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진심을 다하는 청년
지승미 조합원

Q. 대학생이라고 들었습니다.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요?
말씀하셨다시피 저는 지금 대학생입니다. 4학년이고요.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인턴 프로그램에 들어가 있습니다. 미국 장로교에서 청년리더십 발굴 목적으로 YAV (Young Adult Volunteer)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건 미국 장로회에서 청년을 지원하기 위해 진행하는 봉사 인턴 프로그램입니다. 지원했더니 선발이 되었어요. 한국 참가자 3명과 미국 참가자 2명이 한 그룹으로 묶여 있어서 서로 언어도 가르쳐주고 신앙 얘기도 나누며 지내고 있습니다. 9월 한 달 동안은 갈등관리와 평등 관련 교육 등을 받았고 10월부터는 연관된 다른 기관 5개, 그러니까 EYCK, KSCF, 고난함께,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인권센터 등의 기관과 연계하고 있어요. 저는 이 중 기독교환경운동연대에서 인턴십을 하고 있습니다.

Q. 향린교회는 어떻게 알고 오게 되신 건지요? 특별한 동기가 있었을까요?
저는 가족과 친척 모두가 교회에 다니는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고등학생 즈음부터 10년 정도 교회에 다니지 않았는데요. 과거엔 종교의 영적 체험이 신앙의 중심이라 여겼으니 자연스레 무신론이 마음에 설득력 있게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니 결에 맞는 교회를 찾으면 되었을 것을 그때엔 교회 자체가 저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컨대 자기 수양보다 사회정의를 위해 발로 뛰는 게 적성에 맞았던 거죠.
종교적인 갈증이 크게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탄핵 집회를 다니게 되면서 변화가 생겼어요. (탄핵 집회가 많은 사람을 변화시켰네요. 웃음) 당시에는 집회 다니느라 바빠서 이것저것 신경 쓸 여력이 없었지만 다 끝나고 4월 4일 선고가 난 다음이 되니 오히려 너무 힘들어지는 거에요. 한 챕터가 넘어가서 좋기는 했지만, 갑자기 이 다음부터 어떻게 하지, 내가 이제 뭘 해야 하지, 라는 생각에 마음이 많이 공허해졌습니다. 마침 금요일이 선고라 다음날 토요일에 잔치를 한다고 하는데 도저히 못 가겠더라고요. 제가 살고 있는 삶은 하나도 안 바뀌었는데 뭔가 엄청난 변화가 있는 것처럼 그러는 게 와 닿지 않았어요. 저는 탄핵 이전이나 이후나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죠. 제겐 끝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축하하는 자리에 가는 게 선뜻 내키지 않았습니다.
집회하다가 '청년예수' 깃발을 많이 봤었어요. 집회할 때는 교회에서도 이런 데 나오는 곳이 있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지나쳤고 사실 향린교회는 아예 몰랐었어요. 70년이 넘은 교회인데 전혀 모르고 있었던 거죠. 명동성당은 알아도 명동의 향린교회는 몰랐거든요. (웃음) 깃발을 검색해보고 나서야 그게 향린교회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멀지도 않고 해서 한번 가볼만 하다 싶었고 마침 일요일이라 와 본 거였어요. 왔더니 한문덕 목사님이 처음 본 저를 엄청 반겨 주시면서 교회에 등록하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하시는 거에요. (웃음) 지금 저희 담임 목사님이신데 늘 편하게 대해주셔서 항상 감사한 분이세요. 그렇게 여길 다니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그날 설교가 너무 좋았습니다. 제가 이전에 교회 다닐 때 갈증을 느꼈던 부분이 이런 거였구나, 라는 걸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신앙이 사회와 맞닿아 있는 게 저한텐 정말 중요했던 것 같아요. 신앙과 삶이 떨어져 있는 걸 못 견뎌한 게 아닌가. 그런데 향린교회 설교를 들어보니 설교 중에 세상 돌아가는 소리를 해도 되는 거였네 라는 해방감이 느껴졌어요. 저는 신앙이라는 것이 제가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영향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니면 신앙을 가질 이유가 있을까요. 이게 하나의 신념인 건데 신앙을 가지면서 삶에 밀착하여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어서 너무나 감동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교회에 등록할 결심을 할 수 있었습니다.

