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낙영97

강물이 사막을 건너는 법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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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슈탐과 바흐아도르가 니루샤를 다녀간 후부터 니루샤와 '시간의 언덕'(니루샤 북쪽의 분지를 아오슈나르가 그렇게 불렀다)이 부쩍 분주해졌다. 잘 마른 다비목을 실은 나귀와 낙타가 '시간의 언덕'에서 짐을 부리고 나면 인부들이 니루샤로 와서 간단한 요기를 했고 짐승들은 여물과 물을 마셨다. 덩달아 바빠진 것은 니루샤의 여인들이었는데, 바흐아도르가 미리 보내온 밀가루와 양고기를 가지고 요리를 해내고 건초도 챙겨야 했기 때문이었다.

다비목을 쌓는 인부들을 감독하던 귀슈탐이 사구의 언덕바지에 앉아 긴 한숨을 내쉬곤 하였는데 그럴 때마다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러다가도 누군가가 다비목을 허투루 다루는 모습을 보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천둥 치는 목소리를 냈다.

-똑바루 안 핸? 조심스레 다루라! 기게 무언디 알기나 하넨?

귀슈탐의 목소리가 잦아드는 천둥소리마냥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내 틴구레 하늘 가는 문이라 이거이디. 살살 조심스레 다루라!

그의 목소리는 점점 느려지면서 기운이 빠지다 무엇엔가 걸려 흐려졌다.

-아······, 내레 이거이 잘 하는 건디 모르갔다. 틴구가 둑갔다는데 내레 멍석을 깔고 있딜 않네?

귀슈탐의 목소리가 울컥거리는 목울대를 간신히 열고 나오느라 심하게 뭉개지고 있었다.

아오슈나르가 잘 마른 장작을 구해달라고 했을 때 그는 흰 이를 한껏 드러내며,

······일 없시요! 마구쉬 님이레 필요하다믄 내레 얼마든지 구해 디리디요.

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런데 그 양이 심상하지 않자 의아스러운 생각에 '무엇에 쓰는 데 그렇게 많은 양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오슈나르는 '신의 시간으로 이어지는 제단'을 쌓는 것이라며, 파피루스에 먹으로 그린 그림 한 장을 내보이고는,

······장작을 쌓기 전 바닥에 동서와 남북 방향으로 한 길 정도 깊이의 바람길을 내주어야 합니다. 그 위에 네 변이 일곱 아르사니쯤 되는 육면체로 장작을 쌓아주세요. 물론 정육면체를 만들어야 해요. 맨 꼭대기 중앙에 3 아르사니1) 길이의 정사각형 흰색 카펫 모서리가 장작더미 각 변의 중앙에 들어맞게 세 겹을 겹쳐 깔아요. 그리고 그 위에 반지름 1 아르사니의 붉은 원형 카펫을 마찬가지로 정중앙에 얹으면 됩니다.

라며 진지하게 설명을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귀슈탐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오슈나르가 제단이라고 했지만, 장작으로 쌓은 제단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을뿐더러 그 양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귀슈탐은 아오슈나르가 펼쳐놓은 파피루스 속의 그림을 한참 동안 들여보다 문득,

······이거이 인신 공양 같은 거이에 쓰이는 건 아니 갔디요?

하고 물었다. 그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기에 아오슈나르는 슬쩍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인신 공양은 그야말로 제물이 되는 거지만 이거이는 차원을 뛰어넘는 겁네다. 내레 불에 태워지는 제물이 아니라 몸을 바꿔설라무네 신의 시간 속으루 건너가는 것입네다.

아오슈나르가 귀슈탐의 말투를 흉내 내어 말하자 그가 손사래를 치며,

······내레 못 하갔시오. 마구쉬 님은 내르 틴구라 하디 않았소? 틴구를 살리는 일이라믄 내레 목숨이라도 내어놓갔디만, 둑음의 제단을 쌓는 일은 못 하갔시요!

하였다.

······오! 친구여. 나는 그대에게 죽음의 제단을 쌓으라는 게 아니라오. 그대는 위대한 왕 카이 코스로2)의 마지막 순간을 이야기로 들어서 알 것이오. 내가 하려는 일은 그것보다도 본원적인 일이오. 내 친구 귀슈탐이여! 그대가 쌓은 '시간의 제단'에서 신의 뜻이 드러나는 걸 보게 될 것이오. 그대는 복을 짓는 것이오.

