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낙영93

강물이 사막을 건너는 법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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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오슈나르가 문득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진 레일라를 생각하면서, 몇 해 전 제국의 서쪽 끝에서 만났던 떠돌이 헬라인에게서 들었던 디오티마(Diotima)에 관한 이야기가 겹쳐졌다. 서쪽 바다 건너 헬라의 만티네아(Mantinea) 지방에 디오티마라는 현명한 여인이 있었다. 사변가 소크라테스의 여러 스승 중 한 명이었다고도 하는데, 더러는 단 한 차례의 가르침만으로 그 못생긴 이의 영혼을 더없이 아름답게 만들어 버렸다는 이야기가 에게 바다를 건너와 스파르다(Sparda) 지방에도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었다.

아오슈나르는 생각했다. 어디 레일라뿐이겠는가. 우샤와 바하락을 비롯한 니루샤의 여인들 모두가 몸으로 대지 위에 진실을 새기는 이들인데, 자신이 소크라테스만큼 품이 넓지 못해 이 땅의 디오티마들을 알아보지 못한 건 아닌지. 니루샤의 여인들을 생각하면 복잡한 감정이 들곤 했다. 아직 젊은 나이에 그렇게나 험한 꼴을 당하고도 그렇게 천진할 수 있는지 의아하기도 했고, 제 처지는 생각지도 않고 다른 이의 아픔에 철철 눈물을 흘리는 것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물론 '제 설움에 운다'라는 말을 알아차린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 가슴 아픈 것은 타박을 당하고 무시를 당하는 일에 이골이 나서인지, 그런 일을 당하고도 아무렇지 않을 뿐 아니라 태연히 다른 이들에게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나 그녀들의 미움은 얕고 사랑은 깊었으며, 원망은 가볍고 자애는 무거웠다. 그렇다. 그녀들은 맑은 사람들이었다. 니루샤 여인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다. 레일라, 우샤, 바하락, 야스민, 로자, 큰 엘리제흐, 작은 엘리제흐, 이데흐, 그리고 굴바하르와 싸우고 뛰쳐나갔던 데나, 고하르······ 그렇게 자매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떠올리다 굴바하르의 이름에 이르자, 아오슈나르의 숨이 가빠지며 분심이 치솟아 올랐다.

 

굴바하르······

 

문득 아오슈나르는 니루샤가 꼴을 갖추고 입주예배를 드렸을 당시 우르크 사원의 부제 바흐만이 돌아가기 전 그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바흐만은 우르크 사원 종무소의 카바드와 작별 인사를 하고 있던 굴바하르를 심상하지 않은 눈길로 바라보며 아오슈나르에게 경고를 했었다.

 

'사우마와 맹독을 동시에 품은 가시를 지니고 있습니다. 둘 다 치명적이지요!'

아오슈나르가 바흐만의 얘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은, 그녀의 거칠고 험했던 삶이 생존을 위한 독한 가시 하나쯤은 지닐 수 있도록 신의 섭리가 작용했으리라 생각한 때문이었다. 또, 막 시작하는 공동체에서 선입견으로 덫을 놓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커다란 실책이었다. 좀 더 세심하게 그녀의 삶 전체를 들여다보고 읽어냈어야 했다.

 

*

 

굴바하르가 아오슈나르를 사내로 느낀 건 아카드라에서 우샤와 야스민이 동행하고부터였다. 그녀의 눈에 볼품없고 수더분한 우샤에 아오슈나르는 더없이 친절해 보였다. 우샤는 덤덤한 말투로 시답잖은 말을 곧잘 했다. 단조롭고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는 긴 여정에서 그건 큰 선물이었다. 우샤가 푸념 섞어 내뱉는, 아무렇지도 않은 말에도 아오슈나르가 웃었다. 굴바하르의 눈에는 그게 이상했다. 그런데 그렇게 웃어주는 아오슈나르의 얼굴에서 하란의 '신들의 꽃밭'에서 겪어 본 어떤 사내에게서도 느끼지 못한 기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그녀도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어 무슨 말이든지 하고 싶었지만 할 말이 없었다. 문득 돌이켜보니 그녀에게는 생활이라는 게 없었다. 카나트에 남편을 묻어버리는 사고 이후에 시작된 거친 생활에서는 잔잔하게 풀어 놓을만한 이야기를 가질 수 없었다. 자진하여 찾아 들어간 매음굴에서 사내들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버려 새로울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우샤와 허물없이 얘기하는 아오슈나르를 보면서 문득 꺼져버린 심지에 불이 붙는 것을 느꼈다. 그건 이상한 결심을 가져오고야 말았다.