Q. 향린교회를 다녀보니까 어떠세요. 처음에 생각한 것과 비슷한 느낌이신지요?
너무 좋습니다. 향린교회에 처음 나왔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뭐랄까, 굉장히 민주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새날청년회란 신도회 대표로 목회운영위원회에 파송되어 있는데, 목회운영위원회가 향린교회에서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큽니다. 왜냐하면 예산 결의도 하고 앞으로 목회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실무자 중심으로 결정하는 곳이거든요. 게다가 여기 들어오려면 그냥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라 신도회의 경우 2/3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가능합니다. 이게 장로 선출에 준하는 기준이라고 들었어요. 그만큼 목회운영위원회가 교회에서 중요한 의사결정 자리라는 거죠. 그런데 사실 저는 나이도 어리고 교회 나온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의견을 내면 너는 교회 나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잘 모르지 않냐, 어리지 않냐 그런 소리를 할 수도 있을 텐데 여기선 그런 말이 전혀 없어요. 교회라는 곳이 원래는 참 보수적인 곳임에도 향린교회에선 그걸 느낄 수가 없는 거에요.
한 예로 지금은 교회에서 공동식사할 때 채식 식단을 따로 준비해 주시는데 이전엔 아니었어요. 저는 육고기를 먹지 않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인데 교회 와보니까 고기반찬도 있고 비건식도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어요. 근데 뭐, 어딜 가나 단체식은 그러니까 저만 잘 선택해서 먹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저한테 맞게 골라서 먹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교인 분이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셨나 봐요. 향린공동체 생태정의 공동선언문의 '일곱째, 우리는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동물 학대와 공장식 축산을 반대한다.'를 근거로 공동식사에 비건식을 따로라도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의견이었다고 해요. 이후 빠르게 의견이 반영되어 지금은 채식 식단이 함께 제공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교회 안에서는 일리가 있다, 합리적이다 하면 발화하는 사람이 누구든 간에 의견을 받아주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고 이게 전 정말 좋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공동체가 어디 있겠어요. 이렇게 열려있는 공간이면 충분하다 생각해요.
교회에서 새날청년회 활동도 하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신도회이고 연령대별로 묶어놓은 건데 원하는 교인들과 신도회 구분 없이도 관심사를 중심으로 소모임 같은 걸 하곤 해요. 부서가 9개 정도 있습니다. 성평등부, 사회부, 봉사부 등 각자 소속된 부서에서 하는 부서 활동을 소개할 때도 있고 우리 부서에서 뭘 하는 데 같이 하면 좋겠다, 라는 제안도 하고 그래요. 서로 교류하면서 관심 있는 부분들을 배워나가는 부분이 재미있습니다. 재적인원은 30명 정도이고 정기적으로 나오는 사람은 10~15명 정도에요. 이건 다른 얘기긴 한데, 요즘은 신입 교우들이 많이 늘었고 주로 20~30대 위주로 들어온다고 해요.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물어보면 대부분 탄핵 집회 덕분이라고 답하세요. (웃음)

Q. 환경생태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지요?
제가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어요. 학교에 가면 점심시간이 제일 좋았습니다. 책을 읽을 수 있으니까요. 제가 99년생이라 고등학교 때쯤 인스타그램 이런 게 생겼는데 도대체 그걸 어떻게 쓰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웃음) 그땐 점심시간에 도서관에 가서 집에 가져가 읽을 책 3권을 고르는 것이 하루의 즐거움 중 하나였어요. 주로 소설을 읽었고 특히 SF나 추리소설 같은 장르소설을 많이 봤습니다. SF소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도 사실은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미래를 얘기하지만 현재를 얘기하는 거죠. 예를 들어, 로봇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야기라면 이면에는 현재의 불평등과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는 겁니다. 안드로이드는 사람이 아니지만, 사람으로서 대해줘야 할 마땅한 것들을 얘기하는 식이죠. 같은 맥락으로, 동물이나 자연생태계, 물건도 당연히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게 아닌가, 제 안에 이런 생각이 많아졌던 것 같습니다. 동물이라 해서 우리가 마음대로 포획하고 노획해도 좋은 존재는 아니다, 우리가 환경을 마음대로 사용하게끔 누구도 허락하지 않았다, 저는 여기에 동의한 적도 없다, 등의 생각을 가지게 하는 데에 영향을 많이 주었습니다.