아오슈나르의 말에서 빛이 흘렀다. 한참 침묵의 시간이 두 사람 사이에서 반듯하게 굳은 치즈 덩어리같이 경직된 모습으로 틈을 만들었으나 아오슈나르의 설명과 간절한 눈빛에 절로 녹아들었다. 그러자 귀슈탐은 제 뜻 같은 건 덮고 '시간의 제단'을 쌓기로 했다.

······일체의 비용은 내레 부담 하갔습네다.

곁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바흐아도르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그러자 쉬슈탐이 펄쩍 뛰며

······니보라! 마구쉬 님이 내게 맡긴 일 아니네? 틴구레 끼어들 일이 아니디.

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두 사람은 서로 뜻을 굽히지 않고 옥신각신하다 결국 '시간의 제단'을 쌓는 일과 비용은 귀슈탐이, 부대비용 일체는 바흐아도르가 부담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었다. 그렇게 결정되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우샤와 바하락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다비목을 싣고 온 사람들과 그것을 쌓아 '시간의 제단'을 짓는 사람들에게 끼니와 참을 해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기계적인 분주함이 지나가고 진공 같은 시간의 틈이 생겨버리면, 문득 잊었던 게 생각난 듯 처연한 탄식을 쏟아 냈다.

-나가 시방 뭔 일을 허고 있능가 모르겄고마이. 내일 모레먼 우리 오라버니가 다른 시간으로 떠난다는 디, 이별의 정을 나누고 있어두 모지럴 판에 잔치집 지집겉이 허벌나게 바뻐뻔지네. 즌쟁 나가 죽은 서방은 죽었다는 기별만 왔으니 실감헐 수 없었응께 그런가부다 했는디, 우리 오라버니를 눈뜨고 보낼라니 오만가지 생각이 뒤엉켜 애간장을 다 뇍이네!

우두망찰한 모양으로 곁에 앉아 우샤의 탄식을 듣고 있던 바하락이 가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니루샤에 온 이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사람이었음을 깨달았으므로 자신들의 오라버니를 자처해 준 아오슈나르의 존재가 절대적이었다. 이제 그가 떠나고 난 이후에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가늠하기 쉽지 않았기에, 기실 그를 떠나보내는 아쉬움보다 더 큰 두려움이 그녀를 옥죄어왔다.

-내는 무섭다야! 오라버니 없는 니루샤레 상상이 안 된다야!

바하락의 억센 말투도 젖어있었다.

 

'시간의 언덕'에 다비목으로 쌓은 정육면체의 제단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환호하지 않았다. 일꾼들이 떠나고 나자 니루샤엔 갑자기 할 일을 잃은 사람에게 찾아오는 공허가 신기루처럼 깔렸다. 더없이 무거운 침묵이 금방이라도 울음바다를 이룰 것 같이 흠뻑 적셔져 있었다. 누구라도 눈물 꼭지를 열기만 하면 유프라테스강물이 역류해 쏟아질 기세였다.

정작 아오슈나르는 어느 때보다도 가벼워 보였다. 몸의 육기가 빠르게 빠져나가 투명한 깃털을 두른 듯했다. 영혼은 오롯해져서 눈을 감으면 건너 세상이 보였고, 눈을 뜨면 이곳 세상일이 하나로 귀결되어 분명해졌다. 그리하여 그가 지금 벌이고 있는 일은 더욱 분명한 당위를 갖게 되었다.

아오슈나르는 조상들의 옛이야기를 전해주어 진실한 이야기에 담긴 힘을 느낄 수 있게 해 준 아베스라가 고마웠다. 그가 아니었다면 문자를 가지지 못한 미스켄3)들의 이야기 전승에 내재한 역동성과 가능성을 간과하였을지 모른다. 또 자신이 하려는 일이 순전히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아오슈나르는 미동도 없이 선정에 들어 있는 아베스라를 향해 절을 했다.