 

굴바하르는 언제나 아오슈나르를 주시했다. 그가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바로 곁에 앉아 같이 식사를 해도, 그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알 수 없는 기운은 결코 좁혀질 수 없는 거리감을 실감하게 했다. 그가 쓰는 말과 말투도 달랐고, 말할 때의 표정도 달랐으며, 걸음걸이도 달랐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다른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심지어 기도할 때도 자기를 위해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녀가 보기에 그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에게 아오슈나르는 가질 수 없는 보석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더 눈을 뗄 수 없었다.

 

우르크로 가는 길에서 끼니를 때울 때, 아오슈나르가 난을 찢어 굴바하르에게 건네준 적이 있었다. 그걸 받는 손이 떨렸다. 그 짧은 시간이 지나고 난을 받아 입에 넣으면서 그의 손을 덥석 잡아볼 걸 하고 후회를 했다.

-워메! 마구쉬 님은 손이 작소잉?

아오슈나르가 떼어주는 난을 받던 야스민이 무심코 한 말에 굴바하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뜨고 아오슈나르의 손을 보았다.

'작은 손?'

굴바하르는 아오슈나르의 손을 보면서 '신들의 꽃밭'에서 자신이 경멸했던 장군의 커다란 손이 생각났다.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낙담하는 그에게 입을 삐쭉거리며 비아냥거리자 사내는 그 큰 손을 펼쳐 그녀의 뺨을 후려쳤었다. 정신을 잃을 만큼 강하게 뺨에 와닿는 남자의 힘에 아랫도리가 저렸었다. 굴바하르는 아오슈나르의 손을 보면서 왜 그 장군의 커다란 손이 생각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오로지 아오슈나르의 손아귀에 깃들었을 힘만을 상상했다.

 

'여기 다에바의 딸이 있구나!'

귀슈탐의 집과 이난나 축제에서 톤박을 연주했던 떠돌이 악사 조학이 굴바하르를 보고 탄식하듯 신음을 내뱉었다. 그때 굴바하르는 축제의 마지막까지 꺼지지 않는 정염을 사르고 폐장의 떨이 상품 같은 모습으로 지구라트의 동쪽 귀퉁이에 널브러져 있었다.

'어둠이 안개처럼 서려 있는 몸일세!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아.'

시타르연주자 카비르(Kabir)는 조학이 굴바하르에게 관심을 보이자 단호한 말투로 경고하고 나섰다.

'자나는 자나 길로 가소. 내는 내 길을 가갔소!'

조학이 카비르에게 눈길도 주지 않으며 말하고는 낙타에서 뛰어내렸다.

'너희는 마지막 날에 살 한 점도 땅에 남지 않으리라!'

카비르는 탄식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조학과 굴바하르는 우르의 북동쪽 외곽 황무지에서 이틀 밤낮을 지내며 영과 육에 새겨진 성정을 탐색하며 뜨거운 숨결을 주고받았다.

'니는 이 세상이 지낼 만하더나?'

조학이 굴바하르의 가슴을 거칠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는 사나만 있으면 그럭저럭 괘안니더. 내가 우짜지 몬 하는 사나가 하나 있는데, 그기 좀 아쉽지요.'

굴바하르는 조학이 하는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쩌면 떠돌이 악사를 따라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니루샤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건 괜찮지만 아오슈나르를 어쩌지 못하고 떠나는 건 아쉬운 일이라 여겨졌다.

'쯧쯧, 니는 이 세상 사람이 아인 기라·····'

조학은 무슨 말인가를 더 하려다 말고 몸을 일으켜 양가죽 물주머니를 끌러 입을 적셨다. 그의 미간이 저절로 일그러지며 비명 같은 거친 소리와 함께 향이 썩 좋지 않은 독한 술 냄새가 났다.

