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지99

도움의 얼굴들

당신을 통해

사랑이

내게로 왔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마운 사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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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섬에 들어올 때 나에게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고마운 사람이 있다. 그는 나와 같은 모 교회 출신인데 말을 나눠본 기억은 없다. 그저 서로 이름과 저절로 알만한 것들, 정도를 아는 사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그의 말을 전해 주었다.

 

"안부를 묻길래 섬에 들어갔다고 했더니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달라고 하대."

 

다들 "거기가 어디야" " 왜 가?" "놀러 가도 돼?" 정도의 호기심 일색이었는데 그의 말은 묵직하게 내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낯선 삶을 시작하는 나에게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누군가 등 뒤에서 지그시 웃고 있는 듯한 다정한 느낌을 주었다.

 

교회 재정이 어떻게 되는지 사례비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교인이라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언제든 도울 준비를 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나를 든든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후 상황이 어느 정도 파악된 후에 그에게 전화했을 때 그의 첫 마디는 "오래 걸리셨네요."였다. 그건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었고 도움을 청하는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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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있으면 사람들과 단절된 것 같지만 또 다른 색깔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더구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니 이미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서도 새로운 면모가 드러난다. 사실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어색해서 이런 과정 없이 사람 만나는 것을 선호했는데 이곳에 와서는 결국 하나님의 손길도 사람을 통해 온다는 것을 알고 무장해제를 할 수밖에 없었다.

 

도움을 매개로 만나게 된 사람들, 그 가운데 오랜 내 이웃이 있다. 은퇴하고 무료하게 지낸다는 말이 생각나 전화를 해서 말했다.

"언제든 와요, 여기 정말 좋아."

 

그녀는 그러겠다는 말은 없이 알았다고만 했고, 한참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교회 여신도회장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교회에서 바자회를 했는데 수익금 중 일부를 보내주려고요. 여기저기 나누느라 많지는 않아요."

 

나는 갑자기 그러는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교회가 교회를 생각하는 마음이 고마워서 계좌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며칠 후 내 이웃에게서 전화가 왔다.

"회장한테 전화 왔지. 그거 내가 추천한 거야."

 

아마 그녀는 내 초대를 도와달라는 의미로 해석했던 것 같다. 거기에 생색까지 내야 했던 얄팍한 수가 씁쓸했다. 그 후로 나는 여기 이야기를 묻기 전에는 하지 않는다. 혹시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어느 날은 예전에 섬기던 교회 장로님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교회 이름과 계좌 좀 알려주쇼."

"이런 고급 정보를 왜요?"라고 답신을 보냈더니 바로 전화가 왔다.

- 내가 7년 반을 있었던 곳이고 이분은 좀 편하게 통화하는 사이다.

 

"이번에 교회에서 선교 지원 사업이 있어서 추천하려고 하지."

"왜 그런 생각이 드셨어요?"

"왜는 왜여, 불쌍하니까 그러지."

"왜 불쌍해요?"

"아니 그 먼 섬에서 혼자... 꼴랑 교인이 둘이담서."

"그게 어때서요. 저희 안 불쌍해요. 하나님이 계시는데."

.

.

.

나는 이분의 열렬한 돕는 마인드를 진정시키고 설득하는 데 한참 걸렸다.

 

이야기가 우울한가. 이런 일이 있기도 하다.

오래전 일인데 교회 로비에서 교인 한 분이 나를 보더니 반갑게 손짓했다. 교통사고를 당해서 허리가 접히듯 굽었지만, 표정은 늘 밝고 웃음이 있는 소녀 같은 어르신이었다. 다가갔더니 귓속말처럼 가만히 말했다.

 

"내가 돈을 좀 주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

"그럼요, 주세요."하고 두 손을 내밀었다.

 

그분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돈을 꺼내 내 손에 얹어주며 말했다.

"삼만 원이야."

 

나도 나직이 물었다.

"근데 이거 왜 주세요?"

"몰라, 나도. 그냥 주고 싶어서."

 

우리는 깔깔 웃었고 그 순간 적막한 로비에 퍼지던 유쾌한 기운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저 주고 싶으니 줄 수 있었던 그분의 순수한 마음이 이쁘고 지금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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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생각한다. 왜 같은 도움인데 온도가 다르고 느낌이 다를까. 왜 고맙기도 하다가 또 부담스럽고 불편해지기도 하는 걸까. 그리고 조금은 알 것 같다. 도움은 너무나 연약하고 애처로울 만큼 예민해서 감동을 잘 받기도 하지만 그만큼 상처받기도 한다는 것을.

 

도움은 물질의 나눔만이 아니다. 당신 존재의 결이 드러나는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부디 신중하시길. 그러나 너~무 신중하다가 미루지는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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