뻔한 결말을 지켜볼 수 없어서 연대하면서 진상 규명하는 일에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했다. 평화바람은 지난 11월 2일부터 문정현 신부님과 함께 매주 군산에서 무안까지 장거리를 왕복하고 있다. 새만금신공항의 운명과 무안공항 참사가 별개일 수 없으니 진상규명은 남의 일이 아니다. 가덕도신공항 역시 마찬가지다. 참사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막을 수 있었다·살릴 수 있었다·밝힐 수 있었다
2025년 12월 28일 주일 오후 3시
그동안과는 달리 무안공항 2층 로비에서 무안공항 제주항공여객기 참사 1주기 추모미사를 드렸다. 문정현, 문규현 신부님 외 오십여 분의 신부님들과 함께 천주교 광주대교구 옥현진 시몬 광주대교구장님 주례로 미사를 시작했다.
"우리 모두는 1년 전 이곳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에 대해서 함께 기억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세월이 이렇게 빠릅니다. 온 국민이 계엄령 아래에서 내란 극복이라는 또 책임자 처벌에 온 관심을 쏟고 있을 때 유가족들은 떠난 가족들이 왜 떠났는지 진상규명을 외치면서 훌쩍 1년 세월이 흘러버렸습니다. 저희도 이곳에서 1월 18일 있었던 합동 위령제 이후 마음과 관심을 내란 종식에 온통 쏟느라 유가족의 고통에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부터 또 다른 아픔 이 시대의 고통에 대해서 귀 기울이고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참사를 맞은 영령을 위해서는 하느님의 위로를, 또 가족들에게도 위안을 청하면서 이 미사 때 함께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옥현진 시몬 광주대교구장님의 강론은 사고 개요와 정부 발표와 유가족 상황 정리로 시작되었다.
"(상략) 유가족들은 생업을 포기하고 현재까지 무안공항 2층에서 사고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토부가 이를 조사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 국무총리 산하에 독립적인 외청에 이관하여 진상 규명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배지를 수단에 아직까지 달고 다닙니다. 그것은 아직도 제 마음 안에서 원인에 대한 진상규명이 안 되었고 희생당한 사람들을 아직 편히 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앞으로 제 수단 자락에는 무안공항에서 참사를 당한 또 다른 배지가 달리게 되었습니다. 무안공항에서 일어난 제주항공 참사를 기억하지 않고 진상규명이 되지 않는다면 어딘가에서 또 반복될 수 있습니다.
(중략)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사회적 참사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깨어있는 시민으로서 진실규명의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연대를 통해 유가족의 아픔에 동참해 주십시오. 유가족의 요청대로 정부는 진상규명을 완수해 주십시오. 책임자에게는 엄중한 책임을 물어주십시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가안전시스템 전반을 전면적으로 강화해 주십시오.
(중략)
누군가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어머니와 아버지, 아들과 딸, 손자 손녀가 다시는 우리 곁으로 돌아와 만나고 손을 잡을 수는 없지만,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희생자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함께 기도했으면 합니다. 주님, 제주항공 2216편 희생자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유가족들에게는 당신의 한없는 위로를 주소서. 아멘."
3시 30분이 되자 공항 옆으로는 로컬라이저까지 도보 순례 행렬이 이어졌다.
영성체를 모신 후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협의회 김유진 대표가 단 위로 올라왔다.
"2024년 12월 29일은 정말 맑은 일요일 아침이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살려달라는 기도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대신 손가락 하나라도 챙기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사람이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작고 가장 낮은 기도였습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던 우리 부모를 자식을 형제를 우리는 감히 눈으로 또 입으로 인사하지 못했습니다. 흰 천 위에 놓인 몸을 손으로 더듬고 만지고 손으로 작별해야 했습니다. 매일 안아주시던 그 따뜻한 품은 차갑게 식어있었고 굳어버린 몸을 연신 끌어안으며 제 체온으로 덮여보려고 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국과수 기록에는 이렇게 남아있습니다. 고도 탄화, 갈비뼈 전체 골절, 다발성 손상, 복합 다리 골절, 이것이 국가가 기록한 저희 가족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지난 1년간 제가 알게 된 진실의 전부입니다.
