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들이 서로의 온기를 느꼈고...
5.18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하는 <소년이 온다>는 6장으로 나뉘어서 각 장마다 다른 인물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특이한 구성을 하고 있습니다. 1장의 화자 동호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자신이 겪은 일들을 보여주는데요. 그 안에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의 참상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이 겪은 고통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1장에서 동호는 함께 민주화운동을 하던 친구 정대가 군인의 총에 맞은 것을 보고 자신도 죽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도망쳐 버리고 맙니다. 이후 정대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계속 정대를 찾아다니지만, 그 정대는 결국 2장에서 혼이 되어 불에 타고 있는 자신의 시체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 3~4장의 화자인 은숙과 진수는 자신이 당했던 폭력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은숙은 혼자 살아남은 자신을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자신을 때렸던 경찰의 뺨 7대를 잊지 않고자 하며 살아가는 반면 진수는 스트레스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5장의 화자 선주는 모든 사건이 끝난 후에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글을 쓰는 작가에게 인터뷰 요청을 받지만 결국 그에 응하지 못합니다. 당시의 끔찍한 기억들이 남겨진 이들에게도 얼마나 큰 트라우마로 남아있는지 알 수 있는 장면입니다. 이러한 점을 마지막 6장에서 동호의 어머니를 화자로 등장시키며 유족의 시선에서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혼'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1장에서 동호가 혼이 존재한다면 어디로 갈지 생각하고, 2장에서는 혼이 된 정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때 정대는 함께 불타는 자신의 시체를 바라보는 다른 혼들과 서로 볼 수도 없고 대화할 수도 없었습니다. 억울하게 죽게 된 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허무함이 느껴지면서도 그 혼들이 서로의 온기를 느꼈고 시체가 전부 타버린 뒤에 자유를 느끼고 하늘로 날아갔다는 점에서 약간은 후련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5.18 민주화운동에서 군인들은 잔인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면 포상금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의 그들에게 시민이란 존엄성의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을지, 시민을 그저 약한 존재라고만 생각했던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 참상 속에서 시민들이 흘린 피와 노력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금의 민주주의 사회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그 뒤에는 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살아남은 자의 질문에 소년의 삶과 죽음이 답한다
소년이 온다는 각 장마다 중심인물이 바뀌는데 광주민주항쟁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1장 '어린 새'에서 중3 소년 동호는 함께 길을 가던 친구 정대가 군인들이 쏜 총에 맞아 죽는 상황에 직면하고 친구의 시신을 거두지 못한 자신을 어찌하며 못하며 도청 민원실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은숙(수피아여고 3학년), 선주(충장로 양장점 미싱사)와 함께 유족들이 희생자 찾는 것을 돕게 된다. 은숙과 선주는 부상자들 치료를 위한 피가 부족하다는 가두방송을 듣고 헌혈을 하려고 병원에 왔다가 도청 민원실에서 희생자 시신의 수습을 맡아 하면서 광주항쟁에 참여하게 된 이들이다. 그리고 이들을 지휘하고 돕는 시민군 대학생 진수가 나온다.
이 장에서는 희생자들의 시신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여러 번 나오는데, 그 주검들의 신원확인을 돕는 동호의 그 처참한 시신들을 대하는 태도가 인상적으로 표현된다. 군인들의 대검과 곤봉에 의해 처참하게 상처 입은 주검은 보통의 소년들에게는 마주하기 어려운 것이고, 동호를 집으로 데려가려고 도청으로 찾아온 엄마는 동호에게 "시체가 저렇게 많은데 무섭지도 않냐. 겁도 많은 자석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동호는 엄마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끝까지 남아 그 주검들을 계속 마주할 수밖에 없는 임무를 수행하며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나 자신까지도"라고 한다. 그는 친구의 죽음 앞에서 살아남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2장 '검은 숨'의 화자는 정대의 친구 동호다. 한강 작가는 총에 맞아 죽은 정대의 눈과 입을 통해 소설을 써 내려간다. 누구의 증언에도 나올 수 없는 이야기를 그러나 분명히 일어났던 학살에 대해 너무나 사실적인 묘사를 한다. 픽션이지만 넌픽션처럼 더 사실적인 듯한 이야기를 초현실주의적인 기법으로 묘사했다.
"수십 개의 다리가 달린 괴물의 사체처럼 한덩어리가 된 우리들의 몸을 더 이상 들여다보지 않을 수 있다면, 깜박 잠들 수 있다면, 캄캄한 의식의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칠 수 있다면"
"그들을 향해 날아가고 싶었어, 묻고 싶었어, 왜 나를 죽였는지, 왜 누나를 죽였는지,"
3장 '일곱 개의 뺨'에서는 광주항쟁 이후 출판사에 근무하는 은숙의 이야기를 통해 여전히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 속에서의 작은 몸부림과 저항들이 그려진다. 광주항쟁의 마지막 저녁에 도청을 나와 생존하게 된 은숙은 그 후 광주 도청 앞 광장 분수대에 물이 나오는 것을 보고 시청에 항의 전화를 한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은숙은 제발 살아달라는 어머니의 간곡한 호소에 못 이겨 대학에 진학했지만, 대학도 경찰에 점령당해 폭력이 판치고 있었고, 대학을 중퇴한 이후 출판사 일을 하며 경험하는 사회도 폭력적인 곳이었다. 경찰에게 일곱 대의 뺨을 맞아 얼굴이 부풀어 오를 지경이었지만 일주일 동안 하루에 한 대씩을 잊어가려고 한다. 그녀가 출판에 참여한 책을 공연에 올린 연극의 한 대사처럼 그녀는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이 살았다.
