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율희96

우치다 다쓰루 지음 - <무지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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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의 즐거움

- 지적 흥분을 부르는 천진한 어른의 공부 이야기 검색

우치다 다쓰루 (지은이),박동섭 (옮긴이)

유유, 2024-11-04

 

 

'무지의 즐거움'을 접하게 된 것은 제목이 주는 궁금증에서였다.

나에게 모르는 것은 답답함과 같은 의미였기에 그동안 더 빨리 더 많이 알고자 노력했었는데, 무지가 즐겁다니….

낯선 호기심이 일었다. 책 두께의 만만함도 선택에 한몫했다.

하지만 얇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진도는 쉽게 나가지 않았다. 예상 밖의 묵직한 울림이 문장 하나하나를 계속 음미하며 들여다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치다 다쓰루는 일본의 합기도 무도자이자 프랑스 철학과 문학을 전공하고 레비나스를 오랜 세월 공부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본인을 레비나스 연구가라고 감히 말하지 않으며, 굳이 레비나스 전도사, 조술가, 설명가 혹은 제자라고 소개한다.

그가 자신을 전도사나 조술가라고 말하는 이유는, 본인의 주된 일이 '선현의 가르침을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이에게 전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의 읽는 힘에 대한 정의가 인상적이다.

읽는 힘이란, '공중에 매달릴 수 있는 능력'(결정짓지 않고 기다릴 수 있는 능력, 영어로는 'pending')을 의미합니다. 어려운 말일 수 있지만, 이는 일의적으로 정의되어 있지 않은 개념을 포함하는 논고를 계속 읽을 수 있는 힘을 뜻하고, 다른 말로 '지적 폐활량'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다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는 상태도 똑같은 정도로 좋은 일입니다. 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의 목록을 길게 만드는 것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의 목록을 길게 만드는 것 이상으로 인간의 지적 성장에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우치다 다쓰루는 모르는 무지의 상태를 이겨내는 힘, 혹은 그것의 즐거움을 말한다. 그리고 그 힘은 삶이 주는 불확실성과 불안 속에서도 답이 아니라 더 깊은 질문을 찾게 만드는 힘이라고 말한다.

답이 아니라 더 깊은 질문을 갈구하는 것 – 어렵다…. 참 어려운 일이다.

진정한 '주체'의 모습은 이렇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의 말에 뜬금없이 아버지에게 저런 사람들을 왜 받아주냐고 항의하던 딸에게 '사람이니까 그렇지"라고 답하던 '아버지의 해방일지' 장면이 떠올랐다. 왜일까?

계속 곱씹어 봐야겠다.

 

그는 배움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배움'이란, 다른 이가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이제까지 존재했던 자신의 지성적인, 혹은 감정적인 '프레임워크'에 들어가지 않는 것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 가지고 있는 프레임워크가 휜다든지 금이 갈 수도 있겠지요? 이때 대부분은 '프레임워크의 모양을 딴 걸로 해보든가, 아니면 사이즈를 큰 것으로 해보자' 함으로써 대처하기 마련입니다. 필사란 타인의 말을 자신의 어휘 보따리 속에 무리하게 집어넣는 일입니다. 텍스트를 받아들이기 위한 어휘 혹은 관념이 현재 자기가 가진 언어자원 가운데에는 마땅히 없으니만큼, 직접 그것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작업을 통해 틀림없이 '머리가 굵어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는 이렇게 배움 그 자체에서 오는 지적인 흥분과 성장의 기쁨에 대해 말한다. 이 책은 저자가 우리 한국 독자를 생각하면서 쓴 첫 번째 책으로, 한국 사회에서 어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가 필요할까 라는 고민으로 시작된 책이라고 한다.

우치다 다쓰루의 편안한 문체로 쓰인 친절한 글을 읽으며, '아, 이게 공부구나', '이런 것이 어른의 자세구나', '그렇네, 이렇게 생각하면 되겠네'라는 속말이 자꾸 삐져나왔다.

존재 자체를 풍요롭게 하는 공부, 즐거움을 위한 공부가 무엇인지 다시 사유해 본다.

 

저는 처음으로 레비나스가 쓴 철학서를 번역할 때 거기에 쓰여져 있던 걸, 거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중략) 레비나스가 뿌린 씨앗이 제 머릿속에서 싹튼 셈이지요. 애초에 계기는 다른 이로부터 찾아온 것이지만, 그것을 나 자신이 땅을 고르고 정성껏 가꾸었습니다. '배움'을 통해 다른 이가 된다는 것은 그러한 경험입니다.

배운다는 것은 '지식과 정보의 양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구사해 왔던 '지식과 정보의 처리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것입니다. '머리가 좋아진다'라는 것보다는 도리어 '머리가 굵어지는' '머리가 딴딴해지는(미더워지는)' 게 실제 감각에 가까운 표현이 될 겁니다.

 

우치다 다쓰루를 통해

신을 모르나 신을 앙망하는 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참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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