'신전 양조장서 훔쳤는 기라! 하필 재수 웂구로 젤로 안 좋은 기를····· 클클. 니도 한 모금 할 끼가?'

조학은 다시 한번 양가죽 주머니 주둥이에 입을 대곤 크아악 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가래 내뱉는 소리를 내고는 술이 든 가죽 주머니를 굴바하르에게 내밀었다. 굴바하르가 주저하자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

굴바하르가 멈칫거리며 가죽 주머니의 주둥이에 제 주둥이를 가져갔다.

'캐엑!'

굴바하르가 진절머리를 치며 목을 움켜쥐었다.

'우웨웩····· 이기 술이 맞소? 내도 한때 술은 좀 마셔 보았지만서두, 이 술은 사램 잡겄소!'

굴바하르가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고개를 내젓는 모습에 조학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한 모금 더 해라. 몸이 따땃해지는 기 기분꺼정 좋아진다.'

조학이 굴바하르의 뒤에서 그녀의 가슴 밑으로 두 팔을 감싸 안으며 말했다.

'그란데 아께 한 말이 무슨 말이노? 우짜지 몬 하는 사나가 있다는 말 말이다.'

 

'사나는 사난데····· 사나가 아니시더!'

굴바하르는 아주 조심스럽게 한숨을 내쉬며 느린 말투로 자신의 기구한 팔자와 아오슈나르에 대해 말했다.

'내 팔자가 사나워서 우짜다 보이까네····· 수도 없는 사나들을 받아 봤니더. 지내고 보이, 사나라는 기는 사램이 아니시더. 즘생····· 사램 가죽을 뒤집어씌운 즘생하고 매한가지라. 더 우스븐 거는 내이시더. 살라고 '신들의 정원'에 제 발로 챚어갔구마는 그래서 목심은 살아 났는데 이름은 사라져뿔고 들으먼 수치심이 절로 끓어오르는 이름 아닌 이름으로 불립디더. 그래도 내는 좋았니더. 이름이사 어채피 내가 부르는 기 아이니 우째 불리동 그기 무신 상관일 거이요? 생전 처음 내 방을 갖게 되었지, 이놈 저놈하고 번찰로 놀아도 그기 갖고 뭐라 카는 놈 읎지, 실컷 놀았는 데 주인이 개지구 있기는 하지만서두 내 전대에 돈이 쌓이지. 그라고 이태쯤 지나고 나이, 사나들 속이 훤히 보이데요. 내가 사나들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있게 됐니더. 그라고 나이 사나들이 내를 개지고 노는 기 아니라, 내가 사나들을 개지고 놀게 됐니더. 하이고 사나들이요, 그 기 벨 것도 아니시더. 개지구 논 건 낸데 지들이 좋아가 미쳐요. 하란 근동 수십 리 안의 사나들이 다 내하고 잘라꼬 줄을 섰더니더.'

굴바하르는 힘없는 미소를 입꼬리에 붙이면서 자신을 안고 있는 조학의 팔을 풀어 손바닥을 가져다 가슴 위에 얹었다.

'하지만서도 좋은 시절은 순식간에 녹아버리데요. 내 몸 기술로 헹펜없이 망가진 쾌락의 열쇠를 고쳐볼 수 있으리라 여기고 찾아왔던 장군이 있었니더.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장사였니더. 손도 아주 커서 그 짓을 하매 내 머리통을 한 손으로 감아쥐고 흔들 정도였는데, 물건은 헹펜 없었다 아입니껴? 살리 놓으먼 죽어뿔고, 세아 놓으먼 자빠지고, 벨 짓을 다 해도 소용이 없었는 기라요. 지도 내 몸이 탐나니께네 죽을 둥 살 둥 용을 써 댔는데, 하이고 화살 맞은 늑대맹키로 으르렁거리기만 하다 내 몸 여기저기에 상채기만 맹글고 제풀에 나가떨어졌다 아이요. 그때 내 조동이를 잘못 놀려가 지금 이 모양이 됐다 아입니껴? ·····장군이먼 뭐 할 낀데? 내 앞에서는 서지도 몬하는 쫄자구마!····· 그 순간 그 커다란 손이 날아와 내 귀빵매이를 쳤는데 곧바로 기절을 했는 기라요! 단숨에 호롱불이 꺼지듯 내가 사라져 버린 기제.'