그렇지만 그가 보는 연극에서 초혼(招魂)의 과정을 거쳐 체육복을 입고 흰 운동화를 신고 조그만 해골을 가슴에 안고 걸어 나오는 동호가 등장하고, 연극은 동호의 넋을 달래는 진혼제(鎭魂祭)로 마무리된다.
4장 쇠와 피는 도청에 끝까지 남아있던 이들의 고통스러운 삶의 이야기가 진수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총기를 들고(그들은 총을 쏘지 않았다) 도청에 끝까지 남았다가 잡혀간 이들은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서로를 미워하게 되는) 존재의 바닥을 경험하고, 고문을 받고, 거짓 조서를 쓰고, 재판을 받고, 감옥살이를 하다가 풀려나서 사회생활을 하지만,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진수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쓰지만,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리며 힘겨운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진수는 동호의 죽음이 담긴 사진을 유서와 함께 남겼다. (동호는 진수가 지시한 대로 총을 놓고 두 손을 들고 항복하는 자세로 숨어있던 도청에서 뒤늦게 나오다가 사살당했다.)
이장에서는 심각한 질문을 남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 줄 수 있습니까?"
5장 밤의 눈동자는 4장에서 던진 심각한 질문에 대해 답을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중학교 졸업반 때부터 서울에서 노동자로 일하기 시작했고, 노동운동에 가담했다가 심하게 다치고 해고된 후에 광주에 와서 양장점 미싱사로 일했던 선주가 5장의 인물이다. 그는 도청에 끝까지 남았다가 잡혀서 심하게 고문을 당하고 옥살이를 한 후 서울에 온다. 그리고 과거 노동운동을 같이 했던 성희 언니의 소개로 핵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에 일하고 있다.
선주는 광주항쟁이 20년 지난 상황에서 시민군 인터뷰를 기초로 논문을 쓰는 윤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는다. 녹취를 앞두고 그에게 떠오른 단어들은 "빠른 죽음들, 총과 대검과 곤봉, 땀과 피와 살, 젖은 물수건과 송곳과 쇠 파이프" 같은 것들이었는데, 그는 인터뷰를 도저히 수락할 수 없었다.
그는 노동운동에 앞장섰던 성희에 대해 "언니는 나와 달라. 언니는 신도 믿고 인간도 믿으니까."라고 생각하며 "나는 주기도문조차 끝까지 소리 내 읽을 수 없었어. 내가 그들의 죄를 사한 것 같이 아버지가 내 죄를 사할 것이라니. 난 아무것도 사하지 않고 사함 받지 않아."라고 고백한다.
살기 힘들어서 죽기 위해 광주에 다시 갔다고 이야기하는 선주는 금남로 가톨릭센터 외벽에 방금 학생들이 붙여놓고 간 사진들에서 동호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러니까 그 여름에 넌 죽어 있었어. 내 몸이 끝없이 피를 쏟아낼 때, 네 몸은 땅속에서 맹렬하게 썩어가고 있었어. 그 순간 네가 날 살렸어. 삽시간에 내 피를 끓게 해 펄펄 되살게 했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의 힘, 분노의 힘으로."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선주는 성희 언니의 "우리는 고귀하니까"라는 이야기와 "희생자가 되어선 안돼"라는 말을 떠올린다.
선주는 잠을 자다가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를 듣는다. 반복되는 그 소리를 선주는 소년 동호가 오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내 책임이 있는 거야, 그렇지? 내가 집으로 가라고 했다면, 김밥을 나눠 먹고 일어서면서 그렇게 당부했다면 너는 남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 그래서 나에게 오곤 하는 거야? 왜 아직 내가 살아 있는지 물으려고?"라고 이야기하며 선주는 투병 중인 성희에게 "죽지 마. 죽지 말아요."라고 살아야 함 이야기한다.
6장 꽃 핀 쪽으로는 동호의 가족들 이야기다. 동호의 엄마는 동호를 보낸 후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 속에서 지냈다. 동호의 묘에 나 있는 풀을 한 움큼 끊어서 삼키고 그것을 토하고 또 삼킬 정도로...
동호의 형들도 동호를 잊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서로 잘 지내다가도 어느 날에는 동호의 죽음을 두고 멱살잡이를 할 정도로...
동호의 엄마는 전두환이 광주에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이름만 걸어놓고 나가지도 않던 유족회에 나가 현수막과 피켓을 만들고 소복을 입고 거리 시위에 나섰다가 경찰서에 연행되었고 경찰서 벽에 걸려있는 전두환의 사진을 끌어내리는 과정에서 다쳐서 병원에 가기도 했다. 이런 엄마의 삶은 동호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어린시절 동호가 엄마의 손목을 잡고 밝은 쪽으로 끌어당기며,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쪽으로"라고 이야기한 것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