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수97

김초엽 지음 - <양면의 조개껍데기>

양면의 조개껍데기.jpg

양면의 조개껍데기

김초엽 지음

2025

래빗홀

 

 

길목인 책마당에서 소설을 소개하기는 처음이다. 나는 시대의 흐름을 읽기 위해 종종 젊은 작가의 글을 찾는다. 지난날을 이야기하고 역사책을 뒤적이면서 새로운 의미를 찾는 습관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작용한 것이다. 나이 때문일 것이다.

 

<양면의 조개껍데기>에는 7편의 단편소설이 담겨있다. <수브다니의 여름휴가>는 몸이 녹슬고 싶어서 금속피부를 갖고 싶어 하는 수브다니의 소망을 둘러싼 이야기다. 첫 작품부터 인간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 있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 세계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때론 낯익게 때론 낯설게 그려진다. 이 소설의 세계에서 사는 존재는 화장을 하는 게 아니라 피부이식을 한다. 몸의 형태와 속성을 원하는 대로 바꿔가며 산다.

 

표제작인 <양면의 조개껍데기>는 내 몸 안의 서로 다른 두 자아(라임, 레몬)가 서로 다투기도 하고 역할을 교대하면서 협력하기도 하는 이야기다. 지구 밖의 생명체(셀븐인)가 지구에 와서 사는 이야기이니까, 외계인이 바라보는 지구인의 삶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의 눈에는 지구인이 가지고 있는 지구중심주의의 편견이 거슬린다.

 

특히 눈을 끄는 건 두 자아가 공존하는 방식이다.

 

"잘 밀봉해왔다고 믿었지만 한번 틈이 생기면, 사실은 그전에도 괜찮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죠. 계속 충격이 가해지고 있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위태로웠는데, 겉으로는 부서지지 않았으니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던 거예요. 지금은 견디다 못해 빠그작, 이미 갈라졌고요."

 

이 소설을 읽다가 보면, 나의 자아가 하나인지 둘인지 혹은 다수인지 생각하게 된다. 어릴 때의 나와 지금의 나, 일할 때의 나와 놀 때의 나, 건강할 때의 나와 병약할 때의 나, 사람들과 어울릴 때의 나와 혼자 있을 때의 나. 같은 모습이 아니다. 소설 속에서 두 자아는 한 사람을 사랑한다. 두 자아 사이에서 생기는 질투심은 어떻게 작용할까?

 

<진동새와 손편지>는 시각과 청각이 사용되지 않고 오직 촉각(진동)으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우주선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람은 시각과 청각으로 대부분의 정보를 수용하는 데, 오직 촉각으로, 즉 진동으로 모든 정보가 소통되는 신기한 세상을 그려낸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생생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시청각 기자재를 활용하지만, 촉각의 감각을 사용하는 교육은 거의 시각장애인에게 한정되어 있다. 진동의 특정 패턴이 특정한 의미로 소통되는 세상에는 모든 존재가 통일된 언어를 갖는다. 진동은 외국어도 방언도 없는 매우 편리한 소통 수단이다.

 

<소금물 주파수>는 깊은 바닷속의 신비를 탐험하는 돌고래의 이야기인데, 그 돌고래는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있다. 그는 진짜 돌고래가 아니라 정교하게 만들어진 돌고래 로봇이니까. 그런 돌고래 로봇이 다른 고래와 이야기하고, 사람의 말도 알아듣는다. 돌고래 로봇을 훈련시킨 연구원의 손녀 모아는 돌고래 로봇을 동생이라고 느낀다.

 

<고요와 소란>은 "사물에는 목소리가 있다. 그것들은 영혼을 지닌 채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문득 얼마 전에 제주의 곶자왈 숲속을 지향성 마이크를 들고 걷던 게 생각났다. 사운드 워킹이라고, 눈으로 보는 것보다 귀로 듣는 데 초점을 둔 숲속 산책이었는데, 느낌이 완전히 새로웠다. 귀가 열어주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소설 속에서는 사물이 말을 한다. 아니 사물을 마주하는 사람이 사물이 하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그게 진짜로 사물이 말하는 건지, 사물이 말한다고 사람이 느끼는 건지는 확실치 않다. 눈이 아니라 소리로 인식하는 세상에서, 사물에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 논의하는 장면으로 들어가면, 종교적인 차원의 사색으로 이어진다.

 

이어지는 <달고 미지근한 슬픔>과 <비구름을 따라서>도 평범한 이야기는 아니다.

김초엽 작가의 다른 소설 <지구 끝의 온실>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 낯선 세계에서 살아가는 낯선 사람들을 만났었다. <양면의 조개껍데기>에서는 더 낯선 세계에서 살아가는 더 낯선 존재들을 만난다. 그러면서 내가 사는 삶이 매우 단순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개인적으로 60여 년을 살아오면서 많은 일을 겪었다고 생각하지만, 소설 속 존재들의 존재 방식과 삶의 방식에 비하면, 단순하기 짝이 없다. 한국인의 시각을 벗어나기도 어려운데, 소설은 지구인의 시각을 벗어나 있다. 외계인, 아니 외계의 존재가 지구 위에서 활동하는 생명 혹은 물체들을 바라보는 장면. 미국 영화들이 보여준 것과는 매우 다른, 좀처럼 상상해보지 않던 장면이다. 한편으로는 마음 안쪽을 들여다보고, 또 한편으로는 마음 바깥의 세상을 내다보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다. 의미심장하면서도 유쾌한 소설이다.

김기수-프로필이미지2.gif

사회적협동조합 길목
삶의 작은 공간으로부터 희망을 함께 나누는 큰 길로 통하는 '길목'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
03175 서울 종로구 경희궁2길 11(내수동 110-5) 4층
손전화 010-3330-0510 | 이메일 gilmok@gilmok.org
계좌번호 | 출자금 - 하나은행 101-910034-05904(사회적협동조합 길목)
프로그램 참가비 - 하나은행 101-910034-06504(사회적협동조합 길목)
COPYRIGHT ⓒ 2022 사회적협동조합 길목 ALL RIGHT RESERVED.

Articles

1 2 3 4 5 6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