굴바하르는 주둥이 끈이 풀린 가죽 부대에서 물이 새듯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그래 신들의 정원에서 쫒기나 하염없이 헤맬 적에 마구쉬 님을 만냈소.'

굴바하르가 몸을 돌려 조악한 독주가 든 가죽 주머니를 집어 들더니 입으로 가져갔다. 울컥하고 쏟아진 술이 목구멍으로 미쳐 다 넘어가지 못하고 입 주변을 타고 목으로 흘러내렸다. 조학이 클클클 웃으며 그걸 핥았다.

'사나는 사난데 사나가 아닌 사나가 그 사람이가?'

'와 아니겠니껴? 참말로 요상치요! 그이는 처음부터 내 이름을 불러주었니더. 억수로 어색허고 황홀합디다. 이름을 불리는 기, 그래 좋은지 몰랐니더. 착한 오래비 같은 마구쉬 님허구 우르크로 오는 동안, 내는 즘생에서 사램이 되는 것 같습디더. 나는 부끄러버서 말도 잘 못했니더. 그란데 아카드라에서 우샤와 야스민이 동행을 하게 되고부텀 맴이 이상해 집디더. 우샤 갸가 스스럼이 없어가 말을 조곤조곤 잘해요. 오누이같이 도란도란 말하는 기를 보이 질투가 나데? 우르크에 거츰 다 왔을 무렵부터는 남자로 보여요. 그래 생각해 봤니더. 남편은 좋은 사램이긴 했는데, 기 머라노? 그래, 매력이라는 거, 그기는 읎었거덩. 그 뒤로 신들의 정원에서 쫓까날 때꺼정 남자는 다 다짜고짜 뎀비가 옷을 벳기는 존재였지, 내 맴이 끌리가 앵기는 그런 기는 아니었지요. 마구쉬 님이 우샤허고 웃음스로 다정하이 야기를 허는 걸 보이, 비로소 내가 보이는 기라. 우샤는 여염의 아낙이었고, 내는 창부였던 기라요. 그 때꺼정 내가 창부라는 의식도 없이 살았다는 기 기가 맥히지 않니껴? 갑자기 울분이 치솟습디다. 겔심을 했지요! 우샤가 먼저 침 바르기 전에 먹어버릴 끼다. 끄끄끄·····'

굴바하르의 억지스러운 웃음이 풍기는 기묘함을 느끼며 조학이 눈을 감았다. 초원에서 내쳐져 초원과 사막 사이를 떠돌 수밖에 없었던 무녀인 조학의 어머니는 늘 어둠의 세계에서조차 거부당한 한 존재에 대해 말하곤 했다. 두 개의 세계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존재는 소외를 견뎌내지 못하고 스스로 타락하게 되는데 자신뿐 아니라 대상까지도 파괴한다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그녀가 끊임없이 기도하는 이유는 자신이 그런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했었다. 조학은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늘 화가 났었다. 모두로부터 버려진 존재인 그녀가 모두의 안녕을 위해 기도한다는 게 참을 수 없었다. 그것은 악이 선을 위해 기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견딜 수 없는 울분으로 격앙되었던 그는 어머니를 범하려 했던 적도 있었다. 천성적으로 음기 가득한 눈웃음을 가지고 있던 어머니는 뒷물을 핑계로 아들을 진정시켜놓고 무구(巫具)인 칼과 가위를 들고 와 울면서 조학의 링가를 자르자고 덤볐다. 그때 그녀는 자신의 시신이 온전하지 못할 것이라 예언했다. 그녀가 죽었을 때 조장을 위해 햇살이 잘 드는 언덕 높은 곳에 시신을 뉘었으나, 독수리 떼는 그녀의 하반신 일부를 거부하여 예언을 현실화했다. 조학이 남은 시신을 수습하여 화장해야 했다. 조학은 굴바하르를 보며 몸서리를 쳤다. 두 개의 세계에 들지 못한 존재는 자신과 같은 운명의 기운을 읽는다. 조학은 굴바하르에게서 자신의 어머니를 보았다. 피할 수 없는 굴레임도 알아챘다. 그렇다면 그 사악한 운명을 완성하도록 돕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근데 사실 우샤는 그런 생각조차 안 하고 있는 갑데요. 우르크로 오는 길에서, 또 우르크에서 여그 우르로 오는 동안, 글고 니루샤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도 보먼 참 지극한 애라. 내한테도 얼매나 친절한지 몰라요. 친동기도 그래 몬 할끼라. 우예든동 내는 기회만 엿봤어요. 오래비, 나중에 마구쉬님이 우덜더러 오래비라 부르라 카더만요. 오래비하고 둘이 있는 짬을 맹글라고 애도 마이 썼다 안 하요. 그래서 차 심바람은 내가 자처했제. 한 번은 차를 들고 오래비 방에 드가니 기도 중이데? 가마이 보고 있으니 옳다쿠나 싶은 기요. 그래 옆에 앉아 살짝 맨졌어. 꼼짝도 안 하데? 욕심이 납디다. 좀 노골적으로 맨졌지. 가슴도 맨지고 따땃한 배도 맨지고····· 너무 황홀해서 정신이 없는 기라. 꼴깍하고 목구멍으로 침 넘어가는 소리가 천둥 번개 내리 쌔리듯기 들리는데 욕심을 참을 수가 없었니더. 그래가 오래비 바지춤으로 손을 확 집어 널라 카는데·····'

