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균98

에피소드8 - "자유란 항상 다르게 생각하는 ..."

에피소드8:

"자유란 항상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자유를 의미한다!"

(Freiheit ist immer nur Freiheit des anders Denken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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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밀림에는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피라항'이라는 부족이 있는데, 이들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신앙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신도 없으니 인간관계에서도 무슨 계급 따윈 필요하지 않았던 듯, 이들의 사회는 지도자나 가부장을 포함한 사회계급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러한 그들의 언어에는 수 개념 역시 아예 없는데, 그나마 수와 비슷한 뜻을 담은 단어라도 3과 비슷한 것 이상을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쩌다 보니 베를린을 둘러볼 기회가 세 번 정도 있었다. 자주 가는 분들에게야 세 번이 뭐 그리 대수겠냐마는, 나같이 돈도 시간도 없는 데다가 별로 갈 일도 없는 부류의 사람에게 유럽의 도시를 세 번 방문할 수 있었다는 것은 '쫌 같네!' 정도의 평가는 받을 수 있음 직하지 않은가? 만약 피라항족에게 나의 베를린 방문 횟수인 3이 알려진다면 그건 부족 전체의 수 체계 최대치에 상응하는 개념일 것이다. 그만큼 나의 베를린 방문 3회는 참 소중하기 그지없다는 거다.

 

아무튼 각설하고! 베를린에 갈 때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들렀던 곳이 있다. 여행 책자에는 절대 소개되지 않음을 물론, 현지인도 그 위치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베를린을 대표하는 녹색 랜드마크인 티어가르텐을 감싸고 흐르는 란트 베어 운하에 걸린 철제다리 아래의 그곳은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을씨년스럽다. 동물원, 티어가르텐, 카이저 빌헬름 교회, 연방의회, 브란덴부르크 문 같은 유명 관광지가 지척에 즐비하건만 유독 오가는 이도 많지 않고 대낮에도 어둡게 느껴지는 그곳엔 로자 룩셈부르크 추모조형물이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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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사회주의자보다 더 높이 날아오른 독수리(레닌),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과학적 계승자들 가운데 가장 탁월한 두뇌(메링).......

 

사회주의자 중의 사회주의자, 로자 룩셈부르크는 1871년 제정 러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폴란드 자모시치(Zamość)에서 태어났다. 평생 이어질 그의 삶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었을까? 다섯 살이 되던 해 앓게 되었던 병의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가 짧아지는 장애를 얻게 되었다. 게다가 매우 일찍부터 폴란드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 프롤레타리아트당'에서 활동을 시작했던 그는 러시아의 탄압과 수배 속에서 18살이 되던 1889년, 스위스로 망명하기에 이른다. 제국에 의해 국권을 강탈당한 약소국의 장애인, 여성, 사회주의자 등....... 가히 소수자가 아닌 정체성이 거의 없다시피 했던 그는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취리히 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독일로 이주, 독일 사회민주당(SPD)에서 본격적인 정당 정치인이자, 사회주의 이론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로자는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등이 주창했던 수정주의적 사회주의 운동론에 반대하며 사회주의 혁명의 당위성과 이를 위한 투쟁을 강하게 역설했다. 하지만 그가 희망을 걸고 몸담았던 사민당이 1차 세계대전 정국에서 독일의 제국주의 정책 및 개전을 지지하자 칼 리프크네히트 등과 함께 저 유명한 '스파르타쿠스단(Spartakus-Bund)'을 조직, 반전(反戰), 노동자 연대 투쟁을 한층 강화했다. 이 같은 그의 행보는 적대세력뿐 아니라, 평소 동지라 호칭하던 정당 내 기득권 세력들에게도 배척을 당하기에 이른다.

