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님은 협동조합에서 일한 경험이 있고 현재는 노동조합에서 일하고 있다. 우연히 관심 가는 길목의 프로그램을 참여했다가 조합원으로까지 가입하게 되었다. 폭염에 노출되어 일하는 택배, 물류 노동자들과 건설, 화물노동자들이 요즘 힘겹다. 지난 코로나 재난 시기에 우리는 보건의료 노동자, 배달, 콜 센터 노동자 등의 수고로 안전한 일상을 되찾기도 했다. 한편으론 비정규직의 굴레에서 열악한 환경과 장시간 노동을 하는가 하면, 여태껏 적절한 최저 임금조차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고사리님을 만나 이런저런 노동 현실을 들어 보았다.
Q. 길목은 어떻게 알게 됐나요?
제가 일하고 있는 사무실이 향린 교회와 멀지 않아요. 그래서 가끔 점심밥 먹고 산책하는데, 회사 주변을 크게 돌 때도 있어요. 그러다 여기 곰 카페가 있고 큰 느티나무가 서 있는 향린교회까지 오게 된 거죠. 우연히 교회 앞의 안내 배너를 봤는데 '맥주 인문학 강의'였습니다. 흥미 있고 괜찮겠네, 라는 생각을 갖고 강의까지 참석하러 오게 됐습니다. 전부터 향린교회는 알고 있었는데 사회적협동조합 길목에 대하여는 모르고 있었지요.
Q. 길목 조합원으로 가입했어요. 마음먹게 된 동기가 있나요.
맥주 인문학 강의를 듣게 되고, 독일로 맥주 투어를 간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근데 길목 회원은 10만 원이 활인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회원 가입하고 할인도 받고 길목 후원도 하면 좋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고상균 목사님께서 가입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올해 5월경의 일입니다. 근데 후원 회원보다는 조합원이 나을 것 같아서 온라인에서 조합원으로 체크를 했는데 조합원이 되려면 좀 절차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혜택은 크게 다르지 않다, 후원과 조합원의 차이가 없는데 조합원은 총회도 꼭 참석해야 하고 약간 어떤 의무가 있다고 얘기해 주셔서 빠르게 태세를 전환해 후원회원으로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뷰까지 요청을 하여서 가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길목에서 활동을 한 것도 없는데 저는 적절치 않다고 했습니다. 목사님께서 거듭 괜찮다고 말씀하셔서 이렇게 된 겁니다.
Q. 맥주 인문학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난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맥주 인문학 강의를 2~3번 들었고 나주의 수도원 맥주 탐방도 참여했습니다. 아는 사람 없이 혼자 참석했어요. 그러면서 길목은 향린 교회와 어떤 관계가 있는 협동조합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나주에 '불회사'라는 곳이 있어요. 신라 고찰인데요, 아주 예전에 간 적이 있었는데요. 그 이후로 다시 나주를 가게 되었습니다. 좀 일찍 가서 광주 학생운동 시작이 됐던 옛 나주역 역사를 둘러보고 '글라렛 영성의 집'에 갔습니다. 당일은 주로 신부님 강의 듣고 거기 양조장이 있으니까 맥주 시음을 했었습니다. 국내 시중에 나와 있는 맥주는 천편일률이고 대기업 맥주잖아요. 좀 맛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근데 여기서는 우선 이곳 지역의 농산물을 사용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종류도 다양해서 보리와 밀 맥주가 있고, 흑맥주도 있고, 라거도, 에일도 있었죠. 지역 수도원에서 자체 판매를 하고 주문이 들어오면 보내주기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지역 농산물을 우선한다는 것이 젤 믿음이 갔습니다. 신부님 말씀도 저는 좋았어요. 그러니까 기억에 남는 게 고양이 얘기를 하셨거든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미사를 보는데 어느 날 길고양이가 들어왔대요. 신기하다, 이러며 고양이랑 같이 계속 미사를 본 거죠. 그 이후로 여기 신부님이 바뀌어도 이 고양이는 계속 거기 있는 거예요. 나중에는 이 고양이가 더 중요하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성당의 본질인 미사를 보는 게 아니라 이 고양이가 있고 없고가 중요하게 돼 버린 겁니다. 주님을 모시는 게 아니라 이제 고양이를 모시게 되는, 그러니까 주객이 전도되었다고나 할까요. 말씀의 뜻은 우리가 현실을 살 때 본질을 못 보면 다른 것들이 나를 집어삼킬 수 있다는 거죠. 처음에는 고양이가 그래서 뭐 성인처럼 됐나 그런 상상을 하고 있었는데 본질이 아닌 것에 지배당한 삶을 살면 안 된다는 강론이 아직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Q. 독일 맥주 인문학 투어도 신청했습니다. 특별히 기대하는 곳이라든지 기대하는 것이 있을까요?