사과도 0건, 책임도 0건, 구속도 0건.
지옥에서나 당할 고통 속에 돌아가신 건 우리 가족의 죄 때문입니까? 제가 유난히 불운한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저희 가족은 너무나 평범했고 성실했고 평생 교회에 헌신하며 살아온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회사에서 10년 장기근속 보너스를 받은 것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간 효도 여행이었습니다. 경기도에 사는 제 동생이 무안공항으로 내려온 것도 부모님을 좀 더 편하게 모시려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죄가 있어서 십자가를 지신 게 아니었습니다. 불운해서 죽임당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십자가는 죄 없는 이가 무책임한 세상 속에서 억울하게 죽임당했다는 사실과 이 세상의 폭력과 방치 앞에서 침묵의 부당함을 알리는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고 하느님께 울부짖으셨습니다. 오늘 저희 유가족이 똑같이 외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버려두십니까? 하느님과 여러분을 향한 마지막 절규입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 책임의 시작은 기억하는 것입니다. 수천 년간 우리가 십자가에 기억하는 것은 고통받는 이들 곁에 서는 신앙이고, 억울하게 죽임 당한 이들의 편에 함께 서는 신앙입니다. 말이 아닌 동행으로, 연민이 아닌 연대로 이 고통을 함께 나눠주십시오. 이 무거운 십자가를 저희들에게 혼자 지게 하지 마십시오. 이 고통이 분노로 끝나지 않게 하시고 이 상처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게 해주십시오. 진실이 밝혀지게 하시고 책임이 외면되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와 같은 죽음으로 누군가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게 해주세요.
(중략)
고통 속에 있는 유가족들에게 하루뿐의 위로가 아니라 오늘 이후 우리의 삶에 동행을 약속해주시길 정말 간곡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유진 대표의 절규는 군중의 울음으로 번졌다. 그렇게 11월 2일부터 매 주일 이어온 미사가 끝났다. 그간 1층에서 매 주일 미사를 준비해 온 평화바람과 친구들은 맨 뒤에 묵묵히 앉아 있었다. 두 달간 매주 울린 나무의 연주와 노래도 이날은 들을 수 없었다. 그 옆으로 막을 수 있었다·살릴 수 있었다·밝힐 수 있었다 세 문장이 가벽에 붙어 있었다.
오후 5시가 되자 1층에 분향소가 차려졌다. 유족들은 희생자들이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을 제상에 올려놓고 절을 했다. 또다시 오열이 공항을 채웠다. 다시는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이들을 향한 사무친 그리움과 통렬한 억울함이었다. 그렇게 1주기 전날이 깊어갔다.
일 년 후 그 시각
2025년 12월 29일 월요일 오전 9시 3분
이른 아침, 무안공항 로컬라이저가 보이는 참사 현장 앞으로 갔다. 2024년 12월 29일 09시 03분. 광주광역시 85명, 전라남도 72명, 전라북도 6명, 경기도 5명, 경상남도 1명, 동남아시아 2명, 제주 2명, 승무원 6명. 총 179명이 산화한 둔덕은 마치 무덤처럼 보였다.
오전 9시가 되자 해남의 나무가 고동을 불었다. 그리고 유영 신부님이 위령미사를 시작했다. 평화바람과 친구들은 철책 앞에 서 있었다. 흑미가 이원규 시인의 추모시 <반짝반짝 아는 척 좀 해주세요>를 낭송함으로 미사를 마쳤다. 그 직후 경비행기 두 대가 머리 위로 날아갔다. 둘 중 한 대는 해양경찰 항공기였다. 주변에 훈련하는 비행기들이 하필 사고 시각에 맞춰 부주의하게 하늘 운전을 한 듯했다. 땅 위에는 군데군데 '진실의 길' 표식이 있었다. 진상규명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슨 진실을 말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같은 날 오후 세 시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1주기 유가족과 함께하는 추모미사
서른네 분의 신부님이 흰 국화꽃을 들고 입장하셨다.
