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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4: 맥주로 사회복지를 실현한 나라 - 에스토니아 맥주 이야기

에피소드4: 맥주로 사회복지를 실현한 나라

에스토니아 맥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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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 항을 떠난 배 '에케로라인'이 핀란드만을 지난 지 두어 시간 정도 되었을 때, 차 한 잔, 책 한 권 들고 발트해를 바라보며, '나는 삶의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사람' 퍼포먼스를 하겠다는 나의 다짐은 선상 카페에서 파는 생맥주 한 잔에 여지없이 무너진 지 오래였다. 그렇다고 이동하는 동안 술만 퍼마셨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오산! 선상에서 바라보는 발트해의 파란색은 대충 찍어도 사진이 선명하게 나올 만큼 눈부셨고, 매우 큰 규모로 마련된 선내 면세점은 사지 않더라도 구경할 게 엄청 많았다. 이 모든 것을 즐긴다고 하더라도 청량한 바닷바람에 시원한 생맥주 앞에선 면벽 수행 중인 수도자라도 그만 마음이 말랑말랑해지지 않을까? 그러니 오전 9시 배를 타고도 맥주 운운하는 것은 분명 상당한 명분이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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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렇게 두 세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배는 탈린에 이르고 있었다. 중세풍의 오래된 건물과 성벽, 언덕 위 교회 첨탑....... 항구 도시 탈린은 그렇게 도착하기도 전부터 맥주로 이미 들뜬 여행자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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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린은 에스토니아의 수도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합친 정도쯤 되는 크기의 에스토니아는 에스토니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다양한 인종 구성에 알 수 있듯 녹록하지 않은 역사를 거쳤다. 이슬람권에 대해 더 이상의 공격을 감행할 명분도, 전투력도 상실한 후기 십자군이 북부 이방인으로부터 기독교권을 보호한다며 난데없이 방향을 틀어 공격하는 통에 남쪽의 항구도시가 점령당했고, 그나마 피해가 덜했던 북부는 덴마크에 강제 병합됐다. 이후 덴마크의 지배력이 약해지나 싶었더니 북독일계 기사단에 의해 다시 점령당했고, 이후에는 발트해 일대를 석권했던 스웨덴, 폴란드, 러시아에 순차적으로 지배당했다. 현대 에스토니아에 러시아계가 약 30%나 살고 있고, 루터계 개신교와 러시아 정교회가 공존하는 것은 이 같은 역사의 결과라 하겠다.

 

비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20세기에 이르러 강력해진 독일이 두려웠던 러시아는 1918년 브레스트-라토프스크 조약을 통해 에스토니아를 독일제국에 바쳤다. 이후 2차 대전 초기 상호 불가침 조약으로 사이가 나쁘지 않았던 독일-소련은 당사국엔 묻지도 않은 채, 발트 3국은 소련이, 체코 등 동유럽권 상당수는 독일이 가지는 것으로 합의했다. 당시 에스토니아인들은 소련의 점령에 반기를 들고 무장투쟁을 전개했는데, 소련에 선전 포고를 한 독일군이 탈린에 진주하자, 처음에는 해방군으로 인식하며 열렬히 환영했다. 하지만 독일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점령국에 지나지 않았고, 다시금 국민적 저항이 일어났다. 이에 독일은 종전까지 오천 명이 훌쩍 넘는 반체제 인사를 수용소에서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독일 패망 후 이 지역에 진주한 소련군은 에스토니아의 독립을 인정치 않았고, 결국 소비에트 연방의 일부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일제가 항복한 뒤, 둘로 쪼개졌을지언정 독립 국가 지위를 인정받은 한반도 사정이 그나마 좀 더 나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 유라시아 대륙의 이쪽과 저쪽 끝에선 유사한 시기, 이처럼 모두 통곡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소비에트 혁명과는 별개로 자국의 독립을 강탈당했기에, 에스토니아인들은 사회주의에 대해 반감이 컸다. 게다가 점령지에 대한 통치 체제 안정을 목적으로 비밀경찰 등 공권력이 강압적 통치를 시행하자 에스토니아인들은 1980년 후반, 대학가와 재야 세력 등이 결성한 '인민전선'을 중심으로 한 반소비에트-독립투쟁을 전개했다. 1989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의 시민 2백만이 참여했던 평화의 인간 띠 시위는 그 당시 상황을 대표하는 사건이라 하겠다.