 

우르크에서 바흐만 부제 일행이 도착하자 니루샤는 다시 바빠졌다. 니루샤에 도착한 바흐만은 곧바로 아오슈나르의 숙소에 들지 않고, 니랑(nīrang)4)을 올리브 가지에 묻혀 니루샤 일대를 돌며 뿌렸다. 이제 니루샤는 여염의 장소가 아니라 성소(聖所)가 되었다. 니랑으로 정화를 하고 나서야 바흐만 일행은 아오슈나르를 만났다. 그들은 거룩한 불 앞에 앉은 아오슈나르를 향해 경배하였다. 정오를 앞둔 시각에 바흐만을 따라 우르크에서 온 사람들이 분주해졌다. 그들은 거룩한 불 앞에 한 변의 길이가 세 아르사니가 되는 흰색 카펫을 세 장 깔고, 그 정중앙에 반지름 한 아르사니의 붉은 카펫을 얹었다. 그리고 펠트를 꾹꾹 눌러 말아서 지름이 반 아르사니가 되는 원기둥 뭉치 만들었고, 그것을 눕혀 카펫 바깥 경계를 따라 둘러쳤다. 니루샤의 자매들이 모두 들어와 앉았다. 그녀들은 처음 보는 광경에 어리둥절하였으나 거룩한 의식이라는 것을 직감하였으므로 숨 쉬는 것조차 두려워하였다.

바흐만은 흰색 튜닉 위에 자마(Jama)5)를 걸치고 피초리(Pichhori)6)라 불리는 넓은 허리띠를 둘러 묶었다. 그 위로 붉은색 쿠스티(Kushti)7)를 세 번 둘러 묶고 맨 위에 붉은색의 망토를 걸쳐 특별한 예식을 위한 전례복 일습을 갖춰 입었다. 바흐만과 흰색의 튜닉에 사드레(Sedreh)8)를 입고 붉은 쿠스티만 두른 두 명의 사제 수련생이 거룩한 불을 등지고 섰다. 바흐만 부제 오른쪽의 수련생은 향로를 받쳐 들었고 왼쪽의 수련생은 성수 주전자를 들고 있었다. 바흐만 부제가 제단의 거룩한 불을 향해 절을 하고 돌아서서 두 팔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아후라 마즈다와 짜라투쉬트라 그리고 쿠루쉬의 이름으로 아오슈나르를 호명하였다. 알몸의 아오슈나르가 얇은 흰색 카니수로 허리 아래만 아슬아슬하게 두르고 들어와 원형의 붉은 카펫 위에 섰다. 그는 두 손을 모으고 서서 집례자인 바흐만을 향해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추었다. 바흐만은 아오슈나르를 향해 성수를 뿌리고 향로의 줄을 짧게 잡고 분향하면서 그의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그럴 때마다 두 명의 수련생들은 잘 훈련된 사관같이 분주하게 바흐만을 보좌했다. 바흐만이 다시 돌아서서 거룩한 불에 허리를 굽혀 절을 하고 돌아서자, 성수를 받쳐 든 수련생이 그것을 제단에 올려놓고 은빛 주전자로 바꾸어 들고 집례자의 오른쪽에 섰다. 바흐만은 성수 주전자를 받아들고 아오슈나르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아오슈나르가 허리를 굽혀 절을 하고 무릎을 꿇고 몸을 세웠다.

-아오슈나르, 거룩한 이의 부름을 받드시오! 이는 아후라 마즈다 님, 짜라투쉬트라 님 그리고 그대의 스승 쿠루쉬 님의 이름으로 부르는 성소(聖召)입니다.

바흐만은 곧추세운 아오슈나르의 머리에 주전자를 기울여 성수를 부었다. 머리와 얼굴을 타고 물이 흘러내려 전신을 적시고 있었다. 주전자를 든 바흐만의 손이 움찔했다. 그 순간 아오슈나르의 숨이 순식간에 멎었다가 세미한 파동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바흐만의 곁에서 시중을 드는 두 수련생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성스러운 불을 향해 네 번 절하는 것으로 정화의식을 마친 아오슈나르가 예복을 갖춰 입고 대중들을 향해 앉았다. 바흐만과 두 수련생이 차례로 무릎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아오슈나르는 두 손을 머리 위로 쳐들어 기도한 후 그들의 머리에 두 손을 얹어 스승들의 덕과 선을 나누었다. 아오슈나르가 두 수련생의 이름을 물었다.

-아르다반(Ardavan)과 스피타만(Spitaman)입니다.

바흐만이 손을 들어 가리키며 소개하자 그들은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여 예를 갖췄다.

-훌륭한 후보생들이군요. 바흐만 사제의 깊은 신학을 배우게 되었으니 좋은 결실이 있을 것이오.

아오슈나르가 그들을 축복하였다.

-대중에게 결단의 말씀을 전하시지요!

바흐만이 아오슈나르를 향해 두 손을 벌려 들고 가르침을 청하였다.