자신의 이야기에 빠져든 굴바하르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조학도 음심을 발행하여 그녀의 이야기 결을 따라 손길을 분주히 움직였다. 한동안 굴바하르는 환상 속에서 조학은 눈앞의 색체(色體)에서 단내나는 리듬을 따라 서로의 시간을 찾아 나갔다. 허망의 시간이 응축되어 흐른 후 굴바하르는 맥빠진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베락 같은 소리로 내를 내칩디더. 참말로 무서웠니더. 한 번도 그런 표정과 고함을 드러낸 적이 없었던 오래비가 그 베락 같은 소리 하나만으로 내를 꼼짝하지 몬 하게 만듭디더. 소리에 사로잡혀 꼼짝도 할 수 없었는 기라요. 숨도 쉴 수 없었다 아이요.'

굴바하르는 당시의 상황에 갇혀버린 듯이 밭은 숨을 내쉬며 표정이 굳어갔다.

'잠시 후, 오래비가 몸을 일으켜 옷매무시를 가다듬더니 나긋나긋 말합디더. ·····아무 일도 없었던 거다. 너는 그저 찻잔을 떨어뜨린 거고, 나는 뜨거운 찻물에 데어 소리를 지른 거다. 앞으로는 조심하여 찻잔 같은 거를 떨어뜨리지 말거라.····· 내는 그기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니더. 그저 처음으로 내 손길을 거부한 남자가 거기 있었는 기라요. 그 상황이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날 왼종일 그 생각만 했니더. 천하의 굴바하르가, 신들의 정원에서 남자들을 고양이 가지고 놀듯기 하던 굴바하르가, 왜? 밥을 먹는데 소태를 씹는 거 같습디더. 저녁 무렵꺼정 골똘히 생각을 해봐도 도무지 모르겠더니더. 낭중엔 화가 나대요. 분한 맴이 솟구치는데 걷잡을 수가 없는 기라. 뛰쳐나가 니루샤 북쪽 모래벌판에 나가 미친년처럼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펑청 울었니더. 그라고 굳게 겔심을 했지요. 기필코 깔아 뭉겔끼다! 끄끄끄·····'

굴바하르가 숨을 길게 두 번 내쉬었다.

'보란 듯이 노골적으로 행동했니더. 작업장에서 일할 때는 필요 이상으로 치맛자락을 걷어 올려 허벅지를 드러내고, 가심도 반쯤 드러내고, 분주한 척 돌아댕길 때는 엉디를 요란스레 흔들고, 내 좀 봐주소 하고 목소리는 한껏 높이가 소릴 지르고····· 다 소용 없었니더. 목석도 그 정도먼 한 번쯤 돌아볼 낀데 그이는 이 시상 사람이 아니시더. 그래 사나는 사난데····· 사나가 아니라 칸 기요.'

