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승미98

타인을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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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는 제목부터 '다름'을 전면에 내세우고 이야기를 진행한다. 육식주의자라는 생소하고 보편적인 정체성을 가진 줄도 모르고 있던 대다수의 독자에게 부여하며 시작하는 것이다. 채식주의자가 있기 전까지, 육식주의자들은 스스로가 육식주의자인 줄도 모르고 살았다. 헤게모니란 그런 것이다. 있는 줄도 모르던 것. 구태여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 우스꽝스러운 것. 누군가 신경증적으로 다름을 표현하지 않으면 의식할 수조차 없는 것.

 

이는 비단 식이지향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과격하게 말하자면 문학 내 당연한 미학에 반대하는 헤게모니 싸움이다. 『채식주의자』는 저 외로운 줄만 아는 나르시스틱한 남편이 곪다 터진 제 아내의 상처를 이해하지 못하고 영혜를 불가해한 그로테스크로 타자화하는 이야기다. 『몽고반점』은 숱하게 섹슈얼 코드로 사용된 몽고반점을 소재로 익숙한 구도의 예술가-뮤즈 구도를 비틀며 팜므파탈적 뮤즈인 영혜를 환자로 재위치한다. 『나무 불꽃』은 이름 없이 역할로만 호명되는 여성에게 발언권을 부여해 그저 영혜와의 서사적 대립이 아닌 완전하고자 노력하는 여성상을 구체화한다.

 

이 3부작을 대표하는 이름이 채식주의자인 이유를 (단순히 첫 작품의 제목이 그러했기도 하지만) 이제껏 제대로 명명되지도, 다뤄지지도 못했던 숱한 '영혜'를 새롭게 감각하고자 한 노력의 묶음으로 오해해보려 한다. '갑자기' 미쳐버려 이해할 수 없게 된 여자는 사실 애초부터 당신과 친밀했던 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고발과 불가해한 끌림과 여지를 주는 팜므파탈이 단지 신묘한 묘령의 여성이 아니라 환자였을 수도 있다는 문제 제기, 한껏 대상화되어 모두가 포기해버린 '영혜'라는 이름의 여자를 끝끝내 돌보고 싶었던 무명의 화자, 언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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