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본사: 오리엔트-중동의 눈으로 본 1만 2,000년 인류사
이희수 지음
2022, ㈜ 휴머니스트출판그룹
책 제목이 거창하고 도발적이다. 인류본사(人類本史)라니. 인류역사의 본줄기를 밝히겠다는 발상인데, 지금까지 수많은 역사학자가 밝혀낸 역사는 다 무엇이란 말인가? 인류역사의 시작 부분을 다시 살펴보겠다는 뜻으로 읽더라도 욕심이 과한 제목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이렇게 거창한 제목을 붙인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싶어서, 의심 반 기대 반으로 읽어나갔다.
저자는 인류가 최초의 문명을 일군 아나톨리아와 그 남쪽에 자리한 메소포타미아를 역사의 산실이라고 소개한다. 세계 4대 문명 발상지가 메소포타미아문명, 이집트문명, 인더스문명, 황하문명이란 것은 누구나 아는 바이고, 이들 중 가장 먼저 시작한 곳이 메소포타미아문명이라는 것도 대체로 알려진 상식이다. 그러니 이 책은 메소포타미아문명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것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해석하는 책이다.
아나톨리아는 동양과 서양이 만나고 이슬람과 기독교가 공존하는 곳, 흑해와 지중해로 둘러싸인 곳이다.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서 새로운 문명을 낳는 곳. 여기서 생성된 문명은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와 로마로, 남쪽의 메소포타미아로, 카스피해를 지나 실크로드를 따라서 중앙아시아와 동방으로 퍼져나갔다.
저자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이분법을 피해서 '중양(中洋)'이란 통합과 교류의 개념으로 인류역사 읽기를 새로 한다. 중양과 중반구의 핵을 이루는 아나톨리아와 메소포타미아를 다시 본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인류문명의 모태에서 출발해서 인류역사의 본류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인류본사'다.
우리나라의 세계사 교육은 주로 유럽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중국, 인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등도 다루긴 했지만, 유럽에 비해 비중이 매우 낮았다. 그 때문에 일반 국민은 아프리카와 남북아메리카 등의 역사에 대체로 무지한 편이다. 중동지역의 역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교육이 해방 후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데에다, 근대화를 서구화와 동일시한 영향도 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학창시절에 세계의 역사를 균형 있게 교육받지 못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미국과 유럽 외의 국가와 그 국민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낳았다. 교육이란 이름으로 부지중에 배제와 차별의 씨앗을 뿌린 셈이다.
아나톨리아에는 적어도 약 1만 2,000년 전 신전도시 '괴베클리테페'를 시발로 9,500년 전에 8,000명 규모의 도시 '차탈회위크', 이어서 '트로이'와 '히타이트'라는 족적을 남긴 왕국들이 있었다. 또한 당나귀 귀와 황금 손을 가진 '프리기아의 왕 미다스', 여인왕국 '아마존', 알렉산드로스 왕이 동방 원정 중에 잘랐다는 '고르디오스의 매듭' 같은 흥미로운 신화와 전설의 고향이기도 하다.
저자는 성서에서 노아의 방주가 걸렸다고 추정되는 아라랏산, 반(Van) 호수 주변의 에덴동산, 아브라함이 활동하던 하란, 사도 바울의 생가, 성모 마리아가 여생을 보냈다는 마리아 하우스도 아나톨리아반도에 있다고 소개한다. 초대 7대 교회와 니케아, 칼케돈, 에페스 같은 공의회가 열린 장소, 산타클로스의 실제 무대인 성 니콜라스 주교 성당도 아나톨리아반도 문명의 용광로 속에 살아있다고 한다.
저자는 동서양 문명에 깊은 영향을 미친 중동의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정리하면서, 세 가지 원칙에 따랐다고 한다. 첫째, 서양 중심의 역사에서 벗어나 동시대 카운터파트너였던 고대 오리엔트 역사를 대등한 입장에서 조명한다. 둘째, 모든 문명은 오랜 시행착오와 상호 유기적인 관계의 결실이라는 원칙을 존중한다. 셋째, 실크로드라는 문명의 젖줄을 통해 동서양을 연결해 주는 위대한 제국들의 실체를 재평가한다.
이 책은 703쪽의 꽤나 두꺼운 책이다. 그렇지만 읽기에 별로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이야기하듯이 글을 편하게 전개하고, 참고자료를 풍부하게 담았는데, 종이 색과 글씨체가 다른 부분이 자주 나온다. 지도와 사진과 간단한 설명이 붙은 자료도 자주 나와서 지루할 틈이 없다. 배낭을 메고 고대의 유적지들을 탐사하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다. 저자와 함께 인류본사를 탐사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