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 농성의 하루가 아침 북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세종호텔 맞은편 철제구조물에 올라선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고진수 지부장이 매일 아침 선전전을 시작하며 응수하는 그 북소리. 연대하는 동지들이 하나둘 모여 빛바랜 폼보드 피켓을 나눠 들고 따가운 아침 햇살 아래 세종호텔 출입문 옆 벽에 길게 늘어선다.
고진수 지부장이 고공농성을 시작한 새벽, SNS를 통해 소식을 알렸다. 그땐 아직 매우 추운 막바지 겨울이었고 명동 세종호텔 근방의 지리를 아는 사람은 24시간 차가 지나다니는 6차선 도로 위에 그가 고공 농성에 돌입할 수 있는 지점을 예상할 수 없었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바람이 불 때마다 삐걱거리는, 일어설 수조차 없어 기어다니며 움직여야 하는 교통 구조물, 고진수 지부장은 그곳에 올라갔다. 그리고 백일이 훌쩍 넘었다.
고공 농성이 시작된 후 그 많은 날이 지나도록 꿈쩍도 하지 않는 세종호텔은 가히 철옹성같다. 세종호텔의 부당성을 알리는 많은 피켓은 그간의 연대를 알리듯 빛이 바래고 모서리가 헤져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고진수 지부장의 얼굴이 떠올라 애잔함이 밀려온다. 그 바랜 모습만큼이나 고공의 세월이 지나가고 있다.
고진수 지부장이 위에 오른 지 119일을 알리는 날, 채운석 운영위원장님, 고상균 목사님과 함께 다소 멋쩍은 얼굴로 만나 그 낡은 피켓을 나눠 들고 서 있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그 시절 텅 비어 있던 명동은 어느새 활기를 찾고 있었다. 코로나 이전처럼 호텔 앞은 관광버스들이 즐비하여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고, 많은 외국인이 트렁크를 끌고 지나가고 있다. 외국인 통행이 잦은 곳이라 세종호텔 해고에 대한 영문 피켓도 만들어져 있다. 무심한 듯 우리 곁을 지나가는 수많은 이들 사이로 이따금 우리의 피켓에, 그리고 철제구조물에서 들리는 북소리에 눈길을 주는 이들을 만나면 반가움과 고마움이 힘껏 몰아쳤다.
고진수 지부장은 키가 180센티미터가 넘는 장신이다. 그 큰 몸을 구기고 접어서 철제구조물 속에 욱여넣은 지 100일이 넘어버린 고공농성으로 지부장의 팔꿈치, 무릎과 고관절은 이제 많이 아프다. 지부장의 근육도 속절없이 퇴화하고 있다. 원래 혈압이 좀 높은 편이라는데 찌는듯한 더위가 찾아온 고공에서 혈압 조절이 될 리 만무하다.
2021년 연말 세종호텔은 경영 악화를 이유로 정리해고를 단행하였고 고진수 지부장을 포함하여 12명이 해고되었다. 정리 해고자들은 모두 민주노총 산하 세종호텔노조의 조합원들이었다. 노조는 법정에서 세종호텔노조 조합원만 해고한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고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는 각종 지표가 추측하게 해준다. 333개 객실을 운영하는 세종호텔의 정규직 직원은 현재 21명뿐이고 호텔의 직원 급여보다 하청 용역비 지출이 훨씬 크다. 고용을 줄이고 하청만 늘리는 구조조정이 코로나 재난을 기회로 완성된 것은 아닐까.
고진수 지부장의 고공농성이 이어지는 사이, 지난 3년간 우리를 괴롭게 했던 정권은 무너졌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다. 이제 새로운 정권은 속도감 있게 사회 곳곳의 무너진 곳들을 보수하려고 움직이고 있다. 부디 그 움직임이 하늘 위에도 연결되어 고공에서 절규하는 이들이 땅을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라. 이제는 하루빨리 내려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