해외여행을 많이 해본 건 아닌데요. 패키지여행이나 자유 여행이든 맥주를 주제로 투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은 큰돈이긴 한데 여행사에서 갈 수 없고 내가 짜서 갈 수도 없는 프로그램이니까 이거는 무조건 가야겠다. 그래서 신청했어요. 여러 종류의 술을 마시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어디 나가게 되면 꼭 맥주가 아니더라도 그 지역에서 만드는 술 종류를 꼭 마셔보거나 사 오게 됩니다. 수도원에 들러 거기서 마실 맥주와 여행 마지막쯤에 '옥토버 페스트'인 맥주 페스티벌에 참석하게 되는 일이 기대가 많이 됩니다.
Q. 엄청 바쁘셔서 겨우 약속을 잡았습니다.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일 얘기는 안 하면 좋겠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제가 하는 일에 사람들이 편견을 가질 수도 있고 해서 그렇습니다. 그런 경험이 몇 번 있었거든요. 노동조합에서 일한다, 까지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Q. 사회에 나와서 계속 같은 일을 했습니까?
전의 직장은 사회적 협동조합이었습니다.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이었는데요. 조합원이 출자해서 병원을 만들고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하는 곳이죠. 지역주민이 조합원으로 가장 많이 있어서 이 의료기관을 이용하면 의료혜택을 받는 거죠. 의료협동조합은 서울에 은평, 마포 등에 있고 구리에도 있고 부천에도 있는 걸로 알아요. 조합원은 의료협동조합에서 주최하는 여러 가지 행사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제가 일했던 병원은 청소도 조합원이 함께했어요. 큰 병원의 재정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지금은 커져서 요양원도 운영하고, 한방 파트도 있고, 조금씩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Q. 학교 때 전공과 관련하여 사회에서 일을 하는 건가요?
아닙니다. 전공은 국어국문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잘 안 했어요. 그렇다고 잘 놀지도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근데 막연하게 시민사회단체 같은 쪽에서 일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런 성향의 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일도 하게 되었습니다.
Q. 윤석열 정부에서의 시민단체나 노동조합 활동을 돌아보자면 어땠습니까?
노동부가 오히려 노동조합을 탄압하는데 앞장섰던 거죠. 예를 들면 2023년 그때, 건설 노동자를 폭력배 취급을 해서 노동자 한 분이 스스로 돌아가셨거든요. 왜냐하면 자기는 정당하게 노동조합 활동을 한 건데 나를 폭력배라고 하니 자존심이 무너지는 거죠. 이제까지 해 왔던 투쟁과 활동을 모독한 거죠. 노조를 죽여야 하는 게 윤석열 정부 임무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요? 워낙 친 기업 쪽이었으니까요. 화물노동자들은 안전운임제라는 거를 해요. 지금 최저임금처럼 노동자가 적정한 임금을 받고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였습니다. 화물노동자들은 더 연장하고 더 확대하자는 의견을 냈는데 윤석열 정부는 그렇게 안 한 거죠. 오히려 공정거래위원회를 활용해 화물노동자들을 조사하고 탄압하고 법원에 재판받게 하고 이렇게 했었거든요. 최근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화물연대를 고발한 사건에서 무죄 판결이 나기도 했습니다.
