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만국가 : 노동 희소 사회, 알바 공화국을 위해
저자 우석훈 | 레디앙 | 2024.11.25
일전에 일본의 '후퇴론'에 대한 책소개 말미에 2024년 3월 길목 월례강좌 "천만국가. 최후의 방어선..-대한민국 저출생 위기"에 이어진 우석훈 박사의 저서를 소개하마 약속했었다. "천만국가 : 노동 최소 사회, 알바 공화국을 위해"는 한국에서 '후퇴론' 논의를 본격적으로 여는 책이다.
우리나라는 급속한 인구 감소와 고령화, 지방 소멸 등 일본의 경로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특히 인구 감소 문제의 경우 2018년 출생률 1.0 이하로 내려간 이래 반전 없이 오늘날 0.6명대까지 주저앉은 상황이라 아직 출생률 1명대를 방어 중인 일본에 비해 훨씬 심각하다. 지속된 출생아수 급감과 인구 구조의 변화로 인하여 앞으로 한국경제는 다이내믹을 상실하고 지속가능성에 상당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현 추세대로라면, 20년 후 우리나라의 연간 출생아수는 정부의 낙관적 기대인 15만 명 선보다 훨씬 적은 10만 명 선에 이르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여기서 10만 명 x 기대수명 100년 = 천만국가라는 가설이 등장한다. 경제학의 잠재 성장률처럼 일종의 잠재 인구 같은 개념으로 연간 10만 명의 출생아수 유지를 최후의 보루로 삼자는 뜻이다.
"천만국가는 현재의 합계출산율에 극적인 변화가 오지 않는다고 할 때, 설정할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시나리오다." (315쪽)
인구 천만 명이라는 숫자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천만 내외의 인구로 구성된 경제인 스위스나 북유럽 국가들은 작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효율성, 다양성 그리고 사회적 협동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 진짜 문제는 인구가 지금의 5천만 명에서 천만 명으로 줄어드는 '속도'와 이 과정에서 발생할 사회적 붕괴이다. 팽창과 성장 그리고 경쟁에 중독된 한국이 코앞으로 다가온 축소사회에 어떻게 적응해야 피해를 최소화하고 강소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까?
저자는 한국 사회가 '자본 희소 사회'에서 '노동 희소 사회'로 넘어가는 전환점에 서 있다고 진단한다. 다시 말해 과거 한국은 사람은 넘쳐나고 돈(자본)이 부족했던 시기였기에 사람을 '갈아 넣어' 성장했지만, 이제는 사람이 귀하고 노동력이 부족한 '노동 희소 사회'로 진입했다. 현실에서 사람이 귀해졌는데, 한국의 문화와 사회 시스템은 여전히 사람을 '값싼 소모품'처럼 대하는 낡은 문명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일종의 문화 지체가 청년들로 하여금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게 하는 원인 중 하나다. "아이를 낳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가족을 만드는 것 자체가 무서운 나라가 됐다." (59쪽) 어린이들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노키즈존'의 급증에서 보듯이 어린이들이 장난치고 노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희소성이 높아지면 더 귀하게 대접받아야 하는데, 반대로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고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의 미래가 과연 밝을까?
저출생과 고령화, 인구 감소의 문제는 모두의 문제이지만, 사실 아무의 문제도 아닌 구조적 특성을 지닌다. 어떤 문제가 너무 많은 사람에게 관련되어 있거나, 너무 광범위하고 복잡하며 장기적인 문제라 공동의 책임으로 느껴질 때, 개개인 차원에서는 그 문제에 대해 행동하거나 해결하려는 의지를 갖지 않고 무관심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20년 넘게 출생률 감소라는 국가적 문제를 논의하고 관련 예산을 퍼부었어도 뚜렷한 효과 없이 출생아 수는 급격히 줄었고 노키즈존은 늘어난 것이 현실이다.
"모두의 문제는 아무의 문제도 아니다. 결국 이게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의 본질이다." (324쪽)
이 문제를 풀어나갈 뾰족한 수도 없고, "무자식 상팔자"를 주장하는 젊은이들을 설득할 방법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아진 대한민국'이 생존하려면 어떤 체질로 변해야 할지 방향은 강구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우선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문명으로 전환해야 한다. 노동력이 귀해진 만큼, 노동자에 대한 대우와 임금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밖에 없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 어쩌면 노동 희소 현상 자체가 인구 구조의 전환을 가능케 하는 거의 유일한 조건일지도 모른다.(236쪽) 둘째, 우리가 이미 걸어가고 있는 '상속자들의 공화국'에서 돌이켜 '알바들의 공화국'으로 향해야 한다. 부모의 재력을 물려받은 '상속자'들만 잘사는 나라가 아니라, 맨몸으로 일하는 비정규직이나 플랫폼 노동자, 아르바이트생(알바)도 존중받고 가정을 꾸릴 수 있는 경제 구조(알바들의 공화국)를 만드는 것이 지금 한국에서는 사회 정의다.(277쪽) 셋째, 출산 및 교육 인프라를 국가 기반 시설 혹은 지역 필수 시설로 인정하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다면 국토의 절반이 육아 사막이 될 것이고, 그럴수록 출생아수 감소는 더 빨라질 것이다. 일단 서울/수도권 중심주의에서 탈피하자. 서울/수도권에 사람과 물자가 쏠리는 현재의 방식으로는 '천만국가' 시대에 지방 소멸과 국가 경쟁력 약화를 막을 수 없다.
후손들에게 작지만 정의롭고 행복한 나라를 물려주길 원한다면, 무엇보다 사람이 귀한 대접을 받는 사회로 시스템을 완전히 뜯어고치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제안에 공감하면서도 마음 한켠이 씁쓸하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자는 당연한 주장이 자본의 논리에 밀려 늘 뒷전으로 밀려나는 냉혹한 사회에 아직 머물러 있음을 상기해서이기도 하고, 인공지능과 로보틱스로 인한 일자리 충격이 가늠되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부디 우리 사회가 질적 전환 또는 질적 개선의 길로 들어서서 '정해진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인구 감소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연착륙에 성공하길 고대한다. 절망적인 상황을 잘 성찰하여 행복과 낙관을 이야기하고 실천하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