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레(가자 출신 팔레스타인인 활동가)95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를 가로막는 장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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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과의 연대를 가로막는 장벽들

 

제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한국에서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건국과 그로 인해 수백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고향을 잃게 된 역사적 배경 또한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지낸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을 때 이스라엘은 집단학살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행위를 저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가자의 외곽을 봉쇄하고, 수천 발의 미사일을 발사하고, 무차별적으로 폭격을 하고, 민간인을 살해하고, 도시를 초토화했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어린이 17,000명을 포함해 65,000명 이상을 살해했고, 120,000명 이상에게 부상을 입혔으며, 가자 지구 인프라의 약 90%를 파괴했습니다.

 

집단학살이 시작되면서, 저는 한국인이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활동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많은 한국인이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잘 모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서구 언론이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왜곡되고 비뚤어진 이미지를 형성해 왔기 때문에, 한국인이 팔레스타인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의지나 연대가 부족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팔레스타인과 가자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가로막는 주요 장벽에 대해 논의하려고 합니다.

 

역사에 대한 오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이 유대인에게 주어진 신성한 선물이라는 생각을 퍼뜨리며, 이를 하나님이 주신 권리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현대 이스라엘 국가는 불과 80년 전까지만 해도 팔레스타인 땅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는 19세기 초에 시작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이 승리한 후, 영국은 위임통치령이라는 이름으로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중동 지역의 일부를 장악했습니다. 그리고 영국은 팔레스타인을 유대인 정착민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들은 끔찍한 학살을 저지르며 토착 팔레스타인 주민을 죽이고, 살아남은 사람을 추방하며, 땅을 빼앗고, 이후 이스라엘의 건국을 선언했습니다. 예를 들어, 제 할아버지 살레는 이브나에서 태어났지만 강제로 추방당했고, 지금 그의 집이 있던 자리에는 이스라엘 정착촌이 서 있습니다.

 

이러한 점령을 정당화하기 위해, 일부 유대인은 그들의 조상이 한때 그곳에 살았기 때문에 그 땅에 대한 역사적 권리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조상이 수천 년 전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공정한 일일까요?

 

땅에 대한 정당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두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1. 그 땅의 최초 거주민이었을 것. 2. 가장 오랜 기간 연속적으로 거주했을 것.

 

이 두 가지 기준 중 어떤 것을 적용하더라도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정당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첫째, 그들은 그 땅의 첫 번째 거주민이 아니었습니다. 역사가와 고고학자들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이 처음 나타난 것은 기원전 1500~1460년경이었지만, 가나안인은 기원전 3000년경부터 그 땅에 거주했음을 입증했습니다. 그 당시 그 땅은 '가나안'이라고 불렸고 사용되던 언어는 고대 아랍어, 아람어, 가나안어였습니다.

 

그들의 거주 기간은 어떠할까요? 아주 너그럽게 추정하더라도, 유대인 공동체가 팔레스타인에 살았던 총기간은 약 500년 정도로, 연속적이지도 않았습니다. 이는 가나안인과 아랍 부족이 팔레스타인에 살았던 수천 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입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그 땅의 첫 번째 거주민도 아니었고, 가장 오랫동안 거주한 이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이 수천 년 전 가나안 아랍 부족들이 살았고, 팔레스타인인과 아랍인이 훨씬 더 오랜 기간 거주했던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을까요?

 

집단학살을 정당화하는 고정관념

 

이스라엘과 서구 언론은 집단학살에 대해 전 세계가 침묵하도록 하는 이야기를 퍼뜨렸습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의 저항을 '테러리즘'으로 규정하며, 자유를 위해 싸우는 사람을 자기 고향을 지키려는 사람으로 보지 않고 '테러리스트'로 낙인찍었습니다. 인간의 역사를 통해 살펴보더라도 지극히 정상적인 행위였음에도 말입니다.

 

한국인도 일본의 점령에 저항하지 않았습니까? 한국의 독립투사와 혁명가들은 조국과 민족을 위해 희생한 영웅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까?