신앙적으로는 향린교회에서 민중 신학 공부를 하고 있는 것도 연결 지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병무도서관에서 청년들 대상으로 '안병무 읽기', 그러니까 안병무 선생님의 저서들을 읽는 모임이 있어요. 지금 저희는 <민중신학을 말한다>를 읽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민중 신학에서 얘기하는 오클로스와 라오스라는 개념이 제게 많이 와 닿았습니다. 확장할 수 있는 범위가 상당히 넓어서 안병무 선생님도 오클로스를 노동자와 같은 하나의 집단으로 등치시키는 걸 지양하셨다는데 상당히 좋은 신념이라고 봐요. 그래야 유연성을 가지면서 여성이든 자본이든 노동이든 환경이든 접목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공부도 환경에 대한 관심을 넓혀가는 일환이 되고 있습니다.

Q. 요즘 대학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이런 부분에 있어서 의견이 많이 갈리지요?
동물권이나 페미니즘, 정치 이슈 등은 사실 학교의 열린 공간에서 말하기는 좀 어려운 상황입니다. 탈정치화와 백 래시(back lash)도 심하고요. 왜 그럴까를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자본에 대한 얘길 안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불평등한 자본 분배, 그러니까 내가 노력해도 계급 변동이 쉽지 않고 그 노력이 나의 미래에 영향을 못 준다는 것에 대한 무력감 때문에, 자기 삶이 너무 힘든 나머지 다른 사람의 힘듦을 생각 못 하게 되고 결국 쉽게 지배할 수 있는 그룹, 예를 들어 여성, 이주민 그룹이 될 수 있겠지만, 에 분노가 몰리는 것이라고 일차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자본주의가 약속한 무한성장 사회라는 것이 거짓된 계약이라는 게 이미 다 탄로가 났고 이걸 알았다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해선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이런 것에 대한 인정이 쉽사리 안 되는 데에 원인이 있을 수 있고요. 전 세계적인 경향에 이르렀죠.
청년세대에서 양극화가 가속화되는 이유 중 하나는 SNS라고 봅니다. SNS는 어쨌든 장시간 사용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알고리즘을 통해서 자극적인 내용을 지속적으로 보게 만들죠. 중간 지점이 없어요. 예를 들어, 살짝 우파인 사람들이 있다고 하죠. 우파 정도가 1~5중 1 정도로 약한 사람이 있다면 이분은 어떨 땐 우파적인 성향을 띄다가도 또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좌파와 의견을 같이 할 수도 있는 사람인 거죠. 이런 사람에게 그것보다 강한 극단적인 우파적인 내용을 계속 보여주면 그 부분이 왜곡되고 강화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렇게 해서 중간이 없이 양극단으로 몰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게 필터 버블로 이어지는 거죠. SNS에서 끊임없이 쏘아주는 편향된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내용을 계속 보다 보면 그 버블 안에 갇혀서 한 방향으로만 치우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의 경우 계속 여성이나 성소수자, 외국인 등과 관련한 부정적인 내용이 올라오니까 이들에 대한 혐오감이 그냥 일반적인 상태인 것처럼 생각되는 거죠. 막연히 이게 우리 평균이구나 라는 강한 합리성을 장착하게 되는 거고요. 우리는 모두 다른 SNS 피드를 보고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모두 같은 내용의 신문으로 세상을 봤지만, 이젠 개개인의 성향에 따른, 각기 다른 내용의 조간신문을 실시간으로 읽는 세상입니다.
따라서 현 상황이 그저 특정 지정 성별, 세대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현재 양극화의 본질은 다양성에 대한 포용력에 있습니다. 자신의 세계관 바깥의 존재를 일순 두려워할 순 있지만, 거기서 그치는 사람과 이해할 수 없더라도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의 차이인 것이죠. 저도 생물학적인 여성으로 태어나서 처음 트랜스젠더의 개념을 접했을 때엔 많이 생소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름의 고충을 들으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고 무섭다는 생각도 자연히 없어졌습니다. 향린교회는 1층에 '모두의 화장실'이 있지만 대부분은 화장실이 남녀로 나뉘어 있고 성별 이분법적인 사회에서 트랜스젠더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하려고 해도 마땅한 장소를 찾을 수 없는 지경에 놓이게 된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최재천 교수님도 말씀하셨죠, '알면 사랑한다'. 다소 안온한 구호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다양성에 호기심을 갖되 이를 판단하지 않는 자세로 알아가는 것, 이것이 유일한 왕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환경이나 생태와 관련해서 교회 이외에서 하는 활동이 있을까요?