 

에스토니아인들의 끈질긴 투쟁은 마침내 1991년 완전한 독립에 이르렀고, 현재는 EU 가맹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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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국가가 되지 못하던 시절, 에스토니아는 각각의 도시로 존재했다. 경제적으로는 한자동맹의 일원이기도 했던 바, 길드는 발전 초기부터 각 도시의 중심 세력이었다. 참고로 중세 유럽을 대표하는 국제 무역집단은 크게 북쪽의 한자동맹과 남부의 지중해 무역상으로 나눌 수 있다. 오스만튀르크 등 이슬람권으로부터 값비싼 사치품을 수입했던 남부와 달리 한자동맹의 주요 교역품은 옷감, 동물 가죽, 그릇 같은 생필품이었다. 그중 맥주는 한자동맹에게 있어 가장 큰돈을 벌어주는 고부가가치 상품이었던 바, 탈린 등 동맹에 속한 도시의 길드들은 예외 없이 품질 좋은 맥주 만들기에 집중했다. 게다가 영국 에일 마니아들이었던 러시아 황실을 지정학적 배후에 뒀던 에스토니아는 영국의 당시 최첨단 맥주가 지나는 교역로이기도 했던 바, 포터와 같은 영국 에일의 직접적인 영향도 받았다. 에스토니아의 내륙 도시인 타르투엔 19세기 초 영국인이 세운 양조장이 지금까지 이어지며, 영국이 아닌 지역에서 가장 영국스런 포터 '르 꼬끄'를 생산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에 수출하던 영국 기업에서 안정적 생산을 위해 에스토니아의 양조장을 인수했던 것에서 출발한다.

 

한편,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수준 높은 맥주 기술을 확보했던 에스토니아지역 길드에서 생산한 맥주들이 다른 지역에서 각광 받기에 이르자, 인근에서 돈 좀 있다 싶은 인사들이 너도나도 양조장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이리하여! 난립한 맥주 양조장으로 인해 '상표에 지역 이름을 누가 쓸 것인가?', '품질관리가 개판인데 대책이 없냐?' 등과 같은 문제가 윤석열-김건희 씨 국정농단 의혹만큼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공권력은 특단의 대책을 다음과 같이 마련했다.

 

아무도 독점할 수 없다! 그리고 수익금의 상당 부분을 과부와 고아 등 사회적 소수자를 위해 내놓지 않는 양조장은 당장 문 닫아!

 

이는 복잡한 민사소송에 개입하고 싶지 않음과 동시에 불만이 팽배한 시민들을 달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겠으나, 결론적으로 에스토니아지역 맥주들이 내적 분쟁을 극복하고 자유롭게 생산과 판매에 집중하게 했으며, 도시의 사회복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끄럽던 분쟁도 없어지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품질도 향상되었으며, 무엇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최소생계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탄핵하고 민주주의 실현하고 같은 게 아니겠는가? 에스토니아는 맥주를 통해 일찍부터 사회복지를 실현한 국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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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맥주 강국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 중세가 그대로 펼쳐지는 구도심을 걷고 있으면 '미드' 같은 전통 술과 함께 유독 크래프트 비어 펍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오래전부터 맥주에 진심이었던 이 지역 사람들의 역사가 현대의 크래프트 비어 문화와 잘 만나 형성한 에스토니아의 독특한 현주소라 하겠다. 크래프트 비어를 영접하기 전, 중세스타일 음식을 구현한다는 레스토랑에서 미드를 마셔봤다. 벌꿀 술 특유의 달달함과 함께 홉과는 다른 향이 특별했는데, 허브 계통의 풀을 사용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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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린에서 접했던 펍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헬 헌트라는 곳이다. 관광지인 구도심에서도 약간 외진 곳에 있으면서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펍인데, 실제로도 맥주에 꽤나 공력 있어 보이는 현지인(으로 추정되는 분들)들이 대부분이었다. 특징을 알고 싶어서 '헬 헌트 헬레스'와 '헬 헌트 에일' 두 종류를 동시에 주문에 하나씩 마셔봤다. 우선 헬레스는 뮌헨의 정통 헬레스보다는 오히려 자츠 홉의 개성이 강한 체코 필스너처럼 쌉싸름한 홉 맛이 날카롭게 목구멍을 차주는 라거였다. 에일은 상당히 구수하고 목 넘김에 부담이 없었는데, 라거에 익숙하며 에일에 처음 입문하는 분들에게 매우 매력적이겠다 싶었다.

 

참 어려운 역사를 지나 독립을 이룩한 땅, 수많은 외침과 전쟁으로 인해 길거리에 가득했을 과부와 고아를 위한 사회복지 시스템을 맥주로 이룩한 나라, 중세의 고풍스러움과 현대적 문화를 한눈에 느낄 수 있는 곳... 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에스토니아의 탈린은 참 맛있게 맥주 한잔하기 좋은 도시였다.

 

팁!

참고로 에스토니아는 자국의 언어를 가지고 있지만, 근현대의 격랑 속에서 노년층은 러시아어를, 젊은 층은 영어에 상대적으로 능통해서 생존 영어를 통한 간단한 의사소통은 대부분의 상업 지역에서 큰 문제가 없다. 또 우리로 치면 이마트 같은 대형쇼핑몰에도 크래프트 펍이 있으니, 쇼핑을 하다 한 잔 생각이 나면 꼭 찾아가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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