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팔레스타인에 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일란 파페(Ilan Pappe)라는 사람이 쓴 세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이스라엘 출신 역사학자로 하이파 대학의 교수였던 일란 파페는, 2007년부터 영국 엑시터 대학 교수로 일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을 떠나 영국으로 가게 된 이유는 배신자로 불리며 살해 협박까지 받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을 했기에, 살해 협박까지 받았던 걸까요?
팔레스타인 역사 알기
먼저 소개할 책은 <팔레스타인 현대사 - 하나의 땅, 두 민족>입니다. 19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반까지의 일들을 다루고 있어 팔레스타인 문제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1917년 11월, 시온주의 운동은 벨푸어선언이라는 보상을 받았다. 이 문서를 통해 영국은 현지 주민들의 이해와 충돌하지 않는 한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고국(national home)을 세우는 데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겠다고 약속했다. - 118쪽
1차 세계대전까지 팔레스타인은 오스만 제국의 일부였습니다. 영국은 오스만 제국과 싸우는 과정에서 시오니스트들에게 전쟁이 끝난 뒤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나라를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현지 주민의 의견은 무시한 채, 영국이 유럽의 유대인에게 이런 약속을 한 것입니다. 이후 영국의 지원을 받은 수많은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으로 몰려들었고, 1948년에 이스라엘을 건국합니다.
1950년대 이래 이스라엘군은 요르단강 서안을 신속하게 점령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다. 바야흐로 이 계획이 실행에 옮겨졌고, 며칠 안에 목표가 달성되었다. 그 이면에는 이스라엘 연구자들이 '수복파(redeemers)'라고 이름 붙인 집단-요르단강 서안(그들 말로는 유대 지방과 사마리아 지방)을 되찾아야 할 유대 국가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여긴 이들-을 중심으로 노동당 운동의 심장부 안에서 등장한 전략적 사고와 민족주의적 사고의 융합이 자리 잡고 있었다. - 292쪽
1967년 6월에 있었던 3차 중동전쟁을 두고 이스라엘은, 적대적인 아랍 국가들의 공격으로부터 작은 자신의 나라를 방어한 것처럼 설명하곤 합니다.
하지만 역사의 진실은 정반대입니다. 이스라엘은 1948년에 팔레스타인 땅의 78%를 차지했고, 이후에도 영토 확장 시도를 계속했습니다. 이스라엘은 1967년에 다시 전쟁을 일으켜 팔레스타인의 나머지 22%, 곧 요르단이 지배하던 서안 지구와 이집트가 지배하던 가자 지구까지 차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단 6일 만에 아랍 국가들을 물리치고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이스라엘의 군사력이 주변 국가를 압도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신화를 넘어
두 번째 책은 <이스라엘에 대한 열 가지 신화>입니다. 한국에는 이스라엘이나 유대인에 관한 여러 가지 신화가 존재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이스라엘이 민주적인 사회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스라엘 토지의 90% 이상은 유대민족기금의 소유다. 토지 소유자는 비유대인과 거래할 수 없으며 국유지는 국가사업에 우선적으로 사용한다…다른 곳에서는 '유대화(Judaization)'의 본격적인 시도가 시작됐다. 1967년 이후 이스라엘 정부는 국토의 북부와 남부에 거주하는 유대인이 부족한 점을 우려해 해당 지역의 인구를 증가시킬 방안을 세웠다. 이런 인구통계학적 변화를 위해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의 땅을 몰수해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해야 했다. - 199쪽
1948년 이스라엘이 점령한 지역에 사는 사람 가운데 20%가량은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팔레스타인인(아랍계)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들의 토지 소유를 제한한 것은 물론이고, 그나마 가지고 있던 땅을 빼앗아 유대인 거주지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아랍계 시민에 대해 정치 활동을 억압하고, 심지어 SNS에 팔레스타인에 관한 이야기를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체포하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점령 후 첫 20년 동안은 울타리로 구분된 이 구역 밖으로 사람들이 일부 이동할 수 있게 허용했다. 수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미숙련 저임금 노동자로서 이스라엘 노동 시장에 합류했다. - 250쪽
1967년에 가자와 서안을 점령한 이스라엘은 이 지역에 사는 팔레스타인인에 대해서는 시민권을 주는 것도 아니고, 자치나 독립을 인정하는 것도 아닌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시민권을 주자니 아랍계 인구가 급증해 유대인의 국가라는 정체성이 흔들릴 것 같고, 독립을 인정하자니 점령지를 내어놓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은 67년 점령지 팔레스타인인의 정치 활동이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이들을 값싼 노동력으로 부려 먹었습니다.
팔레스타인 문제란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입니다. 저에게 팔레스타인에 관한 책 가운데 딱 하나를 추천하라면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책의 주제가 1947~1949년에 있었던 팔레스타인 인종청소(나크바)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팔레스타인 문제'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뿌리를 잘 짚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서만이 아니라 미국에서도, 그리고 심지어 유럽에서도 팔레스타인 문제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들은 이 분쟁이 단순히 점령지의 미래에 관한 것이 아니며 그 핵심에는 1948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청소한 난민들이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었다. - 405쪽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권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난민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스라엘이 난민의 생활 터전을 빼앗아 탄생한 국가이기에, 난민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은 곧 이스라엘이 약탈 국가임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의 해법은 뭐죠?'라고 묻기도 합니다.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세우면 문제가 해결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난민의 입장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는 67년 점령지 가자와 서안에 독립 국가를 건설한다고 해서 온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난민의 귀환과 땅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1948년 나크바 과정에 많은 팔레스타인인이 가자로 피난을 갔습니다. 이에 따라 현재 가자 주민 상당수가 난민이거나 그의 후손입니다. 그리고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이 가자 전쟁을 시작한 이후 2025년 5월까지 5만 명 넘는 사람이 살해되었습니다. 과거 여러 차례 전쟁에서 살아남았던 난민조차 이번 전쟁에서는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난민의 존재, 그리고 그들의 삶과 죽음이 바로 팔레스타인 문제의 뿌리이자 핵심입니다.