Q. 일하다가 일터에서 죽지 않을 권리라고 하죠. 중대재해법은 현재 얼마큼 잘 적용되고 있고 시행되고 있다고 봅니까?
정부가 어떤 태도를 갖고 법 집행을 하느냐가 되게 중요하거든요. 예를 들면 우리가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었고, 이것을 사업주들이 잘 지키게 법을 운용해야 하는데 윤석열 정부는 그런 걸 전혀 안 했죠. 오히려 기업들이 막 이걸 후퇴시켜야 한다, 사업주나 대표자의 의무를 약화해야 한다고 했지요. 싸워서 막아내기도 했지만 그런 행위들은 정부가 법을 집행하면서 엄하게 적용을 해야 하는데 윤석열 정부에서는 그런 역할을 전혀 안 했죠. 벌써 1주기가 되었습니다만 '아리셀 밧데리 제조회사'는 그렇게 파견 노동자를 쓰면 안 되는 곳이었거든요. 근데 일부는 일용직 노동자처럼 와서 일한 거였잖아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공장의 구조를 잘 모르고 내가 어떤 업무를 하고, 전기 배터리에 이런 문제가 났을 때 어떤 조처를 해야 하는지도 전혀 안전 교육이 안 됐던 거죠. 그러니까 사고가 났을 때 대피를 제대로 못 한 겁니다. 영상을 잠깐 보면, 물을 뿌리면 안 되는데 오히려 물을 뿌린다던가 화재를 진압하려고 노동자들이 되게 노력을 하더라고요. 그 노동자들이 빨리 도망가야지, 그걸 왜 끄고 앉아 있나, 너무 속상하죠. 이주 노동자들도 있었지요. 이들을 경시하는 태도도 있고요.
Q. 비정규직 노동자도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나요?
네 만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학교는 임시 교사도 있고 돌봄 노동자도 있고 종류가 엄청 많습니다. 학교 비정규직은 공무직이라고 불리는 직종도 있는데요,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드는 거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습니다. 단결권이라든가 단체 행동권이라든가 교섭권을 사용하는 데도 문제는 없습니다.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곳에서는 다 만들 수 있습니다. 다만 화물노동자처럼 개인 사업자로 등록해야 하는 노동자들도 있어요. IMF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해서 아무튼 과정은 생략하고 이분들은 노동자인데 개인사업자라고 해서 노동자로 인정을 안 해줬어요. 근데 노동자 맞거든요. 건설 노동자도 초창기에는 그랬고, 요즘에 방문하여 점검해 주시는 분들 있잖아요. 가전 서비스, 정수기 점검을 하는 분들도 대부분 다 개인 사업 등록을 해서 일을 하시는데 다 회사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화물이나 아마 건설은 노동조합으로 인정받기 위한 투쟁도 했었던 거죠. 비정규직도 워낙 종류가 다양해졌습니다. 조합 설립을 하려면 설립 필증이 나와야 하는데 그 필증을 안 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노동자 지위가 아니라고 노동부가 판단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노동자다, 그래서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며 소송을 걸거나 합니다. 그렇게 해서 노동조합 지위를 획득합니다. 노동부에서 인정을 안 해줘도 필증이 없을 뿐이지 어쨌거나 노동조합으로 활동은 할 수 있습니다.
Q 코로나19 시점으로 해서 의료 종사자나 택배 노동자와 물류센터, 콜센터, 이런 분들의 노고가 많았습니다. 이후로 처우와 환경이 개선됐을까요?
개선을 아마 한 곳도 있을 거고요. 병원은 제가 잘 모릅니다. 보통 하청이라고 하잖아요. 병원에는 청소 노동자 등 여러 가지 업무가 있는데 보통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잖아요. 직접 고용이 아니라 간접 고용인 겁니다.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으면 거기서 사람을 병원으로 보내죠. 예를 들어 병원은 이 용역업체에 100만 원이라는 수수료를 준단 말이에요. 그럼 수수료를 떼고 노동자한테는 나머지 금액을 주는 거죠. 이렇게 하는 건 회사가 노무 관리를 하기 싫어서 그런 거거든요. 용역업체에 주면 궂은일은 이들이 하고 우리는 돈만 주면 된다는 거죠. 피해는 노동자들이 적은 임금을 받는 거고, 비정규직이니까 같은 공간에서 일하지만, 혜택을 못 받는다든가 그러죠. 그래서 직접 고용하고 외주를 중단하라고 계속 요구하는 겁니다. 노동부 앞에 고용이란 글자가 붙었잖아요. 그래서 심할 때는 너희가 무슨 고용노동부냐, 기업고용부 해라. 이러기도 하죠.
Q. 앞으로 이뤄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일단 목표는 정년까지 일하는 거고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건 아닌데 식물과 관련된 일을 정년퇴직 이후에 하면 좋지 않겠냐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숲에 가는 것도 좋아해서 '숲 해설사'라든가 실내 정원 같은 식물과 관련된 것들에 관심이 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식물을 키워도 죽이고 있기는 합니다만 하하.
Q. 여가 때는 어떻게 지내나요.
주말에는 주로 잡니다. 여행은 많이 가는 편은 아니고요. 영화를 보거나 합니다.
Q. '고사리' 님은 닉네임이죠?
네, 처음부터 그 이름으로 소개를 했고요, 제가 길목에 가입할 때도 고사리로 가입했어요.
길목에서는 닉네임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