-우리 삶은 매 순간순간이 두려움 속에서 완결되어 가는 시간의 결정체입니다. 그 두려움은 우리를 '좋은 생각, 좋은 말 그리고 좋은 행실'로 이끄는 나침반이지요. 그렇게 시간을 쌓아가면서 마지막 때를 지나서 만날 위자리슨(Wizārišn)9)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나온 것은 죽기 위한 것이 아니요, 세상을 타락시키고 오염시킨 앙그라 마이뉴와 다에바가 구축한 악과 싸워 처음 세상을 회복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 아후라 마즈다 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자리를 선택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도록 한 것입니다. 우리는 순전한 창조물이지만 의지를 가진 존재이며 선한 세계를 앙모하고 추구합니다. 생의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두려움을 딛고 일어서 자신의 삶을 빚어가는 것입니다. 지금 저는 두려워서 눈만 감아도 무너질 것 같습니다. 완전한 성화를 얻었으나 아직 이 세상에 몸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 두려움으로 나의 리듬이 절대자의 리듬과 동기화되는 거룩한 접속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아오슈나르는 두려움을 이야기했다. 실제로 그는 매우 두려웠고 떨렸다. 완전한 성화의식을 거쳤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건너 절대자의 시간에 접속할 순간 앞에 있으나 여전히 두려워하는 나약한 존재임을 숨기지 않았다.

아오슈나르의 법문을 들으며 아베스라는 문득 절벽공동체의 토마스 수사가 생각났다. 그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죽음을 한순간의 주저함도 없이 받아들이고 거룩한 노래를 봉헌하며 이승에서의 삶을 종결지었다. 노수사의 죽음엔 그것을 향한 인간의 의지가 작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오슈나르의 종말은 한 인간의 의지와 그것을 수용하는 절대자의 의지가 상호작용을 하며 완벽한 조화와 거룩한 은혜의 시간 속에 있다고 여겨졌다. 그것을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으므로, 아베스라는 그냥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오! 우샤, 바하락, 야스민, 로자, 큰 엘리제흐, 작은 엘리제흐, 이데흐, 데나, 고하르.

아오슈나르가 니루샤의 여인들을 하나하나 불렀다. 이름을 부르는 사이사이 그의 목소리가 세미하게 흔들렸다. 그녀들의 이름을 부르니 세상이 그에게로 오는 듯했다. 유랑 전도사제로 살았던 아오슈나르가 교의적 인간이었다면 니루샤의 그는 우주적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 중에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속적이랄 수 있는 수많은 일에 절대자가 숨겨놓은 비의가 있어 그것을 알아챌 때마다 고통스러운 영적 성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니루샤의 여인들은 성간(星間)을 흐르는 태초의 파장이었다. 그녀들의 몸에는 거룩한 노래가 새겨져 있었다.

아오슈나르가 그녀들을 향해 절을 했다. 그러자 여인들이 애써 참고 있던 울음을 흩어내었다.

-누이들이여! 울음일랑 거두어라. 너희들은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이 될 것이다. 너희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이 하늘의 일을 알게 될 것이다. 너희가 나를 알기 때문이다.

아오슈나르가 여인들을 하나하나 안아주며 축복하였다.

 

*

 

붉은 깃발이 행렬의 맨 앞에서 섰으며, 그 뒤로는 거룩한 불을 모신 화여(火轝)를 사제 수련생들이 앞뒤에서 들어 모셨다. 이어서 바흐만 사제가 그 뒤를 아오슈나르가 완정한 의례복을 입고 따랐다. 흰색 튜닉 위에 자마(Jama)를 걸치고 피초리(Pichhori)를 허리에 둘렀으며 그 위에 쿠스티(Kushti)를 세 번 감아 앞쪽에서 매듭을 지었다. 이어 나루샤의 여인들이 모두 흰색의 옷을 입고 따랐다. 그리고 귀슈탐과 바흐아도르를 비롯한 우르의 유력자들이 따랐다. 보기 드문 광경이 길게 이어지자 좋은 구경거리라고 생각한 인근 마을의 이난나 숭배자들까지 모여들었으므로 행렬이 '시간의 언덕'에 이를 때쯤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시간의 언덕'에 이르자 사람들은 다비목으로 지어진 제단을 보고 탄성을 내질렀다. 잘 말라서 밝은 베이지색을 띤 다비목 제단이 불씨 중의 불씨 태양의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신의 시간으로 이어지는 제단'이라 말하던 아오슈나르의 표현은 과장이 아니었다.