송년홍 신부님이 사과로 말씀을 시작하셨다.
"작년 12월 29일 오늘, 이곳 무안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가 착륙 중에 폭파하는 장면을 지켜봤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왜 그런 참사가 발생했는지 규명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당연히 책임자는 하나도 처벌되지 않았습니다. 부모와 자식 그리고 친구를 잃고 울고 있는 유가족들만 남아있습니다.
먼저 죄송합니다. 늦게 와서. 진즉에 와서 위로와 연대 활동을 해야 했는데 늦어서 죄송합니다. 늦었지만 오늘 우리는 이 미사 중에 유가족들에게는 위로를, 희생자들에게는 하느님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고 또 참사의 진실이 밝혀져서 책임자가 응분의 대가를 받고 더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계기가 되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연대와 공감의 마음을 주시라고 이 미사 중에 함께 기도합시다."
강론 역시 송년홍 신부님이 하셨다.
"안녕하십니까? 이 자리에서 안녕하십니까 하고 묻는 게 좀 그렇지만, 그래도 우리는 안녕해야 끝까지 싸웁니다. 작년 12월 29일 주일 아침, 교중 미사를 준비하던 중에 이곳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비행기가 착륙하던 중에 폭발하던 장면을 보았습니다. 무슨 영화의 한 장면인 줄 알았습니다. 마치 세월호의 마지막 장면이 스쳐 갔습니다. 또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주 나쁜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윤석열과 그 내란 집단이 혹시나. 참담한 생각이 스쳐 갔습니다. 그렇게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는 제 머리에서 지나갔습니다. 179명이 사망한 사건을 보았으면서도 무관심하게 넘어갔습니다. 그해 12월 3일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하고 국회가 해제하고 4월 4일 윤석열이 탄핵 될 때까지 온 정신과 마음은 내란사태 극복이었습니다.
(중략)
우리 전주교구는 또 새만금 해수유통과 신공항 반대 때문에 이곳에 와서 유가족 이야기를 들을 정신이 없었습니다. 지난 11월 30일 이곳에 와서 미사를 드리기 전까지는 작년에 일어난 이 참사가 해결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정부도 정치권도 언론도 모두 조용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와서 보니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었습니다. 모든 사회적 참사가 그렇듯이 그 참사의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대책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왜 제주항공 여객기가 동체착륙을 하고, 활주로를 이탈해서 로컬라이저가 달린 철근콘크리트 둔덕을 들이받았는지 또는 어떤 비행기의 결함이 있었는지 등등 사고의 진실이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듣기로는 블랙박스는 미국에 보내졌고 조류 충돌과 비행기 결함보다는 기장의 조종 실수로 몰아가고 있다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유가족들이 조사위에 참여하지 못하게 막고, 1년이 지났는데도 사고의 진실은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이러니 책임자를 색출하고 그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아무도 처벌되지 않습니다. 재발방지대책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오송지하차도 참사 등등 수많은 사회적 참사를 지내왔습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를 보았습니다. 이때마다 처음 던지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정부는 어디 있었나, 정부는 무엇을 했는가.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작년 이 참사 때는 애석하게도 정부가 없었습니다. 무정부 상태였습니다. 12월 27일 최상목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 참사가 나고(……) 6월 3일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질문을 던집니다. 정부는 어디에 있었는가.
(중략)
국가는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아무리 대행이라고, 새로운 대통령, 새로운 정부라도 179명 국민의 목숨에 대한 책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노력해야 합니다. 유가족과 국민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공명정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합니다.
여기 무안은 민주당의 텃밭입니다. 그런데 미사 때 국회의원, 시의원, 도의원 한 명 없었습니다. 대신에 광주에 있는 군사공항 이곳으로 옮긴다고 합니다. 무안공항의 정상화만 생각하고, 여기서 저 찬 바닥에서 지내고 있는 유가족에 대해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곳이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작년 참사에 대한 정확하고 공명정대한 진상규명이 있어야 됩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사람들 속이고 거짓으로 조사하거나 국민이나 도민과 유가족을 편 가르는 식으로 내쫓으려고 한다면 작년 무안공항 참사는 계속 기억하고 행동하고 투쟁해야 하는 우리 일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권에 요구합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하며 유가족과 시민 모두가 인정할 만한 공명정대한 참사의 진실을 먼저 밝히시기 바랍니다.