 

이스라엘은 자신의 땅을 지키는 팔레스타인인을 범죄자나 근절되어 마땅한 미개한 야만인으로 묘사합니다. 한 이스라엘 관리는 "우리는 가자를 인간 동물처럼 취급한다"라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또 하나 해를 끼치는 고정관념은 팔레스타인인이 무슬림이며, 이슬람은 소위 '테러리스트 종교'라는 것입니다. 이런 고정관념은 팔레스타인 무슬림에 대한 살인을 수용할 만한 일로 만듭니다.

 

이는 집단학살과 토지 강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고안된 노골적인 거짓말입니다.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에도 잘못을 저지르는 신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이 종교 전체나 그 공동체를 대표하지는 않습니다. 독일인 한 명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모든 독일인을 테러리스트나 범죄자로 낙인찍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슬람이 테러리스트 종교라고 믿는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봐야 합니다. 당신은 꾸란을 읽어보고 나서, 그것이 테러리즘을 조장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종교나 책, 사상에 대해 직접 확인하지 않고 어떻게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까? 직접적인 지식을 얻은 후에 입장을 정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이스라엘은 이러한 오해를 이용하여 스스로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 삼아 팔레스타인인을 살해하는 모습을 전 세계에 생중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의미 있는 국제적 대응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스라엘은 불과 1년 반 만에 17,000명의 팔레스타인 어린이를 살해했음에도, 여전히 팔레스타인인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게다가 충격적이게도 많은 사람이 여전히 이런 거짓말을 믿고 있습니다.

 

인간성보다 정치적 이익

 

일부 한국인이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를 주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스라엘과 서방 강대국들, 특히 한국의 전략적 파트너인 미국과의 강력한 동맹관계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팔레스타인에 대해 왜 지지를 보내야 하는지, 주된 동맹국인 미국의 정책에 왜 반대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실은, 단순히 이익이나 동맹이 아니라 정의와 인간성에 기반하여 우리가 입장을 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치, 경제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어린이와 여성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을 지지하는 것이 정당한 일일까요? 그러한 이유로 침묵한다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공모가 아닐까요?

 

한국 역시 일제강점기에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일제의 잔혹한 만행이 명백히 기록되어 있음에도, 미국을 포함한 일부 연합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외면했으며, 심지어 일본이 한국인에게 저지른 범죄에 대해 '증거가 없다'라고 주장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순간, 정의의 목소리는 외면당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가자의 집단학살에 침묵함으로써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 모두 정의와 존엄성을 옹호할 것인지, 아니면 가해자가 '강력한 동맹'이라는 이유로 침묵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진정한 인간성은 바로 이런 순간에 드러날 것입니다.

 

역사에 대한 잘못된 정보, 부정적인 고정관념, 그리고 정치·경제적 이해관계가 팔레스타인의 대의를 지지하려는 한국인의 의지를 약화하는 주된 장벽이라는 것이 잘 드러납니다.

 

마지막 성찰: 정치를 넘어서

 

정치적, 물질적 이익을 넘어 더 심도 있는 질문을 던져봅시다. 이스라엘의 가자 봉쇄 때문에 굶어 죽은 어린이 100명을 포함하여, 17,000명에 달하는 어린이의 살해를 정당화할 수 있습니까? 65,000명 이상의 사람을 살해한 것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200만 명 이상의 사람을 굶주리게 하고, 아이들이 하나씩 죽어갈 때까지 식량 공급을 거부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이슬람이나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당신의 견해가 어떻든 간에, 이러한 잔혹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특정 종교나 사상에 대한 반감이 타인의 살해를 결코 정당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자에서 벌어지는 일이 인류에 대한 집단학살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반드시 중단되어야 합니다. 오늘 가자에서 이를 용인한다면, 내일은 전 세계 다른 곳에서도 이러한 일이 벌어지도록 허용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 이 글은 2022년부터 한국에서 살고 있는 가자 출신 팔레스타인인 활동가 살레가 쓰고, 미니가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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