제단 앞에 이르자 바흐만은 의례복을 단정히 하고 붉은색 파이리(Pairi)10)를 썼다. 제단을 돌며 성수를 뿌리던 바흐만은 높이 솟아 있는 제단에 압도되었다. 그는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억누르며 겨우 사다리가 걸쳐진 정면에 섰다.

-사제 아오슈나르!

아오슈나르의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며 파열음을 내고 있었다. 파열음을 내며 이어지는 균열의 끝에서 사제 바흐만의 영혼이 요동을 쳤다.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집례자였다.

성수와 분향으로 아오슈나르가 오를 사다리를 축복하였다.

-선배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바흐만이 파이리를 벗어 아오슈나르에게 씌어주며 아주 작은 파동으로 말하였다.

-내 마지막 사제인데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니루샤를 부탁하네.

아오슈나르가 고개를 들며 그에게 눈빛을 내어주었다.

이윽고 아오슈나르가 사다리 앞으로 가서 섰다.

-오라버니!

익은 목소리에 아오슈나르가 고개를 돌렸다. 누비아의 보석 레일라가 거친 숨을 고르며 허리를 잡고 서 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모습이었다.

-레일라, 레일라로구나! 네가 나를 위해 달려와 주었어.

레일라는 무릎을 꿇고 입교를 허락해달라고 하였다. 바흐아도르가 그 옆에서 무릎을 꿇었다. 시간이 많지 않았으므로 간단히 두 사람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하고는 바흐만에 두 사람을 부탁했다.

 

아오슈나르가 '신의 시간으로 가는 제단' 위로 오르자, 사람들은 그의 모습을 좀 더 잘 보기 위해 모래언덕 위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바흐만과 니루샤의 여인들 그리고 귀슈탐은 기름을 듬뿍 먹인 솜뭉치가 매달린 장대를 하나씩 들고 사다리 앞에 서서 목소리가 좋은 아르다반의 신호를 기다렸다. 아오슈나르가 '신의 시간으로 가는 제단'의 카펫 중앙에서 두 개의 시간이 겹쳐지기를 기다리며 기도하다 일어서서 두 팔을 벌리는 것을 신호로 점화를 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아오슈나르의 머리 위에 우선하면서 하강하는 회오리가 나타나자, 좌선하면서 상승하는 기류가 분지 가득 거센 돌풍을 일으키며 다비목으로 쌓은 제단 아래에 파놓은 십자 바람길로 빨려들었다. 돌풍은 바람길을 통해 제단 중앙을 관통해 상승하고 있었다. 희한한 것은 그 요란한 회오리에도 사람들은 뜨거워지는 가슴과 차가워지는 머리를 느끼며 바람의 영향 따위는 받지도 않고 몸을 곧추세울 수 있었다.

-점화!

아오슈나르가 기도를 마치고 일어서며 두 팔을 추어올리자 아르다반의 감격한 목소리가 분지를 흔들었다.

-성 아오슈나르여! 불 들어갑니다!

뚜껑이 열린 향로에서 불씨를 옮겨 받은 횃불이 바흐만의 울컥하는 외침을 필두로 다비목 제단을 향해 던져졌다.

-오라버니, 저희를 기억하세요!

-오라버니, 고마웠습니다. 불 들어가요!

-오라버니, 사랑합니다!

-내레 귀슈탐이라요! 틴구여, 먼 눈을 뜨게 해 주셔서 고맙습네다! 내를 잊디 마시라요!

우샤와 레일라, 바하락과 여인들의 울부짖음, 귀슈탐의 탄식이 상승하며 타오르는 거센 불길의 굉음 속에 파동을 잃고 빨려들어 갔다. 거센 불길이 내뿜는 열기를 견딜 수 없어 바흐만과 여인들이 불기둥으로 변해버린 제단으로부터 멀리 뒷걸음질을 쳤다. 분지의 평지와 사구가 만나는 지점의 관목들께까지 물러서서 바라보는 제단의 불기둥은 황홀하기 그지없어서 그 위에서 온전하게 불을 맞이하고 있을 아오슈나르에 대한 걱정보다 신비감의 크기가 더했다.

그때였다. 제단이 거센 불길에 녹아내리기 시작하는 것을 본 레일라와 우샤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쩌그 위를 보씨요!