민주당에게 요구합니다. 광주군공항 이전을 통해 무안공항을 정상화할 것이 아니라 조류 충돌과 콘크리트 로컬라이저 같은 사고원인에 대한 정확한 조사 그리고 진상규명이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을 먼저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한 다음 공항을 정상화해도 늦지 않습니다.
저 자신에게도 또 우리에게도 요구합니다. 우리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 참사의 진실이 밝혀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도 밝혀진 것이 없고 책임자 규명도 없고 대책도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유가족에게 죄송합니다.
지난 2014년 세월호 리본을 달고 그랬던 것처럼 여기는 파란 리본입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연대입니다. 기억하고 행동하고 잊지 않는 것은 함께하는 것입니다.
내리는 비를 피하라고 우산을 받쳐주는 것이 아니라 쏟아져 내리는 비를 함께 맞아 주는 것입니다.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함께하는 것이 연대입니다. 성탄 시기에 함께하는 것은 하느님의 연대입니다. 하느님은 더럽고 추잡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십니다. 부자고 귀하고 안락하고 편안한 곳에서 태어나시는 게 아닙니다. 무안공항에서 천막을 치고 진실규명을 외치는 저 유가족들 가운데 예수님께서 태어나십니다.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시는 것은 우리 인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구원을, 사랑을 또 하느님의 해방을 펼쳐 보이기 위해서는 우리의 손과 발과 몸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무안공항을 떠나지 못하는 유가족들에게는 우리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살아계시는 하느님처럼 유가족 옆에서 함께하고 연대하고 행동합시다."
영성체를 모신 후 특송 순서가 있었다.
해남의 나무가 김광균의 시 <은수저>에 곡을 붙여 노래했다.
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기 앉은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
유가족의 밥상에도 식구가 없다. 수저 끝에 마르지 않는 눈물이 흐른다.
이어 참사로 누나와 매형을 잃은 김세형이 말을 이었다. 두 달 동안 매주 미사에 함께했던 나무에게 감사를 전하며 박수를 부탁했다. 그리고 참사 얼마 후 이원규 시인의 시로 만든 <반짝반짝>을 노래했다.
그대 떠난 것 같지 않아
어금니를 꽉 물고 살아보려고 하네
한겨울 밤 하늘 보며 손을 흔들어
아는 척 좀 해 줘요 내 두 눈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져 금방 나아지겠다고
사실 약속은 없었어 나는 지킬 수가 없어
막을 수가 없어 멈출 수가 없어
밤마다 입술을 깨물며 잠에 들 수가 없어
막을 수가 없어 멈출 수가 없어
밤마다 입술을 깨물며 잠에 들 수가 없어
막을 수가 없어
그의 노래에는 심장을 조여오는 애통함이 있었다. 막을 수가 없어, 그렇게 그의 노래는 끝이 났다. 하지만 밀려오는 슬픔은 막을 수가 없었다.
전날에 이어 김유진 유가족 대표가 단상에 올랐다. 전날처럼 탈진에 가까운 오열을 할까 걱정되었으나 이날은 애써 진정한 상태를 유지했다.
"오늘 가장 힘든 날 이렇게 함께해주신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이번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로 희생되신 희생자 김덕원, 정선숙 님의 딸이자 김강헌 님의 누나인 유가족 대표를 맡고 있는 김유진입니다. 저희 가족은 정말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참사로 가족을 잃었다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 옆에서 기도해주시던 어머니 아버지 동생이 내 형제 자녀 우리 가족들의 기도가 멈췄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멈춘 세상을 상상해 본 적 있으십니까? 매일 누군가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얼마나 따뜻하고 얼마나 행복하게 살아왔었는지 기도가 멈춘 후에야 우리는 이것들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부디 저와 저희 유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저희 유가족들은 어찌 보면 사는 것보다 살지 않는 것이 더 편하게 고통을 멈출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할 만큼 힘듭니다. 저희 유가족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살아낼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 저희를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와 함께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날만의 기억이 아니라 앞으로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의 기도를 위해서 같이 기도해주시고 지켜주시길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유가족 법률지원단 김성진 변호사의 연대 발언이 있었다.
