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원95

사회 속 교회, 커먼즈로 존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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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교회는 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해 있습니다. 과거, 거대담론의 중심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기는 저물고, 신자들의 이탈과 사회적 불신, 제도화된 종교에 대한 회의가 교회의 현실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제 교회는 단순한 회심과 구원의 메시지를 넘어 새로운 사회적 위치를 모색해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초대교회 공동체성을 회복함과 동시에, 공공성과 탈자본주의 질서를 구현하는 '사회적 대안 공동체'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재정립은 협동조합 운동의 전환과정과 커먼즈 이론이 제시하는 통찰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초기 협동조합은 자본주의에 맞선 급진적 운동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상주의적이고 급진적인 실험은 현실의 제약에 부딪혀 실패하고, 점차 실현 가능한 '작은 공동체의 실험'으로 방향을 전환합니다. 이때 중심이 된 개념이 바로 '사회 속의 사회'(a society within society)입니다. 이는 급진적인 전복보다는, 기존 사회 안에서 '다른 사회'를 살아가는 대안 모델을 구성함으로써 변화를 도모하는 전략으로, 연속성과 누적성을 통해 공동선을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생활 속 실천을 통해 사회를 바꾸고자 했던 이 접근은, 지금 여기에서 교회가 감당해야 할 개혁운동의 방향과 깊이 있게 접촉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커먼즈 개념입니다. 한디디는 커먼즈를 단순한 공유 자원이 아닌, 그것을 어떻게 나누고, 함께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규범적 질서로 이해합니다. 자율성과 호혜, 공동의 관리와 민주적 참여는 커먼즈의 핵심 원리인데, 이는 초기 교회공동체가 지향했던 삶의 방식과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위계와 경쟁, 개교회주의와 성장중심의 프레임에 갇혀 본래의 공동체적 성격을 상실하였습니다.

 

교회가 다시 '사회 속의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방향에서의 실천이 필요합니다.

첫째, 교회 내 민주성의 회복입니다. 교회는 권위주의적 구조를 재편하고, 모든 구성원의 실질적 참여를 보장해야 합니다. 둘째, 교회가 보유한 자원의 커먼즈화입니다. 교회 건물, 시간, 정보 등은 지역사회와 함께 나누는 공공 자산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셋째, 교회는 지역의 생활 문제에 응답하는 실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주거, 돌봄, 노동, 기후위기 등 일상의 문제 속에서 '다른 삶'의 가능성을 제안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이러한 시도들은 이미 일부 교회들을 통해 실현되어 왔습니다. 공동체 주거 실천, 지역 아동센터 운영, 노동자 권익 보호 및 사회적 연대에 협력하는 교회들이 그 예입니다. 이들은 단순한 구제와 봉사를 넘어, 커먼즈와 협동조합의 실천적 모델을 교회 안에 구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는 사람을 많이 모으는 장소가 아니라, 삶을 바꾸는 실험장이자 지역사회 변화를 이끄는 마중물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회는 생태 커먼즈의 중심지로도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JPIC(정의, 평화, 창조질서 보전)의 원칙을 따를 때, 교회는 기후정의의 주체이자 실천자가 됩니다. 교회가 제로웨이스트샵을 운영하고,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거나, 지역 농산물 직거래 장터를 여는 등의 활동은 이러한 실천의 구체적인 사례입니다. 나아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탄소중립 실천과 탈성장적 삶의 태도―즉, 더 적게 소비하고, 더 많이 나누며, 삶의 속도를 줄이는 가치관―를 교회공동체가 함께 결단하지 못한다면, 점점 가혹해지는 기후위기의 시대를 넘어 결국 파국적 종말에 이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결국 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은 '교회다움'입니다. 협동조합이 본래의 윤리를 잃으면 무력해지듯, 교회도 복음의 본질을 실천하지 않으면 세상의 "빛과 소금"(마5:13)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실천은 말이 아닌 삶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교회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나누고 있습니까? 우리는 어떤 공동체 질서를 꿈꾸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커먼즈와 협동조합적 삶으로 응답할 수 있다면, 교회는 과거의 형태에 안주하지 않고, 예수께서 꿈꾸셨던 공동체의 미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교회는 여전히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방식은 혁명이 아닌 실천으로, 급격한 전환이 아닌 삶의 누적된 흔적으로, 구호가 아닌 공동의 삶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 시대 교회가 감당해야 할 '거룩한 평범함'의 길입니다.

 

게르하르트 로핑크의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는 이러한 흐름에 깊은 신학적 뿌리를 제공합니다. 그는 예수의 공동체를 '하나님 나라의 선취적 징표'로 보며, 그 공동체가 나눔과 환대, 권력 분산과 경제적 상호부조에 기반한 삶의 방식이었다고 강조합니다. 이 공동체는 위계적이지 않으며, 매일의 식탁과 생활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실천 공동체였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이러한 공동체의 성격을 회복할 때, 그것은 단지 시대적 대응이 아니라 신학적 정당성이자 복음의 완성이 됩니다.

 

결국 교회의 커먼즈화(=커머닝)는 교단의 경계를 넘어,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공동선'의 문제입니다. 개신교는 타 종단과 함께 공공성과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새로운 윤리와 삶의 질서를 실천하는 신앙공동체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날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며, 예수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과제입니다.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급속히 쇠퇴하고 있는 2025년 대한민국 현실에서, 교회가 커먼즈적 방식으로 지역사회와 연결되고 신뢰를 재구축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반드시 감당해야 할 과제가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선 끊임없는 시도와 헌신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야 비로소 교회는 과거의 유산을 유지하는 공간이 아닌, 오늘의 공공선을 실현하고 내일의 삶의 질서를 공동으로 만들어가는 '살아있는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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