-저 위를 보오!

제단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한 그 순간, 불꽃을 뚫고 검은 물체 하나가 심하게 요동을 치며 심연의 해류가 우는 소리를 내더니 돌연 솟구쳐 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러는가 하는 사이 그것은 세상에 없을 흰빛으로 변하였고 날카로운 울음을 내며 날개를 휘젓고 있었다. 흰 새였다. 머리엔 벼슬과 세 개의 가늘고 긴 두각이 영롱한 구슬에 장식되어 빛나고 있었으며, 길게 늘어 뜨려진 꼬리에도 보석이 알알이 박혀있는 듯 휘황했는데 넓게 펼친 날개를 내저을 때마다 무지개가 서렸다. 그것도 잠시였다. 불꽃으로부터 멀리 날아오른 그 새는 햇살을 받으며 황홀하기 그지없는 붉은빛으로 몸을 바꾸었다. 그리고 수직으로 날아올랐다. 사람들의 탄성이 '시간의 언덕'을 뒤덮을 때쯤이었다. 날카롭고 긴 울음이 하늘을 가르더니 불꽃을 털어내듯 날갯짓을 하며 내려와 '시간의 언덕'을 선회하고는 다시 날아올라 빠르게 사라져 갔다.

-오매오매, 오라버니가 영 가부는 것 같소!

우샤가 탄식하며 무너지듯 주저앉아 두 손을 모았다. 니루샤의 여인들이 모두 똑같은 모양으로 두 손을 모았다. 잠시 후에 갑자기 들려온 모래 무너지는 소리가 아니었다면 언제까지나 그러고 있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검은 땅이 움직인다!

사구 위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짙은 회색의 주먹 돌들이 사구 너머로 이어진 둔덕을 따라 빠르게 움직였다. 그것들이 움직이며 마치 모래 산이 무너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사막 쥐 떼였다. 수효를 가늠할 수 없는 사막 쥐 떼가 몰려가는 끝에는 낙타 한 마리와 두 사람이 서 있었다.

-굴바하르?

우샤의 불에 덴 듯 놀라 외치는 소리와 동시에 모래언덕 너머 여인의 비명이 광야를 찢고 있었다. 사막 쥐 떼가 굴바하르와 조학을 빠르게 훑고 지나가자 회색 뼈들이 두 개의 무지로 남겨졌고, 그들이 타고 왔던 낙타는 공포에 질려 둔탁한 울음을 허공에 박아놓고 북쪽으로 달아났다. 굴바하르와 조학이 서 있던 자리엔 피 한 방울도 땅으로 스며들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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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르사니(Arsani)는 고대 페르시아의 길이 단위 중 하나로 팔꿈치에서 가운뎃손가락까지의 길이를 말한다. 대략 50cm로 추정한다.

2) 페르시아가 이슬람화되기 전까지의 신화와 역사를 기록한 『샤나메』에 등장하는 고대 이란의 위대한 왕. 그는 세상을 떠날 때가 되자 자신을 창조한 신에게 자신을 바치기로 하고, 가난한 이들, 미망인들, 고아들을 잘 돌보라는 유언을 남기고 산으로 들어갔다.

3) 아람어로 가난한 혹은 비참한 계층을 일컫는 말로 아카드어 '무쉬케누'mushkênu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아랍어 '미스킨'miskin, 히브리어 '미스켄'(מִסְכֵּן, miskēn)과 어원을 같이하는 셈족 계통의 언어.

4) 성별된 황소의 오줌. 봉헌에 앞서 정화하여 신성하게 할 때 성수로 쓴다.

5) 발목까지 내려오는 길고 헐렁한 흰색 가운으로 가장 대표적인 사제의 겉옷.

6) 자마의 허리 부분에 두르는 흰색 천 벨트

7) 허리에 매는 성스러운 띠. 양모 72가닥을 엮어 만들며, 이것은 야스나의 72개 장을 상징한다. 쿠스티를 세 번 감아 묶는 것은 '선한 생각, 선한 말, 선한 행동'을 나타낸다.

8) 순결함을 상징하는 흰색 조끼

9) 악(惡)과 영원히 결별하는 시간

10) 조로아스터교 사제가 의식을 집전할 때 쓰는 원통형 모자. 불과 진리를 상징하며 사제의 신성함을 나타낸다.

오낙영 사진.jpg

오낙영(글쓴이,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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