"이번 참사는 분명히 막을 수 있었습니다. 태국에서 작년 29일 4시 29분에 이륙을 했습니다. 여기 있는 무안공항 관제소와 8시 54분에 처음 교신을 했습니다. 그리고 57분에 조류가 있다는 경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58분에 기장님이 조류를 발견하고 착륙을 멈추고 복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58분에 조류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엔진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만약에 무안공항에 조류 관리가 잘 되었다고 하면, 조류 퇴치가 제대로 되었더라면, 관제에서 조금 더 정확하게 조금 더 빨리 조류에 대한 경고를 해주었더라면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류가 들어갔을 때 그 항공기가 정상적으로 운행할 수 있도록 설계가 되었더라면, 정비가 되었더라면 막을 수 있었습니다.
기장님은 복행을 해서 활주로에 동체착륙을 시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무안공항의 둔덕과 충돌했습니다. 그런데 그 둔덕은 철근콘크리트로 지어졌습니다. 모든 공항은 이탈 사고가 있기 때문에 부러지기 쉬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무안공항에 있는 로컬라이저는 철근콘크리트로 만들어졌습니다. 몇 번이나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로컬라이저를 만들 때도 문제 제기, 개항 후에도 문제 제기, 매년 안전점검을 하고 그 둔덕을 없앨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그때 단 한 번이라도 발견하고 개선했더라면 이 사고는 분명히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1년이 지났습니다. 단 하나의 진실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유가족들은 1년 동안 진상규명의 시간이 아니라 제대로 된 기관에서 해 달라고 요구하느라 1년이 지났습니다. 둔덕은 국토부의 잘못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고를 조사하는 사고조사위원회는 국토부 소속입니다. 책임 있는 국토부 소속에서 그 사조위가 어떻게 자신의 상급 기관을 제대로 조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전문성도 없었습니다. 9명의 조사관에 불과했습니다. 737-800에 대해 경험 있는 분들이 안 계셨습니다. 중간에 유가족 질문에도 제대로 답변도 못 했습니다. 결국 그러한 사조위 진행으로 1년이 지났습니다.
경찰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179분이 돌아가셨는데 현재까지 단 한 명도 영장 신청, 검찰 송치 조치 못 했습니다. 그리고 경찰은 떳떳하게 이야기합니다. 본인은 항공 사고에 전문성이 없기 때문에 사조위의 결론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무능을 너무나 떳떳하게 이야기합니다.
경찰은 수사기관입니다. 누가 잘못했는지 형사처벌 할 대상을 찾는 기관입니다. 경찰은 그 전문성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수사하면 됩니다. 그런데 매우 소극적으로 수사에 임했고 현재까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은 진상규명에 책임 있는 두 기관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해서 현재까지 밝혀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저기 뒤에 있는 쉼터가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국정조사가 진행됩니다.
그런데 국정조사가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이 모든 것이 밝혀지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관심 갖고 기도해주셔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기도를 잘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 참사로 조금씩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같이 많이 기도해주시고 유가족분들이 빨리 평화를 찾을 수 있도록 많이 위로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마침내 문정현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그동안 전라북도의 새만금 간척사업. 해서는 안 될 일 33.9km 방조제로 해수유통이 되지 않아 작년 잼버리, 그 갯벌에 수변도시, 조력발전, 태양광 발전 그리고 수라갯벌에 국제공항을 만든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미군기지 확장입니다. 새만금 바다 가로막아서 결국 미군기지 확장을 한다. 우리 정부가 미쳤죠. 역대 대통령이 다 미쳤어요. 새만금신공항은 조류 충돌 위험성이 무안공항보다 610배가 높아요. 어마어마하죠.
