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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인문학 유럽투어 시즌1 성사 기념 호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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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인문학 유럽투어 시즌1 성사 기념 호외

가끔은 연착된 기차가 가야 할 곳에 데려다준다!

(잘츠부르크 루퍼티키르탁 축제 참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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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코로나19 이후 독일의 기차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는 소식은 진즉에 듣고 있었다. 참가자 중 베를린 유학생은 '연착된다고 생각하고 일정을 조정하셔야 할 거예요'라고 말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대기 시간을 꽤 넉넉하게 고려하여 예매하기도 했거니와, '그래도 독일인데.' 하는 마음도 아주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늘 우려하는 일은 벌어지고 마는 것일까? 우린 지금 저 열차를 타고 뮌헨을 거쳐 잘츠부르크로 가야 하는데, 뉘른베르크역 전광판의 모든 열차 출발 시간 옆엔 지연 안내가 붙고 있었고, 매우 친절하게도 실시간으로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스텝 강민정 매니저와 예약한 열차를 타지 못할 경우에 대해 논의하며, 우린 서로에게 말했다.

 

완전 긴장되지만 긴장하지 말자, 긴장하고 예민해져서 바꿀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면 긴장하지 말자. 그게 더 손해니까.......

 

결국 환승 열차는 깔끔하고도 시원하게 정시 출발했고, 우린 뮌헨역에 덩그러니 남았다.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너무나 친절한 독일 열차 시스템은 앱을 통해 우리에게 명쾌한 안내를 시전했다. '야! 너네 열차 놓쳤어' 뭐 어쩌겠나? 서둘러 다음 열차 탑승권을 구매하는 한편, 주어진 시간만큼 뮌헨을 즐기자 싶었다.

 

여러분! 우리에겐 갑자기 한 시간 반 정도의 뮌헨 관광 시간이 주어졌네요! 짐은 제가 보관 할 테니 (뮌헨동)역 주변도 둘러보시고 점심도 편안히 드시다가 다시 이곳으로 오셔요!

 

적어놓고 보니 제법 호기 있게 말은 했었다만, 사실 머릿속은 없어진 시간만큼 다음 여정은 어떻게 보충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꽉 차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든든하게 자신의 역할을 감당해 준 강 매니저가 없었다면, 또 어이없기에 충분한 상황에서도 웃으며 양해해 주신 참가자들 모두가 아니었다면 절대 부릴 수 없는 여유였다. 그렇게 우리는 7박 9일의 여행 중간에 열차를 놓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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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보다 두어 시간 정도 늦게 잘츠부르크에 도착했다. 해외여행 중 두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듯하다. 서둘러 짐을 호텔에 던져두곤 일정을 시작했다. 잘츠부르크, 대충 핸드폰을 들고 찍기만 해도 인생샷을 남길 수 있을 만큼 멋진 절경에 모차르트의 이야기와 선율이 가득한 도시....... 절벽 위에 있는 호엔잘츠부르크성 카페에 앉아 슈티글 라거 한잔을 머금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슈티글은 잘츠부르크를 대표하는 대중 맥주로 오스트리아 전역에서 맛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간혹 한국의 대형마트에서도 만날 수 있을 만큼 국제적 인지도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 산뜻하고 시원한 목넘김은 만년설 녹은 물이 모여 시 한중간을 흘러내리는 잘차흐강(Salzach), 그 차갑고 맑은 느낌을 무척 닮았다.

 

그렇게 마음을 가라앉힌 후, 오랜만에 잘츠부르크 대성당을 찾았다. 중세의 종말을 이끌었던 유럽 농민 전쟁 당시, 농민군과 교회-영주 연합군이 일전을 벌였던 장소에 선 이 성당은 당시 처참하게 무너진 농민군의 핏물 위에 세워졌다. 변변한 대포 한대 없었던 농민군을 상대로 전쟁이라기보단 학살에 가까웠던 일전을 벌인 후, 신에게 승리에 대한 감사로 헌정한 것이었다. 이후 이 성당에서 수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하는 음악 신동이 연주를 했고, 그는 곧 엄청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지금까지도 전 세계를 매료시키고 있는 모차르트 음악의 출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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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역사적 현장에서 나는 매우 뜻밖의 풍경을 직면했다. 수년 전 방문했을 때는 다소 고즈넉하기까지 했던 대성당 앞 광장이 문자 그대로 발 디딜 틈 하나 없을 만큼 군중들로 가득 찼고, 일행에게 간단한 설명을 하기도 쉽지 않을 만큼 소란스러웠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확인해 보니 세상에! 우리가 도착했던 그 날, 그 시간이 잘츠부르크의 수호성인 성 루페어트(St. Rupert)를 기리는 축제 루퍼티키르탁(Rupertikirtag) 시작일의 개막 직후였던 거다. 기차 연착으로 늦게 도착한 도시에서 우리는 무려 그 연원을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유서 깊은 축제를 만나게 되었다.

 

광장은 맥주 텐트와 푸드트럭, 놀이기구, 수공예품 부스에 모여든 수만 명의 인파로 가득했다. 전체적인 느낌은 규모가 조금 작고 훨씬 더 전통적인 이미지가 강한 옥토버페스트라고 할까? 옥토버페스트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무척 아기자기하고 외지 관광객보다 현지인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아 보였다.

 

그중 너무나 당연하게도 나는 서둘러 맥주 텐트를 찾았다. 천오백 명 정도 들어감직한 텐트는 벌써 만석, 아무리 둘러봐도 앉을 곳은 없었다. 게다가 많은 사람이 긴 탁자 사이로 나와 맥주잔을 들고 노래 부르며 춤추고 있는 통에.......나도 덩달아 한참을 그냥 놀다가 나왔다. 맥주 축제란 생전 처음 봐도, 한 마디 통하지 않아도 그저 같이 웃으며 어울려 춤출 수 있는 것, 그런 것이다.

 

자리가 없기도 했으려니와 축제의 열기로 가득한 텐트에 오래 있기는 어려워 밖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슈티글을 축제용 1리터 잔에 담아 마셨다. 독일이 아니지만 무척 전통적인 남부 독일 스타일의 전통 복장과 축제의 모습...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는 남부 독일과 많은 부분의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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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연재를 잠시 중지하고 호외를 쓴 이유, 그건 무엇보다 여행 잘 다녀왔음에 대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을 거다. 농담이고! 실은 이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 오지 않고, 먼저 가 버린 열차, 계획보다 현저하게 늦어버린 일정, 설명할 수 있는 장소 자체를 잡기 어려운 상황 등 그날은 많은 부분 스트레스 게이지가 높아질 법한 날이었다. 하지만 그리 늦고 그리 번잡하게 도착한 바로 그때, 그 시간은 그날의 내게 가장 필요한 휴식과 여행의 감성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였다. 무언가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원치 않는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될 때, 나 같은 자들은 그 자체로 엄청 긴장하고 스스로 스트레스를 이만큼 높이기 시작한다. 혹시 이 글을 읽으며 '나도 그런데!'라고 하시는 분이 있다면 이 말씀을 나누고 싶다. 가끔은 연착된 기차가 가야 할 곳에 데려다주기도 한다. 그러니 스트레스를 잠시 내려두고 주어진 시간을 열심히 걸어가 보시라. 삶은 그렇게 예상하지 못했으나, 실은 내게 가장 필요한 상황으로 우리 각자를 인도해 갈 수도 있을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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