대학생 기후행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건 연합동아리라서 캠퍼스별로 지부가 있는데 저는 서울연합지부에 속해 있어요. 주로 '배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관심이 있어서 오긴 했어도 각자 아는 바가 다 다르기 때문에 기후에 대한 서로의 지식수준을 맞춰가는 다양한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걸 기반으로 소소한 캠페인도 하구요. 저희는 학교에 있으니까 학교 차원에서 일회용 컵을 모아서 전시를 한다든가 비건 페어를 한다든가 하는 거죠. 비거니즘이 결국 기후와 연계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관련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은행, 그러니까 대안 은행인 빈고에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빈고는 2008년 빈집이라는 '여행자들의 공산주의'를 실험한 공동체에서 이어졌는데요, 용산 해방촌에서 시작해 빈마을이란 이름으로 확장되었고, 주거뿐만 아니라 금융도 대안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실험으로 빈마을금고라는 걸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게 변화를 거쳐 현재의 빈고가 되었죠. 빈고는 기본적으로 잉여를 '사양'합니다. 빈고에 출자한 사람은 출자금의 이자를 '사양'하고, 빈고는 이용자(공유 자본을 이용, 즉 대출하는 것이죠)의 이자를 '사양'합니다. '사양'의 원리로 남는 잉여는 누구도 가지려하지 않죠. 즉 무한히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 자본의 논리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빈고의 잉여, 자본이 마땅한 이익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멸되고 있는 셈이니까요. 이익은 본질적으로 착취적입니다. 잉여가 발생했다는 것은 즉 교환 시 누군가 손해를 보았다는 뜻이니까요. 따라서 빈고는 잉여를 축적해서 빈고의 크기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모르게 착취한 곳에 마땅한 몫을 돌려주고자 합니다. '지구분담금'이란 이름으로 팔레스타인 해방, 여성 해방, 사드 철회 등의 다양한 연대체에 기여를 공유하는 의미로 이 잉여를 '돌려줍니다'. 제가 '돌려준다'라는 표현을 고수하는 이유는, 수입이란 곧 원래의 주인인 자연과 모든 생명으로부터 탈취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이런 공동체적인 활동에서 길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리영희 선생께선 지식인은 인식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신념과 지조로 산다고 하셨습니다. 실천적 지식인으로 살아야 한다고요. 그래서 이런 활동들이 제겐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어머니께서 항상 말씀하셨던 게 다 같이 잘 살아야 한다, 웃어주는 게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포용하는 게 더 낫지 않겠나, 라는 것이었어요. 이 말씀이 저한테 영향을 많이 준 것 같습니다. 적어도 살면서 세상을 나쁘게 하지 않는 방향으로 활동하며 지내야겠다,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Q. 향린교회에 바라는 바가 있을까요? 길목에 관해서도 얘기해주면 좋겠습니다.
향린교회는 지금 참 좋습니다. 여기에서는 뭐든 해결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겨요. 어떤 일이든 해결하는 데에 어려운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할 수 있다는 경험은 다른 데에선 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저처럼 원하는 바를 개진하는 사람이 있고 이를 논의할 수 있는 장이 확보된다면 분명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다는 거지요. 그래서 이곳에서 하고 싶은 일들이 참 많습니다. 좋은 프로그램도 많아요. 한 예로, 민족적인 것을 중시하기 때문에 국악으로 찬양을 드리는데 향린교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에 국악찬송 30주년이 되어서 11월과 12월에 공연이 있다고 해요. 참석해서 들어보시면 정말 좋은 경험이 되실 겁니다.
길목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길목에서 하는 '한강 읽기'에 참여했었어요. 한강 작품을 달마다 한 권씩 읽는 건데 제가 발제한 책은 '채식주의자'였습니다. 블랙코미디처럼 냉소적인 화법과 구도가 흥미로웠어요. 불가해한 그로테스크의 포르노그래피로 시작해 클래식한 여성 뮤즈의 재전유, '언니'의 일화까지 연결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읽은 '소년이 온다'는 사실 많이 괴로워하며 읽었어요. 힘들었던 기억을 소환하면서 성장하게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이러한 섬세하고 촘촘한 독서 경험을 길목을 통해서 하고 있습니다. 탄핵 이후에 진보정치를 지향하는 개신교 청년들이 모여서 <PC 통신>이라는 소규모 모임도 가지고 있어요. 고상균 목사님과 정유현 선생님의 이끎으로 10월부터 시작했습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사회 곳곳에서 울부짖는 민중 예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훈련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향린교회에 다니게 되면서 스스로와의 약속이 하나 더 늘었는데요, '같이 울어주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같은 마음으로 울 수는 분명 없겠죠. 하지만 적어도 혼자서 울게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