그래서 무안공항을 찾아와보니 아- 저 텐트, 그리고 유족들을 뵙게 됐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요. 그래서 매 주일 오후 3시에 광주교구 신부님 몇 분과 함께 미사를 봉헌했는데 어제 광주대교구 시몬 신부님께서 미사를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미사를 봉헌해줍니다.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만, 아쉽기도 합니다.
1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가 이 큰 참사에 얼만큼 마음을 두었고 힘을 보탰는지 생각하면 예수님께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고통 받고 소외되고 탄압 받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말씀에 비춰볼 때 너무 늦었지 않나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갑니다. 천막은 남아있습니다. 유족들은 홀로 남아있습니다. 고민입니다. 유족들의 뜻이, 아니 세상을 떠난 분을 되살릴 수는 없죠. 하지만 그분들이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여러분, 오늘 이후 어떻게 하면 유족들과 함께해서 힘이 될까 하는 것을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여기 오신 분들께 드릴 말씀은 아닙니다만, 더 깊은 뜻을 가지시고 앞으로 함께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딸과 사위를 무안공항에서 잃고 얼마 전 남편을 병환으로 여읜, 김세형의 어머니 임정임 글라라 유가족협의회 이사가 발언했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도 되지 않고,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1기 유가족협의회가 물러나면서 5월에 2기 협의회가 생겼습니다. 오늘이 1주기지만 그날에 머물러 있고요. 많은 슬픔을 안고 있고 전남경찰청, 전남도청, 송정역 등에 1인 시위를 나가서 목청껏 외쳐 보지만 지치게 되는데, 어느 참사나 보면 종교단체에서 움직여주시더라고요.
추석 즈음이었어요. 민주당은 아예 오지도 않고 소수 정당과 단체에서 위로해주는, 너무 많이 외로운 상황에서 문정현 신부님과 새만금 식구들이 방문하셨어요. 그래서 '신부님 저희 미사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말씀드렸어요. 문정현 신부님께서 '늦어서 미안하다', 유영 신부님도 '늦어서 미안합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정작 저희가 받아야 할 사과는 국토부나 나라에서인데요.
광주교구 신부님 중심으로 11월 위령성월부터 오늘까지 10회 미사를 드렸어요. 매번 7~8명의 신부님 중 문정현 신부님, 문규현 신부님까지 오셔서 미사를 집전해 주셨어요. 매번 유족들이 천막과 사고 현장으로 다니느라 바쁜데 평화바람 팀들이 솔선수범해서 미사와 현장 안내를 해주셨어요. 정말 감사드리고 힘이 많이 됩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박수 한 번 쳐 드리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두 달간 군산에서 무안까지 와서 매주 미사를 준비하고도 전날 미사에서는 맨 뒷자리에서 아무도 몰라주던 평화바람 식구들이 박수를 받았다. 일 년 동안 소외되었던 유가족들은 알고 있었다. 누가 1주기 행사를 위한 발걸음이고 누가 진심으로 유족과 함께하는지를.
강복기도로 두 시간 가까운 미사가 끝나고 1층 분향소와 현장으로 발걸음이 흩어졌다. 그들 중 부산에서 6시간 걸려 운전해 온 가덕도신공항반대시민행동 김현욱 집행위원과 반려견 탈핵이가 있었다. 이틀간 다녀간 발걸음 중에는 제주제2공항성산읍반대대책위원회 박찬식 공동집행위원장과 故 김용균 엄마 김미숙 님도, 故 이한빛 아버지도, 세월호 유족도 있었다. 참사를 막으려는 이들과 사회적 참사 유족의 연대는 가녀리게 이어지고 있지만, 참사는 멈추지 않고 있다.
이렇게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1주기 유가족과 함께하는 추모미사를 마쳤다. 이제 내년, 당장 다음 주부터 이들 곁에 누가 있을까? 정부의 진상규명보다 앞서는 무안공항 정상가동 바람 앞에서 유가족들의 쉼터(라고 할 수 없는) 천막은 언제까지 공항에 있을 수 있을까? 179명, 그 억울한 죽음의 진실은 언제 밝혀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