굴바하르가 어떤 기억을 정리하려는 듯 눈을 감고 눈꺼풀 뒤에서 눈동자를 분주히 움직였다.

'내요, 오래비를 자극할라꼬 벨 짓을 다했는 기라요. 일부러 다른 남자들과 있을 땐 다정한 모습을 뵈가 맴을 움직여 볼라 캤고, 노골적으로 다른 사나와 놀아나는 것을 알게 했고. 오래비를 곤경에 빠뜨려 놓고 내가 도움을 줘서 맴을 사 볼라 했고. 우르에서 신전 창부들에게 치도곤을 당하고 남들 다 여그로 올 때 치료한다고 남았었니더. 치료도 했지마는 거그 책음자 바스파르라 카는 마구쉬허고 몸을 풀었던 거라. 그 냥반이 날 맨져주먼서 오래비의 말과 행동을 잘 살피가 기억했다가 알려달라 카데요. 첨엔 그런 짓꺼정은 몬 한다 했는데 메칠을 그 마구쉬 방에 드나 들먼서, 어쩌면 어떤 기회가 될지도 모르겄다 카는 생각이 들었니더. 그래 나중엔 없는 말도 맹글어 전해 주게 됐니더. 그걸 바흐만이라는 다른 마구쉬가 알고 날 미워했니더. 아매도 그가 오래비에게 귀띔을 했을 낀데도 아무 기척도 없었니더. 그이는 그런 사나니더.'

굴바하르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조학이 한숨을 쉬었다.

'기필코 그 사램을 손 봐야 되겄나?'

'보소. 그이는 내를 거부한 유일한 사나지만, 내가 찍은 유일한 사나시더.'

나른하게 풀려가던 굴바하르의 눈동자가 푸른 불빛을 품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내 손바닥에서 멈춰버린 그 황홀한 감각을 되찾아야 안 되겠니껴! 내는 규중의 여인이 아니라 황무지에서 죽음 같은 쾌락을 구하는 사나들의 샘이었니더. 마시다 죽는 샘물을 품은····· 하지만 말이시더, 내도 내가 마시고 죽을 샘물은 마셔봐야 하지 않겠니껴? 내도 이참에 내가 가지고 싶은 걸 가져봐야 하겠다 그 말이시더!'

그러더니 잠시 후엔 풀기를 잃은 목소리로 걱정을 했다.

'인자 니루샤로 돌아갈 수 없을 낀데, 우예 하믄 좋을지 모르겠니더.'

그녀가 이번 이난나 축제에서 셀 수없이 많은 남자를 품은 것을 아오슈나르가 그걸 모르지 않을 것이라며, 당장은 니루샤로 돌아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걱정을 하고 있었다.

조학은 무가의 계율 가운데 굿 기간 중의 정결의무를 어겨 내쳐진 뒤,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으며 비참하게 살다, 시신마저 독수리에게 거부당한 어미를 생각했다. ·····내 눈에 드리워진 음기 때문이었다····· 자태가 고운 어미는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까지 파멸에 이르게 한다는 굴레를 벗기 위해 쉬지 않고 기도했다. 그러나 완성을 거부한 악의 결말은 주검마저 온전치 못했다. ·····나머지는 자네 몫이라네. 자네가 바르게 살면 자네 엄니는 새로워져!····· 시타르연주자 카비르는 그렇게 말했지만, 조학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악을 배역으로 받은 사람은 그것을 완성하는 것으로서 소멸하여 그 존재를 지워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굴바하르가 악을 완성하도록 돕기로 했다.

'가라! 니루샤로 돌아가 기다리그라. 내 친구들을 불러가 뒤쫓아가서 니 소원을 풀아줄 끼구마. 미치광이풀 한 뭇이면 충분할 끼다. 그 마구쉰지 오래빈지 니가 맘껏 깔아뭉개도록 해 줄 끼구마!'

조학은 굴바하르가 그토록 원하는 그 사내가 더불어 파멸하는지 그걸 극복하고 거룩해지는지 지켜볼 작정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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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낙영(글쓴이,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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