 

결국 로자가 참여했던 스파르타쿠스단은 사민당과 결별하고 1918년 독일 공산당을 창당하기에 이르렀고, 사회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진행된 베를린 봉기 등을 주도했다.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사민당은 사회주의자들의 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어처구니없게도 우익과 손을 잡았고, 이로 인해 우파 정치세력의 준 군사 조직이었던 자유 군단(Freikorps)은 정부군의 지원하에 무장력을 갖추게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시민에 대한 사살과 같은 불법적 행위를 공공연하게 자행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상황 앞에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정치적 동반자였던 칼 리프크네히트와 은신처에 은거하며 반전의 기회를 노렸으나, 끝내 자유 군단 조직원들에게 납치된 이후 성적 학대를 포함하여 끔찍한 고문을 당한 끝에 1919년 1월,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밖의 으슥한 숲속에서 무참히 살해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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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를 살해한 자들은 그녀의 시신을 시해 장소에서 가까운 운하에 유기하며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 하지만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그의 강철같은 신념이 불꽃처럼 치솟았듯, 그해 5월 유기되었던 로자의 시신은 물 위로 떠올랐고, 마침내 그 잔혹한 범죄행위가 만천하에 알려지게 되었다. 살해당하는 순간까지 사회주의적 신념에서 한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던 로자 룩셈부르크는 활동뿐 아니라 마르크스 이론에 대한 체계적 연구를 통해 《자본의 축적(Die Akkumulation des Kapitals)》 (1913) 과 같은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필연적 연결고리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풀어낸 것은 그의 독창적이고도 탁월한 안목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또한 노동자 대중 혁명을 위한 조직 활동을 중시했으나, 러시아 볼셰비키의 권위주위적 경향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진정한 사회주의란 광범위한 민주주의 속에서만 실현될 수 있음'을 역설했다. 오늘의 이 부족한 글의 제목은 로자 룩셈부르크가 이 같은 자신의 사상을 함축하여 역설했던 명제이기도 하다.

 

정적들에게는 눈엣가시였고, 동지들에게는 옷깃을 여미게 했던 로자 룩셈부르크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사회주의적 가치를 꿈꾸는 이들에게 있어 어두운 여정 앞에서 빛나는 불빛으로 응원과 격려의 마음을 전하는 존재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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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그가 살해당했던 장소와 시신이 떠오른 곳에는 동일하게 범죄행위에 대한 증언을 담은 동판과 추모조형물이 설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철골 교각 아래 란트 베어 운하 중 로자의 시신이 떠올랐던 지점에는 그녀의 이름이 금속 재질의 조형물로 만들어져 있다. 지난 9월, 세 번째 방문한 나는 맥주 인문학 유럽 투어 참여자들과 함께 그의 불꽃 같은 삶과 안타까운 죽음을 생각하며, 그 위대한 이름 앞에 장미꽃을 헌화했다. 아울러 평생을 다해 그가 가슴으로 껴안았던 다양성의 공존과 민주적 질서 속 자유라는 가치가 대한민국, 지난 내란의 겨울을 지나며 이 사회의 민주주의가 아직도 얼마나 취약한 상황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던 이 땅에서 꽃피게 되길 진심으로 기도했다.

 

앞서 밝혔듯, 로자 룩셈부르크 추모 공간은 프로이센 왕실의 사냥터였던 티어가르텐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들어가 보면 규모에 놀라게 되는 티어가르텐의 한중간에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호수와 함께 근사한 가르텐 비어 '카페 암 노이저 제'가 있다. 독일의 도심 공원 내 비어가르텐의 전형을 보여주는 카페 암 노이어 제는 실내외 포함 천여 명이 동시에 맥주를 즐기기에 충분한 좌석이 마련되어 있는데, 번잡한 도심을 벗어나 한적하게 맥주 한 잔 나누기에 더없이 좋다. 낮에 가면 호수에서 뱃놀이도 할 수 있고, 오전부터 밤늦게까지 원하는 시간에 편안히 베를린의 로컬 맥주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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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화를 마친 후 약 십 분 정도 걸어가 닿았던 그곳에서 조용한 호수풍경을 안주 삼아 맥주 한잔을 기울이다가 문득, 약 한 세기 전, 사회주의적 이상을 끌어안고 씨름하던 이가 무참히 살해당했던 곳에 지금은 이처럼 편안한 맥줏집이 생겨 손님을 맞이하고 있음을 느끼며, 여러 가지 상념이 스쳐 지나갔다. 로자도 혁명을 논하며 동지들과 이렇게 맥주 한 잔 나눴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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